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독식왕 : 클리어러 017화
나는 간단한 차림으로 방 밖으로 나갔다.
등을 보이고 있던 유진이가 돌아보았다.
“성오야…….”
나는 짧은 시간 그녀의 얼굴에 스치는 여러 가지 상념을 마주하고 적잖이 놀랐다. 어머니와 누나를 제외하고 나를 보고 이런 표정을 짓는 여자가 있었다니.
“어…… 안녕?”
어쨌거나 십 년 만에 만난 친구라 조금 어색했다. 그때의 모습이 조금 남아 있다 뿐이지, 이미 둘 다 성년이 되었다. 게다가 나는 지난 십 년간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예뻐졌는데?’
그녀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누나도 미인 축에 들었지만 유진이 옆에 있으니 평범해 보였다.
피부가 하얗고 눈이 크다. 거기에 특유의 밝은 이미지 때문에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러니까 그때 남자애들이 얘를 그렇게 좋아했겠지.
나에게 유진이와 연결해 달라고 졸랐던 친구도 여럿 있었다.
‘인간치고는 제법 미인이야.’
나는 게임 안에는 숱한 여자 NPC들을 만났는데, 그녀들은 대개 평범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몸매도 대부분 비현실적이었다.
그런 여자들 틈에 십 년을 지낸 탓에 나도 모르게 이성의 외모를 보는 기준이 높아졌다. 이런 내게 몇 초나마 감탄을 자아냈다면 그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응?’
일차적인 감상에서 벗어난 내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레벨이 더 높아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게이머였다. 그것도 나보다 더 레벨이 높은.
내가 자리에 앉자 누나가 말했다.
“유진이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병문안을 왔었어. 다른 애들은 고작 1, 2년 찾아오다 말았는데, 언제 깨어난다는 보장도 없는 친구를 그렇게 오래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나도 병원에서 일하면서 가족 말고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어.”
“어머, 언니~”
유진이가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뭔가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딱딱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고맙다.”
기분 탓인지 등 뒤에서 ‘흥!’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그 뒤로 한참 동안 유진이와 나에 대한 화제가 이어졌다. 나조차 기억이 안 나는 일을 어머니나 누나가 계속 꺼내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심지어 누나가 어머니를 보고 ‘얘네 둘 잘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하는데, 다시 등 뒤에서 ‘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참다못해 말했다.
“저기 어머니, 그리고 누나. 지금은 그런 하찮은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순간 거실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누나가 더듬대며 말을 했다.
“유진아, 네가 이해해. 얘가 몸은 이렇게 컸어도 속은 아직 열 살짜리 그대로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려 카드 한 장을 꺼냈다. 던전에서 번 돈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체크카드.
박광호에게 이백만 원을 주고 남은 돈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뭐냐?”
나는 검지로 코밑을 쓱 문지르며 멋쩍게 말을 했다.
“뭐긴요. 제가 번 돈이에요. 천이백만 원이 조금 넘게 들어 있어요.”
“뭐?”
어머니와 누나가 경악했다. 유진이도 덩달아 놀란 얼굴이었다.
“그렇게 큰돈을…… 네가 어떻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저 게이머가 됐어요. 어제 던전에 들어갔다 왔거든요.”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정적이 거실을 채웠다. 뜻밖의 차가운 공기에 나는 흠칫 놀랐다.
‘어라?’
그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분위기는 마치…… 게임기만 들여다보던 나를 어머니가 혼내기 직전의…….
어머니는 누나를 보며 물었다.
“던전이 그거 맞지? 무서운 괴물들이 나오고……. 사람도 죽고 그러는…….”
누나가 나를 보고 다그쳤다.
“며칠 전에 돈 벌어온다는 얘기가 그거였니? 던전에 들어간다는 거였어?”
‘어라? 왜 분위기가 이렇게 되는 거지?’
당황한 내게 어머니가 소리쳤다.
“십 년 만에 깨어난 놈이 뭐? 던전에 들어가? 누가 너보고 돈 벌어오랬어? 이 불효막심한 놈아!”
급기야 자신의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이런 곳으로 이사 오는 게 아니었는데. 집 근처에 던전만 없었어도.”
누나의 공격이 이어졌다.
“너는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면서 왜 엄마나 나한테 한마디 말도 안 했니?”
‘걱정할까 봐 말 안 한 건데…….’
나는 엄마와 누나의 예상과는 너무 다른 반응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반항하고 싶지만 두 사람의 기분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닌 터라 고개만 숙이고 아무 말도 못했다.
그때.
“어머니.”
유진이가 입을 열었다.
“게이머가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에요. 저도 그 일을 하잖아요.”
“아!”
유진이의 말에 누나가 뭔가를 깨닫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변명하듯 말을 했다.
“미안해. 네가 평소에 일 얘기를 전혀 안 해서 생각을 못했어. 그런데 너는 이미 몇 년이나 그 일을 해왔잖아. 성오는 십 년간이나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이제 막 깨어난 애고.”
“게이머는 일반인이랑 달라요, 언니. 훨씬 힘이 세고 체력도 좋죠. 안 그러면 어떻게 그런 괴물들이랑 싸우겠어요? 그리고 두 분이 몰라서 그렇지 게이머한테는 아이템이라는 것이 있어서 부상을 당해도 깨끗이 나을 수 있어요. 다른 직종에 비해 사망률도 훨씬 낮은 걸요.”
