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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4화 (1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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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14화

    Chapter 06 - 첫 입금

    1

    신중하게 제임스의 시체를 뜯어보던 암젤은 그의 몸에서 무언가가 달각 하고 떨어지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아, 쉣! 깜짝이야옹!”

    나는 그녀의 시선이 미친 곳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놀랍게도 박광호의 몸에서 나온 것과 같은 자줏빛 보석이 떨어져 있었다.

    ‘또 나왔어?’

    보석을 주워 들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흡수할 수 없는 스킬 스톤입니다.]

    [‘엑스 자 베기(B, Lv18)’를 흡수하려면 초급 이상의 검술사 숙련도가 필요합니다.]

    “으음…….”

    나는 신기한 기분이 들어 이번엔 앨리스의 시체로 가 보았다. 그녀의 시체는 이미 절반 이상이 녹아내려 있었다.

    살아 있을 때는 제법 미인이었지만 이제 그 미모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녀의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스킬 스톤은 없었다. 그렇다고 투시자의 눈으로 본 그녀의 정보창에 스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박광호의 스킬도 ‘신체 강화’까지 포함하면 두 개였다. 그 중 하나만 떨어졌다는 것은 게이머가 사망해도 스킬 전부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확률의 문제인가?’

    나로서는 게이머끼리 PK를 하고, 죽은 게이머에게서 스킬 스톤이 나온 것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런 것들은 인터넷으로는 찾을 수 없었던 내용이다.

    문득 서늘한 기분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내가 십 년 동안 한 게임은 세계관이 매우 방대하고 스토리도 복잡했는데, 그것들을 샅샅이 경험하다 보니 일종의 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암젤, 게이머들을 각성시킨 것이 이계인이라고 했지?”

    “맞다옹. 왜 그러냐옹?”

    이계인들은 지구인을 각성시켜 던전을 공략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각성한 것이 상식에 어긋난다고 보았을 때, 갑자기 던전이 생겨난 것 또한 상식의 범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던전은 왜 생긴 거지?”

    암젤의 이마에 있는 문신이 반짝 빛났다.

    “던전은 각성자를 성장시키는 공간이다옹.”

    “뭐? 그게 전부야?”

    암젤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그러지 마라옹. 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옹.”

    “성장이라고…….?”

    다른 대답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하필이면 왜 그런 대답을 내놓은 걸까?

    “각성자한테 스킬 스톤이 떨어지는 이유는 뭐지?”

    “……그것도 게이머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옹. 그 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다옹.”

    나는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았다.

    스킬 스톤이 게임 안에서는 없었던 개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 이외의 다른 게이머들이 PK를 해도 스킬 스톤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그것을 흡수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 많은 스킬 스톤을 얻길 바라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제임스와 앨리스가 PK를 걸어온 것도 사실은 결정석보다도 스킬 스톤이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 레벨의 능력자들이 고작 초보자들이 얻은 결정석을 탐내어 살인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 말은 곧 바깥에서 암암리에 스킬 스톤이 거래되고 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냐옹.”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너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지 말자.’

    새삼 세 구의 시체를 돌아본 나는 위화감이 생겼다.

    제임스의 시체까지 녹아내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한 구의 시체만은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으으으…….”

    죽은 줄만 알았던 박광호에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괜찮아요?”

    한참 동안 기절해 있던 박광호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가슴의 상처에서는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더욱 많은 피가 흘렀다.

    나는 인벤토리 안에서 파란색 병을 꺼냈다.

    하급 포션.

    지금으로서는 이것 말고 박광호의 상처를 치료할 수단이 없다.

    물론 본인이 싫다고 하겠지만 암젤이 핥는다고 해도 나을 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나는 박광호의 상체를 세우고 입을 벌렸다. 뚜껑을 연 포션 병에서는 향긋한 소다향이 났다.

    그것을 전부 박광호의 입안에 흘려 넣었다.

    잠시 후 인상을 편 박광호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윽……. 이게 어떻게 된…….”

    “나중에 설명할게요. 일단 밖으로 나가요.”

    내 부축을 받고 몸을 일으킨 박광호가 녹아내리고 있는 시체 두 구를 돌아보았다.

    “자네가 한 건가……?”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

    박광호의 새삼스러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그를 데리고 세이브 존으로 갔다.

    세이브 존은 알기 쉽게 구획되어 있었다. 일정 경계 너머에 하얀색 선이 그어지고 그 안에서 던전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다른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세이브 존의 정중앙에는 단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책이 한권 펼쳐져 있다.

    입구로 돌아가고 싶은 자는 책 위에 손을 올리면 된다. 반대로 다음 층으로 가고자하는 자는 안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됐다.

