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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2화 (2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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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22화

    최저 레벨은 9이고, 가장 높은 레벨을 가진 자가 12다.

    이 정도 레벨에 혼자 4층을 공략하는 것은 무리일 테고 3인 파티라면 딱 적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각자 두꺼운 방어구를 착용한 상태였다.

    세 명의 게이머는 도시락을 먹고 있는 나와 암젤을 보고 몸이 굳었다.

    먼저 입장한 사람이 있으면 관리소에서 미리 언질을 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관리소 직원도 아침에 들어간 초보 게이머 한 명이 3층까지 공략을 끝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멍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빡공하세요.”

    인터넷에서 보았던 던전에서 마주친 게이머끼리 나누는 인사이다.

    상관하지 않을 테니 목적대로 빡세게 공략하시라는 뜻이다.

    우리를 보고 다양한 가능성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저렙 게이머들은 그제야 안심하고 마주 인사를 건네왔다.

    “즐공하십시오~”

    “빡공하세요~”

    4층에서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만 통로가 한 방향으로만 뚫려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로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이십대로 보이는 게이머들은 서로 친구인 듯했다.

    계단을 올라가며 저네들끼리 소곤거렸다.

    “세이브 존에서 도시락 먹는 거야? 지금?”

    “쉿. 게이머 중에는 돌아이가 많다잖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

    작게 나누는 얘기였지만 감각이 발달한 나와 암젤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암젤이 기분 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주인님, 쟤들 정리해도 되냐옹?”

    “정리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계단을 올라가는 두 남자 게이머의 시선은 시종 암젤에게 꽂혀 있었다. 지구인의 통상 관점에서 보면 암젤은 분명 보기 드문 미인이다. 거기다가 반나체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있으니 충분히 눈이 돌아갈 만했다.

    도시락을 모두 먹고 난 뒤에 나는 물병과 플레지 허니를 꺼냈다.

    꿀을 본 암젤의 눈이 뒤집어졌다.

    “헉헉. 주인님, 빨리 달라옹.”

    “고양이가 그러는 거 아니야. 자꾸 그러면 개냥이라고 부른다.”

    나의 도발에도 아랑곳 않고 암젤은 꿀에만 시선을 주었다.

    나는 잘 알려진 방식대로 물과 플레지 허니를 10 대 1로 배합했다.

    암젤에게 꿀물 한 잔을 건네고 나 역시 한 잔을 들고 벽에 등을 기댔다.

    “캬아아~!”

    암젤의 입에서 구수한 감탄사가 터졌다.

    “요거 요거 끝내주는고만!”

    플레지 허니에는 소량이나마 체력과 마나를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던전을 공략 중인 게이머에게는 최고의 음료라고 할 만했다.

    물론 비싼 가격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는 피오리오 창술사 세트의 마지막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창술사의 신발’을 꺼냈다.

    [창술사의 신발]

    등급 : 레어

    효과 : 근력 +2, 민첩 +5, 창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5%, 회피율 ×110%

    비고 : 장갑과 가죽옷을 갖게 된 피오리오는 곧 창술사에 적합한 신발이 없이는 자신의 장비가 백 퍼센트 완성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장인은 피오리오의 까다로운 주문에 치를 떨었지만 모든 장비를 완성하고 나서는 자신의 기술이 한 단계 진보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신고 있는 운동화를 벗고 창술사의 신발로 바꿔 신었다.

    [‘피오리오 창술사 세트’를 완성했습니다!]

    [세트 효과가 발동합니다!]

    [창술 스킬 사용 시 마나 소모량이 20퍼센트 감소합니다!]

    [방어구로 인한 방어력 상승 효과가 20퍼센트 증가합니다!]

    [창술 숙련도가 10퍼센트 빠르게 증가합니다!]

    개개의 방어구를 착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뿌듯함이 느껴졌다.

    남들이 보면 특출할 것 없는 의상처럼 보일지 몰라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웬만한 고가 방어구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이제 밥도 먹고 휴식도 취했겠다, 4층으로 올라갈 차례였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아쉬운 얼굴로 종이컵을 핥고 있던 암젤이 고양이로 변신했다.

    우리 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4층으로 가는 계단에 올라섰다.

    4

    던전 5층 안쪽에 있는 비밀 방에서 ‘결정석과 마법 도구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던 티코이는 갑자기 엄습해 오는 불안한 감각에 몸을 흠칫 떨었다.

