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50화 (249/252)
  • 250화. 외전 (25) - 실전

    첫눈이 내리고도 며칠이 지난 날.

    12월이 이제 막 넘어간 직후에, 예진은 두터운 파카를 입고 북부 청소년 센터 앞에 서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하고 와!”

    오늘은 예진의 경기교대 면접일이었다. 이제는 눈이 사락사락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추워진 날씨였다.

    그럼에도 예진은 전혀 춥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긴장된다!’

    지금까지 수십,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여전히 면접은 어려웠다.

    그래서 오늘 출발하기 전에도, 일찍 청소년 센터에 나와 모의면접을 두어 번 돌려보기도 했다.

    다행히 면접이 오후 시간으로 배정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연습한 대로만 할 수 있으면!’

    그 하나의 가능성이 예진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예진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는 지하철을 타러 달려갔다.

    “잘 해야 할 텐데….”

    임정훈은 예진이 달려간 방향을 지켜보고는 다시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도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수능 이틀 전을 기점으로, 모든 프로그램이 마무리된 것이었다.

    ‘더 해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도 분명 있었다.

    일단은 예산. 넉넉하지 않은 예산은, 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오픈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로 발생했다.

    게다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저 취업했어요!

    -쌤!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 취업, 진학에서 성공을 거두다 보니 실제 멘토링이 필요한 학생들의 수가 줄어든 것이었다.

    분명 기쁜 일이었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학생들이, 서울시 전역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런 점이 분명 장점으로 작용했을 텐데, 임정훈은 그러면서도 못내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예진이처럼 면접을 늦게 보는 학생들은 더 수업해주실 수 없을까요?

    서울시 교육청에 건의도 해 보았지만, 한두명 때문에 예산 편성하기가 애매하며, 벌써 연말이기에 예산 집행도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래도 강명문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었지만.’

    짧은 기간이었지만, 수능이 끝나고 약 2주 동안, 강명문은 지속적으로 예진의 면접 준비를 도와주었다.

    별도로 급여를 받지도 않았다. 거마비라도 챙겨주려 했으나, 그것 역시 거절했다.

    -저는 학생에게 자판기 커피 하나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학생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그렇게 했는데도, 끝끝내 강명문은 그 어느 것도 받지 않았다.

    “신기한 사람이야.”

    강명문과 그의 제자들 덕분에 올해 북부 청소년 센터는 매우 활발했고, 그만큼 성과도 나왔다.

    잊지 못할 추억들도 많이 생겼고, 취업과 진학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학생들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알아보는 적극성도 갖게 되었다.

    모든 과정에 있어서의 동기.

    그 동기 하나가 부여됨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뀐 것이었다.

    “예진이가 합격하면….”

    반드시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지.

    아, 예진이가 떨어져도 말이다.

    임정훈이 생각을 마치고 다시 센터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눈?”

    12월 첫째주 토요일 오후, 작은 눈송이가 하늘에서 천천히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앞을 스쳐가는 눈송이를 바라본 임정훈은 밝게 웃으면서 처음 강명문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래.”

    임정훈은 생각을 굳히고 센터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중앙 홀에 모인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고3 겨울방학 진로체험, 시작하자!”

    센터의 업무. 청소년 진로체험. 임정훈은, 자신도 자신이 있는 길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 번 더 다짐했다.

    비록 그게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이일지라도, 최선의 도움을 주는 것.

    그게 바로 지금 임정훈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 * *

    경기교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멀었다.

    서울 강북에 거주하는 예진의 경우에는 대중교통으로만 1시간 30분은 걸리는 거리였다.

    “제가 가장 의미있게 했던 활동은 3학년 토론 대회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재능기부 형태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 저희 동아리는….”

    예진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기출문제를 되뇌었다.

    하지만 단순히 되뇌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외우기만 해서는 안 되니까.’

    예진은 버스를 타면서는 기출문제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는 학생부에 있는 책들 중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떠올렸다. 해당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도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한 편으로는 책 자체에 대한 재미를 떠올리면서,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예진은 이동하는 시간에도 계속해서 면접 준비를 했다. 그리고 도착한 경기교대는.

    “우와… 넓다….”

    예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큰 학교였다.

    이제 면접 시간까지는 앞으로 40여 분 남아 있었다.

    빨리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빠르게 면접 고사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예진은 학교 건물을 구경하며 연신 감탄했다.

    특히 도서관 건물이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건물도 커서 보관하고 있는 도서 종류도 많을 것 같았다.

    정말 이 학교를 내가 다닐 수만 있다면.

    저기 보이는 도서관에서 미친 듯이 공부할 자신이 있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학생회에서도 활동을 해 보고 싶고, 각종 동아리에도 가입해서 취미생활을 늘려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잘 보자!’

    그렇게 생각한 예진은 고사장에 들어가 수험번호 확인을 받고, 대기실로 이동했다.

    그때부터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면접장에서는 그냥 명상만 하세요!

    동석 선배의 조언에 따라 면접대기실에서는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어설프게 외우려다가 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교육, 교사에 대한 흥미, 예진 학생이 생각하는 교육만 생각하세요.

    선배의 조언처럼 예진은 눈을 감고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머릿속에서는 경기교대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모습, 선후배들, 동기들과 함께 교육 관련 활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다음 준비해 주세요!”

    예진은 자신의 수험번호가 호명되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그리고 당당한 걸음으로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씩씩하네요, 하하하. 자리에 앉아요.”

    “감사합니다!!”

