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독식왕 : 클리어러 007화
Chapter 03 - 내가 돈 벌어올게
1
짹짹.
나는 던전 정보를 정리하며 밤을 꼴딱 새웠다. 원래 낮밤이 바뀐 참이라 그다지 힘들 건 없었지만, 모니터에서 여덟 시간 이상 눈을 떼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각성으로 인해 체력이 상승한 덕분이었다.
암젤은 내 침대를 대신 차지하고 잠이 들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자는 동안 인간형으로 바뀌었다.
나는 비키니나 다름없는 그녀의 옷차림을 보면서 역시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임에서는 상점에서 파티원들의 의상도 팔았는데 현실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밤새 얻은 정보를 정리했다.
전 세계 각성자의 수는 이십만 명에 달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어제 본 스테이터스 화면을 떠올렸다.
그곳에 랭킹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내 랭킹은 정확히 205,091위였다. 스탯을 올린 뒤로는 199,853위가 되었다.
무슨 의도로 랭킹을 표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체 각성자 중에 내 실력이 199,853번째라는 것은 분명했다.
굴욕적인 숫자에 조바심이 일기도 하지만, 어쨌든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니까.
한편으로 생각하면 스탯 20만큼의 구간에 오천 명이 넘는 능력자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성장 한계가 저조한 게이머들임에 틀림없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게이머들끼리의 경쟁도 순위가 높아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던전은 F급 던전이었다.
세계 던전 기구에서는 임의적으로 던전의 위험도를 A~F급으로 나누었고, 그중에서 위험도가 가장 적은 것이 바로 F급 던전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나마 인근에 아파트가 남아 있는 것이다. 더 등급이 높은 던전 일대는 깨끗하게 비워진 곳이 많다고 한다.
공식 등급은 F이지만 그렇다고 던전의 모든 층이 똑같이 F급 위험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F급 던전은 보통 5~7층 규모이며 층이 높아질수록 공략 난도가 높아진다.
우리 집 근처의 던전은 최상층의 난도가 D급에 준한다고 알려졌다.
던전 내부에는 층마다 ‘세이브 존’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곳에서 계속 전진할지, 아니면 그만 돌아갈지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한번 세이브 존에 도달한 게이머는 다음 던전 입장 시에 곧바로 해당 세이브 존으로 워프가 가능하다.
말하자면 던전 내부는 유저 편의성이 높은 게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던전의 공략 가능한 층수에 따라 게이머의 수준도 나뉘게 되었다.
게이머는 각자의 능력을 검증받고 라이선스를 발급받는다. 당연히 등급이 높은 게이머들이 높은 등급의 던전에 들어간다.
던전을 공략할 때는 혼자보다 여럿이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생각해도 그 편이 공략 난이도가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이머들은 파티를 맺어 함께 던전을 공략하기도 하고, 이것이 확장되어 길드를 결성하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지금 내가 동료를 기대할 입장은 못 된다. 라이선스도 없을뿐더러 던전 공략 경험도 전무하니까.
나라도 생초보자와는 던전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뭐, 상관없지.’
일단 내 옆에는 암젤이 있다. 그녀 역시 나처럼 성장형 능력자이다. 더구나 십 년간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는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가 있다.
문득 게임에서 만났던 많은 NPC가 생각났다. 그들도 암젤처럼 내 앞에 나타나게 된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진다.
당장의 목표는 F급 던전 1층을 돌파하는 것으로 정했다. 암젤은 던전 1층 가장 안쪽에 상점이 있다고 했다. 예상컨대 상점이 있는 곳은 세이브 존일 확률이 크다.
일단 그곳까지 도달하기만 한다면, 십만 GP라는 적지 않은 포인트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다. 목창과 원형 방패를 졸업하는 것만으로 큰 전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뒤에 더 전진할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올지 결정하면 된다.
오늘은 목요일.
나는 결행일을 월요일로 잡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던전 공략 신청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한 결과 가장 빠른 예약 가능일이 그때였기 때문에.
등록되지 않은 초행자는 해당 일에 던전 입구에서 간단한 게이머 검증 테스트를 거친다.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예약을 한 경우 벌금이 부과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인은 던전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산산조각 나버리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던전에 들어가려는 일반인이 있을 리 없다.
