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독식왕 : 클리어러 021화
Chapter 09 - 불청객
1
3층에는 보다 싸움다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베는 맛이 있는 몬스터라고 할까?
퀘스트를 확인하고 있는데 전방에서 묵직하게 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
코 옆에 긴 뿔을 달고 있는 이 몬스터의 이름은 곤파스.
생긴 것은 딱 멧돼지를 닮았다.
통상 레벨이 9~10인 놈으로 몸은 갈색의 짧은 털로 뒤덮여 있고 머리 위에는 곱슬곱슬한 적갈색의 털이 자라 있었다.
귀여운 외모로 일부 게이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데리고 나와 기념 촬영을 하는 사이코들도 있다고 들었지만…….
‘토네이도 스피어!’
퍼버벅!
“꿰엑!”
내게는 알 바 없는 얘기다.
[퀘스트 ‘곤파스 한 마리 처지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00을 얻었습니다.]
3층에는 두 종류의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었다.
곤파스라는 돼지형 몬스터와 세리쿰이라는 방울뱀을 닮은 몬스터.
곤파스나 세리쿰 모두 게이머가 아닌 한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서 얼마든지 공생이 가능했다.
쉬리리릭-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드는 방울뱀.
나는 세리쿰을 암젤에게 전담시켰다.
원래 고양잇과 동물들이 뱀에게 강하니까.
암젤은 1층에서 덴몬을 상대할 때처럼 직접 뛰어다니며 뱀들을 잡았다.
레벨과 숙련도는 별개의 개념이다. 레벨이 같아도 숙련도가 높은 NPC와 아닌 NPC는 전투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걸 알기 때문에 암젤도 더욱 열심히 사냥을 했다.
이번에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던전을 통과해 갔다. 하지만 곤파스가 그리 호락호락한 몬스터가 아닌 터라 시간은 이전의 두 층보다 더 걸렸다.
퀘스트도 양심은 있는지 3층은 열 시간이라는 클리어 타임을 주었다.
물론 이 정도면 내게 넉넉하다 못해 불필요할 정도로 긴 시간이었지만.
목표는 당연히 절반 이상 클리어 타임을 단축해 히든 퀘스트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3층의 심층부까지 도달하는 데 세 시간 반가량이 걸렸다. 마나 소모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된 감이 있었다.
체력적으로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것은 한계다 싶을 때마다 레벨이 오른 덕분이었다.
내 레벨은 18에 이르렀고 암젤은 이제 치타 두 마리를 소환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쯤에서 한번 숨을 골랐다. 던전 최상층에는 저마다 ‘던전의 주인’ 혹은 ‘던전 마스터’라고 불리는 최종 보스가 존재한다.
이 몬스터를 죽여야 비로소 던전을 완전히 공략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던전 마스터 이외에 각 던전에는 중간 보스 격의 몬스터들이 존재했다.
일명 ‘데미 마스터’라 불리는 이 몬스터들은 던전 마스터와는 달리 딱 한 마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급의 던전 중에는 열 마리 이상의 데미 마스터가 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F급 던전의 데미 마스터는 상급 던전에서는 일반 몬스터로 격이 낮아진다.
그리고 더 상급 던전으로 가면 던전 마스터조차 일반 몬스터나 데미 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이 던전의 경우 데미 마스터는 3층에 딱 하나 존재했다.
이름은 곤파스킹.
덴몬킹이나 플레지킹과 같이 곤파스의 대장 격 몬스터이다.
나는 길게 휴식을 취할 것도 없이 데미 마스터를 상대하러 갔다.
“암젤, 너는 나서지 마.”
“알았다옹. 돼지 하나 잡는 데 내가 손을 거들 필요가 뭐가 있겠냐옹.”
이 고양이는 아직도 내가 극강 먼치킨인 줄 안다.
뭐 주인을 과소평가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네가 손이 어딨냐? 발을 거든다고 해야지.”