    나는 단상으로 걸어가면서 계단 쪽에 시선을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2층에 올라가고 싶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던전 1층은 너무 시시했다. PK를 제외하고는 변수랄 것도 없었다.

    그런 것에 비해 얻은 것은 많다. 게임으로 치면 튜토리얼을 치른 것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지금은 박광호를 데리고 나가야 했기 때문에 공략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접어야 했다.

    박광호의 오른손을 들어 책 위에 놓았다. 암젤도 훌쩍 뛰어올라 앞발을 책에 얹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손을 올리려고 했을 때, 문득 계단 옆에 못 보던 천막 건물 하나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점.

    지금 내게는 161,000 GP가 있다. 레벨을 감안하면 무척 많은 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상점을 이용하는 것 또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나는 귀환서 위에 손을 올렸다.

    화악-

    밝은 빛이 몸을 감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들은 입구 앞으로 옮겨졌다.

    박광호를 부축한 채 밖으로 나오자 마침 이쪽을 보고 있던 직원 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공략이 벌써 끝나셨나요?”

    “네, 그것보다 부상자가 있습니다.”

    “아!”

    직원은 재빨리 내 쪽으로 와서 박광호를 부축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다른 분들은 왜 같이 안 나오시나요? 일행이 더 있었던 걸로 아는데.”

    “설명 드리겠습니다. 일단 이분을 병원으로 보내고 나서요.”

    “처음이라 아직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관리소에는 상비약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게이머에게는 효과가 좋죠. 사용료도 일반 치료소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그래요?”

    다급한 상황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관리소 안에는 간소하게나마 치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의사는 없었는데, 게이머에게는 일반 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박광호를 침대에 눕히고 기다리자 부축을 도와준 직원이 붕대와 연고를 들고 왔다.

    박광호의 상의를 벗긴 뒤, 상처를 본 직원이 말했다.

    “깊지는 않네요.”

    아닌 게 아니라 하급 포션을 복용해서 출혈이 멎고 등까지 뚫렸던 환부에 새 살이 채워져 있었다. 직원은 익숙한 동작으로 상처 부위의 피를 닦아내고 연고를 발랐다.

    연고에서 나는 냄새가 매우 지독했기 때문에 나는 저절로 인상을 썼다. 이런 걸 피부에 묻히는 것은 굉장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포션을 꼭 넉넉히 가지고 다녀야겠군.’

    연고의 도포가 끝나자 직원이 환부에 붕대를 감았다.

    매우 익숙하고도 깔끔한 솜씨였다.

    “응급처치는 끝났습니다. 환자의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있도록 하시죠.”

    “고맙습니다.”

    직원과 나는 박광호를 침대에 눕혀둔 채 장소를 옮겼다.

    “왜 다른 분들은 안 나오시는 건가요? 2층으로 올라가셨나요? 아니면 루트를 따로 잡으셨나?”

    직원은 두 명의 외국인이 봉변을 당했을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D급 라이선스 소지자가 F급 던전 1층에서 사고를 당할 일은 없으니까.

    나는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내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사실대로 말하는 것 말고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

    놀란 직원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저분도 그래서 부상을 입은 겁니다.”

    “이런!”

    직원은 서둘러 다른 직원들에게 던전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내 눈에는 지시를 받은 이들의 정보창이 보였는데, 그들은 모두 레벨 3 미만이었다.

    레벨이 너무 낮은 각성자들은 공무원이나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던전에 들어가도 제임스와 앨리스의 시신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녹아버렸을 것이기 때문에.

    대신 그들이 입고 있던 옷가지는 남았다.

    그것만 있으면 신분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터다.

    직원이 내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조성오입니다.”

    “나이는요?”

    “스무 살이요.”

    그는 방금 전에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러니까 던전 안에서 살인을 시도한 그 두 사람을 조성오 씨가 제압했다는 겁니까?”

    “아니요. 제압이 아니라 죽였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저희가 죽었을 테니까요.”

    “으음…….”

    직원은 상식적으로 갓 성인이 된, 그것도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처음인 게이머가 D급 라이선스를 지닌 게이머 두 명을 죽였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능력차가 컸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살인을 하면 어느 정도 동요는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청년은 너무도 태연해 보였다.

    ‘거물 아니면 사이코패스라는 건데…….’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결정석, 여기서 팔아도 되죠?”

    “네? 아 네…….”

    나는 인벤토리에서 차근차근 결정석을 꺼냈다. 오십 개가 넘었기 때문에 한참 꺼내야만 했다.

    이것들을 돈으로 바꿔 집으로 가져갈 생각을 하니 몹시 기뻤다.

    ‘엄마가 좋아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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