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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5화 (2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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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025화

내가 직원에게 그렇게 말을 한 것은 딱히 정의감 때문이 아니었다.

직원의 말에서 던전 5층의 폐쇄가 길어질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던전 마스터만 물리치면 이 던전의 공략이 끝나는데, 언제 제한이 풀릴지 모르는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직원은 황당한 얼굴로 나를 마주 보다가 팔을 잡고 말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직원은 나를 관리소 안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방의 입구에는 소장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이 사람이 관리소 소장이었구나.’

젊어 보이는 데다 다른 직원들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서 직책이 가장 높은 줄도 몰랐다.

소장은 나를 의자에 앉힌 뒤 자기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렸다.

암젤이 내 발치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옹. 집에는 언제 가냐옹.”

고양이가 말을 하자 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 그 고양이 말도 할 줄 압니까?”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뛰어난 각성수는 많아도 말까지 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각성수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 하고 말했다.

“네.”

“하아~ 던전 공략이 처음이라면서 혼자 종일 예약을 하지 않나 각성수까지 데리고 다니고. 성오 씨는 대체 정체가 뭡니까?”

정말 궁금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딱히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볼만 살짝 긁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제가 5층에 들어가도 될까요?”

소장은 다시 한 번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신중해야 합니다. 보통 던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길드에 의뢰를 하는 것이 통례거든요. 물론 꼭 그래야 하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괜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나는 슬슬 지루해졌다. 되냐 안 되냐만 말하면 될 것을. 복잡한 어른의 사정까지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요?”

소장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이 문제는 성오 씨와 저 둘만 아는 걸로 합시다. 만약 성오 씨가 무사히 조사를 마치고 나오시면 저도 정식으로 보고를 하고 의뢰비를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안 되겠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바로 밖으로 나오십시오.”

나는 아무래도 좋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소장은 책상 서랍을 열더니 오렌지 빛으로 반짝이는 돌덩이 하나를 내놓았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귀환석.

게이머들의 목숨을 담보할 수 있는 물건이고 생각보다 물량이 많지 않아서 시가가 높게 책정되어 있는 아이템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조사하면 의뢰비를 받을 수 있다고요? 그게 얼마나 되죠?”

“길드에 의뢰 시에는 기본 1~2억부터 시작합니다. 만약 불안 요소를 제거하면 성공 보수로 그 두 배를 받게 되죠. 하지만 성오 씨는 개인이고 아직 라이선스도 없으니까, 아마 의뢰비도 비교적 낮게 책정될 겁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게 제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보고를 늦추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기한은 내일 정오까지로 하죠. 괜찮으세요?”

“네, 내일 아침 여섯 시에 나올게요.”

소장은 출근 시간이 앞당겨지게 됐지만 거기까지 불평하지는 않았다.

비밀 이야기를 끝낸 우리는 소장실에서 나왔다.

나는 오늘 공략한 성과를 정산받기 위해 테이블에 결정석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오는 결정석을 보고 소장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물었다.

“대체 몇 층까지 공략하신 겁니까?”

“4층까지 했는데요?”

“뭐라구요?”

물론 구체적인 지표는 없지만 그것은 한 사람이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은 층을 공략한 기록이었다.

소장은 조사를 부탁할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슬슬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3

집에 돌아왔을 때는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암젤과 나는 반사적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점심을 먹은 지가 오래돼서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을 지경이었다.

“냐아옹~”

암젤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누나가 있을 때는 인간의 말을 하지 않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동물이 말을 하는 모습은 상상외로 충격일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 가족처럼 게이머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야, 샤워부터 해!”

“냐아옹~”

암젤이 다시 한 번 구슬프게 울었지만 나는 봐주지 않았다.

암젤은 낮게 ‘쳇’ 하고 투덜거리고서 욕실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어머니가 기척을 알고 뛰어나오셨다.

“성오, 이제 오니?”

“네.”

“늦으면 늦는다고 말을 해야지. 핸드폰은 뒀다 뭐하니?”

“……던전에서는 핸드폰 안 터져요.”

어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내 옷차림은 집에서 나갈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던전 들어갈 때 게이머들이 입는 옷이에요.”

나는 인벤토리에서 빈 도시락을 꺼냈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설명을 드린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되시는 모양이었다.

“도시락 맛있게 잘 먹었어요.”

밥 잘 먹었다는 말에 어머니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 배 많이 고프지? 옷만 벗어놓고 빨리 와서 저녁 먹어라.”

기분 탓인지 욕실 안에서 ‘냐아옹~’ 하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4

저녁을 먹고 샤워까지 끝내고 나오는데,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들여다보자 정산금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세후 정산 총액은 6천 7백만 원.

1층에서 이미 1천 4백만 원을 번 전례가 있는 터라 이번에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살짝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지난번 공략 후에 게이머들의 수입이 궁금해져 대충 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높은 던전의 등급일수록 평균 정산금은 높아진다.

현재 자수성가형 자산가들의 순위는 거의 다 게이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결정석 관련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던전의 출현이 인간 세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는 뜻이다.

물론 내게는 특별한 비교 기준 자체가 없었다. 열 살 때 던전에 들어갔다가 나와 보니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남들이 보면 식물인간이 되어 병실에만 누워 있다가 깨어난 뒤 대번에 고소득자로 등극한 셈이다.

게임 안에 들어가서 십 년간 못 나온 것은 고생이라면 고생일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남들이 못한 경험을 하며 충분히 즐겼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지난 십 년간의 고통을 오롯이 가족이 짊어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누나가 퇴근을 한 뒤 나는 어머니와 누나를 거실로 불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두 사람에게 질문을 꺼냈다.

“우리 집 빚이 얼마나 돼요?”

내 물음에 어머니와 누나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나랑 네 누나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걱정하지 마.”

“엄마.”

나는 정산금 문자가 띄워진 핸드폰을 내밀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거기 적힌 금액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거 정말 오늘 네가 번 돈이야?”

“네, 하루 동안 번 게 그 정도예요. 이 집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게 저잖아요. 괜찮으니 말씀해 주세요.”

누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3억 정도…….”

“뭐?”

나는 상상 이상으로 큰 액수에 무척 놀랐다. 이 돈을 어머니와 누나가 가사도우미와 간호사를 하면서 갚으려고 했다니.

“저 내일이면 정식 라이선스가 나올 거예요. 그 빚은 모두 제 앞으로 해주세요.”

“성오야, 이건…….”

나는 손을 들어 어머니의 말을 막았다.

“아버지 그렇게 된 거…… 제 탓이잖아요. 아버지만 그렇게 안 됐으면 우리 집도 이렇게 힘들어지지 않았을 거고…… 빚도 내 병원비 때문에 생긴 거고…….”

아버지 말을 꺼내자 자연스럽게 목이 메었다.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나를 끌어안았다.

“아니다, 성오야. 아버지, 너 때문에 돌아가신 거 아니야.”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제가 그동안 못한 아들 노릇, 동생 노릇 할게요. 그래야 아버지도 저를 보면서 더 기뻐하실 거예요.”

내 말에 누나도 감정이 벅차오르는지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뿐인 눈물이 아니라, 희망이 담긴 눈물이기도 했다.

나는 엄마와 누나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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