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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3화 (1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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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13화

    챙!

    창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내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나는 제임스의 괴력이 지금 내 스탯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각적으로 판단컨대 적어도 레벨이 5 이상은 차이 나는 것 같다.

    ‘젠장!’

    현실로 돌아오기 전의 힘을 1퍼센트만 가지고 있었더라도 이 정도의 능력자는 손쉽게 압살할 수 있었을 텐데.

    여자 친구가 죽은 것을 보고 제임스에게서는 특유의 건들거리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혔다.

    좁은 던전에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러 오니, 피할 공간이 없었다.

    나는 힘에서 밀릴 것이 뻔했기 때문에 감히 그와 무기를 부딪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코너에 몰린 것을 확인한 제임스가 두 개의 검을 교차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강하게 내지르며 마나를 폭발시켰다.

    쿠앙-!

    엑스 자의 검기가 내 몸을 덮쳐왔다.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창으로 전면을 방어했다.

    우지직-

    창이 반으로 부러지며 두꺼운 마나의 파동이 가슴을 강타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구르기를 해서 마나의 상당량을 흘려보냈다. 그럼에도 가슴의 피가 역류해 입안을 비릿하게 만들었다.

    다행인 점은 이런 긴박한 상황에도 그다지 긴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비록 게임이기는 해도 거의 현실과 다름없는 환경에서 숱한 접전을 치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사망하지 않았다.

    내게는 공포를 뛰어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싸움을 유희로 받아들일 수 있는 흔치 않은 감각도.

    백 퍼센트 스킬을 먹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제임스가 공격에 실패하자 더욱 흥분하며 달려들었다.

    나는 벽을 밟고 그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검이 떨어지는 순간과 맞물려 빠져나갈 수 있는 단 한순간의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공중에서 부러진 창으로 그의 목덜미를 찔렀다.

    뿌직-

    신체 강화형 능력자의 강철 같은 피부를 이기지 못하고 창의 자루가 부러졌다. 하지만 대미지를 전혀 입히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창끝이 피부를 뚫고 피가 솟구쳤다.

    “으아악!”

    제임스가 고통스러워하며 버둥거렸다. 지금이 찬스이지만 안타깝게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섣불리 주먹을 내질렀다가는 되레 뼈가 부러지고 말 것이다.

    나는 앨리스의 시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이마에 박혀 있는 도끼. 창이 부러진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그것밖에 없다.

    제임스가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나는 허리를 낮게 숙이며 옆 구르기를 했다.

    그런 내 발 끝에 무언가가 채였다.

    고개를 돌리자 박광호의 시체 아래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자줏빛을 띤 보석.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흡수가 가능한 스킬 스톤입니다. 스킬 ‘로또(A, Lv6)’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흡수하시겠습니까?]

    ‘이건 뭐야.’

    스킬 스톤이라는 개념은 가상현실 게임 안에 없던 것이었다.

    보통 스킬은 레벨이 오르거나 직업 숙련도가 올랐을 때, 혹은 특정 NPC에게 전수받거나 몬스터를 죽였을 때 얻을 수 있다.

    당황스럽기는 해도 지금은 이것저것 생각할 때가 아니다.

    변수가 있다면 무조건 선택하고 볼 일이었다.

    “흡수한다.”

    보석의 자줏빛 기운이 팔을 타고 내게로 옮아왔다.

    [스킬 로또(A, Lv6)를 얻었습니다.]

    [스킬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로또’의 레벨이 50이 되었습니다.]

    나는 공간이 협소해 함부로 싸움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던 암젤에게 소리쳤다.

    “암젤, 시간을 끌어줘!”

    “알았다옹!”

    번쩍 빛줄기가 떨어지더니 표범 무늬의 덩치 큰 스라소니 한 마리가 출현했다.

    암젤은 현재 레벨에서 한꺼번에 세 마리의 소환수를 불러낼 수 있지만, 숫자를 줄이면 이렇게 덩치가 크고 강한 놈을 소환할 수 있다.

    “가라옹!”

    스라소니가 성큼 제임스를 향해 뛰어갔다. 암젤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접근했다.

    신체 강화형 능력자의 최대 단점이라면 민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광호만 해도 근력에 비해 민첩은 훨씬 떨어졌으니까.

    그런 차이를 영리한 암젤은 잘 알고 있었다.

    주인은 자신에게 제임스를 해치우라고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을 끌어달라고 말했을 뿐.

    그 말은 곧 시간을 끌면 뭔가 대책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같은 상황을 숱하게 겪었기 때문에 이제는 뉘앙스만 듣고도 판단할 수 있다.

    “캬아옹!”

    “냐아옹!”

    스라소니와 고양이가 양쪽에서 제임스를 도발했다.

    제임스의 어깨에는 여전히 두 개의 창날이 꽂혀 있었다. 그는 분노로 시뻘게진 눈을 하고 짜증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쾅!

    쿠앙-!

    애초에 공격할 의지가 없는 고양이들은 동작이 큰 그의 공격을 이리저리 잘 피해 다녔다.

    다만 공간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도망만 다니는 것은 곧 한계에 부딪치고 말 것이었다.

