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외전 (27) - 목표 (완결)
“안타깝지만 서울한국대는 불가능합니다.”
무거운 공기가 상담실을 가득 채웠다. 50대가 이제 막 되어 가려는 학부모가 숨을 삼켰다. 옆에 앉은 남학생은 그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손가락을 꼬고 있었다.
“넣어볼 수도 없나요?”
“엄마, 나 다른 학교도 괜찮….”
“조용히 좀 있어. 대치동 나와서 스카이도 못 가면 어떡하려고?”
남학생은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우리 아들은 어디를 쓰면 좋을까요?”
“음…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부탁드려요.”
학부모가 손을 모아서 기도하듯이 포즈를 취했다.
“일단 제가 추천하는 학교들은 이렇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모니터에 띄우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여 주었다.
[추천 대학 리스트]
[국인대 학생부종합 사회학과(상향)]
…
[일성대 학생부교과 인문융합자율학부(안정)]
자료를 확인한 학부모의 얼굴에 실핏줄이 새겨졌다.
“…이게 최선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현실적인 지원 전략입니다.”
현재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은 올해 강문고등학교 3학년 5반 학생으로, 내가 맡은 적은 없었다. 다른 교사들에게 들어본 바에 의하면, 지금까지 항상 학교에서 겉돌던 학생이었다.
1학년, 2학년 때도 그다지 나서서 무언가를 하던가 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그래서 올 3학년 때 최선의 입시전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갖은 고민들을 해 왔었다.
그러나 학부모는 내 고민의 결과들을 깡그리 무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사기꾼이구만?”
“하하하.”
서울한국대 못 넣냐고 물어볼 때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우리 아들이 서울한국대를 지원할 수 없다고요?”
“지원을 할 수는 있으나,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아들은 서울한국대에 못 넣는다는 거잖아요! 연천대나 고구려대는요?”
“거기도 당연히….”
“그런 걸 해 주는 게 선생님이잖아요! 당신, 지금까지 입결 좋았다며! 그럼 우리 아들, 못가도 연천대는 갈 수 있게 만들어 줘야….”
“어, 엄마! 그만해 제발…!”
학생이 학부모를 말리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쯧, 혀를 차고는 말했다.
“서울한국대, 넣을 수 있습니다.”
“아까는 안 된다면서요?”
“말 그대로, 넣어 볼 수는 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에는 지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까짓거 넣었다가 떨어지고, 서울대 지원했는데, 떨어졌어! 라는 타이틀만 챙기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없었다.
“저라면 거기 지원할 돈으로 아들에게 치킨이나 한번 사 줄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학부모의 말에는 헛웃음만 튀어나왔지만 말이다.
“당신, 신고할 거야.”
그리고 학부모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상담을 해 줬다는 이유로 이런 협박 아닌 협박을 시작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그에 화답했다.
“하시죠.”
“뭐, 뭐라고?”
“신고하시라고요. 아줌마 같은 사람들, 강문고에서만 몇 명을 봤는지나 아십니까? 1년 중 입시지원 시즌에는 기본적으로 두 달간 스무 명은 넘게 만납니다. 제가 올해 몇 년차 인지는 알고 계신가요?”
학부모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입술은 파들파들 떨려 왔고, 떨리는 입술에서는 끅, 끅 신음을 내뱉었다. 그 옆에서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올해까지 하면 10년이 넘습니다, 10년이.”
거기에 회귀경력까지 합치면 더 많지.
“제가 그동안 아줌마 같은 사람들 안 만나 봤을까 봐 그러세요? 사기? 신고? 마음대로 하시죠. 저는 뭐 아는 변호사 없습니까? 저는 잠자코 당하고만 있어요?”
“우리 애는 서울한국대 갈 수 있어. 아니, 못 가도 연천대는 갈 거라고!!”
“어, 엄마 이제 그만해.”
“이 아줌마가 진짜.”
뭐? 아주머니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나는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교실 문을 열었다.
“가세요.”
“뭐라고?”
“가시라고요. 차 선생님! 이 아줌마 나가십니다!”
내 말에 차석기 선생이 나타나서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말했다.
“상담 때 불필요한 언쟁이 있을 시에는 저희가 이렇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 이어질 상담에 영향을 주거든요.”
“무, 무슨 그런 운영을….”
“이렇게 안 하면 상담이 끝도 없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차 선생도 이제 같이 입시 준비를 한 시간이 길다 보니 제법 잔뼈가 굵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상담 때 이런 일이 발생하면 통제하는 데에도 익숙했다.
그때, 학부모가 차 선생의 손을 뿌리치고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내 말 안 끝났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학부모를 향해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네, 아주 자알 알고 있습니다. 아드님이 진짜 하고 싶은 분야가 디자인인 줄도 모르고 계속 사회학과나 정치외교학과 보내서 로스쿨 입학시키려고 아등바등하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에서 돈 좀 있는 집의 사모님이시죠.”
