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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7화 (2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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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0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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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서를 통해 4층 세이브 존으로 이동했다.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며 계단을 오르는데, 나 역시 5층으로부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 느낌은 암젤이 설명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 익숙한 장소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다만 암젤은 이것이 불쾌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암젤과 포옹하고 각성을 했던 순간.

차라리 그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내 등에는 바자야가 꽂혀 있고 손에는 피오리오의 창이 들려 있다.

원래 던전에서 상대했던 놈들이 다 게임에서 숱하게 죽인 놈들이기는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느낌이 각별했다.

단순한 선후 관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몬스터들은 현실에서 게임으로 복제된 놈들이라면 NPC는 게임에서 현실로 옮겨진 존재이다.

그것이 만들어낼 파장이 호기심을 자아냈다.

5층의 구조는 다른 층과는 사뭇 달랐다.

한 층을 가로질러서 세이브 존에 닿는 게 목표가 아니라 던전 마스터를 쓰러뜨리는 것 자체가 이 층에서 완수해야 할 가장 큰 목표였다.

던전의 모양 자체는 이전의 층들과 다르지 않다.

나는 아직 완수하지 못한 퀘스트를 확인했다.

32. 아스도라 한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400)

33. 아스도라 다섯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2,000)

…….

36. 아스도라퀸 한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10,000)

37. 다섯 시간 안에 던전 마스터 처치하기(경험치 +12,000, GP +25,000)

+38. 일곱 시간 안에 던전 마스터 굴복시키기(경험치 +20,000, GP +40,000)

위화감에 퀘스트 목록을 다시 읽어보았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퀘스트의 숫자가 37개였는데, 그새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던전 마스터를 처치하라는 것은 알겠는데, 굴복시키라는 건 또 뭐야?’

차라리 굴복시킨 다음에 죽이라는 거면 이해가 빠르겠다. 하지만 넘버 표기나 제한 시간을 보았을 때, 처치하고 나서 굴복시키라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이 층에서 NPC가 나타날 만한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퀘스트만 읽었을 때는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원래 이 던전의 마스터는 ‘아스도라퀸’이다.

36번 퀘스트에 적힌 이름도 이것과 같았다.

‘가 보면 알겠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때는 직접 해보면 된다.

나는 암젤과 함께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상층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한 종류였다.

아스도라.

기본 레벨이 13에서 14인 거미형 몬스터이다.

놈들은 여왕을 중심으로 군생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개개의 레벨은 결코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없지만 무리의 역량이 뛰어나서 이들이 서식하는 지역에는 다른 몬스터들이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아스도라 서식지를 통과한다는 것은 곧 아스도라퀸을 잡아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여왕을 죽이지 않고 그들 무리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어둠이 깔린 던전의 전방에서 검보랏빛 거미 한 마리가 기어왔다.

키리리릭.

나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내달리며 창끝으로 놈의 몸통을 쭉 그어버렸다.

“캬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거미의 몸통이 둘로 갈라졌다.

[퀘스트 ‘아스도라 한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400이 주어집니다.]

동시에 나는 몸을 돌려 등에서 활을 뽑았다.

앞에서 나타나는 거미는 미끼에 불과하다. 그리고 미끼 역할은 무리 중 가장 허약한 놈이 맡는다.

공중에서 줄을 타고 서너 마리의 거미들이 한꺼번에 내려오고 있었다.

‘연사!’

마치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내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시위를 떠난 세 대의 화살이 정확하게 거미의 미간을 꿰뚫었다.

“케에엑!”

“키엑!”

허공에서 상처 입은 거미들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암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한꺼번에 세 마리의 치타를 소환할 수 있었다.

“크르릉!”

이제까지 소환해 낸 고양이과 동물들에 비하면 치타는 제법 덩치가 크고 공격력이 뛰어난 편이다.

거기다 가공할 속도는 또 어떠한가?

나는 아스도라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금세 놈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 아무리 능력이 앞선다고 해도 숫자에는 장사 없는 법이다.

나는 놈들을 전부 죽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길을 뚫는 데 집중하며 전방으로 달려 나갔다.

7

[레벨 23가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한 시간쯤 달리고 나자 던전 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집요하게 쫓아오던 거미들이 슬금슬금 몸을 빼며 어둠 속으로 숨었다.

‘나타나려나 보군.’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심호흡을 했다.

던전 마스터가 출현하는 공간은 시야가 확 트인 반구형의 홀이었다.

넓은 홀 안에 귀환서가 놓인 단상이 보인다.

정적이 한 동안 이어졌다.

암젤이 털을 바짝 세우며 말했다.

