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독식왕 : 클리어러 012화
Chapter 05 - PK
1
[레벨 10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각 클래스는 성장과 진화가 가능합니다.]
자보타와 싸우는 도중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잠깐 동안 암젤과 자리를 바꾸었다.
최초에 선택할 수 있는 클래스는 총 열 가지이다.
내가 클래스를 고르는 시간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대목에서 한참 고민했겠지만 어차피 나는 대부분의 클래스를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무기를 사용하는 클래스들이 궁극적으로 이르게 되는 길은 ‘웨펀마스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검을 다루는 직업을 선택하든, 창을 다루는 직업을 선택하든, 심지어 활을 다루는 직업을 선택해도 결과는 달라질 게 없었다.
어차피 저렙의 스탯에서 나오는 기술들은 위력이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나는 고민 없이 첫 직업으로 ‘창술사’를 선택했다. 이유는 지금 들고 있는 무기가 창이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인벤토리에 들어 있던 무기가 검이었다면 ‘검술가’를, 활이 들어 있었다면 ‘궁사’를 선택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다면 ‘무투가’를 택했겠지.
[창술사 클래스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창술사 숙련도가 Max가 되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신체가 재구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숙련된 창술사가 되면서 근육이 새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과정이 수초 만에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숙련도는 보통 초급, 중급, 상급의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하나의 클래스에 완전히 숙달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의 효과에 기대어 그 시간이 초 단위로 단축되었다.
‘암, 십 년이나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줘야지.’
직업 선택에 이어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클래스 전용 스킬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스킬 중 하나를 고르십시오.]
눈앞에 창술사 전용 스킬 세 가지가 나열되었다. 터치하면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내 선택은 빨랐다.
토네이도 스피어.
세 가지 스킬을 모두 사용해 봤지만 기본기로는 이만한 기술이 없다. 스킬을 사용하면 창끝에서 회오리가 발생한다. 콤보가 이어질수록 풍압이 세지고 회오리의 크기도 커졌다.
[스킬의 기억이 활성화됩니다.]
[‘토네이도 스피어’의 레벨이 10이 되었습니다.]
D급 스킬은 10이 만렙이다.
나는 새로 시작한 게임에 스킬 포인트의 개념이 사라진 이유를 이제야 이해했다.
‘처음부터 만렙이라면 포인트를 분배할 필요가 없겠지.’
클래스를 얻고 스킬까지 하나 얻은 나는 순식간에 능력이 진일보했다.
내 변화를 감지한 자보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토네이도 스피어!’
쿠과과과-!
창끝에서 발생한 바람이 녹색 몬스터들을 벽으로 밀어버렸다.
“키엑!”
“키에엑!”
몬스터를 상대하는 요령은 일일이 머릿속에서 꺼낼 필요도 없다.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나 자신이 걸어 다니는 매뉴얼인 셈이다.
“주인님, 역시 끝내준다옹!”
눈에 하트를 그리고 호들갑을 떨던 암젤이 갑자기 휙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옹.”
미간을 찡그리고 구석구석 살펴보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착각한 모양이다옹.”
2
[퀘스트 ‘다섯 시간 안에 1층 돌파’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2,000, GP +10,000을 얻었습니다.]
[레벨 11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3을 얻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또 하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히든 퀘스트 ‘두 시간 안에 F급 던전 1층 돌파’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 +5,000, ‘창술사의 장갑’ ×1을 얻었습니다.]
‘오!’
히든 퀘스트란 말 그대로 감추어진 미션이기 때문에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일반 퀘스트처럼 가짓수가 많지도 않다.
다섯 시간을 꽉 채워서 천천히 공략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물론 어쩌면 이런 퀘스트가 있지 않을까 의식한 것도 있긴 하지만.
나는 인벤토리를 열고 그 안에 새로 들어온 아이템을 꺼냈다.
[창술사의 장갑]
등급 : 레어
효과 : 근력 +3, 민첩 +2, 창을 이용한 스킬 사용 시 마나 증폭 +5%, 콤보에 의한 효과 ×110%
비고 : 창술의 달인 피오리오가 초창기 마을의 장인에게 부탁해 제작했다는 장갑. 그가 처음 사용한 장비 중 하나라는 것만으로 소장가치는 충분.