“디, 디자인?”
역시나. 이 학부모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자기 아들이 어떤 분야를 희망하는지도,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도.
나는 오늘 상담 때 설명하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종이뭉치를 펼쳤다. 내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남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였다.
“다른 활동들보다도 그림그리기와 디자인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동아리활동도 분명 토론동아리인데 이 학생은 만평을 그렸네요. 축제 때도 자발적으로 학교 축제 홍보 포스터를 제작했고, 자습만 하는 청소년인권교육 시간에도 인권교육 영상을 시청하고서는 친구들에게 이를 알리는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학생부 안에는 학생이 어떻게 학교에서 생활을 해 왔는지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자료에 적혀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지원할 학교와 학과를 정하게 된다.
어떤 학생은 억지로 컨셉을 맞춰서 활동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억지로 컨셉을 맞추다가도 본인의 진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 학생은 후자의 경우였다.
“행특(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도 적혀 있죠. 시사문제를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친구들의 캐리커쳐를 그려주면서 축제의 재미를 가미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외교학과? 사회학? 말도 안 되는 소리.”
학부모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마 학생은 엄마, 아빠 말 잘 듣는 성실한 학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림,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많았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른 활동에서 ‘진짜 관심 분야’가 나타난 겁니다. 그런데 서울한국대 사회학과요? 학종으로만 뽑는데 여길 지원한다고요? 비교과에서 평가할 항목이 단. 한. 개. 도. 없는데?”
내가 학생을 분석한 내용들을 폭풍같이 쏟아내자 학부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앉아 있는 남학생은 고개를 축 숙이고만 있었다. 아마 집에 가면 대판 혼날 거라고 불안해하고 있겠지.
“이 정도면 모른 척하고 ‘이야, 넌 서울한국대 갈 수 있어!’ 라고 하는 게 더 어렵지 않습니까?”
나는 손으로 학생부 종이를 팍팍 때리면서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학부모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어디서 입시도 잘 모르는 놈이 헛소리야?”
하… 또 같은 패턴이다.
“내가 당신 어떤 사람인지 모를 거 같아? 언론플레이로만 유명해진 사람인 거 다 알아. 선생이란 인간이 공부는 안 하고 그딴 짓거리만 하는데 입시를 알겠어?”
나는 한숨도 쉬지 않고 옆에서 눈동자에 지진이라도 난 듯 불안해하는 학생을 바라봤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네, 네. 알았으니까 서울한국대 쓰세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보내 버릴 수는 없지.
나는 학부모가 아니라 학생을 보면서 말했다.
“정말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미대 준비를 하거나, 수능에 올인하거나 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입시 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이걸 고려하지 않으면 그 어떤 준비도 불가능한 사항.
“현실적인 여건에 맞춰서 입시 전략을 구상하세요. 입시는 현실입니다.”
모든 학생들이 스카이에 입학할 수는 없다.
모든 학생들이 희망하는 전공에 입학할 수는 없다.
그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을, 이렇게 꼭 알려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현실과 마주하지 않으면, 앞으로 아드님의 인생은 10년, 20년, 30년까지도 불행할 겁니다.”
내 서슬 퍼런 눈빛을 받은 학부모는 입만 뻥긋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도.”
“네, 네!”
“솔직하게 이야기를 드리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한다. 지금 여기, 강문고등학교가 널 지켜 주고 있을 때 부모님과 한판 싸우고 와.”
남학생의 눈동자에서 떨림이 멎어들어 갔다.
“싸우고 나면, 그때 한 번 더 상담하자. 미술 쪽이면 홍 선생님이랑 같이 준비해 볼 수도 있으니까 걱정 말고.”
녀석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서렸다.
“감사합니다…!”
“얼른 가 봐. 차 선생님!”
차 선생이 내 신호를 받아서 학부모와 학생을 밖으로 이끌었다. 나는 의자에 등을 뉘이며 문 밖을 향해 외쳤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 * *
회귀한 후 강문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입결을 만들어 냈다.
강문고에서는 물론이고, 지자체 교육 정책 참여,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 등.
솔직히 회귀하고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회귀하기 전부터 줄기차게 외우고 있던 입시정보들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도 몰랐고.
“크~ 날씨 좋구만.”
그래서 나는, 오래간만에 일주일의 휴가를 받았다.
-강 선생님도 좀 쉬다 오셔야죠 호호호.
이사장의 권유 덕분이었다. 내 휴가 소식을 들은 지석 선배, 박 선생은 추천 여행지를 알려주었다.
-명문아, 내가 베트남에서 먹은 식당 추천해줄게.
-푹 쉬고 싶으시면 하와이나 괌 같은 곳도 좋아요!
