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26화 (26/245)
  • # 26

    독식왕 : 클리어러 026화

    5

    다음 날 아침.

    개운하게 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일찍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또 던전에 들어간다는 얘길 듣고 도시락을 싸주시겠다고 했지만, 나는 오전에 끝내고 올 것이니 신경 쓰실 것 없다고 얘기했다.

    관리소 소장은 기한을 정오까지 주겠다고 했었다.

    원래대로라면 두어 시간만 있어도 충분히 공략 가능한 것이 이 던전의 5층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긴 변수는 나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옆을 걷고 있는 암젤에게 물었다.

    “5층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지?”

    “맞다옹. 참 찜찜한 기분이었다옹.”

    “익숙하면서 그리운 기분이라고 하지 않았어?”

    “생각해 봤는데 주인님을 이곳에서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옹.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불쾌한 기분이기도 했다옹.”

    나는 그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불현듯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왜 그러냐옹?”

    이계인은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나를 각성시키고 그 안에서 만난 암젤을 이 세계로 내보냈다.

    암젤을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로 삼았다곤 하지만, 그것이 꼭 암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젤 이외에 가상현실 게임에서 만난 다른 NPC가 현실로 나온 것이라면…….

    그리고 그자가 던전에 있고 내가 그 안에 발을 디딘 사실을 불쾌하게 받아들였다면…….

    나는 내가 떠올린 가정을 암젤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녀의 이마에 있는 별이 반짝 빛났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옹.”

    암젤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럴 듯한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는 자신이 느꼈던 이상한 기분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도 하다.

    ‘게임에서 만난 NPC라…….’

    불과 몇 초 사이에 수십 명의 NPC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나에게 호의를 품은 NPC가 많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게임이라는 게 필연적으로 동료보다는 적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는데.’

    던전을 4층까지 정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어떤 몬스터가 등장할지 미리 알았고, 그에 맞추어 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군지 모르는 이상 생각을 해봐야 소용없다.

    만약 던전 5층에 있는 게 NPC가 맞다면 나 말고는 이 상황을 타개할 사람이 없다.

    문득 정말 귀환석이 필요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능력이 초기화되었다고 해서 상대도 그랬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으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걱정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한다. 모름지기 공략이라는 것은 이처럼 앞을 예측할 수 없어야 재미있는 것이다.

    6

    관리소 앞에 도착하자 소장이 먼저 나와 있었다. 그는 간밤에 잠을 설친 듯 까칠한 얼굴이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소장은 쾌활하게 인사하는 스무 살 게이머를 보고 내심 혀를 찼다.

    자기는 던전 관리소 소장을 맡은 이래 처음 생긴 변고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막상 던전에 들어가기로 한 청년은 말끔한 인상이었다.

    되레 약간 흥분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말 괜찮겠어요? 어제는 그렇게 말을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경험이 적으신 분한테 너무 큰 부탁을 드린 것 같아서…….”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단순한 문책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보고 체계를 무시하고 초보 게이머에게 조사를 맡긴 것이기 때문.

    더구나 이 바닥에서 길드들이 발휘하는 알력은 대단했다. 던전 조사와 관련된 일은 그들에게 알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였다.

    그런 것을 차치하고라도 그는 이 젊은 게이머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던전 공략에 관한 한 베테랑처럼 능숙하면서도, 한편으로 순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몇 번 겪다 보니 마치 친동생처럼 정이 갔다.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장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더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없을까요?”

    “없습니다. 시간을 아껴야 하니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던전을 향해 걸어갔다.

    단순히 생각해도 보스전을 치르려면 체력이 많이 필요했다. 때문에 나는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나왔다.

    4층까지 공략을 끝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층의 범위가 넓어졌다.

    갈림길 사이에 놓인 단상으로 걸어가자 귀환서 가운데 네 장이 활성화되었다.

    4층으로 통하는 페이지가 펼쳐진 책을 앞으로 넘겼다.

    보스전을 치르기 전에 먼저 들러야 할 곳은 바로 상점.

    나는 암젤과 함께 1층 세이브 존으로 갔다.

    도착해서 잠시 기다리자 계단 옆에 녹색 천막 건물이 나타났다. 천막을 걷고 들어가니 예의 소우주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에는 여타 다른 메시지가 뜨지 않고 바로 상품들이 진열되었다. 레벨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상점에 입고된 물품도 많아졌다.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도 많았지만 암젤 전용 방어구도 종류가 늘었다.

    “암젤, 새 옷 한번 골라봐.”

    “우왕, 벌써 새 옷을 사준다는 말이냐옹? 주인님 돈 많구나옹.”

    “그래, 금액은 상관 말고 좋은 걸로 골라.”

    암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녀는 총 십여 벌의 의상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저건 내구력에 문제가 있을 것 같고, 저건 마나 증폭률이 낮고…….”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던 그녀가 드디어 하나를 낙점했다.

    “뭐 디자인은 별로지만 성능이 더 중요하니 어쩔 수 없다옹.”

    암젤이 고른 것은 목 뒤쪽에 리본이 달린 핑크색 민소매 셔츠였다.

    이름은 ‘묘족의 외출 No.4’.

    ‘성능이 아니라 디자인만 본 것 같은데…….’

    뭐 본인이 마음에 든다니 뭐라고 하고 싶진 않았다. 가격은 20,000GP.