    암젤의 생각과는 달리 내게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단지 새로운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스킬 ‘로또’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스테이터스창을 열어 스킬란에 새로 추가된 기술을 터치했다.

    [로또]

    타입 : 액티브

    등급 : A

    레벨 : 50(Max)

    효과 :

    5등-전 스탯 +10%(당첨 확률 1/2)

    4등-전 스탯 +30%(당첨 확률 1/12)

    3등-전 스탯 +100%(당첨 확률 1/310)

    2등-전 스탯 +300%(당첨 확률 1/4,500)

    1등-전 스탯 +1,000%(당첨 확률 1/35,000)

    지속 시간 : 20초

    설명 : 사용하면 특정 확률로 등수에 맞는 효과가 발동한다. 도박에 빠진 박광호의 집착과 후회, 원념이 뭉뚱그려져 독특한 스킬을 만들어냈다. 레벨이 오름에 따라 확률과 지속시간이 상향된다.

    ‘이게 뭐야.’

    긴박한 상황인데도 어이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회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로또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당첨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혹은 재미로 구입하는 것이 바로 로또 복권이었다.

    어이없게도 스킬에는 낮은 당첨 확률마저 재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레벨이 만렙이 되면서 많이 상향된 것이리라.

    ‘쳇.’

    나는 슬슬 궁지에 몰리고 있는 암젤과 스라소니를 흘긋 보았다. 제임스는 나와 암젤을 죽일 충분한 능력이 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말 그대로 도박 같은 수가 필요했다.

    나는 로또를 사용하기로 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마나량이다.

    내 레벨로 이 스킬을 사용한다면 딱 한 번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물론 모든 A급 스킬이 같은 양의 마나를 소모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킬은 얻는 즉시 소모되는 마나량을 알 수 있다.

    이는 생명력과 마나 보유량과 같이 감각적인 부분이라 따로 수치화되어 표기되지 않는다.

    나는 제임스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약삭빠르게 도망만 다니는 고양이들에게 화가 날 대로 나 있었다. 결국 스라소니를 코너에 모는 데 성공하고 망설임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엑스 자로 그어진 검기가 스라소니의 몸통을 강타했다.

    쿠앙-!

    폭발로 인해 먼지가 피어올랐고, 먼지가 걷힌 뒤에는 스라소니의 모습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의 시선이 암젤에게로 넘어갔다.

    둘의 레벨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암젤의 환각술은 통하지 않는다.

    암젤은 경계하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나는 재빨리 앨리스의 시체 쪽으로 움직였다. 도끼 자루를 잡고 뽑으려고 했을 때, 이상한 현상을 마주했다.

    앨리스의 시체가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3분의 1가량이 젤리처럼 녹아 흐물흐물해졌다. 시체 특유의 악취는 풍기지 않았다. 시체가 부식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작용 때문에 천천히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나는 도끼를 뽑아내고 심호흡을 했다.

    눈을 질끈 감고 내뱉었다.

    “로또!”

    순간 주변의 공기가 느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을 떴을 때, 환각처럼 공중에 수십 개의 공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서로 섞이며 마구 자리바꿈을 하더니 결국 여섯 개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할 때, 손 안에 무언가가 만져지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덧 손에 쥐어진 종이에는 일곱 개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1, 9, 23, 35, 41, 43, +11.

    나는 로또를 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만 끔벅끔벅할 따름이었다.

    이어서 허공에 있던 공들이 파각파각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절반으로 쪼개진 공의 안쪽에는 각각 숫자가 적혀 있었다.

    3, 11, 1, 41, 23, 35

    나는 대강 어떤 원리인지 짐작하고 종이에 적힌 숫자와 허공의 숫자를 대조했다.

    하지만 그 전에 손안의 종이가 안개처럼 스러졌다. 공중의 공들도 차례차례 흩어져 버렸다.

    ‘뭐야…… 틀렸나?’

    [축하합니다! 로또 4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당첨자의 모든 스탯이 20초간 30퍼센트 상향됩니다.]

    느려졌던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려 있는 암젤의 몸 위로 제임스의 검이 떨어졌다.

    나는 재빨리 달려들어 검을 쳐 냈다.

    캉-!

    강한 반동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도끼가 부러지지 않고 제임스의 팔이 만세를 부르듯 위로 젖혀졌다.

    나는 훤히 드러난 그의 가슴팍에 있는 힘을 다해 도끼를 꽂았다.

    퍼억-!

    희번뜩 뜨인 제임스의 눈이 나를 노려보았다. 잘못 됐나 싶어 뒤로 한 발짝 물러나는데, 그의 몸이 무너지듯 앞으로 기울어졌다.

    쿵.

    [히든 퀘스트 ‘레벨이 5 이상 차이 나는 게이머 처치하기’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5,000, ‘피오리오의 창’ ×1을 얻었습니다.]

    [카오스(Chaos) 성향을 가진 게이머가 죽었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레벨 13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6을 얻었습니다.]

    죽어 자빠진 제임스를 보고 암젤이 긴 한숨을 뽑아냈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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