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외전 (26) - 기대
예진은 허리를 똑바로 세우며 생각했다.
긴장한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려왔다.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때 불현듯 강명문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고민해 볼 수 있을 거다.
얼마 전, 아빠한테 물어봤던 내용.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 거.
머릿속에 선생님과 아빠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정리했던 의견을 생각했다.
예진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짜뉴스의 심각성은, 흔히들 이야기하는 혐오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혐오?”
발표를 듣던 교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예진은 그걸 질문으로 인식하고 곧장 받아냈다.
“네, 혐오입니다. 특히 가짜뉴스에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아파트나 지역 주민 사이에서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경기교대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파트 내에서 수익 차이에 따른 차별 문제가 있었던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 학생도 그 이야기를 꺼내겠구나 싶었다.
“생각 이상으로, 아파트나 지역 주민 사이에서의 차별은 더더욱 심각합니다.”
“…응?”
경기교대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진은 자신이 실제 겪었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설명을 이어 갔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저 아이의 집은 차상위다, 저소득층이다, 이런 이야기가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왕따로 이어지는 건 금방입니다.”
초등학교 때, 자신이 어떤 멸시를 당했었는지.
그대로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한번 찍힌 낙인을 없애고자 최대한 자신의 상황을 숨겨야만 했던 일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겪어왔던 차별 어린 시선과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
“저는 그런 현실을… 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짜뉴스의 종류 중 나쁜 일이나 부정적인 사안을 숨기기 위한 유형.
예진은 그것에 집중했다.
“실제로 제가 동아리 친구들과 이를 주제로 토론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예진은 자신이 서울시 토론 대회를 준비한 과정들을 이야기했고, 토론 대회 현장에서의 이야기도 꺼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사회에서 약자라고 규정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더 높일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짜뉴스에 희생당하는 이들 대부분이 약자들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쏟아낸 후 숨을 삼켰다.
그리고 앞에 앉은 교수와 입학사정관을 바라봤다.
“…이상입니다.”
“네, 좋아요. 수고했어요.”
뒤이어 진행된 추가 질문과 지원자들끼리의 문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도 예진은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학교에서 겪었던 일들, 실제 탐구할 때 생각해 보았던 사항들, 토론이나 독서를 통해 배워왔던 점들.
예진은,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말을 다 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푸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렸다. 예진은 짐을 챙기고 나오면서 경기교대의 도서관 건물 앞에 멈춰섰다.
“다시 봐도 멋있긴 하네.”
“저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예진은 뒤를 돌아봤다.
예진의 순서 바로 전에 발표했던 학생이었다.
“아, 방금 면접 같이 봤던….”
“너 되게 말 잘하더라. 고3 맞지?”
“어, 맞아. 너도 잘하던데?”
“고마워.”
그리고는 할 말이 없어졌는지 그 학생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합격하면 친하게 지내자.”
“어? 으, 응. 고마워.”
“꼭 합격해서 만나!”
합격해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저 친구도 합격해서 같이 다니게 되면,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았다.
‘같이 다닐 수 있다면, 재밌을 거 같아.’
정말로, 예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도서관 건물을 등 뒤로 한 채 예진은 천천히 경기교대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제는 패딩, 코트가 없으면 밖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쌀쌀해진 날씨. 그 시점에서의 강문고는, 여전히 입시 이야기로 뜨거웠다.
“올해도 좋네.”
교무실에 앉아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실적 나쁘지 않아.”
올해 강문고 녀석들 실적도 훌륭했다. 강문고의 명성에 부족하지 않을 실적이었다.
게다가 곧 치를 수능 위주 전형까지 생각하면, 입결은 더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것으로 올해 강문고도 안심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한 명.
그 한 명의 결과가 이제 곧 발표될 시간이었다.
“강 선생님, 뭐 하세요?”
자리에 앉아 볼펜을 똑딱거리는 나를 보며 박 선생이 물었다.
“아, 오늘이 발표일입니다.”
“발표요? 아…!”
박 선생도 내 옆에 앉아서는 불안한 듯 볼펜을 똑딱거렸다.
“두 사람 다 뭐 해?”
“오늘이 발표일이에요, 심 선생님.”
“오늘? 아…!”
이제는 지석 선배까지 옆에서 볼펜을 똑딱거리며 초조하게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세 사람 다 뭐 하는 건가?”
지나가던 오 교감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내가 대답하려는 그때였다.
우웅-
“네, 강명문입니….”
[선생님.]
걸려온 번호는 북부 청소년 센터 사무실 번호였다.