박 선생은 정 선생과 여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면서 하와이와 괌의 맛집과 추천 관광 루트를 알려 주었다.
-선배님! 저는 짧게 다녀오실 거면 러시아도 추천드려요!
-저는 동남아 쪽을 추천합니다. 그곳 사원에 깃든 역사들이….
홍 선생과 차 선생으로부터도 추천을 받았다.
오 교감과 윤 선생은 딱히 추천 여행지가 없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최종적으로 나는 하와이에서 1주일을 머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은 하와이 와이키키해변에 누워 있는 참이었다.
“시간 많이 지났네.”
강문고 사학비리 사건이 있었던 때로부터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때 잡혀 들어갔던 이사들 중 조신자와 한무회, 강철면은 얼마 전 감방에서 나오게 되었다.
아무래도 진짜 주된 범인을 잡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 점이 감형에 반영이 된 모양이었다.
‘강철면 교장은 아예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여 줬고.’
그렇기에 검찰에서도 감형을 해 주었었다.
반면, 곽형조와 천우원, 주현서는 아직 감옥에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올 때쯤이면, 이미 그들은 늙을 대로 늙어서 남은 인생도 얼마 남지 않을 터였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
이번 생에서는 잘 살아남았다. 이 정도면, 성공했다. 괜히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선글라스를 낀 채 눈을 감고 해면 위에 누워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여성이 말을 걸었다.
“저, 혹시….”
귀찮다. 그냥 쉬고 싶다. 그래서 딱히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그저 상대가 말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강명문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데 이렇게 알아보나.
내가 너무 유명해진 탓인가.
괜히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또 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쌤?”
쌤?
“헐 진짠가?”
“아냐. 다시 생각해 보자. 어쩌면 닮으신 분일 수도 있잖아.”
“음….”
어째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아! 쌤이다!”
“예진아, 조용!”
그 말에 나는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 너희는 여기 왜 있냐?”
“역시! 쌤 저희 다 같이 놀러 왔어요!!”
강문고 졸업생 녀석들과 경기교대에 합격한 강진장학재단 1기 장학생, 예진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왜, 하필이면, 내가 간다고 분명히 밝힌, 하와이에 왔냐고!!!!”
녀석들과 함께 있는 톡방에서 나는 하와이에서 1주일간 쉬다 올 테니 나를 찾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흐흐흐, 이제야 복수를 하는 거죠.”
“복수?”
태성이가 야실거리면서 정석이를 바라봤다.
“예~전에, 저희 스키장 간다고 해서 따라오셨다면서요?”
“최동석 네 이노옴….”
“아, 하하하… 이 정도면 공소시효도 지나지 않았을까 해서 이야기했….”
동석이는 말끝을 흐리면서 괜히 들고 있는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내 앞에 옹기종기 모인 녀석들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수많은 합격생들을 만들었지만, 이 녀석들처럼 열심히 살아온 녀석들이 있을까.
“여기서도 공부하려고 단체로 왔냐?”
“뭐, 그런 것도 없지는 않지만….”
“그건 우현이 한정! 저희는 놀러 왔어요!”
아무래도 인원이 많으니 팀을 나누어서 여행을 다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 포케에 맥주 한 잔 할 사람?”
““저요!!!””
그날, 우리는 와이키키 해변 근처의 포케 전문 호프집에서 포케에 맥주를 마셨다.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나도 입가에 미소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웅-
그러다 저녁 시간 즈음에 전화벨이 울렸다.
“네, 강명문입니다.”
[명문아! 다음 주에 릴레이 상담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 다음 주에 일정 되냐?]
다급하게 전화를 한 사람은 지석 선배였다.
나는 선배의 전화를 받으면서 씨익 웃었다.
“당연히 됩니다. 올해 첫 상담이 되겠군요.”
[그래. 릴레이상담으로 시작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어쨌든, 모든 입시는 상담에서부터 시작이니까.
전화를 끊은 나를 보며 녀석들이 물었다.
“쌤, 또 바빠지시겠네요.”
“그치.”
앞에 놓인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녀석들을 돌아봤다.
“강문고 입시 일타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냐. 그리고 그렇게 해야.”
회귀하고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강문고 오대천왕, 시간의 마왕은 강문고 최고 입시 일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너희 같은 학생들을 또 지도해 주지.”
입시는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명문대에 입학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때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입시의 가능성을 모조리 지워 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런 일들이 적어도 강문고에서만큼은, 강진장학재단의 학생들에게서만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나의 남은 인생의 목표였다.
“일단 마시자!”
그런 학생들이 점차 쌓여 내 앞에 더 많은 학생들이 모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그날, 아무런 걱정 없이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과거 추억 이야기에 젖어들었다.
참으로, 기분 좋은 휴가다.
-대치동 클래스 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