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49화 (248/252)

249화. 외전 (24) - 입소문

예진과 친구들이 면접 스터디를 만들고, 입취캠프도 마무리가 되어서 각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린 시점.

그 시점에서, 예진은 북부 청소년 센터 임정훈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후….”

예진은 가슴 한 쪽에 손을 올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임정훈의 컴퓨터 모니터에 떠 있는 화면을 클릭했다.

<1단계 전형 합격자 조회>

“으… 아!”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예진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경기교대 수시모집: 고른기회 입학전형 – 저소득층학생전형>

<성명: 차예진>

<합격구분: 합격>

[1단계 합격을 축하합니다.]

[2단계 면접 안내는 공지사항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진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붙잡은 채 임정훈을 바라봤다.

“쌔, 쌤…!”

“예진아 축하한다!!”

이제 겨우 1단계 합격이었다.

아직 최종 발표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하나의 합격이, 예진에게 전에 없던 기쁨을 안겨 주었다.

“쌔애애앰!! 으어엉!!!!”

그동안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예진이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어쩌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신은 들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강명문 선생님의 조언을 머릿속에서 되새길 뿐이었다.

그리고 강명문 선생님과 강문고 졸업생 선배들을 따라온 몇 달.

“저 1차 합격했어요!!!!!”

예진은, 처음으로 입시에 있어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아직 최종은 아니었지만, 이 한 보가 예진에게는 크나큰 한 걸음이었다.

* * *

“흐흐흥~ 흐흥~ 흐흐흐, 흐흥~”

예진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에서 면접 기출 문제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설마설마 했던 1단계 합격!

이 기쁜 소식이 있는데 콧노래가 절로 나오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물론,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면접 비중이 30%나 되는 2단계가 남아 있으니까.

‘그래도 자신있어!’

지금까지 면접 스터디는 물론이고, 꾸준히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에서 트레이닝을 받아 온 예진이었다.

그렇기에 자신감은 충분했다.

“우리 딸, 기분 좋아 보이네?”

“아빠!”

예진은 퇴근하고 들어온 아빠 앞에 핸드폰으로 촬영해 둔 사진을 보여 주었다.

“아빠 이거 봐!”

“응?”

예진의 아버지는 딸이 보여 주는 화면을 확대했다가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1단계 합격이면…!”

“이제 면접 보러 갈 수 있어!”

예진의 말에 예진의 아버지도 덩달아 기뻐했다. 딸이 밤새 노력하는 모습을 모른 척 하던 기간의 노력이 허사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축하해, 우리 딸! 면접만 잘 보면 합격하겠네!”

“응! 그래서 지금도 연습하고 있었어!”

자신의 앞에 놓인, 임정훈에게 빌린 노트북을 보여 주면서 예진이 밝게 웃었다. 그 노트북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는 예진의 아버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부모가 되어가지고….’

딸의 공부 하나 제대로 지원을 못 해 주고 있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부모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예진이 말했다.

“그런데 아빠, 강명문 쌤이 아빠한테 꼭 물어보라고 한 게 있었는데, 물어봐도 돼?”

“어, 어? 응, 그래. 뭔데?”

상념에 빠져 있던 예진의 아버지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예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빠, 가짜뉴스 알아?”

“그럼, 알지. 그게 왜?”

“그럼 가짜뉴스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뉴스는 어떤 거라고 생각해?”

예진은 오늘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강명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예진아, 이거 부모님께 꼭 여쭤봐라.

-이게 뭔데요?

-집단면접 기출문제 주제. 어른들의 시각에서 고민해볼 수 있을 거다.

사실 강명문이 건넨 자료는 미래 경기교대 집단면접 문제들 중 실제 출시된 기출문제였다. 미래에 제시되는 문제들 중 사회 시사 사건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주제들을 예진에게 알려 준 것이었다.

예진은 그중 하나인 가짜뉴스에 대해서 아빠에게 물어본 것이었고 말이다.

“가짜뉴스….”

“응. 좀 어렵… 나?”

아무래도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던 아빠였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예진이었다.

“아빠가 생각할 땐, 그게 제일 악질 같아.”

“응응.”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 거.”

“잘 모르는 분야?”

