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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1화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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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식왕 : 클리어러 001화

    Chapter 00 - Prologue

    어렸을 때 나는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물론 열 살 무렵의 남자아이들 중에 게임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더 좋아했다.

    게임기를 붙들고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던 나는 하루 수면 시간이 네 시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게임에 빠져 지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부모님이 좋아하셨을 리 없다.

    어머니는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휴대용 게임기를 손에 들고 있을 때면 불같이 화를 내셨고 나를 데리고 아동심리학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던 적도 몇 차례 있을 정도였다.

    어머니를 걱정시키는 것은 미안했지만 그 이상으로 게임은 나를 빠져들게 했다.

    새로운 세상, 그 안에서 펼쳐지는 말초적인 즐거움.

    즐길 게임이 너무도 많았기에 클리어 타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하루에 하나씩 클리어하면 한 달에 서른 개, 일 년에 365개, 100살까지 산다고 계산했을 때 클리어할 수 있는 게임의 개수는…….

    앞으로도 새로운 게임은 계속 나올 테니 마음은 바쁘기 그지없었다.

    열 살이라는 나이에 자각하기는 힘들었지만 나는 게임 중독이 분명했다.

    혹자는 게임 중독이라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창 성장할 나이에 잠잘 시간까지 줄여가며 게임을 했으니,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의 중독이 확실했다.

    차라리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장래라도 밝았겠지.

    나는 가끔씩 생각하곤 했다.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당시에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있었지만 프로게이머가 될 경우 한 가지 게임만 계속 해야 한다.

    세상에 할 게임이 얼마나 많은데 한 가지 게임만 하다니!

    그것은 내 기준에서 봤을 때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리 상담으로도 고쳐지지 않는 나의 중증 게임 애호는 어느 날 큰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꿈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가상현실 게임이 상용화된 것이다.

    버추어 시스템과 같은 허접한 수준이 아닌 진짜배기 가상현실 게임이!

    물론 처음 출시된 당시에 가상현실 기능이 내재된 게임기는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기기와 장비만도 천만 원을 훌쩍 넘었으며 게임 소프트 하나가 백만 원가량 했으니 말은 다한 셈이다.

    하지만 그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게임을 하려는 사람은 많았다. 게임기를 만드는 공장은 24시간 내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일부 게임은 수백 퍼센트를 호가하는 프리미엄이 붙은 채 판매되기도 했다.

    이런 마당에 내 눈이 뒤집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게임기를 사달라고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상대적으로 아버지는 온화한 분이셨기 때문에 어머니보다는 이쪽에 매달리는 것이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집안의 실권은 어머니가 쥐고 계셨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기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이것이 크게 철없는 행동은 아니었던 것이, 당시 우리 집은 꽤 부유한 편이었다.

    아버지가 하는 사업이 승승장구여서 매년 가파르게 매출이 상승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아하는 게임기를 사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딜을 제안했다.

    게임에 빠져 지내느라 성적이 바닥이었던 내가 다음 시험에서 반 등수를 10등 이상 올린다면 게임기를 사주는 게 어떻겠냐고.

    그날 부모님은 크게 다투셨다. 방에 있던 내 귀에도 싸움의 내용이 생생히 들릴 정도였다.

    나는 부모님이 싸우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귀를 곧추세웠다.

    ‘아빠 이겨라!’

    수 시간에 걸친 협상은 양측에 타협점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아버지는 반 등수를 10등 이상 올리라는 다소 온건한 제안을 하셨지만 어머니는 그거로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셨다.

    어머니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의 손에서 게임기를 떼어놓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었으니까.

    열 살짜리가 잠잘 시간도 줄이고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게임에 매달려 있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수 시간에 걸친 부부 싸움에 지친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타협안을 내놓으셨다.

    다음 시험에서 반에서 1등을 할 것.

    그때는 아버지도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 했다가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될지 모른다고 느꼈을 정도니까.

    아버지가 터벅터벅 내 방으로 오셨다.

    인자한 성품을 가진 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끔찍이 사랑하셨다. 결코 자식들에게 애정 표현을 아끼는 보수적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미안한 얼굴로 내 방문을 열었다.

