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독식왕 : 클리어러 010화
Chapter 04 - 던전 입장
1
월요일.
어머니와 누나가 출근하자 나는 암젤을 데리고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뒷동에 살고 있는 박광호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음가짐을 새로 해서인지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옷도 어제까지와 달리 비교적 깨끗한 것으로 입고 나왔다.
‘던전에 들어가면서 저런 옷을 입고 오면 어쩌자는 거지?’
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 뜻이기도 하니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이틀간의 훈련으로 나는 레벨 6이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무기 조합을 사용했더니 경험치가 더 빨리 오른 것이다.
박광호의 레벨은 1도 오르지 않았다.
역할이 한정된 탓도 있지만 그것으로 일반 게이머들에게 레벨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업적 ‘라가망의 전설’ 효과를 차치하고라도 내 성장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었다.
던전은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던전과 가까워질수록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게이머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왔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어쨌거나 나는 인생의 절반을 게임에서 보낸 몸이다. 그것도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를.
만약 던전에 들어가는 일이 돈이 되지 않았더라도 자발적으로 안에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후우…….”
흥분된 숨을 토해내는 나를 보고 박광호가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자네도 긴장되는 거지? 그나저나 놀랐어. 자네도 나처럼 던전이 처음이라니. 세상엔 다양한 천재가 있다더니 게이머 중에서도 자네 같은 천재가 있었군. 나이도 어리고. 나로서는 부러울 뿐이야.”
“주인님을 당신 같은 비렁뱅이와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옹.”
그래도 지난 이틀간 함께 훈련한 덕분인지 암젤이 박광호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누그러진 편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광호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의 정보창을 보았을 때 드러난 기술 중 하나.
로또.
박광호가 그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뻔하다. 스킬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레벨 3짜리 게이머에게 A급 스킬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가지고 있는 마나량으로는 1회 사용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스킬인지 신경 쓰인단 말이지.’
그도 그럴 수밖에, 게임에서는 구경도 못 해본 스킬이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가까이에서 본 던전은 베란다에서 보던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압도적인 풍광에 절로 심장이 저려왔다.
10층짜리 아파트와 비슷한 규모를 지닌 던전은 울퉁불퉁한 바위산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검은색의 바위산이 설명 못할 요기를 뿜어냈다.
박광호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생각해 보니 이틀 준비하고 던전에 도전한다는 것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 며칠 더 준비를 하고 오면…….”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던전 주위는 말 그대로 허허발판이었다. 하지만 입구와 일정 거리를 두고 조그만 건물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서 던전을 관리하는 직원 몇 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근 부대에 출동을 요구할 수 있는 비상 연락망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던전에서 괴물들이 마지막으로 튀어나온 지도 오 년여가 흘렀다. 게이머들의 능력과 숫자가 안정화되어 더 이상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의 예약 관리를 하는 것 말고 던전 관리 직원이 하는 일 중 하나는 결정석 매입을 하는 것이었다.
결정석은 국가 차원에서 하나라도 많이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된 물질이다. 던전 공략 후 바로 판매를 하면 세금 혜택을 주는 제도가 시행 중이었다.
던전 관리소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웬 남녀 한 쌍이 다가왔다.
둘 다 키가 훤칠하게 큰 선남선녀였다.
머리칼이 금발이고 눈동자가 푸른 것으로 보아 외국인들이었다. 그럼에도 제법 유창한 한국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박광호를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특별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상대 레벨이 더 높아 투시자의 눈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으음…….’
얼굴 가득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는 두 사람은 겉으로 보아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쩐지 조금 가식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둘 중 말을 건 것은 여자 쪽이었다.
금발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그녀는 뮤직비디오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화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갑자기 말을 걸어서 미안합니다. 저희는 한국을 여행 중인 사람들이에요.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말도 공부하고 드라마도 많이 보았어요.”
“그래서요?”
나는 던전에 들어가는 일이 지연되는 것에 살짝 짜증이 났다.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들도 당신처럼 게이머입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관광은 많이 했지만 딱 한 군데 경험하지 못한 곳이 있어요. 바로 한국의 던전이죠. 저희는 여행 중인 사람들이라 직접 예약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어요. 저희가 얻은 결정석도 모두 당신들에게 드리겠습니다. 같이 들어가게만 해주세요.”
여자가 옆에서 귀엽게 ‘please~’라고 말했다.
내 대신 암젤이 대답했다.
“꺼져라옹. 관심없다옹.”
하지만 용모가 귀여운 고양이가 하는 말은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되레 외국인들이 눈을 크게 뜨고 신기해했다.
“오~ 말하는 고양이!”
“슈퍼펫!”
슈퍼펫은 외국에서 각성수를 일컬을 때 쓰는 명칭이다. 정식 용어는 따로 있었지만 너무 길어서 이제는 슈퍼펫이라고 부르는 게 굳어졌다.
여자가 손을 뻗으려 하자 암젤이 털을 곤두세우고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캬아악!”
그 모습을 보고도 두 명의 외국인 게이머는 기뻐했다.
“와우, 무서운 고양이에요.”
“호호! Cute! Very cute!”
한발 늦게 합류한 박광호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나와 외국인들을 번갈아 보았다. 남자가 얼른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제임스예요.”
그의 설명을 들은 박광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물론 저희가 도와드려야죠.”