전문성을 의미하는 건가? 예진이 한 번 더 물었다.

“그게 아니라, 음… 각자가 처한 상황이랄까? 예를 들면 우리처럼….”

예진의 아버지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를 주저했다. 그러자 예진이 손뼉을 치면서 알았다며 말했다.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약자들!!”

“으, 응?”

전에 없이 밝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예진을 보면서 예진의 아버지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맞아. 내가 지원한 전형 자체가 고른기회잖아. 그러면 이런 주제에서는 내 상황을 토대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 토론 대회 이야기도 넣어 볼까? 잘못된 편견으로 인한 가짜뉴스들 때문에 사람들이 더 혼란스러워하고, 선입견을 갖게 되면서….”

“딸?”

“아!”

예진은 아버지의 부름에 중얼거리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 아빠!”

“어, 어. 도움이 되었니?”

“응! 엄청! 면접도 잘 볼게!”

그리고는 곧장 노트북 앞에 앉아서 마구 타이핑을 했다. 딸의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던 예진의 아버지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올바르게 자라고 있는 딸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한없이 포근하기만 했다.

* * *

한참 예진이 면접 준비에 바쁜 시점, 최지은 선생이 박 선생에게 연락을 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발 하루만 좀 도와주세요!

그래서 나도 얼떨결에 지석 선배의 차량에 탑승해서 강양외고로 향하는 중이었다. 뒷자리에는 박 선생이 있었고, 조수석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차 선생은 잘못 왔다가 커플인 걸 강양외고 학생들에게 들키면 놀림만 받다 끝날 거니까 오지 말라고 이야기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차 선생을 제외하고 인문계열 교사인 우리 셋이 도와주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서울시 프로그램에서 도움받은 것도 있으니까, 가면 좋잖아.”

“그분들이 도움을 받으신 거지, 저희가 받은 건 아닙니다만.”

“…그냥 좋게 생각해. 간 김에 한우도 먹고, 관광지도 좀 돌자고.”

“그건 좋습니다.”

지석 선배와 함께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도착한 강양외고는 생각보다 학교가 조용했다.

“선생님들!”

최지은 선생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왔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기는 했는데… 어휴, 말도 마세요. 지금 애들 다 수시 쓴다고 난리 났어요.”

정확히 말하면, 9월 모의고사를 치른 후 학생들이 이제야 현실을 깨달았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부랴부랴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녀석들도 있었고, 대학 라인을 급하게 정한 녀석들도 많았다.

“그래서 애들 면접이라도 좀 챙겨야 하다 보니 이렇게….”

최지은 선생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진짜 죄송합니다! 저희가 빠르게 프로그램들을 배워서 했었다면, 선생님들께 피해를 드리지는 않았을 텐데….”

“아, 괜찮습니다. 괜찮지 명문아? 박 선생도?”

“네, 그럼요!”

“음….”

말끝을 흐리는 내 옆구리를 박 선생이 쿡, 찔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말 하루만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하루도 감사하죠!”

최지은 선생이 우리를 보며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안내를 따라 교실로 이동했다. 교실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살짝 열린 교실 문을 훔쳐봤다.

“이건….”

“학생들이 뭐 하고 있는 건가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질문을 하는 박 선생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교실에 모여 있는 학생들은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이고만 있었으니까.

“면접 준비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 저게 면접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최지은 선생의 말대로였다. 학생들이 무얼 적고 있는지 확인해 본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냈다.

“정시는 다들 포기했습니까?”

“정시도 준비하기는 하지만… 외고라고 해서 모두가 높은 성적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최지은 선생의 고민도 이해가 되었다.

“준비과정들, 확실하게 설명해 주겠습니다.”

그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면접 준비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 주었다.

면접 시뮬레이션부터 시작해서, 면접 때 주의해야 할 멘트, 면접 공부법, 기본적인 스피치 훈련 등.

강양외고 학생들은 강문고 선생님들이 직접 가르쳐 준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물론, 우리도 중간중간 최지은 선생을 비롯해 강양외고 선생님들의 실력을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를 향한 의존도만 높아질 수도 있으니까.

약 세 시간 동안 면접 특강을 끝내고 우리는 잠시 휴게실로 향했다.