사망률이 더 낮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지만 어쨌든 유진이의 설득은 먹혀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어조에서 조금이나마 변화가 감지되었다.
“그래……?”
“네, 어머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게이머가 되지 못해 안달인 걸요. 이래 봬도 저도 꽤 인기가 많아요. 인터넷에 팬카페도 있는 걸요.”
‘팬카페가 있다고?’
그 말에는 내가 더 놀랐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천 명이 넘는 게이머가 있다. 초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일반인들도 게이머라는 존재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팬카페가 있을 정도라면 보통 유명한 게이머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휴, 나는 모르겠다.”
어머니의 입에서 이 정도 말이 나왔으면 꽤 많이 누그러지셨다는 뜻이다. 내가 설득을 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다시는 던전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다.
물론 어떻게든 들어가긴 했겠지만, 떳떳하게 돈을 벌어온다는 보람은 느끼지 못했겠지.
유진이는 손목시계를 흘긋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 죄송해요. 저 일이 있어서 이제 가 봐야 해요.”
“어머, 그래? 미안해서 어쩌니. 성오, 얘가 쓸데없는 소릴 해서 네가 편하게 못 있다 가는구나.”
“아니에요. 또 올게요.”
누나가 내 등을 찰싹 때렸다.
“뭐해? 바래다주고 와.”
“어? 으, 응.”
게이머라고 커밍아웃을 했다가 소중한 아들이자 동생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유진이를 따라나섰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딱히 할 말이 없어 침묵이 이어졌다.
유진이가 입술을 쭉 내밀더니 말했다.
“너, 나 오랜만에 봤는데 반갑지도 않니?”
오랜만이라도 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서로 얼굴도 잊을 만큼.
“반가워.”
“칫,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그때는 머릿속에 게임밖에 없었고, 지금은 아마…….”
유진이는 얼굴을 가까이 들어대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던전에 들어가는 거밖에 생각 안 하지?”
뜨끔.
“그래도 다행이다.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나이에 걸맞게 눈치만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응, 그건 나도 유감이야.”
어머니와 누나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면 아까처럼 무작정 게이머가 됐다고 커밍아웃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대단하다. 십 년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나자마자 각성이라니.”
“으음.”
나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왠지 얘라면 ‘그랬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것 같기도 한데.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너는 언제 각성한 거야?”
“각성한 지는 삼 년쯤 됐어. 처음에는 연령제한 때문에 던전에 못 들어갔는데, 나중에 제한이 18세로 낮아지면서 들어갈 수 있게 됐지. 물론 그 전에도 꼼수로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혀를 쏙 내밀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성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애였다.
“지금은 미르라는 길드에 있어. 혹시 들어봤니?”
“아니.”
던전에 대해 조사를 하며 본 것 같기도 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길드만 해도 숫자가 상당했고, 당장은 관심이 없기도 해서 자세히는 몰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가면서 유진이가 말했다.
“오늘 내가 너희 어머니 설득해 줘서 고마웠지? 조만간 밥 한번 사라.”
“응, 알았어.”
유진이는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웃음을 띤 채로 클러치를 흔들며 앞장서 갔다.
“멀리 나올 필요 없어. 나 차 가져왔으니까.”
‘차라……. 역시 게이머라 돈을 많이 버나 보네.’
같이 게임을 하면서 한 번만 져 달라고 징징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는 유진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대뜸 고양이가 노려보고 서 있었다.
“깜짝이야!”
“……마음에 안든다옹.”
나는 노트북으로 ‘김유진’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유명인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프로필은 물론이고, 순식간에 관련 기사가 수십 개는 뜰 정도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몇 년 전 던전 입장의 연령 제한을 낮추는 문제로 떠들썩했을 당시, 여고생 게이머로 매스컴을 타면서였다.
그녀는 당연히도 게이머의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것에 찬성하는 쪽이었고, 여고생이면서 강한 능력을 지닌 그녀는 이른바 찬성 진영의 아이콘이 되었다.
용모마저 예쁘니 이래저래 이슈가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게이머의 연령 제한이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빨리 낮춰진 데는 그녀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뜻하지 않게 역사 공부까지 하게 됐네.’
초등학교 동창인 그녀가 유명 게이머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와 나는 공통점이 많다.
어렸을 때 열혈 게이머였고, 지금은 각성해서 던전에 들어가는 게이머가 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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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의 설득이 효과를 발휘해서 어머니는 처음처럼 강하게 반대를 하지 않으셨다. 누나도 게이머에 더 자세히 알아보는 눈치였다.
두 사람이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던전 안에 세이브 존이라는 것이 있어서 언제든 입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였다.
물론 ‘언제든’이라는 것은 잘못된 정보이기는 했지만 굳이 수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두 게이머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을 한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반대를 한다고 안 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을 바꾸는 데 큰 몫을 했겠지만.
“조금이라도 네 몸이 상하는 걸 보면 엄마는 그 일 못 하게 할 거야.”
다행히도 목요일이 오기 전에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목요일 아침. 나는 상쾌한 기분으로 두 번째 던전 공략을 하러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