    가장 먼저 진행된 건 개별면접이었다. 제출한 자기소개서와 학생부를 바탕으로 서류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질문은 미리 생각하고 있던 질문들이었다. 동아리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수행평가 주제로 교육에 대해 탐구한 내용은 어떤 주제로 생각했는지 등이었다.

    배우고 느낀 점을 명확하게 정리해 둔 예진은 모든 질문에 어렵지 않게 답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꿀꺽.

    예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못 한 말 있으면 해 보라는 질문을 던지시겠지?

    이에 대한 답변도 미리 준비를 해 두었었다.

    그래서 예진은 그 답변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 들어오면서 보니까 어땠어요?”

    “네?”

    “하하하. 오늘 우리 학교 처음 와 본 거 아니에요?”

    “아, 아뇨. 네. 맞습니다! 처음 와 봤습니다!”

    예진은 속으로 자기 자신을 질책했다.

    이 멍청아! 지레짐작해서 답변 준비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명문 쌤이, 선배들이 강조했잖아!

    그러나 그런 자책도 빨리 머릿속에서 털어내야 했다.

    바로 이어서 질문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 학교 처음 본 감상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궁금해서요.”

    밝게 웃고 있는 교수는 정말 순수하게 그 질문을 하고 싶었다는 듯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처음 경기교대를 봤을 때….’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와서 정면에 보이는 도서관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이유는요?”

    “그게… 저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도서관을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예진의 이야기에 교수는 물론이고 옆에 앉아 있던 입학사정관도 귀를 쫑긋 세웠다.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도서관에는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대형 서점도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거리가 좀 있었고, 지역 도서관에도 제가 보고 싶은 책들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경기교대에 들어오면서 도서관을 봤을 때, 왜 미친 듯이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그렇기에 경기교대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도서관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 본 적도, 빌려 본 적도 없었으니까.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싶어도, 책을 선택하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앉아서 책을 읽을 만한 여건도 좋지 않았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책상, 의자가 엉망이었다. 대형서점도 서서 읽을 수나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어떤 생각인가요?”

    “제가 만약 경기교대에 입학한다면,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앉아서 읽고 싶었던 책들을 모조리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요.”

    예진의 말에 두 면접관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 죄, 죄송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는 게….”

    “아니요, 정말 좋은 답변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진 교수가 예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면접 보느라 수고했어요. 꼭 합격해서 우리 학교 도서관 망령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아…!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도 농담을 던지는 교수를 향해 예진이 꾸벅 인사를 했다. 예진이 면접장 문을 열고 나가자 교수가 입학사정관에게 말했다.

    “도서관 이야기를 저렇게 진솔하게 한 학생이 있었나?”

    “지금까지는 없었습니다.”

    “그치? 아까 그 학생 서류 좀 다시 보지.”

    중년 남성의 얼굴에서 미소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 *

    ‘이 멍청이! 바보!’

    도서관이라니, 도서관이라니!

    오는 도중에 처음 인상깊게 본 건물이 도서관 건물이어서 그걸 말하긴 했지만, 도서관이라니!

    ‘그런 걸 누가 믿겠어 누가!’

    예진은 개인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계속해서 자책했다.

    ‘그래도 교수님 표정은 좋았잖아.’

    아니, 망령이라고 하신 건 혹시 비꼬신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드는 예진은 면접 조교의 호출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집단면접 준비해 주세요!”

    “네, 네!”

    면접장 앞에는 자신과 함께 면접을 볼 네 명의 학생이 서 있었다.

    ‘이거라도 잘 봐야 해!’

    힘차게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은 예진은 우선 집단면접 제시문을 받았다.

    ‘이건…!’

    <최근 가짜뉴스로 인해 대중들이 정보 혼란을 겪고 있다.>

    강명문 선생님이 추천해 준 기출 주제 중 하나다!

    미리 연습까지 해 본 주제였기 때문일까. 예진은 없던 자신감이 다시 생기는 기분을 느꼈다.

    <… 가짜뉴스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 상황을 두 가지 예시로 들어보고, 이러한 일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두 가지 제시해보시오.>

    예진은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지원자들도 눈에 불을 켜고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보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예진은 침을 꼴딱 삼켰다.

    “그럼 먼저 한 명씩 발표해 볼까요?”

    면접관 자리에 앉아 있던 교수의 말을 신호로 오른쪽 끝에서부터 차례대로 발표를 했다.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는 먼저….”

    “우선 무분별한 정보 유출을 막을 필요가….”

    “가짜뉴스에 빠지는 이유는 현 시대가 정보의 홍수여서….”

    여러 주장들이 나왔고, 그에 따른 대안들도 나왔다. 같이 면접을 보는 지원자들도 나름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걸 옆에서 듣는 예진은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 고동소리가 가빠질 수밖에 없었다.

    ‘앞 친구들보다 잘 해야 해!’

    그런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예진의 바로 앞 학생의 발표가 이어지던 때였다.

    “가짜뉴스는 정부에서 통제를 하려고 해도, 여러 루트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응?’

    “따라서, 저는 국민들 전체를 향한 가짜뉴스 선별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거짓된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간다면, 정부에서 미처 통제하지 못한 가짜뉴스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친구의 발표를 들은 예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답한다고?

    다른 지원자들도 발표 내용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반면, 교수의 눈빛은 처음과 변화가 없었다.

    “좋아요. 마지막 학생?”

    예진은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힘썼다.

    앞 친구들보다 잘해야 한다. 특히 방금 바로 전에 했던 학생보다도 더 잘 해야 한다.

    그래야, 면접만큼은 최고점을 받아야, 다른 지원자들과 경쟁할 수 있으니까.

    예진은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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