    “성오야.”

    “네, 아빠.”

    아버지는 내가 방 안에서 하고 있는 행동을 보고 크게 놀랐다. 게임만 하던 아들이 교과서를 펼쳐 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방안에 들어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성오야, 아빠가 게임기 꼭 사줄게. 엄마가 화가 많이 났으니 오늘은 힘들겠지만 내일, 아니, 모레 다시 한 번 얘기해 보마.”

    나는 웃음을 지은 채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빠. 엄마도 나를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요. 내가 1등하면 될 일인데 엄마랑 더 싸우지 마요.”

    아버지는 크게 놀랐다. 아들의 의지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이놈이 자라면 큰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곧 그것이 게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짧은 몽상에서 깨어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웃으셨다.

    “1등 못 해도 괜찮아. 10등만 올려. 그러면 엄마가 뭐라든 아빠가 꼭 게임기 사줄게.”

    다음 날부터 나는 공부에 매달렸다.

    게임에 대한 금단증상 때문에 손이 떨리고 환각이 보일 정도였지만 가상현실 게임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하기도 했다.

    아무리 어려운 게임이라도 내 손에 걸리면 이틀 안에는 클리어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몰두하는 게임은 대부분 액션 게임이나 단순한 RPG였지만, 나는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힘든 게임들도 어떻게든 플레이했다.

    게임을 많이 하다 보니 어떤 게임도 시스템이 훤히 보였다는 점도 있지만, 그만큼 내 집념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영문판과 일어판 게임들도 어렵지 않게 클리어했다.

    스토리야 파악할 수 없더라도 게임 본연의 즐거움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집념이 이번엔 공부 쪽으로 옮겨갔다.

    원래 공부라는 것은 완벽하게 하려 할수록 결과를 내기 어려운 법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당일까지 시험 범위를 일독도 하지 못한다. 초반에만 집중력을 발휘하고 금방 흥미를 잃기 때문에.

    하지만 내게는 게임을 하면서 얻은 엄청난 집중력이 있었다. 내용을 자세히 아는 것은 중요치 않다. 목표는 오직 최대한 많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그래서 얼른 다른 게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같은 방식이 공부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잠을 줄이는 것에 적응이 돼 있던 나는 게임 대신 교과서를 붙들고 밤을 새웠다.

    그 결과, 책에 까맣게 손때가 묻을 정도로 교과서를 보았다.

    시험 범위만 집중적으로.

    ‘2회 차, 3회 차 플레이를 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그 방법이 결과적으로 한국식 시험에는 적격이었다.

    시험 당일 나는 모든 과목을 10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풀어버렸다.

    그 10분 안에는 세 번 검토하는 시간까지 포함되었다.

    시험이 끝난 순간부터 나는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대강 잘 치른 것 같긴 했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등을 하지 않으면 게임기를 손에 넣을 수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다음 날, 하교 후 터벅터벅 집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현관까지 뛰어와 나를 끌어안았다.

    “아이구! 우리 성오! 아들이 이렇게 머리가 좋은 줄도 모르고 엄마는 게임한다고 야단만 쳤구나.”

    담임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월말 시험에서 나는 만점을 맞았고 반, 아니,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성적의 수직 상승.

    나 하나 때문에 교무실 전체가 들썩였다고 한다.

    맥이 풀린 나는 신발도 벗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이의 몸으로 한 달여간 큰 부담을 안고 지냈으니 체력이 방전된 것이다.

    열두 시간을 넘게 자고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아빠……?”

    아버지는 퇴근하면서 사 들고 온 게임기를 번쩍 들어 보였다.

    “성오야! 아빠가 게임기 사왔다!”

    “우와!”

    아버지가 게임기를 설치할 동안 나는 초조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처음이었다. 가족 전원의 허락 속에서 게임을 하게 된 것이.

    어머니마저 웃음을 띤 채로 아들 머리에 헤드기어를 씌워주셨다.

    ‘아, 드디어 염원하던 가상현실 게임을…….’

    가슴이 벅찼다.

    그때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게임에 접속하고 10년,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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