# 32
독식왕 : 클리어러 032화
Chapter 13 - 스토커
1
이틀 뒤, F급 던전 5층을 공략한 정산금이 입금되었다.
입금액은 총 3억 4천만 원.
소장은 친절하게 정산 명세서 밑에 멘트를 추가해 주었다.
요약하자면 1억은 조사 의뢰비이고, 2억이 성공 보수이다.
5층 공략 정산금이 유독 큰 것은 아스도라퀸에게서 나온 결정석이 희귀한 것이라 그만큼 가격이 높게 책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사실을 간추려 누나에게 얘기해 주었다.
“진짜야? 빚을 다 갚을 수 있다고?”
“응, 이번에 공돈이 좀 많이 생겨서.”
티코이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3억이 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나한테 이겨보겠다고 대든 것은 괘씸한 일이긴 하지만.
“게이머가 원래 그렇게 많이 버는 거니? 아니면 네가 특별한 거야?”
“이 정도면 많은 것도 아니야. 잘나가는 게이머들은 한 달에 수십억씩 번다니까.”
드물게는 수백억씩 버는 게이머도 있다.
“그래도, 내가 알기로는 버는 만큼 써야 하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누나가 하는 말은 게이머들이 개인 장비나 아이템을 구입하는 데 그만큼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나는 장비나 아이템을 상점에서 GP로 구입하거나, 퀘스트 보상으로 얻고 있으므로.
결정석 몇 개만 주면 티코이가 업그레이드까지 시켜준다.
“과장된 이야기야. 어쨌든 잘됐다. 그치?”
누나는 감격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더니, 이내 또르륵 굴러 떨어졌다.
“고마워, 성오야. 엄마나 나나 네가 건강하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 고마운데 빚까지 갚아주고…….”
“빚 갚는 거야 당연하지. 누나가 내 입장이라면 안 그랬겠어?”
상의 끝에 나는 누나에게 대학 병원을 그만둘 것을 권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털어놓기를, 사실 자기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의상 디자인과에 가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상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집안만 돌보느라 자기 시간을 갖지 못했잖아. 쉬면서 천천히 잘 생각해 봐. 누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하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성오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얼굴색이 밝아지는 것이, 그동안 누나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는지 실감했다.
나는 이제 고작 이십 대 중반인 누나가 다른 여자들처럼 외모를 꾸미기도 하고 연애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며칠 전 유진이를 만나고 오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누나보다도 어머니의 반응은 느렸다. 상식적으로 일주일 동안 그만한 돈을 벌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내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설명 드리고 나서야 어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나서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성오 아버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
나도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아마도 돌아가실 때까지 가족 걱정을 놓지 못하셨을 테니까.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하시는 일은 그만두세요. 앞으로도 내가 돈 많이 벌어올 테니까 전에 살던 집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요.”
2
침대에 누워 휴대용 게임기를 만지던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티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넵, 주인님. 안녕하셨습니까.”
“조사하라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
“그게…… 별다른 징후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나 암젤 말고 이쪽 세상에 나온 존재가 더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던전 코어의 주파수가 낮기 때문인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네 말은 등급이 더 높은 던전을 공략하고, 그곳의 코어를 조사하는 게 낫다는 거지?”
“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이니까요. 주인님이 너무 무리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 장비 수리 끝나면 연락해.”
“넵. 그나저나 주인님, 시간 나실 때 저희 집에 한번 들러주십시오. 아니면…… 주인님 댁으로 초대를 해주셔도…… 좋고요.”
“너…… 외롭니?”
“하하! 무슨 그런 농담을……. 네.”
“……그래, 조만간 한번 보자.”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티코이와 통화를 끝낸 나는 마음을 정했다.
E급 던전 중 한 곳에 들어가기로.
피오리오 가죽옷이 없어서 세트 효과는 기대할 수 없지만, 뭐 이 정도 없다고 공략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인터넷에 접속해 서울시에 있는 E급 던전 중 가장 빨리 예약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보았다.
3
어둡다 못해 깜깜하기까지 한 방.
병수는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신이 며칠 전 카페에서 치욕을 당한 일은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유튜브에 올라왔다.
동영상의 제목은 ‘오지게’,즉 ‘오줌 지리는 게이머’이다.
영상의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이었다.
영상 밑에는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당연히 대부분 자신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우와, 단연코 올해 최고로 꼴사나운 동영상인 듯.]
[오지게도 싸네.]
[뭘 먹었길래 오줌이 저렇게 노라냐?]
[얼굴까지 다 나왔다. 내가 다 쪽팔리네.]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한국을 떠나라. 나 같으면 목매단다.]
한국어로 된 댓글 말고 외국어로 달린 댓글만도 수십 개다.
“시발!”
병수는 혼자밖에 없는 방 안에서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자존심이 유달리 강한 그는 그날 집에 돌아온 뒤로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더 치명적인 사실은 그 꼴을 유진이 앞에서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십 년 넘게 이어온 짝사랑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유진이 생각이야 어떻든 자신은 꽤 그녀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슬슬 고백할 타이밍을 재는 중이기도 했다.
“이 개새끼를!”
그가 욕하는 대상은 당연히 조성오였다.
물론 자신이 먼저 아는 척을 하고 팔씨름도 먼저 제안했지만 그런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지금 느끼는 이 치욕이 모두 조성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스킬이 하나 있다.