등급이 레어이기는 하지만 효과가 그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초기 퀘스트를 달성하고 나온 아이템이기 때문에.
하지만 비고란에서도 볼 수 있듯 소장 가치가 있는 물건이기는 했다. 히든 퀘스트로 얻은 아이템은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은 곧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 이것을 팔 생각은 없었다. 사용하다가 더 좋은 장비를 얻게 되면 그때 팔면 된다.
히든 퀘스트까지 달성하고 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박광호와 암젤을 돌아보고 세이브 존으로 가자고 말하려 할 때, 시야 저편으로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리고.
꽈앙-!
포탄이 떨어진 듯 엄청난 충격이 던전을 울렸다. 내 몸은 튀어 올라 거의 십여 미터를 굴러갔다.
충격과 함께 하얀 연기가 공간을 가득 덮었다.
‘뭐야…….’
굳은 몸이 조금이나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꽉 찬 안개 속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끄아악!”
무언가가 휙 던져지더니 내 옆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이 박광호의 몸뚱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박광호의 고개는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가슴팍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제야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나는 욱신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후, 벌써 일어나다니.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군.”
안개가 걷히고, 나를 보고 서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던전에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외국인들이었다.
앨리스의 손에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제임스는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손에 창을 쥔 채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PK를 당하다니, 왜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십 년간 내가 한 게임은 오로지 솔로플레이였기 때문에.
열 살 이전에 즐겨했던 게임도 대부분 빨리 엔딩을 볼 수 있는 패키지 게임들이었다.
내 머릿속에 PK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외국인들을 다른 방향으로 보낸 것은 물론 느낌이 좋지 않아서였지만, 이런 식으로 뒤를 노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제임스가 말했다.
“원래는 다 죽일 계획이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너처럼 젊은 놈을 죽이면 꿈자리가 나쁠 것 같아. 결정석을 내놓아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나는 앨리스의 손에 들려 있는 암젤을 보았다.
“결정석은 주겠다. 대신 그 고양이를 돌려줘.”
“헹, 그건 안 되지.”
앨리스가 혀를 쏙 내밀었다. 그녀는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암젤을 번쩍 들어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자 꼼짝 않고 있던 암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고양이의 눈을 마주 본 앨리스가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며 암젤을 휙 집어 던졌다.
“꺄아아악!”
어떤 환상을 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효과가 있었다.
찰나의 순간, 나는 인벤토리에 도끼를 꺼내어 앨리스에게 집어 던졌다.
퍽-!
도끼날이 정확하게 그녀의 이마에 박혔다.
물론 확신이 없었다면 무기를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개가 걷히고 두 외국인을 보았을 때, 한 명의 정보창이 확실히 드러났다.
앨리스의 레벨은 8. 나보다 3이 낮았다.
[카오스(Chaos) 성향을 가진 게이머가 죽었습니다.]
[질서에 기여하여 오더(Order) 성향을 부여받았습니다.]
[히든 퀘스트 ‘게이머 한 명 사살’을 달성했습니다.]
[경험치 +5,000, GP +20,000을 얻었습니다.]
“앨리스!”
제임스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설마 앳된 얼굴의 초보자가 살인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습을 하기로 결정한 것도 불식간에 한 명을 먼저 죽이면 나이 어린 초보자가 겁을 먹고 순순히 결정석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Fu○k!”
분노한 제임스가 벌게진 눈으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곧 그의 양손에 폭이 넓은 검 두 자루가 쥐어졌다.
피부가 검게 물들고, 근육이 팽창했다.
나는 정보창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능력이 박광호처럼 신체 강화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레벨은 크게 차이가 날 테지만.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저절로 경계가 되었다. 암젤도 털을 바짝 세운 채로 긴장을 했다.
그런 내 눈에 박광호의 몸 아래에 드러난 반짝이는 물체가 보였다.
보석처럼 생긴 그것은 결정석과는 모양과 빛깔이 달랐다.
“이야아아앗!”
분노한 제임스가 검을 들고 돌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