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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6화 (6/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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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 클리어러 006화

나는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네 가지 스탯에 골고루 분배했다.

다른 스탯에 비해 ‘행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가상현실 게임에서 행운은 몬스터를 물리쳤을 때 습득하는 GP나 아이템의 드랍율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게임의 무대가 달려졌어도 비슷한 방식의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근력 14, 체력 14, 민첩 14, 행운 15.

레벨이 1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괜찮은 스탯을 가지고 시작하는 셈이다.

암젤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지 나한테도 알려 달라옹.”

나는 암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정보창을 볼 수 있었다.

이름 : 암젤

성향 : 주인의 성향에 따름

스킬 :

소환-고양이과 괴수 한 마리를 소환할 수 있다.(지속 시간 3분)

환각-상대를 환각에 빠뜨린다.(지속 시간 10초)

이력 : 유래 깊은 묘족 폴크로어 가문의 적통. 바라트룸의 수하 시가레타가 가문을 멸족시킨 뒤 유일하게 생존했다. 여행 중인 조성오의 눈에 띄어 계약을 맺게 되었으며, 주인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너도 능력이 초기화됐구나.”

“그렇다옹. 안타까운 일이다옹.”

파티를 맺은 NPC의 레벨은 따로 표기되지 않는다. 성장속도가 저절로 나와 맞춰지기 때문에 내 레벨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NPC들도 성장을 하게 된다.

나는 방금 확인한 내용을 암젤에게 들려주었다.

암젤은 꼬리를 흔들며 기뻐했다.

“역시 주인님은 설명을 안 해줘도 알아서 척척 잘하는구나옹.”

나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상의를 걷어보자 비교적 선명한 복근이 보였다. 근육이 생성되어서인지 다시 살짝 마른 체형이 되었다.

발달된 근력을 시험하기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철봉으로 갔다. 놀이터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기구이기도 하다.

훌쩍 뛰어서 봉을 잡고 턱걸이를 열 개쯤 했다. 안 쓰던 근육이라 약간 삐걱거렸지만 무리 없이 해냈다. 계속하면 스무 개는 너끈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턱걸이를 마친 나는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상점은 어디에 있지?”

게임 내에서는 맵 곳곳에 상점이 있었다. 유랑하는 상인도 적지 않아서 그들에게 아이템과 장비를 구입하면 되었다.

하지만 현실에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질문을 받은 암젤이 잠깐 머뭇거렸다. 그녀의 이마에 있는 별이 반짝 빛나더니 대답을 내놓았다.

“던전에 있다옹. 1층 가장 안쪽이다옹.”

“그래? 곤란한데…….”

나는 암젤의 대답에 실망했다. 아무리 초기 자금이 넉넉해도 사용하지 못하면 헛것이다. 지금 스탯으로 던전 1층을 통과할 수 있을까?

못할 것도 없지만 내가 지금 하려는 게임은 가상현실과는 다르다.

생명력이 다했다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없고 부상을 당하면 생생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숱한 게임을 클리어했지만 당연히 이런 게임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인벤토리에 아무것도 없냐옹?”

암젤의 한마디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인벤토리를 깜박하고 있었네.

물론 맨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는 인벤토리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초기 자금과 초기 스탯 포인트까지 주어진 지금은 기대해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뻗어 허공의 한 점을 터치했다.

정육면체로 구획된 공간이 쫙 펼쳐졌다.

세로 4에 가로 8의 공간.

맨 처음 두 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목창이었다. 그다음 한 칸을 차지한 것은 원형 방패.

그리고 파란색 액체가 담긴 병이 하나 있었다.

“진짜 있네?”

나는 신기한 기분으로 손을 뻗어 목창과 방패를 꺼냈다.

기본적으로 가상현실 게임을 할 때와 같은 감각이다. 인벤토리에는 크기가 작게 표현되지만 손에 쥐니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목창과 방패.

그야말로 저렙에게나 어울리는 허접한 장비이다. 파란색 액체는 보나마나 하급 포션이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창과 방패까지 갖추었으니 던전 1층쯤은 도전해 봐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구를 장착한 나를 보고 암젤이 팔짝팔짝 뛰었다.

“어떠냐옹? 몸 좀 풀어볼 테냐옹?”

“몸을 풀어? 어떻게?”

암젤은 씨익 웃더니 눈을 빛냈다. 그녀의 몸 전체가 은은한 핑크색으로 물들었다.

한 줄기 빛이 번쩍 떨어지더니 눈앞에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크기는 암젤의 절반 정도이고 털은 온통 검은색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노려보는 것이 제법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암젤의 소환술이었다.

한창때는 검치호를 수십 마리씩 소환하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고작 새끼 고양이 한 마리밖에 소환하지 못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3분이 지나면 없어져 버린다옹. 싸울 거면 빨리 싸워라옹.”