“그나저나 학교 좋네요. 깔끔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들, 학교 관리를 위해 정말 갖은 노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대답한 사람은 최지은 선생이 아닌, 옆에서 천천히 다가온 남자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정석호라고 합니다. 강양외고에서는 국어 교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정석호라 밝힌 남자는 30대 중반의 나이로, 강양외고에 들어온 지 이제 3년 차라고 이야기했다.

“저도 최지은 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노력해봤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의견을 나누던 중, 강문고 선생님들께 배워 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오늘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석호는 고생이 많으시다며 준비해 온 음료수 박스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아니, 이런 건 괜찮….”

“아닙니다. 제 마음이니 꼭 받아 주십시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강문고에 대해 자주 들었고, 자신도 정말 좋아하는 학교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십여 분간 그는 자신이 왜 강문고를 좋아하는지, 강문고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정 선생님.”

지석 선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두 분이 정말 열정이 넘치셔서 학생들도 잘 따를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정석호 선생이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말인데 명문아.”

“네.”

“하루만 더 같이 해드리면 어떨까?”

“와 진짜요!?”

선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 텐션이 올라가려던 최지은 선생은 민망한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저희 모두가 도와드리기에는 시간상 어렵습니다. 강문고 제자들도 봐 줘야죠.”

“음… 그건 그렇겠네.”

그때 박 선생이 손을 살짝 들었다.

“저는 내일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요.”

“선생님 진짜요!?”

이번에도 놀라며 손을 모으는 최지은 선생이었다.

“학교 제자들한테 해 줄 건 다 해 줬고, 내일은 다른 일정도 없어서요.”

오늘 하루만 도와주는 반짝 특강.

이번 특강으로 강양외고 학생들의 입시 준비 역량이 다소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최지은 선생도, 정석호 선생도, 그리고 강문고에서 파견을 온 우리들 모두가 이를 알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도와주기 힘든 거기는 했는데….’

한 명이라도 더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강양외고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럼 박 선생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그럼 강 선생님은 서울에서 제자들 잘 봐 주세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애들 면접 봐 주기로 했어서… 선배, 이따 그럼 간단히 고기 먹고 들어가시죠.”

“응? 무슨 소리야? 나도 남을 건데?”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으신다고요?”

“응. 나랑 박 선생이 남을 거야. 명문이 넌 내일 3반 애들 봐주는 거 아냐?”

“맞습니다만….”

“그럼 우리끼리 하루 더 있다 갈게.”

“박은환 선생님은 제 방에서 주무셔도 돼요! 제 자취방 투룸이에요!”

“심 선생님도, 불편하지만 않으시면 제 집에서 주무셔도 됩니다. 환영합니다.”

“어…?”

무언가 나를 빼놓고 다들 모여서 놀러 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을 장난스럽게 바라보던 지석 선배가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인마, 강원도 여행은 다음에 하자, 다음에. 얼른 올라가 봐라. 제자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알겠습니다. 뭔가 음….”

나는 턱을 손으로 잡은 채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당한 거 같은 기분이….”

“기분 탓이야 기분 탓. 내가 터미널까지는 데려다줄게.”

결국, 그날 나를 제외한 강문고등학교의 두 교사는 하루 일정을 더 보내고 왔다.

그리고 그 다음 주, 박 선생과 지석 선배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 선생님이랑 만나신다고요?”

하루 더 지내는 동안 정이 들었는지, 박 선생은 정석호 선생과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은 썸이라고 하지만,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역시 자만추가 최고군요.”

개명을 생각할 정도로 자신의 연애에 어려움을 겪던 박 선생도, 이제는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다.

어쨌든, 그렇게 강양외고에서의 짧은 특강이 마무리되었다.

* * *

“애들 면접 잘 보고 왔대요!”

수능 직전, 그리고 직후에 시행된 면접에서 강양외고 학생들 중 몇 명이 소위 말하는 대역전을 만들어 냈다.

그 덕분에,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의 명성이 강양외고에 울려 퍼졌다.

덩달아 그들을 섭외하고 최선을 다해 입시 지도를 한 최지은, 정석호 선생의 역량도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훗날, 강양외고 최고 입시전문가로 불리게 될 두 사람의 소문이 서서히 형성되어 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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