[선생님, 저… 떨어졌어요.]
오늘 발표되는 학교는 두 군데였다.
하나는 면접을 보는 경기교대.
또 하나는 면접이 없는 강원교대였다.
“그래. 고생 많았다. 어디가 떨어졌니?”
“아….”
옆에서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동시에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못 들은 척하면서 예진이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였어?”
[강원교대요….]
“알려 줘서 고맙다. 다른 학교들 기다려 보자.”
전화를 끊은 나는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럼 경기교대는?”
“그건 앞으로 1시간 뒤에 발표입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동시에 볼펜을 똑딱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신 사납네요. 그만하죠.”
그러다 볼펜을 책상 한켠에 던져 두고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입시 관련된 기사를 막 뒤적이는데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우웅-
“네, 강명….”
[흑… 흑흑….]
“예진이니?”
걸려온 번호는 방금 전과 같은 번호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예진이가 방금 전화를 끊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흐느끼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아쉬웠나 보다….”
예진이의 울음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지석 선배가 안타까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흑… 저… 흑흑… 진짜 열심히… 했잖아요….]
“응, 그랬지. 정말 잘 해왔어.”
[다, 다… 선생님들이랑… 선배님들이 도와주신… 으흑!]
예진이는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음소리를 더욱 키워갔다.
강원교대에 떨어진게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하긴, 학교 레벨로만 따지면 경기교대가 아니라 강원교대가 더 낮았으니, 합격가능성이 높다면 높을 수도 있는 학교였으니까.
예진이가 기대를 할 수도 있는 부분도 충분히 있었다.
“괜찮아 예진아. 아직 경기교대도 남았고….”
[진짜 감사해요… 저 이제 교대생 됐어요… 흑흑.]
“응?”
나는 잠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다.
“차예진, 너…!”
[저 붙었어요 쌤… 으아앙!!!!!!!]
경기교대가 1시간 일찍 발표를 했다.
그래서 예진이는 강원교대를 확인하자마자 경기교대까지 합격자 발표를 조회한 것이었다.
[최초합… 흑… 최초합… 했어요… 으앙!!!!]
“잘 했다, 진짜 잘 했다! 경기교대생이 된 걸 축하한다 예진아!!!!”
나는 교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지석 선배와 박 선생도 내 말을 듣자마자 환호했다.
“예진아아아!!!!!”
“성공했구나!!! 네가 해냈어!!!”
[감사…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요 쌤….]
예진이는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십여 분의 시간 동안, 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녀석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이거면 됐다.
“장하다 예진아!!!!”
[감사합니다 쌤!!!!]
예진이의 밝은 웃음소리가 울먹임과 함께 핸드폰 너머로 울려 퍼졌다.
[아! 저 엄마 아빠한테 다녀올게요!]
“전화로 안 하고?”
그러자 예진이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직접 가서 말해야죠!]
예진이는 세상 행복한 목소리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들고는 입꼬리를 한가득 올렸다.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의 최고의 성과가, 바로 이 시간에 탄생했다.
* * *
예진이의 합격 발표가 있고 얼마 뒤, 이사장과 나는 졸업생들을 데리고 북부 청소년 센터로 향했다.
예진이의 경기교대 합격 축하 파티 및 연말 맞이 송년회를 겸하기 위해서였다.
“예진아!!!!”
“언니이!!!!”
은장이는 예진이를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다른 졸업생 녀석들도 예진이에게 축하 인사를 해 주었다.
“뭐 하고 있었어?”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된 후 예진이에게 물었다.
“아, 지효랑 내년에 센터에서 할 수 있는 봉사활동 있나 찾아보고 있었어요.”
지효도 목표대학은 아니지만, 3순위 대학에는 합격했기에 만족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둘은 대학생이 되면 어떤 봉사를 할 수 있는지 임정훈과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합격하면 같이 봉사 하려고요.”
지효가 옆에서 예진이랑 같이 찾아봤다며 봉사활동 목록들을 보여 주었다.
“대학생들이 같이 할 만한 봉사가 많네.”
“그쵸? 재밌을 거 같아요.”
“그러면 이거도 해 보는 게 어때요?”
이사장이 싱긋 웃으면서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어, 근데 누구….”
“저는 강문고등학교 이사장인 강은숙이라고 해요.”
“헉…! 강문고 이사장님…!?”
예진이와 지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사장은 호호 웃으면서 학생들에게 손짓했다.
“앉아요, 앉아요. 부담 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이미 이사장님이 직접 오신 거부터가 부담이지 않겠습니까.”
“어머, 강 선생님은 농담도, 호호.”
