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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0화 (2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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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020화

공략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2층이 내게는 가장 쉬운 층이 되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항간에는 진미이자 치료용으로도 유명한 ‘플레지 허니’.

던전에는 결정석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결정석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히려 이런 부산물들이었다.

플레지 허니는 일반인도 복용이 가능한 식재료였다. 물론 그냥 먹으면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10 대 1 이상으로 희석시켜야 하지만.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몇 년 전 방송에서 이 꿀이 관절에 특효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물론 방송의 특성상 상당히 거품 낀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현실의 식품군에서는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양질의 영양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 맛 또한 기가 막힌다고 한다.

나는 게임에서 플레지 허니를 먹어본 경험이 많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맛을 느낄 수 없었다.

NPC들이 ‘캬! 이 맛이야!’, ‘죽인다!’ 등의 반응을 보일 때마다 ‘아, 그래?’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다. 드디어 그 맛있다는 플레지 허니를 맛볼 수 있게 됐으니까.

이 던전에서 플레지가 출현한다는 것은 알아도 플레지 허니를 채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많은 게이머가 찾겠다고 시도를 한 모양이지만, 그러려면 수십 마리의 플레지를 먼저 상대해야 했으니 효율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게다가 등급이 낮은 던전에서 그만큼 귀한 아이템이 나올 리 없다는 인식도 한몫했다.

하지만 내게는 지도가 있었다. ‘맵 제작자’라는 업적을 달성하고 얻은 지도답게 각 층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정보도 나와 있다.

나는 첫 번째 ‘플레지 하이브’가 있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지도상에 플레지 하이브가 있다고 표시된 장소는 단단한 벽으로 막혀 있었다. 나는 그곳에 귀를 가져다댔다.

그러자 벽 너머에서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쪽을 보니 겨우 플레지 한 마리가 들락거릴 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거리를 띄운 뒤 창을 힘껏 내려쳤다.

꽈앙-!

와르르-

벽이 무너지자 안쪽에 호박 세 개를 합쳐 놓은 것만 한 크기의 플레지 하이브가 나타났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암젤이 눈치껏 소환수들을 불러냈다.

“왜애앵~!”

보금자리를 공격당할 위기에 처한 플레지 수십 마리가 벌집에서 튀어나왔다.

“캬아옹~”

“캬우웅~”

희생양이 된 스라소니 세 마리가 구슬픈 비명들을 토해냈다.

2

“오~ 쉣! 맛있다옹! 세상에 이런 맛이 있었다니!”

플레지 허니를 맛본 암젤이 흥분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야, 너 발 끈적거리거든?”

암젤이 내 몸을 팡팡 쳐 댄 탓에 꿀과 흙이 내 트레이닝복 바지에 잔뜩 묻었다. 그렇다고 해도 플레지 허니의 맛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꿀맛이네!’

왜 그램당 이십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인지 알 만했다. 물론 나라면 그 돈 주고 안 사먹겠지만.

‘그래도 그냥 먹으려니까 너무 맛이 센데?’

그럴까 봐 인벤토리에 물을 넉넉히 넣어가지고 왔다.

암젤이 더 달라는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 돼. 단 거 많이 먹으면 이따 밥 못 먹어. 남은 것은 후식으로 먹자.”

“알았다옹. 그때 가서 딴말 하지 말라옹.”

“양심 좀 있어봐라. 네가 먹은 게 백만 원어치도 넘거든.”

“인간의 돈 따위는 난 관심 없다옹.”

던전 2층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플레지밖에 없다. 웬만한 몬스터는 플레지와 공생하기 힘들 테니까.

몬스터끼리도 상성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나와 암젤은 던전을 질주하며 같은 방식의 공략을 두 번 더했다.

내 레벨은 15가 되었다. 암젤 역시 능력이 상승하여 스라소니 다섯 마리, 혹은 치타 한 마리를 소환할 수 있게 됐다.

상대적으로 쉬운 공략인 탓에 1층보다 공간이 넓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닿는데 한 시간 반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세이브 존에 닿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러야 할 싸움이 있다.

던전 마스터나 중간 보스격 몬스터가 아니기 때문에 꼭 싸워야 공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는 필요한 싸움이었다.

부우우웅-

특유의 날개 소리를 내며 한 마리 몬스터가 날아왔다.

플레지킹.

일반적인 플레지보다 몸집이 열 배가량 크고 독침도 열 배가량 더 강력하다.

레벨은 10.

레벨은 그리 높지 않아도 항상 플레지 떼와 함께 나타난 점이 성가셨다. 게다가 침의 위력이 굉장해서 박광호 같은 게이머가 한 번이라도 쏘인다면 재깍 기절하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암젤!”

나는 플레지킹과의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 암젤에게 나머지 플레지 떼를 맡도록 지시했다.

암젤이 다섯 마리 스라소니를 소환했고, 이번 층을 통과하며 계속 그랬듯 소환수들은 플레지들의 희생양이 되기 위해 달려갔다.

나는 창을 들고 플레지킹과 마주했다.

덴몬킹처럼 머리 위에 작은 왕관이 씌워진 몬스터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플레지킹과 대치하는 것은 마치 서부 영화에서 총잡이들이 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한 번의 격돌이 승패를 좌우하는.

물론 레벨이 압도적으로 높다면 무작정 공격해도 상관이 없지만 적어도 지금 내 레벨에서 근접전을 펼치는 것은 위험했다.

플레지킹이 재빠르게 공격을 피하고 그보다 더 빠르게 침을 꽂아 넣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눈싸움을 벌였다.

나는 플레지킹을 노려보던 시선을 슬쩍 옮겨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몬스터가 날아들었다.

