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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화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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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02화

    Chapter 01 - 귀환

    1

    “으하하하! 네가 그동안 나를 쫓겠다고 용을 쓴 것은 가상타만 그것이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악의 제왕 바라트룸이 커다란 배에 손을 얹고 껄껄 웃었다.

    나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생긴 것도 흉한 놈이 잘난 척하고 으스대는 꼴이 썩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NPC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멍청한 걸까?’

    “받아라! 필멸자여!”

    바르트룸이 내민 손바닥에서 강력한 화염이 쏟아졌다. 시꺼먼 불길은 그야말로 지옥불을 연상시켰다.

    거대한 불길이 실내를 휘감았다.

    열기는 벽을 태우고 기둥을 녹였다.

    바르트룸은 의기양양하게 껄껄 웃더니 이번엔 전격을 떨어뜨렸다.

    꽝! 꽈르릉-!

    굵은 전격이 마치 살아 있는 용처럼 방 안을 날뛰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살아남을 수 없을 만큼 살벌한 풍경이었다.

    십여 초의 시간이 지난 뒤, 바르트룸은 뚱뚱한 몸으로 뒷걸음을 쳐 의자에 주저앉았다.

    최고급 스킬 두 가지를 연속으로 시전했더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는 헉헉대며 생각했다.

    ‘필멸자 주제에 내 앞에 당도하다니. 사실은 조금 쫄았지만 별거 없었군. 그나저나 놈이 멸망시킨 제국을 다시 부흥시키려면 십 년, 이십 년 정도로도 부족할 텐데. 쯧, 왕이라고 점잔 뺄 게 아니라 진작 나섰어야 하는 건데.’

    이미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한 바르트룸이 못마땅한 얼굴로 턱을 괼 때였다.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는 바르트룸이 스킬을 날리려는 몸짓을 보였을 때, 놈의 옥좌 뒤편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놈의 주술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내게는 바르트룸의 스킬을 상쇄할 기술이 대여섯 가지쯤 있었지만 그럴 경우 싸움이 최소 두세 합은 더 이어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더구나 X도 아닌 놈들이 잘난 척하는 꼴을 계속 보아야 할 경우에는.

    최종전인 이 싸움도 가장 빨리 끝내는 방법을 택했다. 옥좌의 뒤에서 돌아 나오는 순간 내 애검 ‘백옥보’가 놈의 목 줄기를 그었다.

    “컥! 크헉!”

    바르트룸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여유 있게 백옥보를 다시 검집에 돌려놓았다.

    바르트룸의 목에서 몽글몽글 피가 배어 나왔다. 최종 보스답게 일격에 몸통을 자를 수는 없었다.

    “너, 이…… 놈…… 이까짓 공격으로, 이, 나를…….”

    “죽일 수 있겠냐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죽일 수 있어. 이미 칠십 번 넘게 성공했으니까. 오늘 네가 숨이 끊어지면 내 손에 103번째 죽는 거다.”

    “……??”

    나는 백옥보에 내재된 빛의 기운이 악마의 기운을 몽땅 빨아들이는 광경을 보았다. 바르트룸의 재생력은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백옥보의 능력은 더 뛰어났다.

    10강 전설템을 우습게 알면 안 되지.

    게다가 이렇게 바르트룸을 죽일 때마다 매번 더 진화하고 있었다.

    흉물스러운 괴수의 몸이 쪼그라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주먹만 한 크기가 되어서도 꿈틀거리는 놈을 발로 밟아 끝장냈다.

    찍!

    열기에 휩싸였던 실내가 환해졌다.

    천장에서 구멍이라도 뚫린 듯 환한 빛이 내리비쳤다.

    [최종보스 바르트룸을 물리쳤습니다.]

    [레벨 301이 되었습니다. 스탯 포인트 1을 얻었습니다.]

    [1,250,000,000GP를 획득했습니다.]

    [백옥보가 진화했습니다!]

    …….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나는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레벨이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죽하면 300이 만렙이 아닐까 생각했을까.

