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외전 (23) - 입취캠프 (2)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작성이 마무리가 되어 갈 무렵.
최지은 선생과 한지현 선생은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금 강원도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쉽네요. 조금만 더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을 꾸준히 따라와 주었다. 가끔 지나치게 빡빡하다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이만하면 상당히 잘 따라온 편이었다.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다 보니까 재밌었어요. 왜 강문고가 강 선생님을 중심으로 뭉치는지 알 것 같았고요.”
최지은 선생은 나와 함께 강의를 하고, 상담을 하고, 첨삭을 해 주었던 시간들이 꽤나 의미 있었던 모양이었다.
“많이 배웠어요.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하셨군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녀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맞잡으며 가볍게 악수를 했다.
“강양외고에서도, 원일고에서도.”
이제 곧 설립될 강진장학재단. 그 강원도 지부의 교육 자문위원.
두 사람이 앞으로 만들어 낼 행보가 기대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리고 그 행보는, 각자가 속한 학교에서 얼마만큼의 역량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릴 터였다.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그걸 위한 참가였으니까요.”
한지현 선생도 나와 악수를 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특히 당일치기 여행 계획서… 그거, 관광에 특화된 강원도에 정말 적절한 이야기 같아요.”
“그렇죠? 제가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 봤는데, 서울뿐 아니라 강원도에서도 활용하기 좋으실 겁니다.”
“…질렸다 진짜.”
어쩐지 지석 선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아무튼.
우리는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금 멘티들이 모여 있는 강의실로 향했다.
“이제 입취캠프는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간다.”
노트북에 코를 박고 쓰러져 있던 녀석도, 의자에 몸을 뉘인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만 보고 있던 녀석들도.
그리고 여전히 노트북으로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는 예진이와 지효 같은 학생들도.
모두가 나를 향해 집중했다.
“자기소개서가 완성됐으면 뭘 해야 하지?”
“수능 공부요!”
“면접 준비 아니에요?”
“논술 공부도 해야죠!”
이제는 제법 진학 준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녀석들이었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씩 웃고는 종이몽둥이로 책상을 탕! 때렸다.
“수능! 면접! 논술! 그리고 취업 면접!”
입시와 취업을 동시에 점검해주는 입취캠프. 그 두 번째 단계는 바로 각자의 진로 로드맵에 맞춘 진로 학습 계획이었다.
* * *
“우와… 이제 입이 아파.”
“우… 물….”
면접 준비만 3시간을 넘게 한 학생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입이 아프다며 중얼거렸다.
“쉬는 시간은 10분이야. 면접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네….”
이번 입취캠프에서는 강문고 졸업생들이 주된 멘토가 되어서 주 1회씩 면접 준비를 도와주었다. 이미 면접 준비에는 잔뼈가 굵은 사람들뿐이었기에, 졸업생들은 후배들을 보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어깨 펴고! 물 한 모금 쫙 들이키고! 입 운동 하고! 기출 문제 점검하고!”
“헙! 네, 네!”
“눈 깜빡깜빡! 정신 차리고 다시 들어간다!”
옆에서 보면 무슨 스파르타 훈련이라도 하냐고 오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태성이가 후배들을 리드했다.
“좋아.”
나는 녀석들을 확인하면서 체크리스트를 점검했다.
이번 두 번째 단계는 각자 준비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강의실을 점검해야 했다.
먼저 취업면접반.
역시나 태성이가 메인 멘토가 되어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녀석이 기업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후배들에게 신뢰감을 심어 준 덕분에 취업면접반은 원활하게 돌아갔다.
거기에 현직 승무원인 채영이까지 더해지니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지메이킹도 중요해. 자신감이 없으면 당연히 면접관들이 안 좋아하겠지?”
“네, 언니!”
“아유 귀여워!!”
채영이의 성격이 한몫한 것도 사실이었고.
논술반은 은장이와 정석이가 메인이었다.
“인문논술에서 중요한 건 각 제시문별로 주제들을 미리 옆에 적어두는 거야.”
지금까지 가르쳤던 논술 학습법부터 시작해서 지문 분석 방법과 실전에서의 시간 관리, 게다가 학생별 맞춤 첨삭까지. 은장이와 정석이라면, 이러한 사항들을 모두 고려한 멘토링이 가능했다.
은장이와 정석이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 동석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쌤, 수리논술은 아예 없죠?”
동석이와 명천이는 원래 수리논술을 도와주기로 했는데, 지원자 중에는 수리논술 준비생이 없었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학습 역량이 부족했던 학생들이 많았다 보니, 이과보다는 문과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과 학생들이 있어도, 다들 수능 아니면 학생부종합전형으로만 준비하고 있었고 말이다.
“아쉽게도. 대신, 면접 도와줄래?”
“네!”
동석이가 밝게 외쳤다.
“어디 보자, 태웅이는….”