    상점의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디자인보다 성능으로 가격이 책정된다. 지난번 의상에 비해 적어도 몇 배는 뛰어난 의상이라는 뜻이다.

    암젤은 인간형으로 변신해 옷을 갈아입었다. 거추장스러운 망토와 모자를 벗고 민소매 셔츠를 입었다.

    이번에야말로 맨살이 가려지리라고 믿었던 나는 옷을 다 갈아입은 그녀를 보고 예측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옷 시스루였어?”

    취향에 따라 속옷차림보다 더 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의상이다.

    “주인님, 마음에 드냐옹?”

    암젤이 내 팔을 잡고 매달렸다. 쓸데없이 큰 가슴의 감촉이 두 겹의 옷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떼어내고 말했다.

    “전에 입던 옷은 줘. 필요 없으니까 팔아야지.”

    “뭐? 안 된다옹. 나더러 단벌 숙녀로 지내란 말이냐옹?”

    그녀는 자기 옷을 빼앗길까 봐 얼른 인벤토리에 넣어버렸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GP는 충분히 있다. 팔아봐야 살 때의 절반 가격도 못 받을 테니까.

    암젤의 방어구를 사주고 나자 남은 GP는 152,000이었다.

    피오리오 창술사 세트를 맞췄으니 방어구는 살 필요가 없다. 창과 활 모두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은 물건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 손가락은 강화석 쪽으로 향했다. 대신 이번에는 초급 스킬 강화석이 아닌 새로 입고된 중급 스킬 강화석 쪽이었다.

    [‘중급 스킬 강화석’의 가격은 50,000GP입니다. 중복 구매를 원하시면 희망하는 수량을 말씀하십시오.]

    “세 개.”

    [150,000GP가 차감됩니다. 이대로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래.”

    테이블 위에 선홍빛 강화석 세 개가 놓였다.

    중급 스킬 강화석은 수치상으로 초급 강화석에 비해 다섯 배 더 높은 효율을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강화석 다섯 개를 하나로 합친 것과 같은 성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한 가지 메리트가 더 있었다.

    나는 강화석을 앞에 두고 스킬을 사용했다.

    ‘로또!’

    이 스킬을 사용할 때 늘 그랬듯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축하합니다! 로또 4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당첨자의 모든 스탯이 20초간 30퍼센트 상향됩니다.]

    ‘좋아!’

    한 번도 3등 이상은 당첨된 적은 없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나는 중급 강화석을 손에 쥐었다.

    [중급 스킬 강화석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강화하길 원하는 스킬을 선택하십시오.]

    이번에 내가 선택한 스킬은 ‘연사’였다.

    첫 번째 강화석을 사용한 결과는…….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실망하지 않고 두 번째 강화석을 손에 쥐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하아…….”

    나는 마지막 강화석을 앞에 두고 심호흡을 했다. 이것마저 실패하면 150,000 GP가 허공에 날아가 버린다.

    생각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어제 하루 종일 던전을 공략한 성과를 한 방에 날리게 되는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강화석을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축하합니다! 강화에 ‘대성공’했습니다!]

    [‘연사’의 등급이 한 단계 올라 등급 B가 되었습니다.]

    [대성공의 효과로 스킬이 진화했습니다!]

    [‘연사’가 ‘연사+’가 되었습니다.]

    [화살의 위력이 30퍼센트 증가합니다!]

    [연사 속도가 50퍼센트 빨라집니다!]

    “나이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처럼 중급 이상의 스킬 강화석은 간혹 대성공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확률이야 낮지만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스킬의 위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도박에 성공한 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암젤! 나가자.”

    상점을 나간 우리는 플레지 허니를 나누어 마셨다. 로또를 사용하며 소모한 마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캬아아!”

    암젤이 만족한 얼굴로 입가를 쓱쓱 닦았다.

    “이제 가는 거냐옹?”

    “그래.”

    나는 마지막으로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했다.

    이름 : 조성오

    클래스 : 창술가(Max), 궁사(Max)

    레벨 : 22

    성향 : 오더(Order) E / 카오스(Chaos) - = 오더(Order)

    업적 :

    초고속 클리어(모든 클래스와 스킬의 숙련도 Max)

    라가망의 전설(성장 속도 +50%)

    맵 제작자(모든 던전 입장 시 맵 입수 가능)

    랭킹 : 170,091위

    스탯 : 근력 30(+13)/체력 30(+10)/민첩 30(+12)/행운 29(+10)

    장비 효과 :

    창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22%, 콤보에 의한 효과 ×110%, 찌르기 효과 ×120%, 회피율 ×110%, 반격에 의한 효과 ×110%

    활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10%, 관통력 ×130%, 시위를 당겼을 때 시력 ×150%

    세트 효과 : 창술 스킬 사용 시 마나 소모량 20% 감소, 방어구로 인한 방어력 20% 증가, 창술 숙련도 10% 빠르게 증가

    스킬 :

    액티브-토네이도 스피어(B, Lv30), 연사+(B, Lv30), 로또(A, Lv50)

    패시브-투시자의 눈(A, Lv50)

    잔여 포인트 :

    GP 2,000

    스탯 포인트 0

    이 정도면 F급 던전 네 개 층을 공략하고 얻은 성과로는 나쁘지 않다.

    나는 스테이터스창을 닫고 암젤과 함께 귀환서가 놓인 단상으로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