    ‘기분은 좋다만…….’

    쉴 새 없이 클리어를 위해 달려왔지만 엔딩 장면에 이르러 다시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이미 한 번 깬 게임을 계속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이미 100회 이상 플레이한 지금 그런 성향도 무색해졌다.

    아마 내가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삶은 저주 그 자체였겠지. 현실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같은 게임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삶이라니.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아버지에게 가상현실 게임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엄마 말도 잘 듣고, 게임은 하루에 한 시간만, 아니, 세 시간만 하면서 살 수도 있다.

    최종 보스를 물리칠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 하얀빛이 덮쳐 왔다.

    1회 차 클리어 때는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10회 차까지만 해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가장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은 100회 차 클리어를 했을 때다.

    ‘젠장!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열 살 소년의 감성이 되살아나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가 이곳에 끌려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현실에서는 몇 살이 되었을까.

    열다섯? 열일곱?

    시간 감각이 없어서 그것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레벨이 301이라는 거. 같은 게임을 백번 넘게 반복하는 동안 이미 모든 공략 루트를 달달 외워 버렸다는 것.

    화악-

    빛이 걷혔다.

    꾸고 싶지 않은 꿈을 억지로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시야 안에 낯선 천장이 들어왔다.

    “어?”

    어색한 느낌에 몸을 더듬었다. 울퉁불퉁했던 근육이 하나도 만져지지 않았다.

    앙상하게 마른 몸이지만 이상하게 위화감이 없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열린 창이 보였다. 키 큰 나무가 녹색 나뭇잎을 드러내고 있고, 그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이 흘러든다.

    모든 감각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도 물론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지만, 이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현실로 돌아온 것 같잖아.”

    문이 열리고 간호사 하나가 차트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어? 어…….”

    검지로 내게로 향한 채 말을 더듬더니 등을 돌려 밖으로 뛰어나갔다.

    “선생님! 301호 환자 깨어났습니다!”

    ‘301호 환자? 나를 말하는 건가?’

    나는 불현듯 이곳이 병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열 살 때 저쪽 세상으로 갔으니 기억은 제한돼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접한 기억과 체험은 현실보다 게임 속 세상의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멍한 얼굴로 병실을 훑다가 문득 테이블 위에 세워진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2035년 5월.

    게임 안에 들어갔을 때가 2025년이었으니 그동안 십 년이 흘렀다는 얘기다.

    그럼 나는 스무 살?

    아무튼…….

    ‘진짜 돌아왔구나!’

    2

    “성오야!”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어머니는 그 세월만큼, 아니, 그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아직 그럴 연세가 아닌데도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졌다.

    “엄마!”

    나는 이불을 박차고 내려가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현기증이 느껴지며 세상이 핑그르 돌았다.

    게임 속 세상에서는 줄곧 건강하게 뛰어다녔지만 현실 육체는 그동안 침대에만 있었다.

    갑작스러운 활동에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어머니는 얼른 나를 끌어안았다.

    “성오야! 괜찮니?”

    “엄마!”

    눈물로 가득 찬 시야 너머로 아리따운 아가씨 한 명이 보였다. 그녀 역시 얼굴이 흠뻑 젖어 있었다.

    “누나?”

    “성오야.”

    처음에 주춤대던 누나도 나와 엄마를 함께 껴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간호사가 눈가를 훔치며 몸을 돌리고 의사 역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참 울다가 엄마와 누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아빠는? 아직 회사에 있어?”

    “그게…….”

    어머니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누나는 머뭇거리더니 궁금해하는 내게 힘겹게 말을 했다.

    “돌아가셨어, 작년에.”

    “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현실로 돌아왔다는 기쁨이 그 한마디로 완벽하게 반전되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게임기를 설치해 주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화 한 번 내지 않고 늘 인자하게 웃으며 자상하게만 대해주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다니.

    현실로 오는 게 일 년만 빨랐더라면 이런 슬픈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흐흑!”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열 살짜리 아이가 우는 것처럼 눈물샘은 쉽게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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