그렇게 말하는 이사장의 눈이 가늘게 찢어지더니 나를 째려봤다.
“커흠, 아무튼 이사장님이 오늘 예진이에게 제안할 게 있으셔서 오신 거야.”
“맞아요. 예진 학생, 이거 한번 볼래요?”
이사장이 방금 건넸던 종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예진이는 종이를 열어서 내용을 확인했다.
“강진장학재단… 1기 장학생!?”
“네. 예진 학생, 이번에 설립한 강진장학재단의 1기 졸업생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네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
내 말을 들은 예진이가 종이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 진짜… 이거 다 주세요?”
“그럼요.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 줄 거예요.”
“지급되는 노트북이면 졸업할 때까지 사용하는 데는 충분할 거다.”
“학비는 대학에서 장학금 나올 테니까, 우리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도록 학습비를 지원해줄 거예요. 간단히 생각하면, 최소한의 생활비라고 보면 돼요.”
“최소한의 생활비가 한 달에 50만 원이에요!?”
이사장과 내 부연 설명을 들은 예진이는 깜작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펜을 들더니 곧장 서명을 했다.
“앗 예진아…!”
“그렇게 사인을 해 버리면….”
되려 예진이가 아니라 졸업생 녀석들이 우려 섞인 말들을 했다.
“왜요?”
“너, 장학생이 된다는 의미가 뭔지 알고 있는 거야?”
은장이가 걱정된다며 물었다.
“어… 공부를 잘 하는 수재다?”
예진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동석이가 낄낄 웃으면서 내 말투를 따라했다.
“장학생이 되면 뭐라도 되는 줄 아냐?”
“저 자식을 콱…!”
내가 종이몽둥이로 동석이를 때리는 시늉을 하자 녀석은 능청스럽게 뒤로 물러나면서 장난스레 웃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근데 그거 진짜 신중하게 생각해야 했어.”
“잘못하면 우리처럼 붙잡혀서 멘토링만 몇 년이고 하게 될 거야.”
은솔이와 민주도 한 마디씩 보탰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예진이에게 오해는 하지 말라고 말하려 했다.
“진짜요? 당연히 해야죠!”
“응?”
“저도 여기 계신 언니, 오빠들처럼! 선생님처럼! 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걸요?”
예진이는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긴, 너라면 오히려 바라던 바였겠다.”
“저라면요?”
나는 예진이를 향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럼 말 바꾸기 없기다.”
“아….”
“예진아 도망쳐….”
“왜 도망쳐? 이렇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는데.”
나는 졸업생들을 보면서 반박했다. 정작 당사자인 예진이는 기뻐 보였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말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예진이가 경기교대에 합격이나 했겠냐? 그러면 응당 장학재단 장학생이 되어서 봉사도 좀 하고 그래야지, 안 그래?”
“진짜 쌤은 뻔뻔하기로도 전국일타….”
중얼거리는 정석이의 이마를 향해 종이몽둥이가 날아갔다. 정석이는 얻어맞은 이마를 부여잡고 끄응, 신음소리를 냈다.
“참, 지효도 관심 있으면 오고.”
“어, 저도 괜찮아요?”
“장학생 조건에는 해당 안 되지만, 멘토 등록은 가능해.”
내 말에 지효가 예진이를 보며 웃었다.
아무래도 녀석들의 대학 생활 봉사활동 장소가 정해진 것 같았다.
* * *
한참 동안 예진이의 합격을 축하해 준 뒤.
나는 마시던 음료를 들고 찬 바람을 쐬러 바깥으로 나왔다.
“강 선생님.”
그리고 내 뒤로 임정훈이 따라나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임정훈은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건 약소하지만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종이백을 하나 건넸다. 그 안에는 홍삼을 비롯해 온갖 건강식품들이 들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꼭 선생님께서 챙겨드십….”
“들어가서 제자들과 같이 나눠먹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임정훈이 짧게 웃었다.
“여전하시군요.”
뭐, 이런 보답을 받기 위해서 이런 걸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 임정훈은 나에게 두 번은 권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센터의 다른 학생들을 잘 챙겨주고, 녀석들을 이끌어 주겠습니다.”
“네, 그거면 됩니다. 올해,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나는 들고 있던 음료수를 쭉 들이켰다.
이렇게, 또 1년이 지나간다.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센터 내에서 여전히 다과회를 열고 있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회귀하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그림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괜찮네.’
앞으로 더 추가될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다시금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년부터 시작될 새로운 이야기들과 또 다른 만남들을 기대하면서.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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