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독식왕 : 클리어러 009화
“미안한 부탁이지만 나도 데려가주면 안 될까?”
“캬아악!”
암젤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이런 지저분한 남자랑 동행할 생각 없다옹. 역시 처치하자옹.”
박광호가 멋쩍게 웃었다.
“하하, 각성수를 보는 건 처음이군. 아주 비싸다고 들었는데. 웬만하면 사람을 따르지 않고 말이야. 무기를 다루는 솜씨도 그렇고…… 자네, 베테랑 맞지? 하긴 게이머의 능력은 나이와는 무관하지.”
나는 다시 한 번 박광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능력도 재차 확인했다.
“경험은 있으신가요?”
박광호는 볼을 긁으며 겸연쩍어했다.
“아직 없네. 그래서 같이 던전에 들어갈 파트너를 구하기가 힘든 거지. 염치없는 부탁인 것은 알지만 자네와 함께 동행하게 해주게. 그러면 내 몫의 결정석 절반을 주지.”
경험이 없는 게이머는 동료를 구하기 힘들다. 때문에 자기 몫을 떼어주면서 무리에 넣어 달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정석의 절반을 주겠다는 말에 나는 마음이 동했다.
사실 나 역시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니까.
위험도는 조금이라도 줄이는 편이 낫다. 더구나…….
박광호의 능력은 신체 강화형이었다. 파티를 짤 때는 각각의 클래스를 감안해야 한다. 나는 스탯을 고르게 분배했기 때문에 방어력이 높다고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기술로 적을 제압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기술을 펼칠 때 몸빵을 대신해 줄 사람이 있으면 훨씬 편하게 공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암젤이 불안한 표정을 띠었다.
“설마 이 거렁뱅이의 부탁을 들어주려는 거냐옹?”
“예의 없이 아저씨한테 거렁뱅이가 뭐야?”
나는 박광호에게 말했다.
“먼저 능력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오~ 쉣!”
암젤이 경악했다.
“물론 그래야지. 어떻게 할까. 나도 자네처럼 고양이랑 싸우면 될까?”
“네, 그러면 되겠네요.”
암젤의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녀의 이런 반응을 보는 것은 익숙했다.
암젤은 나에 대한 독점욕이 강해서 언제나 새로운 파티원이 들어올 때면 이렇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천성이 귀찮은 걸 싫어하는 녀석이라 금방 ‘아무려면 어때’ 하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각오해라옹. 내가 직접 상대해 주겠다옹.”
“야, 너!”
암젤은 흥분 상태라 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눈치였다.
암젤의 기본 능력은 물론 소환술과 환각술이지만 자체의 전투 능력도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명문 묘족 가문 최후의 적통인 것이다.
레벨이 높을 때의 그녀에게는 웬만한 보스급 몬스터도 한주먹감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하지만 여차하면 내가 개입하면 되니까 실상 그렇게 위험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박광호가 긴장한 표정으로 경로당 중앙에 위치했다.
그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손도끼 하나를 꺼냈다.
‘저런 건 불편하게 왜 가지고 다니는 거지?’
게이머들에 대해 알아본 결과 기본적으로 인벤토리 능력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신 ‘이차원의 주머니’ 같은 아이템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러나 하나같이 고가인 탓에 초보 게이머들이 소유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손도끼를 든 추레한 행색의 아저씨가 암젤과 대치했다.
암젤의 눈은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처음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오랜만에 직접 전투를 한다는 흥분이 그녀의 전투력을 고취시켰다.
반면 박광호는 다리를 덜덜 떨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천성이 싸움과는 거리가 먼 성격인 듯했다. 각성은 했지만 직접 능력을 써서 싸우는 것은 처음이리라.
그럼에도 던전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는 것은 아마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캬아악!”
암젤이 내지르는 소리에 박광호의 몸이 굳었다.
암젤이 틈을 놓치지 않고 뛰어올랐다. 그녀가 날카롭게 허공을 할퀴자 마나가 물리력을 갖추어 리치가 늘어났다.
“으악!”
박광호의 가슴팍에 발톱 자국이 났다. 일반인이었다면 아마 당장 피를 쏟아내고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체 강화 능력자였다.
패시브가 발동하면서 피부가 검게 물들었다.
‘호오…….’
옷은 찢어졌지만 피부에는 조금도 생채기가 나지 않았다.
암젤은 분한 얼굴로 다시 기회를 엿보았다.
“캬악!”
싸움은 일방적으로 전개되었다. 마나를 사용했기 때문에 암젤의 덩치가 커 보였다. 연약한 인간을 맹수 한 마리가 유린하고 있는 모양새다.
박광호는 이미 수십 번이나 공격을 허용했지만 심각한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옷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어도 피부에는 긁힌 자국 하나 없다.
어색하게 휘두르는 손도끼는 암젤의 몸에 전혀 닿지 않았다.
“헉, 헉.”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암젤은 짜증이 솟구쳤다.
그녀의 두 눈이 빛났다.
스르륵.
박광호의 눈이 풀리더니 갑자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보,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그는 싸움을 그만두고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 아이들 데리고 다시 들어오겠다고? 나야 언제든 환영이지. 고마워, 여보. 나 믿어주면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볼게.”
그의 눈이 물기로 촉촉해졌다. 급기야 거미줄이 가득한 경로당 벽을 더듬어 댔다.