추적.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심지어 게이머도 보지 못하는- 마나 덩어리를 상대 몸에 붙이면 어디를 가든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껏 이 스킬을 유진이를 스토킹하는 데 사용했다.
직접 얼굴을 보이는 것은 2, 3일에 한 번뿐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던전에 들어가지 않을 때의 대부분의 시간을 유진이를 따라다니는 데 소모했다.
그녀의 길드, 그녀의 집, 그리고 그녀가 자주 가는 가게들까지.
심지어 유진이가 자주 만나는 친구들의 인적 사항까지 알고 있었다.
“꼬르르륵.”
집에 있는 동안 거의 음식물을 먹지 않은 터라 슬슬 한계에 봉착했다. 현재로서는 누구의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설령 배달을 시켜도 사람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
병수는 후드를 더 깊숙이 눌러 쓰고 집을 나섰다.
길을 걷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웃는 얼굴을 보면 자신을 비웃는다고,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꼈다.
심지어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사람을 보면 자기가 무서워서 아는 척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시발, 시발, 시발…….”
실상 그리 대단한 게이머도 아니면서 자의식이 무척 강한 병수는 지금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과 음료수를 샀다. 진열대를 돌아 판매대로 돌아오는데 문득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낄낄거리고 있는 점원이 보였다.
병수는 순간 머릿속의 퓨즈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야, 너 뭘 보고 처웃냐?”
“네?”
점원은 깜짝 놀라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손님. 바로 계산해드리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뭘 보고 처웃냐고. 내가 웃기냐?”
“아니, 저, 그게…….”
병수는 들고 있는 라면과 음료수를 바닥에 내던지고 점원에게 걸어가 그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스탯 33의 힘으로 들어 올려진 점원의 두 발이 바닥에서 떼어졌다.
“컥, 저 손님,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내가 개호구로 보이냐? 이 새끼야!”
그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자 같은 편의점 안에 있던 여학생 하나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는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쳇!”
병수는 편의점 점원을 벽에다 내던졌다.
쾅-!
후드를 꾹 눌러 얼굴을 가리고 편의점을 나갔다.
‘시발! 시발! 시발!’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바탕화면에 저장해 놓은 것은 유진이의 사진이었다. 그 역시도 먼 거리에서 몰래 찍은 사진이다.
‘어떻게든 널 갖고 만다.’
그렇게 다짐하고 연락처 목록을 열었다.
유진이보다 먼저 처리해야 될 일이 있다.
몇 번 신호가 간 뒤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어, 병수야.”
“야, 그거 어떻게 됐어?”
“알아봤는데 너무 갑자기라 예약이 다 찼어. 다음 주는 안 되겠냐?”
“무슨 개소리야? 능력도 쓰레기 같은 게 팀에 넣어줬더니 시키는 일도 못 해? 웃돈을 줘서라도 예약을 하란 말이야!”
“……그 돈은 네가 주냐?”
“너 같은 새끼한테 정산금 꼬박꼬박 챙겨주는 건 이럴 때 쓰라고 그런 거야. 이 멍청한 놈아!”
전화를 받은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마지못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알았다.”
“체! 병신 새끼.”
전화를 끊은 병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성오 개새끼, 너는 이제 다 살았다.’
4
나는 울창한 숲으로 꽉 찬 공원에 도착했다.
‘택시비를 이만 원이나 썼네.’
통장에 돈도 빠방하겠다 럭셔리한 기분을 내기 위해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탔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하긴 현실로 돌아온 게 십 년 만인데 열 살짜리가 돌아다녀봤자 얼마나 많이 돌아다녀 보았겠는가.
이곳보다 가까운 E급 던전이 몇 군데 더 있기는 했지만, 그곳들은 이미 다음 주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이곳이 다른 곳에 비해 예약이 적은 이유는 상대적인 난도가 높기 때문이다.
E급 중에서는 가장 어려운 편이고, D급에는 살짝 못 미치는 수준.
이런 애매한 수준의 던전에는 게이머들이 덜 몰리는 경향이 있었다.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정해져 있는데 공략하기는 어렵고 시간은 더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게이머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다.
E급 수준의 게이머들은 E급 던전만 들어가고, D급 수준의 게이머들은 D급 던전만 공략한다.
자기 수준보다 높거나 낮은 던전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물론 길드에 가입해 많은 인원과 함께 공략하는 거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다만 길드도 자기네가 소화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 말하자면 게이머들의 세계는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였다.
“이곳이냐옹?”
빨간 모자를 쓰고 망토를 두른 암젤은 매우 졸린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잠은 밤에 자라고 했잖아.”
“어떻게 그걸 마음대로 조절하느냐옹. 자고 싶을 때 자야지.”
밤새 방 안을 서성이는 통에 나까지 잠을 설쳤다.
‘제멋대로인 묘족 같으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옹. 내가 인간으로 변할 테니 주인님이 나를 안아주는 거다옹. 같이 이것저것 하다 보면 피곤해서라도 잠이 오지 않겠느냐옹?”
“어휴, 대체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냐?”
“주인님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옹. 어제 심심해서 주인님이 켜놓은 노트북을 봤는데 거기 이상한 이름의 폴더가…….”
“커흠! 늦겠다. 빨리 가자!”
“바로 옆에 이런 나이스 보디의 묘족을 두고 그런 생기다 만 애들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고 싶냐옹? 실망이다옹.”
“오해하지 마. 드라마 받으려다가 실수로 받은 거니까.”
“실수로 받은 게 300기가가 넘냐옹?”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