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외전 (20) - 재회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며칠 뒤, 강양외고의 최지은 교사와 원일고의 한지현 교사가 서울에 도착했다. 나와 박 선생, 지석 선배는 두 사람을 맞이하러 터미널에 나와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에요!”
박 선생이 반가운 마음에 두 사람을 꽉 껴안았다.
강양외고와 원일고는 강문고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해 왔던 학교들이었다. 입시 세미나 때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은퇴했지만, 나영희 선생도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었었다.
다만, 서로 얼굴을 직접 본 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원격 화상 회의를 위주로 하다 보니 대면으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네! 강 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심 선생님도요!”
“환영합니다.”
지석 선배도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웃고 떠들고 있는 세 명의 여성 교사들을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 석기는 안 나왔어요?”
“오늘 일정이 있다면서 못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왔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지석 선배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부연 설명을 했다.
“아, 그게, 학교에서 조만간 교내 대회로 역사 경시대회를 하는데, 그거 준비 때문에 말이야, 하하하.”
“흐응, 그렇구나.”
어쩐지 살벌한 눈빛을 한 최지은 선생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번 프로젝트, 토론 대회 난리도 아니던데요?”
“그거도 강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친 거 아니에요?”
“네? 어떤 거 말씀이실까요?”
나는 정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너튜브에서 난리잖아요. 트위티에도 관련 기사들 엄청 올라왔어요.”
그 말대로, 예진이의 토론 대회 장면은 벌서 언론을 타고 여기저기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편집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걱정 마세요!
토론 현장을 취재하러 온 언론 중에는 미래교육도 있었다. 신미자 기자가 추후 올린 기사는 예진이의 토론 대회 발표를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당연히 지효와 예진이가 서로 말다툼하듯 이야기하는 장면은 편집되었다.
나를 비롯해 지석 선배와 오 교감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튜브를 비롯한 각종 뉴스 채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건 예진 학생 같은 솔직한 현장의 이야기이지 않겠습니까.
오 교감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고 서울시 교육청, 언론 관계자들까지 모두가 동의했다.
“이렇게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사람들이 댓글도 엄청 달고 있잖아요.”
최지은의 말대로 인터넷에서는 토론대회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다. 너튜브 영상의 댓글만 봐도 사람들이 예진이와 같은 학생들의 상황을 이제야 알겠다며, 반성하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이 학생들도 강 선생님이 지도하셨을 줄 알았죠. 왜 있잖아요, 예전에 논술 특강 때 성철이처럼요.”
최지은과 한지현이 그때가 생각난다면서 괜히 먼 하늘을 바라봤다.
“누가 보면 몇십 년은 지난 줄 알겠습니다.”
“킥. 그래도 성철이 결국 선생님 덕분에 문예특기자 갔잖아요.”
“그런 거 보면 진짜 대단하세요.”
두 사람이 대놓고 이런저런 칭찬을 했다.
“그렇게 칭찬하시니 부끄럽군요.”
“에이 부끄러워하실 게 뭐가 있어요. 선생님 실력이야 전국에….”
“그것도 그렇군요.”
“네?”
최지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 눈을 마주 보면서 씨익 웃었다.
“하긴, 제가 좀 하기는 하죠. 저만한 선생, 어디서 못 찾으실걸요? 학생들 만났다하면 입결 대박에, 선한 영향력도 주고 있고 강문고에만 한정되지 않은 교육활동 범위까지. 이런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하자 지석 선배가 내 어깨를 한 대 퍽 때렸다.
“넌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는 거야, 이 자식아.”
“없으면 뭐 어때요.”
“너는 어휴… 말을 말자. 아무튼, 다들 이쪽으로 오세요!”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둔 지석 선배의 차에 탑승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으면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명이요!?”
“네. 박 선생님, 말씀 좀 해 주세요.”
“…조용히 좀 하세요, 제발.”
박 선생의 개명 사건까지도 알게 된 두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계속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나누면서 강문고로 향했다.
* * *
“음….”
