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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5화 (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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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05화

    “성오야?”

    나는 등 뒤에서 들린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돌아보니 누나가 서 있었다.

    암젤과 접촉하고 능력을 각성하는 사이, 문을 열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여성과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아무 말도 못하고 경직되어 있을 때,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옹.”

    “어머? 웬 고양이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암젤이 눈치 빠르게 고양이로 다시 변신한 것이다.

    티셔츠가 허공에서 펄럭이며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얼른 낚아챘다.

    “어, 그러니까…… 오늘 아파트 근처를 산책하고 들어오는데 이 고양이가 내 뒤를 졸졸 따라와서…….”

    암젤이 찌릿 하고 바라보았지만 당장은 궁색하게나마 변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길고양이를 그냥 데리고 들어오면 어떡하니? 병균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누나의 말에 암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십 년이나 같이 지낸 나는 암젤의 심경 변화를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누나는 무릎을 접고 앉더니 신기한 눈으로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어머, 이거 진짜 길고양이 맞아? 다른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길을 잃은 건가? 와, 털 고운 것 좀 봐.”

    누나도 일단 여자인지라 귀여운 고양이를 보더니 금세 마음이 빼앗겼다. 손을 뻗으려고 했을 때 암젤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누가 고양이 아니랄까 봐 도도하네.”

    “하하, 그러게.”

    ‘저거, 저거. 성질머리 하고는.’

    나는 방문 틈에 얼굴만 살짝 내밀고 이쪽을 보고 있는 암젤을 바라보았다.

    “성오야, 예쁜 고양이이기는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우리 집이 애완동물 키울 형편은 아니잖아.”

    조심스럽게 말을 하지만 나는 누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지난 한 달간 겪어본 결과 우리 집은 정말 많이 가난했다.

    현실로 돌아온 것 자체가 기뻐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열 살 때 우리 집 형편과 비교하면 정말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나는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였다. 누나 나이는 이제 겨우 이십 대 중반이다. 한창 외모를 가꾸고 친구들 만나는 데 관심이 많을 나이이건만, 나는 지난 한 달간 누나가 사적인 이유로 외출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불평 없이 이런 생활을 감내하는 걸 보면 누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새침한 여자애였던 모습을 떠올리면 마치 딴사람인 것 마냥 변했다.

    “성오야, 누나가 할 말이 있는데…….”

    “응? 뭔데?”

    “그게 저…….”

    그때 현관문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났다. 우리 집은 세 식구뿐이니 이제 올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현관문 안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벌떡 일어나 어머니 손에서 장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다녀오셨어요.”

    “우리 성오, 오늘 하루도 잘 지냈어?”

    “나야 뭐, 잠만 쿨쿨 잤지.”

    “그래? 잘했어. 호호호.”

    어머니가 내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아마 어머니 눈에는 아직 내가 열 살짜리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도 어머니가 그렇게 대하는 게 싫지 않았다. 딱 기억 속의 엄마 모습과 같았기 때문에.

    물론 흰머리가 보일 정도로 많이 늙으셨고 매일 피곤에 절은 모습이기는 하지만.

    나는 장바구니를 싱크대 아래 갖다놓으며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할 말이 뭔데?”

    “응? 아니야, 다음에 얘기하자.”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는 중에도 내 정신은 딴 곳에 가 있었다. 능력을 얻은 것은 분명한데 아직 이렇다 할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빨리 암젤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잘 먹었습니다.”

    내가 평소와 달리 딱 한 그릇만 먹고 일어나자 어머니가 놀라셨다.

    “왜 그만 먹어? 입맛이 없니? 햄이라도 부쳐 줄까?”

    “아니요. 나 요즘 살 쪘잖아. 더 먹으면 돼지 돼요.”

    아닌 게 아니라 집에서 빈둥거리는 동안 15킬로그램이 더 쪘다. 키가 있으니 이 정도면 살이 쪘다고 볼 수 없지만, 운동을 안 해서 배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저 산책 좀 하고 올게요.”

    “멀리 가지 말고 금방 와야 돼.”

    “네~”

    나는 현관으로 나가면서 여전히 문틈으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암젤을 불러냈다.

    “컴 온.”

    암젤이 재빨리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우리는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오래된 아파트이니만큼 놀이터도 많이 낡았다. 미끄럼틀은 중간에서 구멍이 나 있고 그네는 줄이 한쪽 끊어져 있었다. 밤에 보니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럼에도 경비원이나 주민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놀이터 보수에 신경을 쓸 만큼 삶에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벤치에 앉았다.

    암젤이 자연스럽게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안 내려가?”

    “뭐 어떠냐옹. 오랜만에 봤는데 이 정도는 하게 해달라옹.”

    “너 아까 꼭 옷을 벗어야 했어? 누나가 봤으면 어쩔뻔 했어?”

    “피부끼리 닿아야 더 각성이 잘된다옹. 상식인데 그것도 모르냐옹?”