    한 달 전 이 던전으로 흘러들어 던전 마스터가 된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릿속에 잡념이 새어들었다.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된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으음…….”

    이런 느낌을 갖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던전에 변고가 생긴 것.

    웬만한 일로는 이런 느낌이 들 리 없다. 던전에는 매일같이 게이머들이 들어온다. 그들이 몬스터와 싸움을 벌이는 것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테이블 아래에서 보관함 하나를 끄집어냈다. 뚜껑을 열자 그 안에 투명한 구슬 하나가 들어 있었다.

    구슬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는 마치 미래를 예지하는 마술사처럼 신중하게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던전 내부의 풍경이 구슬 안에 차례대로 스쳐 지나갔다.

    네 명의 게이머가 5층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평범한 수준에 불과하다. 5층을 공략할 수는 있겠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어차피 자기가 아닌 가짜 던전 마스터를 쓰러뜨릴 뿐이니까.

    구슬 안의 풍경이 4층으로 바뀌었다. 4층 3분의 1 지점에 역시 세 명의 게이머가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5층에 있던 자들보다 더 실력이 떨어지는 게이머들이었다. 적어도 이들이 불안함을 자아내는 원흉은 아니라는 뜻이다.

    “흠…….”

    다시 구슬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는, 이제 막 4층에 들어서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붙고 있었다.

    갑자기 심장이 더 크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구슬 안의 화면을 확대했다.

    남자의 얼굴이 더 자세히 보였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이런 씨…….!”

    남자가 누구인지 깨달은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왜 이놈이 여기에!’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이 이쪽 세상에 나오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찾아든 불안감의 정체가 던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불안함의 근거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구슬로 다가갔다. 처음에 정신없이 뛰던 심장 박동이 이제는 조금 잦아들었다.

    “잠깐만…….”

    구슬 속에 있는 남자가 싸우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난공불락의 살인귀.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과는 분명히 달랐다. 저런 쪼렙 몬스터에게 굳이 직접 창을 들이밀고 싸울 실력이었던가?

    “혹시…….”

    티코이는 턱을 쓸었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어쩌면 오늘 지난날의 수모를 한 방에 갚을 기회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후후후.”

    여우족 던전 마스터가 낮고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5

    던전은 층을 올라갈수록 난도가 점점 높아진다. 지금 공략 중인 던전만 해도 1, 2층이 초심자용 F급 난이도였다면, 3층부터는 E급 난이도로 평가받는다.

    4층은 E급과 D급의 중간 정도이다.

    전반적으로 내가 쉽게 공략을 해나갈 수 있는 이유는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있지만, 내 성장 속도가 던전의 난도가 올라가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점심도 먹었겠다 장비 세트를 맞추고 버프를 받은 것도 있어서 의욕이 넘쳤다.

    나는 앞을 막아서는 몬스터들을 쉽게 물리치며 길을 뚫었다.

    4층에는 두 종류의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다. 한 종은 3층에서도 나타난 바 있는 세리쿰이라는 방울뱀을 닮은 몬스터이고, 또 하나는 베툴루라는 전갈형 몬스터였다.

    둘 다 맹독형 몬스터라는 점에서 꽤 위험하고도 볼 수 있지만, 쉽게 말해 안 물리고 안 찔리면 중독될 위험은 없다.

    나는 이런 유독성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났다. 중독을 당하면 여러 가지가 불편해진다.

    어지럼증이 찾아오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은 둘째 치고, 그때마다 안티도트나 포션을 복용해야 한다는 점이 성가셨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몬스터의 몸에서 독을 저장하고 있는 부위를 먼저 빠르게 절단하는 것이다.

    세리쿰의 경우 턱 아래 독 저장소를 찌르면 되고, 베툴루는 보이는 즉시 꼬리부터 잘라 버린다.

    물론 말로 하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지만, 수십, 수백 번을 싸우다 보면 몬스터의 정형화된 움직임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게 된다.

    [공통 퀘스트 ‘베툴루 열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1,200을 얻었습니다.]

    [레벨 20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거나 추가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창술사’를 진화하면 ‘마창사’가 된다. 하지만 나는 기존 클래스를 진화하기보다 또 하나의 클래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추가 클래스를 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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