“오케이.”

크기는 작지만 지금 내 레벨을 감안한다면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무도 없다.

게임과 현실은 감각의 차이가 크다. 적응하는 셈치고 싸운다면 괜찮은 연습이 될 터였다.

“캬아악!”

조그만 고양이가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바들바들 몸을 떠는 것을 보니 놈도 나를 상당히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방패를 전면에 세우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캬악!”

고양이가 훌쩍 뛰어올랐다. 작은 몸에 비해 도약력은 가공할 만한 것이라서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밤이라서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 조그만 덩어리가 훅 떨어지더니 오른쪽 뺨에서 불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으악!”

불식간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현실에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만만하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볼이 후끈거리며 부어올랐다.

독이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평범한 고양이가 할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새끼 고양이는 ‘별것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몸을 떨던 것도 멈추었다.

‘조그만 게 사람 간보네.’

여유를 찾은 고양이가 좌우로 휘적휘적 움직이더니 한 번 더 훌쩍 뛰어올랐다.

나는 양손에서 창과 방패를 놓아버렸다. 조그만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이렇게 큰 장비는 거치적거릴 뿐이다.

날카롭게 발톱을 세우며 떨어져 내리는 고양이의 목을 확 낚아챘다.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친 뒤 발로 밟아버렸다.

“캬악!”

펑!

보라색 연기와 함께 소환수가 사라졌다.

“잘했다옹!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구나옹!”

사실 이런 조그만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실력이 어쩌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처음에 공격을 허용한 것은 게임과 현실의 갭을 인지하지 못해 잠깐 틈을 내주었던 것뿐이다.

나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록 레벨은 낮아도 십 년간 게임을 하며 연마된 기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스탯과 마나가 받쳐 줘야 기술도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전투를 하는 데 큰 메리트가 될 것은 분명했다.

“오케이.”

암젤에게 한 마리 더 소환해 보라고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어둠 속을 향해 눈을 빛냈다.

“캬아악!”

나는 암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하나가 움직이더니 후다닥 달아났다.

덩치로 보아 성인 남자 같았다.

암젤이 잽싸게 그림자를 쫓아가려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그만둬.”

“왜 그러냐옹. 적일지도 모르는데 따라가 봐야 한다옹.”

“적은 무슨. 여기가 던전도 아닌데.”

내 말에 암젤이 ‘아……’ 하고 납득했다.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들어가자.”

2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한 뒤 내방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볼에 난 상처는 암젤이 혀로 핥자 금방 사라졌다.

그녀의 침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힘이 있다. 이 능력도 다른 스킬과 마찬가지로 레벨이 오를수록 효력이 강해진다.

한 번은 회복 아이템도 없이 보스급 몬스터에 도전했다가 만신창이가 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암젤이 온몸을 샅샅이 핥아주었다.

인간형으로 변신한 채로.

나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머리를 흔들었다. 생각해 보면 게임 안에서 부끄러운 일을 참 많이 했다.

19금 게임도 아닌데 말이지.

나는 망상을 접고 눈앞의 모니터에 집중했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일단 정보를 모아야 한다. 처음 던전이 출현한 뒤 7년이 흘렀기 때문에 인터넷에도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을 것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던전’이라고 검색하자 수만 개의 정보가 쏟아졌다.

스크롤을 내리며 내용을 훑고 있는데 문득 안방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15평 아파트는 방이 두 개뿐이라서 내가 방 하나를 쓰고, 안방은 어머니와 누나가 함께 사용했다.

문을 닫고 나누는 대화였지만 레벨이 오른 뒤 감각도 함께 발달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약간 언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아 다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언제까지 성오를 집에서 놀리기만 하실 거예요. 사회 적응을 시키려면 아르바이트라도 하게 해야 되잖아요.”

“아르바이트는 무슨 아르바이트? 쟤는 겉만 어른이지 안은 아직 열 살짜리 애야. 너는 애한테 일을 시키라는 거니?”

“내가 볼 때 성오는 충분히 어른이에요. 그때도 그랬잖아요. 게임을 너무 좋아했다 뿐이지, 머리도 좋고 어른스러운 아이였어요.”

“너는 십 년 만에 깨어난 동생이 불쌍하지도 않니? 내가 그동안 성오한테 엄마 노릇 못 해준 것만 생각하면…….”

대화가 끊어졌다.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누나가 엄마를 달래기 시작했다.

나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어머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지난 세월 못해준 엄마 노릇을 한꺼번에 해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나도 십 년간 엄마가 그리웠기 때문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안 계신다.

어머니와 누나가 고생하는 걸 보면 내가 언제까지 집에서 빈둥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십 년을 게임 속에서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멈추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치열한 십 년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이제는 그 보상을 받을 때였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그 상태로 던전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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