그러면서 허락을 구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경험자가 동행하는 편이 더 안전해서 좋다고 생각했을 거고, 거기다 결정석까지 모두 넘겨준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손해 보는 제안은 아니었다.
나는 잠깐 생각한 뒤에 한마디를 내뱉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박광호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로 외국인들에게 손짓했다.
“자, 함께 가시죠! 웰컴 투 코리아!”
관리소에 도착하자 사무적인 인상을 가진 직원이 내 신분을 확인했다.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신 거죠?”
그러면서 한쪽에 놓인 조그만 장치를 들고 왔다. 태블릿 크기의 납작한 장치는 던전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장을 응용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반인이 거기 손을 댔다가는 어지럼증을 일으키며 구토를 하게 된다.
내가 장치에 손을 올리자 직원은 약 일 분가량 내 표정을 탐색했다. 아무렇지 않게 테스트를 마치자 그가 물었다.
“뒤에 있는 분들은 일행이신가요?”
“네.”
나처럼 던전이 초행길인 박광호도 테스트를 거쳤다. 외국인 게이머들은 자신들의 라이선스를 제시했다. 몇 등급인지는 확인이 안됐지만 직원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들이 있으니 안전은 염려할 필요가 없겠군요. 3층과 4층은 다른 게이머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혹시 몇 층까지 가실 예정인가요?”
“1층까지만 갈 겁니다.”
“네, 안전한 공략 되십시오.”
절차가 끝났다. 내가 테스트를 받는 걸 보았는지 제임스가 너스레를 떨었다.
“소년은 던전이 처음이었군요. 이쪽 아저씨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무시하는 투로 들리기도 했다.
암젤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명령만 내려라옹. 다 죽여 버리겠다옹.”
“네 실력으로는 안 될걸?”
“쳇!”
던전 입구에는 일렁이는 파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일반인이 여길 통과하면 신체가 산산조각 나버리고 만다.
나는 가볍게 숨을 내뱉은 뒤 성큼 던전 안에 발을 디뎠다.
‘으음~!’
던전 안의 공기가 말할 수 없이 짜릿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던전 안의 분위기는 바깥과는 전혀 달랐다.
이 느낌, 이 공기. 나에게는 익숙하다.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숱하게 맡았던 공기이다.
뒤를 이어 들어온 박광호가 대뜸 헛구역질을 했다.
“우~ 웨엑!”
제임스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던전에 처음 들어오면 다들 그런 반응이죠. 나도 꽤 고생했으니까요. 그나저나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네요.”
“소년 아닙니다. 성인이에요.”
나는 외국인들에게 말했다.
“어차피 던전 1층은 양 갈림길이니 여기서 나누어지기로 하죠. 두 분은 저쪽으로 가세요. 우리는 이쪽으로 갈 테니.”
“뭐?”
박광호가 토하다 말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보다 경험이 많을 게 분명한 외국인들을 두고 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잘만 하면 손 안대고 코를 풀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사냥은 그들이 하고 결정석은 이쪽이 죄다 챙기는.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 없어요. 우리 나쁜 사람 아닙니다.”
외국인 여자가 실망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나는 타협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두 분은 관광하러 왔다고 했죠? 그러면 같이 공략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잖아요. 대신 세이브 존은 하나이니 거기서 합류하도록 하죠. 결정석은 우리가 받아야 하니까. 오케이?”
제임스가 어깨를 으쓱 했다.
“어쩔 수 없네요. 당신이 보스니 따를 수밖에.”
박광호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와 암젤이 앞장서 가니 어쩔 수 없이 후다닥 따라왔다.
F급 던전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꾸불꾸불한 암벽이 이어지는 미로와 같은 구조에, 곳곳에 괴수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F급 던전에 최초 입장했습니다.]
[업적 ‘맵 제작자’의 효과로 맵이 제공되었습니다. 맵은 인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해당 던전에서 달성할 수 있는 퀘스트의 개수는 37개입니다.]
‘오오!’
퀘스트까지 재현되다니.
던전에 대해 조사할 때 이런 내용은 없었던 걸로 보아 다른 게이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여러모로 나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러면 몇 년 뒤처진 것도 빨리 따라잡을 수 있겠군.’
나는 인벤토리에서 맵을 꺼냈다. 그것을 보고 박광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뭐야? 지도? 그런 것도 준비했어?”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던전의 미로는 단순하다. 맵이 없더라도 헤맬 일은 없을 듯했다. 대신 내가 가지고 있는 맵에는 괴수들이 있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빨간 점의 크기와 숫자로 놈들의 수준과 숫자도 알 수 있다.
“오케이.”
방향을 기억한 나는 맵을 인벤토리에 돌려놓았다. 창을 꺼내어 손에 쥐고 퀘스트를 확인했다.
퀘스트는 기본적으로 두 종류가 있다.
일반 퀘스트와 히든 퀘스트.
전체 퀘스트의 개수가 37개라는 것은 히든 퀘스트를 제외한 일반 퀘스트의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다.
1. 덴몬 한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20)
2. 덴몬 다섯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50)
3. 덴몬킹 처치하기(경험치 +100)
4. 덴몬킹 세 마리 처치하기(경험치 +300)
…….
메뉴를 활성화하여 퀘스트 정보를 쭉 살핀 나는 던전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