나는 암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영악한 녀석 같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박광호의 패시브가 사라졌다.
“캬아악!”
암젤이 발톱을 내세우며 그의 등을 덮쳐 갔다.
채앵-!
고양이의 발톱이 박광호를 찌르기 전에 내가 창을 들어 막았다.
“그만!”
암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내 표정이 진지한 것을 보고 꼬리를 말았다.
박광호는 넋두리는 삼십 초가량 계속되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여보? 여보!”
암젤의 환각 능력은 상대의 감성을 건드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상대의 최대 관심사일 경우가 많았다.
나는 박광호의 치부를 멋대로 들여다본 것 같아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망연한 표정의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미안해요. 이 고양이가 환각 능력을 사용한 겁니다.”
“아…….”
박광호는 아쉬운 얼굴로 벽에서 물러났다. 그가 얼마나 가족과의 재결합을 원하는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력에서 드러났듯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을 잃은 이유는 도박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박광호는 눈가를 훔치고 몸을 돌렸다.
“부끄러운 꼴을 보이고 말았군.”
“아닙니다. 그보다 방금 테스트한 거 말인데…….”
“괜찮네. 나도 큰 기대는 안 했으니까. 정 안 되면 혼자라도 들어가야지.”
“왜 그렇게 던전 공략에 집착하시는 겁니까?”
“나한테 남은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야. 회사에서 쫓겨난 분풀이에 술만 계속 마시다가 주변 꼬임에 넘어가 도박을 손을 대게 됐지. 거기 날린 돈만도 수천만 원이야.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간 것도 어쩌면 당연한 거지.
자네도 알겠지만 던전에 들어가면 돈을 벌 수 있잖아. 물론 각성자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잘만 한다면 인생 역전도 가능하지. 그러면 아내도 한 번쯤 나를 다시 생각해 줄 거야.”
“어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 아저씨랑 얘길하다 보면 우울함이 전염되어 기운이 쭉쭉 빠져나간다.
박광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자네에게 부담 줄 생각은 없네. 아무튼 잠시나마 가족들 얼굴을 봐서 기분은 좋군.”
“잘 생각했다옹. 비렁뱅이 주제에 아무데나 들이대는 거 아니다옹.”
“속단하지 마세요. 저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테스트는 합격이에요. 저랑 같이 던전에 들어가시죠.”
“뭐?”
“제정신이냐옹?”
박광호는 레벨이 하나 낮은 암젤을 상대로도 내내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럼에도 몸에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의 신체 강화 능력이 무적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정 수준의 적을 상대로는 큰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입증했다.
“월요일 오전에 들어갈 건데, 괜찮으세요?”
“나야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지. 고맙네, 정말 고마워.”
“시간이 얼마 없으니 남은 시간은 저랑 연습하시죠.”
“아, 그래. 내가 도끼를 사용하는 폼이 형편없지? 큰맘 먹고 각성자용 무기 하나를 샀는데 역시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쓸 수 없을 것 같아.”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의 역할은 공격이 아니에요. 무조건 방어에만 집중하세요. 한마디로 어그로를 끌어 달라는 거죠.”
“억울해? 뭐가 억울한데?”
“오~ 쉣!”
암젤이 앞발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내 설명을 들은 박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적을 도발해서 주의를 끌란 말이지?”
그는 그 말을 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수행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암젤이 그 반응을 보고 재빨리 말했다.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된다옹.”
박광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나한테 돌아갈 길은 없으니까. 여기서 포기한다면 또 같은 인생을 반복할 뿐이지.”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요. 첫 싸움이라 자각하지 못한 거 같은데, 아저씨 신체 강화 능력은 꽤 쓸 만합니다. 바꿔 말하면 다른 능력은 형편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하아…… 그것 참. 미안하네. 능력도 없는데 끼워 달라고 해서.”
“이틀 만에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무리니까 장점을 부각하는 것이 나아요. 너무 겸손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으면 같이 들어가자고 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효율을 중시하는 진성 게이머이다. 탱커가 등장했으니 활용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을 뿐.
더구나 처음 들어가는 던전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보기는 했지만 그것만 믿고 하나뿐인 목숨을 시험할 수는 없다.
나는 박광호에게 방패를 내밀었다.
“이걸 가지세요. 그리고 도끼는 저한테 주세요.”
박광호가 엉거주춤 방패를 받아 들었다.
내 손에는 창과 도끼가 주어졌다. 함께 사용하기 좋은 조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이래 봬도 웨펀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몸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무기 조합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원거리의 적은 창으로 물리치고 가까이 접근한 적은 도끼로 찍는다.
인벤토리를 활용하면 도끼를 늘 손에 들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자, 시간이 얼마 없으니 바로 연습을 시작하죠.”
나는 암젤에게 소환술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몇 시간째 연습을 계속하자 박광호는 슬슬 자기 역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고양이에게 맞아도 자기 몸에는 흠집이 나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자 점점 대담해졌고 자기 대신 현란한 기술로 적을 제압하는 나를 믿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방패를 치며 고양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탕! 탕!
“여기다. 도둑고양이들아! 썩은 생선을 먹었는지 냄새가 풀풀 진동하는구나!”
“캬아악! 죽여 버릴 테다옹!”
문제는 암젤의 어그로까지 함께 끌었다는 것.
덕분에 그녀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고 오래도록 훈련을 계속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