    거짓말일게 분명하지만 나는 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놈의 고양이는 낯짝이 두꺼워서 길게 상대하지 않는 게 이득이다.

    “그런데 나 각성한 거 맞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각성한 거 맞다옹. 게임할 때를 떠올려 보라옹. 원래 처음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거다옹.”

    “그건 그렇지.”

    게임이라는 말에 나는 퍼뜩 깨닫는 바가 있었다.

    정체불명의 이계인이 게임 시스템을 활용해 날 각성시켰다면 능력도 그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속는 셈치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커넥트 온.”

    가상현실 게임을 시작할 때 했던 시동어이다. 게임 최초 구동 시에 이 말을 했었다.

    그러니까 십 년 전에 딱 한 번.

    키잉-

    익숙한 소음이 귓가에 울렸다. 장비를 착용하지도 않았는데 기계음이 난다는 게 이상했다.

    십 년 전 같은 소릴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설렜었는지.

    지금도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이머 조성오, 접속을 환영합니다.]

    ‘된다!’

    나는 흥분한 나머지 암젤의 꼬리를 꽉 잡았다. 깜짝 놀란 암젤이 후다닥 무릎에서 내려갔다.

    “왜 그러냐옹! 뭐가 보이냐옹?”

    눈앞에 나타난 파란 메시지는 곧 다른 문장으로 바뀌었다.

    [조성오는 103회 차 클리어 유저입니다. 보상을 정산합니다.]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로딩이 필요한 순간에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나오는 음악이었다.

    열 곡 정도가 랜덤으로 나오지만 이제는 너무 들어서 지겨운 음악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산이 끝났습니다.]

    [게임의 무대가 달라졌으므로 레벨이 초기화됩니다.]

    “젠장!”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암젤은 발치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올려다보았다.

    [GP 100,000을 획득했습니다.]

    [평균 클리어 타임을 50퍼센트 이상 단축했습니다. 업적 ‘초고속 클리어’를 달성했습니다.]

    [모든 클래스와 스킬의 숙련도가 얻는 즉시 최고도가 됩니다.]

    [게임을 100회 이상 클리어했습니다. 업적 ‘라가망의 전설’을 달성했습니다.]

    [레벨 및 스탯의 성장 속도가 영구적으로 50퍼센트 증가합니다.]

    [게임상의 모든 지역을 한 번 이상 다녀갔습니다. 업적 ‘맵 제작자’를 달성했습니다.]

    [모든 던전 입장 시 지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랜덤 스킬 하나를 승계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투시자의 눈’을 얻었습니다.]

    301이나 됐던 레벨을 날려먹고 초기화된 모양이지만 보상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10만 GP라면 초기 자금으로 괜찮은 편이다.

    업적을 세 가지나 달성한 것도 굉장한 메리트였다.

    모든 클래스와 스킬의 숙련도가 얻는 즉시 만렙이 된다니.

    거기다 성장 속도 50퍼센트 버프와 모든 던전의 맵까지!

    엄청난 치트키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실로 돌아오기 전에 나는 스킬을 이백 개 넘게 가지고 있었다.

    그 수많은 스킬 중에 하나만 승계된 모양인데, 그런 것 치고는 쓸 만한 것을 주었다.

    투시자의 눈.

    나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NPC나 몬스터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스탯과 스킬, 간단한 이력까지 보이기 때문에 굉장히 유용한 패시브였다.

    “음.”

    각성을 해도 아무 느낌이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레벨이 초기화됐기 때문에 근력이나 체력이 증가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구체적으로 확인을 하기 위해 스테이터스 창을 띄웠다.

    “스테이터스!”

    촤라락-

    눈앞에 내 현재 상태가 수치화되어 나타났다.

    이름 : 조성오

    레벨 : 1

    성향 :

    오더(Order) - / 카오스(Chaos) - = 뉴트럴(Neutral)

    업적 :

    초고속 클리어(모든 클래스와 스킬의 숙련도 Max)

    라가망의 전설(성장 속도 +50%)

    맵 제작자(모든 던전 입장 시 맵 입수 가능)

    랭킹 : 205,091위

    스탯 : 근력 9/체력 8/민첩 8/행운 12

    스킬 :

    액티브-

    패시브-투시자의 눈(A, Lv50)

    잔여 포인트 :

    GP 100,000

    스탯 포인트 20

    “하아…….”

    예상은 했지만 보고 나니 한숨부터 나온다. 근력이 9에 체력과 민첩이 8이라니.

    의심할 여지없이 십 년을 침대에서만 보낸 여파다.

    ‘놀지 말고 운동이나 좀 할걸.’

    “응?”

    나는 스테이터스창 가장 하단에 잔여 포인트에 이르러 시선을 멈추었다.

    십만 GP가 보상으로 들어온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래 스탯 포인트 20이 주어진 것은 의외였다.

    “양심이 아주 없지는 않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스탯 포인트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 상태로 처참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 스탯란으로 손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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