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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3화 (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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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03화

    3

    아무래도 십 년이나 병원에 누워 있던 몸이다 보니 깨어났다고 해서 바로 퇴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정밀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일주일쯤 더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의사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내가 혼수상태가 된 사실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고 했다.

    명확한 이유가 없이 가상현실 게임기에 접속한 것만으로 의식을 잃었으니, 매스컴뿐 아니라 의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심의 정도가 차차 줄어들었고, 급기야 지금은 십 년 만에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여전히 의식을 잃었던 의학적 소견은 불명이라고 했다.

    “어쨌든 이렇게 깨어나게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성오 군을 거쳐 간 간호사만 해도 열 명이 넘어요. 제 담당 환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게 돼서 정말 뿌듯합니다.”

    의사는 가장 급한 것이 신체 기능을 원상태로 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십 년이나 가사상태였던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건강한 몸이지만 아픈 곳이 없다고 해서 바로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복구 속도가 매우 빨랐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다른 환자들이 어떤지 알 수가 없으므로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의 놀라는 말이나 표정으로 판단을 해야 했지만.

    예정이라면 훨씬 길어졌어야 할 재활 기간이 며칠 만에 마무리되었다.

    나는 누나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바깥 공기를 마시며 또 한 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싶었다.

    게임에 접속한 이후 나는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

    남들 학교 가서 공부하고, 운동하고, 연애할 동안 나는 레벨을 쌓고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돌아와 보니 병실에 누운 채로 십 년이 지나 있었다. 단순히 말해 남들보다 인생이 십 년 뒤처진 것이다.

    원래 게임을 한 번 클리어하면 아쉬움 없이 돌아서는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내가 그동안 쌓은 301의 레벨과 아이템, 무구가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 레벨도 301, 깨어난 병실 호수도 301. 거 참 우연치고는 절묘하네.”

    내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누나가 물었다.

    “응? 뭐라고 했니?”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누나는 애처로운 눈빛을 띠더니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고생 많았지. 우리 성오, 얼마나 괴로웠을까.”

    2025년에는 누나도 중학생이었다. 나랑 나이 차이가 다섯 살이나 나서 함부로 대들 수 없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누나가 당시 기준으로 이모뻘이 되어 나타나다니.

    만약 길에서 마주쳤다면 가족인데도 몰라보고 지나칠 뻔했다.

    누나는 휠체어를 밀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추억에 잠겼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네가 그렇게 된 거 아무도 몰랐어. 게임을 워낙 좋아하니까 정신없이 몰두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지. 너도 알다시피 그날 밤은 네가 게임하는 것에 관대한 분위기였잖아.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서 네가 아직도 게임 중인 걸 알고 혼내려고 장비를 벗기셨대.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질 않는 거야.

    급하게 병원으로 데리고 갔지. 어떻게 알았겠어. 네가 십 년이나 깨어나지 못하게 될 줄…….”

    가족들 입장에서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의도치 않은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누나는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이라도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우리 세 가족 앞으로 행복하게 살자.”

    병원에서 받은 검사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한창 성장할 시기에 병원에서 누워 지낸 것 치고는 발육도 좋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키는 180센티미터까지 자랐고, 깨어났을 때 60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가 일주일 만에 8킬로그램 이상 불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차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집 이사했어?”

    “응.”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과거 우리 집은 꽤 커다란 단독주택이었는데 아버지가 고생 끝에 마련한 집이라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을 꼭 잡고 반대편 차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보았다.

    동년배 아주머니들에 비해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밝은 분이었는데, 그간 무슨 일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변하셨을까.

    도착한 집은 세 식구나 살기엔 좁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15평 아파트였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전에 살던 집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가 느껴졌다.

    나는 십 년이나 꿈을 꾸고 깨어났음에도 아직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는 바로 밥을 차려주셨다. 오랜만에 거실에 앉아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늘 그리워했던 냄새가 좁은 거실에 가득 퍼지자 우울했던 기분이 말끔히 사라졌다.

    닭볶음탕에 불고기, 상 한쪽에는 갈비까지 놓였다.

    “우와!”

    게임 안에서는 음식을 섭취할 필요가 없었다. 섭취형 아이템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들에서는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그리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현실의 음식이다. 그것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나는 걸신들린 듯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었다. 어머니는 숟가락도 들지 않고 맞은편에 앉아 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쉴 새 없이 고기며 반찬을 내 밥그릇 위에 올려주셨다.