2
“꾸웨에에엑~~~”
곤파스킹이 괴성을 지르면서 옆으로 넘어갔다. 일반적인 곤파스킹은 레벨 13 정도이지만 이놈은 중간 보스답게 레벨 15는 되었다.
나는 곤파스킹의 사체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한쪽 방향으로 달려갔다.
곤파스킹이 유명세를 떨치게 된 이유는 물론 귀여운 곤파스의 대장 격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이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에 일정 확률로 나타나는 식재료 때문이었다.
‘곤파스 머시룸’.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이 특산 버섯은 곤파스의 털 색깔처럼 갈색 빛을 띠고 있다.
가격은 송로 버섯의 약 열 배.
곤파스 머시룸은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때문에 의학용 목적 말고는 유통이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암시장을 통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는데, 이때는 가격이 다시 세 배는 더 뛴다고 한다.
아무리 던전에서만 나온다고 해도 송로 버섯의 열 배라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가격이기는 하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출현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보통 곤파스킹 한 마리당 버섯의 발견 확률은 20퍼센트 정도이다. 곤파스킹이 다섯 마리 출현해야 겨우 하나를 채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던전에는 곤파스킹이 출현하지만 곤파스 머시룸이 나온다는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곤파스킹의 습성을 모르기 때문에 내려진 결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곤파스킹이 싸놓은 동글동글한 똥을 창끝으로 휘저었다.
흩어지는 똥 안에서 모양이 다른 똥 하나가 발견되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곤파스 머시룸이다.
이처럼 곤파스킹은 가장 소중한 곤파스머시룸을 자기 똥 안에 숨기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똥과 버섯의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칠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게다가 곤파스킹이 죽으면 똥도 함께 사라진다.
[‘곤파스머시룸’ ×1을 획득했습니다.]
나는 버섯을 먹고 환각에 취해 라가망의 밤하늘을 보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추억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똥 무더기에 있던 것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비싸다는 데 그냥 팔아야지.’
곤파스킹은 죽어가면서도 자기의 보물이 적의 손에 들어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뀨우우~”
[퀘스트 ‘곤파스킹 한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500을 얻었습니다.]
[퀘스트 ‘F급 던전 데미 마스터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1,000, GP +10,000을 얻었습니다.]
[퀘스트 ‘열 시간 안에 3층 돌파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5,000, GP +20,000을 얻었습니다.]
[히든 퀘스트 ‘다섯 시간 안에 F급 던전 3층 돌파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7,000, ‘창술사의 신발’ ×1을 얻었습니다.]
[레벨 19가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후우~~”
여기까지 끝내고 나자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암젤을 돌아보자 그녀도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져 있었다.
마치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표정.
“이제 밥 먹자.”
“우왕~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옹.”
암젤은 언제 인상을 쓰고 있었냐는 듯 내게로 다가와 얼굴을 비볐다.
우리는 함께 3층 세이브 존으로 걸어갔다.
3
나와 암젤은 세이브 존 한쪽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이브 존에는 쓰레기통은 있어도 테이블이나 의자와 같은 편의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세이브 존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찬합을 꺼냈다.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싸주신 도시락.
한 단, 한 단 분리하여 뚜껑을 열었다. 한 칸은 밥이고 나머지 두 칸은 반찬이다.
그리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은 따로 담아주셨다.
아마도 던전 들어가는 아들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어머니는 전 세계에 우리 엄마밖에 없겠지.
암젤은 인간형으로 변신했다. 고양이인 상태로 음식을 먹어도 되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많이 먹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고양이인 상태에서는 음식물로 에너지를 축적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우리는 마주 앉아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우왕~ 역시 시어머니 음식솜씨는 끝내준다옹!”
게임 속 세상에서는 나와 마찬가지로 맛을 느끼지 못했던 암젤은 식사 때마다 이렇게 감탄을 연발하곤 했다.
“은근슬쩍 이상한 말 하지 말아줄래?”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귀환서가 놓인 단상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새로운 게이머가 입장한 것.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자 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자 둘, 여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3인 파티.
나는 음식물을 씹으면서 그들의 정보창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