“불쾌한 느낌이 강해졌다옹. 토할 거 같다옹.”

“그래? 난 모르겠는데?”

피부를 찌릿찌릿하게 하는 긴장감이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위압감이라든가 공포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클클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만나게 됐군, 조성오.”

따로 설정을 한 것도 아닌데 가상게임 현실에서 내 이름은 본명 그대로 통용되었다. NPC나 적들은 말해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그림자가 다가왔다.

나와 암젤의 시선은 위쪽에 머물러 있었다.

분위기상 등장하는 것이 거대한 적 NPC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이머 네 명을 병원으로 보낸 NPC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일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목소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딜 보는 거냐?”

시선을 내리자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 신장을 가진 수인이 서 있었다.

여우는 안경을 쓰고 흰색 가운을 걸친 채였다.

때문에 더욱 위압감이 적어 보였다.

암젤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너는!”

“후후후. 암젤, 이곳에서도 너는 주인에게 껌처럼 달라붙어 있구나.”

암젤의 말이 이어졌다.

“누구냐옹?”

“뭐?”

황당해하는 여우에게 내가 말했다.

“혹시 우리 구면이던가?”

여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해 발을 쿵쿵 굴렀다.

“내 이름은 티코이다! 빌어먹을! 여기서도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그는 등을 홱 돌리더니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잘난 척하는 것도 여기까지다! 내 개조로 재탄생한 이 녀석을 보면 너희들의 코도 쑥 들어가게 될 터!”

우르릉-

던전이 진동했다.

키리릭, 키리리릭,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거대한 신형이 홀의 천장에서 내려왔다.

나는 몸길이 3미터가 넘는 거미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드디어 나타났군.’

이 거미가 던전의 마스터인 아스도라퀸이다.

여왕이 활동을 개시하자 숨어 있던 몬스터들이 찍찍 거미줄을 쏘아냈다. 금세 사위가 수 겹의 끈적끈적한 거미줄로 꽉 막히게 되었다.

이 행위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도망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 또 하나는 사냥감이 거미줄에 들러붙게 해서 여왕의 먹이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나는 이를 거꾸로 받아들였다.

‘너는 나한테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창을 인벤토리에 돌리는 대신 등에서 바자야를 뽑았다.

아스도라퀸이 일반적인 아스도라와 다른 점은 주둥이가 유난히 크고 다리가 길다는 점이다.

큰 주둥이는 진공청소기처럼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거리가 가까워진 사냥감을 긴 다리로 옭아매어 물어뜯는 것이 여왕의 주된 공격 방법이었다.

통상 레벨은 30.

나는 눈앞에 나타난 아스도라퀸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다수의 몬스터가 여러 형태의 변종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 보이는 아스도라퀸은 내가 경험한 어떤 변종에도 속하지 않았다.

거미의 몸통 여기저기에 비쭉비쭉 암석이 박혀 있었다. 그곳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와서 독특한 외양을 만들었다.

슈우우욱-

몸의 전면을 들어 올린 거미가 홀 안의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그렇게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미리 자세를 낮추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버티지 못한 채 덜컥 딸려가고 말았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세?’

물론 던전 마스터로 출현하는 것이니만큼 어느 정도 버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흡입력이 내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나보다 몸이 가벼운 암젤은 속절없이 거미 쪽으로 끌려갔다.

그녀는 세 마리 치타를 소환했다.

한 자리에 뭉치다시피 나타난 치타들이 암젤의 전면을 막아 더 이상 빨려들지 못하게 막아주었다.

대신 저네들은 거미의 희생양이 되었다.

콱! 콱!

거미의 날카로운 발톱에 찍힌 치타들이 단말마와 함께 사라졌다.

나는 거미의 주둥이 안쪽을 향해 쉴 새 없이 활을 쏘았다. 원래는 일반 화살로도 충분할 줄 알았지만 흡입력이 강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힘들었다.

연사를 사용하자 같은 힘으로 여러 발의 화살을 날리는 게 가능했다.

푹! 푹! 푹!

여섯 대의 화살을 받아내고 나서야 거미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을 멈추었다.

“크와아악!”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리더니, 줄을 타고 공중으로 기어올랐다.

키릭, 키리릭-

홀의 중앙을 제외하고는 공간이 대체로 어두웠기 때문에 거미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아스도라들이 얽어놓은 거미줄을 따라 빠르게 움직이며 여왕은 연속으로 독액을 뱉어냈다.

췩- 취익-

날아드는 방향이 무작위인 탓에 그것을 전부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내 어깨 위로 독액이 스치며 가죽옷이 녹아내렸다.

“윽!”

동시에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

나는 여우의 정체가 무엇인지 떠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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