초기에 군인들이 던전에 진입했던 영상은 구글링을 통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도 호기심에 보았지만, 결코 두 번 보고 싶은 영상은 아니었다.
2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마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시간 좀 있어?”
“응, 괜찮아. 왜?”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누나 앞에 앉았다. 내 태도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누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앞에 앉아 물었다.
“왜? 용돈 필요하니?”
“아니,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뭔데?”
“아버지 말이야. 어떻게 돌아가셨어?”
누나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이내 한숨을 쉬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언젠가는 알아야 될 일이지.”
“이해가 안 돼. 아버지 건강하셨잖아. 나이도 많지 않으셨는데.”
아버지 얘길 꺼내자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너 그렇게 되고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으셨어. 병원에 데려갔는데도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네가 게임을 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것뿐이었지.
처음엔 게임 회사 사람들을 만나 원인을 찾으려고 하셨어. 그런데 상대가 제대로 대응을 안 해주니까 결국엔 소송까지 하게 됐지.
상대는 글로벌 기업이고, 더구나 당시에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었잖아. 그런 상황에 안 좋은 말이 나올까 봐 무조건 발뺌을 했지. 같은 게임기에 접속하고 잘못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였어.
그래도 아버지는 진상을 밝히려고 고군분투하셨지. 신문사 인터뷰를 하고 방송에도 출현하시고.
게임 회사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급기야 자본력을 동원해 아버지 사업을 압박하기 시작했어. 그것도 드러나지 않게 교묘한 방법으로.
일이 그렇게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어머니나 나는 전혀 몰랐어. 아버지가 전혀 내색을 안 하셨으니까.
그런 상황이 몇 년간 누적되면서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셨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이미 늦었다는 말을 하더라.”
“아버지 돌아가시고 집안 사정이 이렇게 어려워진 거야?”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데에는 내 병원비 탓이 클 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내색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누나가 손을 잡았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 게임 회사도 양심에 걸렸는지 네 병원비 명목으로 보상금을 지급해 줬어. 물론 실추된 이미지를 복구시키려는 차원이었겠지만 어쨌든 그걸로 당장은 버틸 수가 있었지. 하지만 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살림이 점점 어려워졌어. 내가 병원에 취업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혼자 일하면서 버텼지만, 빚이 점점 불어나서 결국 이사까지 하게 된 거야.”
“우리 집에 빚이 있어?”
누나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자기가 너무 많은 얘기를 했다고 자책하는 느낌이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랑 내가 열심히 갚아가는 중이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누나의 표정에서 그 빚이 결코 금방 갚을 수 있을 만큼 작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누나의 손을 꽉 잡았다.
“걱정하지 마. 이제부터 내가 돈 벌어올게.”
“뭐? 네가 어떻게 돈을 벌어?”
객관적으로 말해 나는 십 년이나 병실에 누워 있다가 깨어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교육을 받고 미래를 설계할 중요한 시기였다.
몸뚱이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아르바이트하면 되잖아.”
“아르바이트? 안 그래도 내가 엄마한테 말을 해봤는데 엄마는 네가 몸만 어른이지 속은 어린애나 다름없다고 안 된다고 하시더라. 나도 솔직히 걱정돼. 너한테 부담주고 싶지도 않고.”
“걱정 마. 나 어린애 아니니까.”
누나는 나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누나의 얼굴에서 그늘이 완전히 지워진 것을 보았으니까.
“그래, 누나는 걱정 안 해. 그래도 당분간은 집에 있어. 엄마가 걱정을 덜 하시게 되고 네 건강도 더 좋아지면 그때 다시 얘기해 보자.”
누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어머, 나 늦었다.”
나는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는 누나를 내버려 두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던전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누나가 걱정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를 듣고 나니 마음속에 불덩이 하나가 생긴 기분이었다.
물론 게임기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다. 십 년이나 게임 속에 있었던 것은 이계의 누군가가 나를 각성시키려고 그랬던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 때문에 상심한 아버지를 죽을 상황까지 내몰다니.
게이머로 성공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후우…….”
나는 가슴 가득 차오르는 열기를 꾹 눌렀다.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지만 이미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버지 대신 남은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암젤, 가자!”
월요일까지 남은 시간은 3일.
그때까지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