부우웅-

나는 몸을 반 바퀴 돌려 공격을 피했다. 회심의 일격이 빗나간 플레지킹이 등을 완전히 노출시켰다.

몬스터를 향해 창을 내리그었다.

파각!

플레지킹의 몸뚱이가 터지며 체액이 쏟아졌다.

나는 몬스터의 사체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달려가 있는 힘껏 배를 밟았다. 엉덩이 아래 날카로운 침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것을 양손으로 잡고 쑥 뽑아냈다.

[퀘스트 ‘플레지킹 한 마리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1,000을 얻었습니다.]

[‘플레지킹 스팅 ×1’을 획득했습니다.]

플레지킹 스팅.

자체로는 쓸모가 없는 아이템이다. 하지만 레시피만 안다면 훌륭한 합성 재료로 쓸 수 있었다.

2층 공략을 끝낸 나와 암젤은 이미 코앞까지 다다른 세이브 존으로 들어갔다.

[퀘스트 ‘다섯 시간 안에 2층 돌파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3,000, GP +15,000을 얻었습니다.]

[히든 퀘스트 ‘세 시간 안에 F급 던전 2층 돌파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5,000, ‘창술사의 가죽옷’ ×1을 얻었습니다.]

[레벨 16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오케이!”

역시 1층에서와 같은 형식의 히든 퀘스트가 존재했다. 이 말은 곧 층을 통과할 때마다 적어도 하나씩의 히든 퀘스트를 달성하게 될 거란 뜻이었다.

물론 모든 던전에서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던전 안에서는 그럴 확률이 높다.

나는 보상으로 얻은 방어구를 꺼내보았다.

[창술사의 가죽옷]

등급 : 레어

효과 : 체력 +5, 행운 +3, 창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5%, 반격에 의한 효과 ×110%

비고 : 장갑 제작을 의뢰했던 피오리오는 그 높은 완성도에 감탄한다. 장인의 솜씨에 만족하여 다음으로 의뢰한 것이 바로 가죽옷. 창술사에게 적합하도록 디테일한 주문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훗날 이 방법은 피오리오 공법으로 불리며 창술사용 장비 제작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장갑도 그렇고 가죽옷도 나중에 등장하는 레어 등급 장비에 비하면 성능은 높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더라도 물론 지금 내 수준에는 충분히 좋은 물건이지만.

히든 퀘스트를 달성하고 얻은 장비에 모두 피오리오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것이 세트 아이템이기 때문.

세트 아이템은 전부 얻었을 때 부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보통 방어구세트는 건틀릿, 갑옷, 하의, 부츠 네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 얻은 가죽옷은 등급이 레어다뿐이지 그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다.

따라서 다른 초급 방어구가 그런 것처럼 상하의가 분리되지 않고 가죽옷이라는 한 벌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세트 아이템으로 남은 것은 부츠밖에 없다.

아마도 다음 층에서 얻을 수 있겠지.

나는 곧바로 추리닝을 벗었다. 미련이 없는 옷이기 때문에 세이브 존 한쪽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참고로 세이브 존마다 있는 쓰레기통은 게이머들의 편의를 위해 놓인 것이다. 상급 던전에 가면 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만으로 대단한 물건들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었다.

레벨이 높은 게이머들은 그만큼 부르주아들이니까, 비싼 아이템도 필요 없으면 휙휙 버려 버리는 것이다.

나는 새로 얻은 가죽옷을 착용했다.

“으음~”

한 단계, 한 단계 강해지는 이 기분.

역시 이 맛에 게임을 하지.

나는 바닥에 앉아 인벤토리에서 플레지 허니를 꺼냈다. 그리고 그 옆에 플레지킹을 죽이고 얻은 플레지킹 스팅을 함께 놓았다.

암젤이 반가운 얼굴로 뛰어왔다.

“먹을 거 아니다.”

“칫.”

허공을 터치해 메뉴를 활성화시킨 뒤 ‘합성’을 선택했다.

[합성은 확률에 따라 진행됩니다.]

[합성에 실패한 재료는 쓰레기로 분류가 되니, 레시피가 없는 합성은 권유하지 않습니다.]

“알았다, 알았어.”

나는 경고 메시지를 건성으로 넘기고 합성에 들어갔다.

플레지킹 스팅에 묻은 독은 매우 위험한 물질이니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 장갑을 끼고 있더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준비해 온 유리병을 꺼냈다.

거기에 플레지 허니 10g을 따랐다.

10g이 어느 정도 양인지는 눈대중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합성을 한두 번 해봤어야 말이지.

합성이라는 것은 매우 민감한 행위라서 재료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양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플레지킹 스팅의 독이 없는 부분을 잡고 날카로운 부분을 병 주둥이 안에 집어넣었다.

그 상태로 휘휘 젓자 황금색이었던 플레지 허니의 빛깔이 점점 갈색으로 변했다.

귓가에 합성할 때 나오는 BGM이 흘러나왔다. 이 음악을 들을 때면 버릇처럼 심장이 쫄깃해진다.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플레지킹 허니’ 15g을 얻었습니다.]

[퀘스트 ‘합성 최초로 성공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300을 얻었습니다.]

[히든 퀘스트 ‘레시피 없이 합성 한 번에 성공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000, GP +20,000을 얻었습니다.]

플레지킹 허니는 일정 시간 마나 소모량을 30퍼센트 감소시켜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15g이니까 효과 지속 시간은 15초.

‘이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지.’

게다가 앞에서 암젤이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플레지 허니를 더 사용할까 봐 전전긍긍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 몸을 일으켰다.

“가자, 3층으로!”

“냐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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