수능 준비반은 태웅이가 메인 강사로 들어가 있었다. 태웅이는 수능 초고득점 노하우를 토대로 지금까지 멘토링을 해 왔었다.
이번에도 그 노하우를 멘티 학생들에게 풀어 주고 있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고득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뭔데요?”
“일주일 동안 문제집을 이만큼 푸는 거예요.”
후배들이 농담하지 말라며 깔깔 웃었다. 그러다 태웅이가 보여 준 PPT 화면을 보고는 웃음을 그칠 수밖에 없었다.
“…진짠데.”
“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의 수능 공부였으니, 태웅이는 타이트한 일정을 잡고 있었다. 학생들은 짧게 신음하면서도 이 현실을 받아들려 노력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은솔이가 달려왔다.
“쌤, 준비됐어요!”
“좋아. 동석이랑 명천이도 가자.”
은솔이는 A조 디저트 사건 이후로 꾸준히 간식을 챙겨서 갖고 왔다. 이번 대입 면접반에도 미리 다과를 준비해 온 참이었다.
그래서 아예 진짜 면접 현장처럼 꾸며 보기로 했다.
“교수님들, 입학사정관님들 앞에 꼭 사탕이랑 음료수가 있더라고.”
“하루종일 앉아 계시면 피곤하시지. 당 떨어지잖아.”
이번 이벤트에 적극 참여한 은솔이를 비롯해서, 아이디어를 제공한 동석이가 키득거렸다. 두 녀석 모두 연애하더니 웃음이 떠나지를 않는 것 같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대입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 명단을 보면서 호명했다. 이름이 불린 학생들이 긴장한 채 강의실 밖에 놓인 대기의자에 앉았다.
“한 명씩 들어와라.”
입취캠프의 두 번째 단계는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 *
예진은 강의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몸을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실전처럼 해 보는 모의면접. 상상으로 준비하던 것과 시뮬레이션은 달랐다.
집에서 혼자 벽을 보면서 연습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평가자들 앞에서 할 생각을 하니 쉽지 않았다.
“후….”
그래서 예진은 강의실 문을 닫고 의자에 앉자 마자 한숨을 쉬었다.
“어려웠어?”
“응…. 많이 어렵더라.”
예진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 나왔다면서 지효에게 푸념을 했다.
“개인면접은 물어보지도 않으셨어….”
“그럼?”
“집단면접이 있는데, 그 질문만 하셨어. 와 근데… 멘탈 나가더라.”
그 말에 지효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게 집단면접이라서 여럿이서 보게 되거든? 그래서 시뮬도 나 말고도 학생이 필요해서 선배들이 학생 역할 해 줬는데….”
예진은 방금 전 자신과 토론을 했던 상대를 생각하면서 몸서리를 쳤다.
“민주 선배가 했어.”
“와… 끝났네 그럼.”
민주의 토론 실력은 이미 멘티 학생들도 알고 있었다. 시사 사건에도 관심이 많고, 실제 정치판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대학생 토론대회 등에서도 수상실적이 많은 학생이었다.
“입 한 번 뻥긋 못했어.”
“주제는 뭐였는데?”
“1인 가구가 주제였는데, 1인 가구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냐 그렇지 않냐를 선택해서 근거를 제시하고, 관련된 정책을 제안해 보라는 거.”
“정책제안이면 민주 언니가 끝판왕이잖아. 일부러 그런 문제 내신 거 아냐?”
“재작년 기출문제야….”
“아….”
짧게 탄식한 지효가 예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힘내, 친구. 나도 곧 깨져서 나올 거니까.”
약 삼십 분 뒤, 예언을 맞춘 걸 증명이라도 하듯 지효도 얼굴이 멍한 채로 강의실을 나왔다.
“큰일 났다….”
“이렇게 준비하면 답도 없어…!”
다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입 면접 준비를 한다고 기출문제도 만들고, 예상 답변도 만들어 봤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그 자료가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사라질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예진은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벌떡 일어섰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깜짝이야!”
다른 친구들이 예진을 바라봤다. 예진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친구들을 돌아봤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이 빡쎄다지만, 이걸로는 안 될 거 같아!”
“그거야 그렇지만….”
다른 학생들도 그 점에 동의하고 있었다.
방금 제출서류 기반 면접이나 제시문 면접 등, 어쨌든 본인이 지원하는 전형에 맞춰 모의면접을 봤지만, 하나같이 깨지고 나왔으니까.
“스터디 만들자.”
예진은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숫자를 셌다.
“3인 1조로 하면 딱일 거 같아. 어때?”
“모여서 어떻게 하려고?”
지효의 물음에 예진이 빙긋 웃었다.
“정훈쌤한테 말씀드려서 남는 공간 조금만 더 빌리고, 우리끼리 모의면접 돌려보자.”
“기출문제가 뭐가 나올 줄 알고?”
다른 친구의 질문을 받은 예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기출문제로 안 해도 괜찮아.”