    “엄마! 맛있어요! 밥 더 주세요!”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내 기분도 좋았다.

    4

    퇴원을 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냈다. 어머니와 누나는 주말도 없이 거의 매일같이 출근을 했다.

    어머니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셨고, 누나는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때때로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다. 밥을 먹는 일도, 잠을 자는 일도 내게는 모두 즐거움이었다.

    어머니는 어릴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게임기와 게임들을 그대로 간직해 두셨다.

    하지만 나는 거기 손댈 마음이 없었다. 게임은 질리도록 했다. 게다가 게임기 때문에 다른 세상으로 끌려간 일을 생각하면 겁부터 났다.

    이번에도 기절해서 십 년 동안 못 돌아오면 어떡하나.

    어느 날 TV를 보던 나는 세상이 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영화나 드라마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던전이라니. 게다가 그것을 공략하는 능력자들이라니.

    능력자들은 ‘게이머’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영웅이니 구세주니 하는 명칭이었지만, 어느 날 미국의 유명한 능력자인 ‘제임스 카니’가 토크쇼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던전에서 괴물들을 물리치는 것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게이머인 셈이죠.”

    그 뒤로 구세주라는 명칭 대신 게이머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나는 또래들과 전혀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쳤다. 적어도 현실 인식의 부분에서는 열 살짜리와 다르지 않았다.

    던전이라는데, 게다가 그것을 공략하는 능력자들이 있다는데, 열 살짜리 남자애가 빠져들지 않고 배기겠는가.

    각성자들은 어느 날 벼락같이 의식을 잃고 적게는 하루, 많게는 한 달 뒤에 깨어나 불가사의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십 년 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는데 이게 뭐냐.’

    의식을 잃은 기간에 비례해 능력은 강해진다. 이것이 정론인 모양인데 그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40일이 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각성을 위해 혼수상태에 빠진 것과는 다른 케이스인 것이다.

    던전은 나라마다 적게는 십여 개, 많으면 수백 개까지 생겨났다.

    신기하게도 각 나라에 생성된 던전의 개수와 크기에 비례하여 각성하는 능력자들의 숫자도 정해졌다.

    이것은 묘한 균형 상태를 이루어 게이머가 하나의 직종으로 자리 잡기에 이른다.

    초기 각성자들은 던전 공략에 서툴러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던전을 들쑤시고 공략에 실패하면 괴물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공략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 기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로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이는 악몽과도 같은 일이라 던전이 처음 생성된 시점에는 종말이 도래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고 한다.

    더구나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것은 소위 게이머들밖에 없었다.

    일반인, 말하자면 군인들조차 입장이 불가능했다. 정확히 말하면 입장은 가능하지만 들어가는 순간 말 그대로 신체가 산산이 해체되어 버린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던전이 생겨난 게 인류에게 불행한 일만은 아니었다. 게이머들은 던전에서 괴물들을 사냥하고 결정석이라는 것을 가지고 나왔다.

    이것이 원자력보다 나은 새로운 에너지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던전 공략은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남다른 능력으로 주목받던 게이머들은 돈을 많이 벌고 선망까지 얻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막연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없을까?’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게이머였다. e스포츠 선수가 아닌 실제로 괴물들과 싸우고 결정석을 얻는 진짜 ‘게이머’.

    “부럽다!”

    나는 아울러 우리 아파트가 던전 근처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집값이 싸고 가난한 사람들이 몰리게 된 것이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기에 이런 곳에 이사 왔는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나는 매일 베란다에서 던전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땅에서 불쑥 솟은 거대한 산과 같은 모양.

    검은 산은 아래에 조그만 입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곳으로 장비를 착용한 게이머들이 들락거렸다. 무기를 가진 자도 있고 특이한 형태로 신체가 변형된 자도 있었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어렸을 때 게임을 하며 품었던 비정상적인 열정이 되살아났다.

    “하아…….”

    거의 매일 밤 게이머가 되어 던전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커다란 실망감과 함께 눈을 떠야 했다.

    그날도 똑같았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처지이다 보니 낮밤이 바뀐 나는 늦은 오후에야 눈을 떴다.

    트레이닝복 바지 안에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북북 긁으며 방을 나오다가 거실에 못 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야옹.”

    “시발! 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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