“그럼?”
“즉흥 질문도 좋으니까 뭐든 물어보는 거야.”
예진이 생각하기로는 이랬다.
‘너무 외우기만 했어.’
분명 면접 특강 때 설명을 들었었다.
-답변을 외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출문제에 의존하지 마라.
-나만의 스토리를 구상해 봐라.
그런데 이 사항들을 지키고 공부한 학생이, 이 자리에 몇 명이나 있을까.
다들 불안한 나머지 기출문제를 수십, 수백 개를 만들었고, 그에 대한 답변을 달달 외우기에 바빴다. 각자 만들어 둔 기출문제 그대로 외우고, 답변도 문장, 단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외우려고만 힘썼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 사달이 났다.
-1인 가구에 대한 정책으로 청년 장려금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럼 독거노인 분들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생각지도 못한 꼬리질문이었다.
-어….
생각해보니 독거노인 어르신들도 1인가구가 아닌가.
예진은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 질문에는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차분히 더 생각했으면 답변할 수 있었겠지만, 면접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아, 잠시만….
-시간이 없으니까 넘어갈게요. 다른 지원자들도 기다리잖아요?
강명문 선생님은 그렇게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예진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면접은 순발력 싸움이야.”
그렇다면 그 순발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예진 스스로가 공부하면서 아쉬웠던 점. 혼자 공부하다가, 이번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러니까, 서로 도와주자.”
바로, 같이 공부하는 멘토 선배, 그리고 멘티인 친구들 덕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질문도 괜찮아. 밥은 먹었어? 곱창이 좋아 삼겹살이 좋아? 연천대가 좋아 고구려대가 좋아?”
“푸하하! 야, 그런 걸 물어본다고?”
예진의 이야기를 듣던 학생이 크게 웃었다.
“아니 이를 테면 그런 것도….”
“아이스 브레이킹.”
그때 예진의 뒤로 강명문이 나타났다.
“면접 처음 시작하기 전에 긴장 풀라는 의미에서 물어보기도 하지. 밥은 먹었냐, 어떻게 왔냐, 학교 와 보니까 어떻냐, 우리 학교 와 본 적 있냐, 면접 끝나면 제일 먼저 뭐 하고 싶냐 등등.”
“진짜요!?”
예진도 사실 장난으로 말한 거였지만, 그게 진짜 질문일 줄은 몰랐다.
“그래. 면접 스터디 만드는 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다. 예진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봐.”
강명문은 예진을 향해 웃어보이며 책 한 권을 보여 주었다.
“이게 뭐예요?”
“면접 기초 연습 자료집.”
지금까지 강명문을 비롯한 강문고 교사들이 함께 모여서 만든 면접 기초 연습 자료집. 다년간의 입시, 진학 교육 노하우가 담긴 책으로, 실제 기출문제와 함께 학생들이 모의면접도 해 볼 수 있도록 가이드 라인도 적혀 있는 책이었다.
“이거 보면서 하면 도움 될 거다.”
“와, 이런 게 있었어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자료집에 관심을 보였다. 지효도 기웃거리며 자료집을 받아서 펼쳐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예진은 그러지 않았다.
“아뇨, 괜찮아요 쌤.”
정말 저 자료집을 토대로 공부하면, 모든 연습이 완벽하게 이루어질까? 자료집의 설명대로 연습하면, 면접 만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한 스터디가 아니잖아.’
강명문의 건넨 자료집은 분명 매력적인 책이었다. 온갖 족보가 다 모여 있는 자료집. 마치 무공비급이라도 적힌 것처럼 최선의 방법들이 기재되어 있는 도서.
그러나, 이건 독이 든 성배다.
예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자료집에만 의존하면 연습이 더 안 될 거 같아요. 저희가 실전경험 더 쌓은 다음에 볼게요.”
그 말을 들은 강명문은 책을 다시 끌어당겼다.
“그래? 알았어.”
예진은 그래도 책 보여 주셔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학생들은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또 몇몇은 실전 연습이 더 중요하긴 하다며 예진을 옹호해주었다.
“정훈쌤! 저희 빈 강의실 남는 거 있음 빌려주세요!”
그렇게 예진이 친구들과 함께 면접 스터디를 위해 이동하는 때, 졸업생들이 입에 사탕을 하나씩 물고 강의실에서 나왔다.
“아이고… 그냥 솔직하게 알려 주면 덧나요?”
“여전히 심술궂으시다니까.”
동석과 민주가 여전하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들은 강명문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뭐?”
하지만 그도 졸업생들의 말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잘 보고 있냐?”
“뭘요?”
강명문은 졸업생들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강진장학재단의 예비 장학생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말이야.”
강문고 졸업생들에게는 익숙하다면 익숙한, 강명문의 미소. 그건, 제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선생님의 얼굴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흐뭇하고 뿌듯한 미소를 가득 담은 채 강명문은 다시금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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