차석기 교사는 교무실 자리에 앉아서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지나가던 윤기준 교사가 차석기를 보며 물었다.
“아, 윤 선생님. 그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어떤 건데?”
윤기준은 차석기가 보여 준 톡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어렵군.”
“그렇죠?”
“나도 지금까지 이런 난관을 자주 마주하기는 했지만, 쉽지 않았어. 자칫 잘못하면… 심연의 끝자락을 마주할 수도 있지.”
어디선가 봤던 판타지 영화의 대사를 흉내낸 윤기준은 차석기를 보며 심각한 얼굴을 했다. 차석기도 그 반응을 보며 덩달아 긴장한 눈을 하며 다시금 핸드폰을 바라봤다.
“왜, 왜, 무슨 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도 좀 보여 줘.”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이끌린 차석기는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핸드폰의 잠금 버튼을 황급히 눌러 검은 화면으로 돌렸다.
“지, 지지, 지은아!?”
“대체 무슨 이야기를 윤 선생님과 한 걸까 자기야?”
차석기는 강문고 사학비리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 최지은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 왔다. 그러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이제는 연인으로 발전한 사이였다.
“그, 그게… 아하하….”
“어째서, 간만에 서울로 온 여자친구를 환영해 주러 나오지 않았을까? 우리 바쁘신 남.자.친.구.분.은.?”
차석기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윤기준을 슬쩍 바라봤다. 윤기준은 이제 다 틀렸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그게… 역사 경시대회 준비가….”
“응? 그거 어제 다 끝냈잖아?”
그때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오석상이 의아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교, 교감 선생님!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면…!”
“뭐라도 있….”
그러다 오석상은 최지은의 눈동자에서 살기를 느끼고는 흠칫 놀랐다.
“지난달에 만났던 주짓수 프로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맹수의 눈빛…!”
“안녕하세요, 교감선생님. 오래간만입니다!
최지은은 화가 잔뜩 난 상황에서도 공과 사는 정확하게 구분했다. 오석상도 그에 화답하며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나?”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도 격투기 하세요?”
방금 전, 그게 궁금했다며 최지은이 물었다. 그러자 오석상이 껄껄 웃으며 답했다.
“크하하하! 운동은 모든 건강의 근원이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이런 살벌한 일정, 소화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렇게 말하는 오석상을 보면서 차석기와 윤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차석기도 오석상을 따라 택견을 배웠고, 윤기준에게서는 테니스를 배웠다.
확실히 운동을 하다 보니 체력도 늘고, 훨씬 마인드도 긍정적으로….
“…되긴 개뿔.”
당장 눈앞에 있는 여자친구 한 명에게 벌벌 떨고 있는데 긍정적인 생각이 들 리가 없었다.
“아무튼, 운동은 운동이고. 내 남친님은 왜 여친이 오늘 온다고 말했고, 심지어 어제까지만 해도 꼭 오겠다고 해 놓고는 못 왔을까아? 심지어 톡도 제대로 안 보내더라?”
“허허….”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오석상이 헛기침을 크흠, 했다.
“생각해 보니 경시대회 문제에 오류가 좀 있었지. 차 선생, 내가 그거 점검해 보라고 했었는데 깜빡했구만. 확인해 봤나?”
오석상의 질문을 희망의 돛단배처럼 여긴 차석기가 환하게 웃었다.
“네! 교감 선생님! 확인해 봤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3번 문제 답지 해설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사실이었다. 오늘 최지은을 데리러 가지 못한 시점에서부터, 학교에 나와 빠르게 뭐라도 해두어야 했던 것이었다.
“흐응,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전화도 안 받았어?”
“아, 아니, 내가 전화를 했는데 지은이도 안 받….”
“그러니까, 나중에라도 안 받은 내 잘못이다?”
“그게….”
“공공장소인 고속버스 안에서 내가 전화를 받기가 쉬웠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그….”
차석기는 점차 목소리를 줄여나가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차석기가 사과를 한 시점부터, 윤기준과 오석상은 조용히 차석기를 위해 기도했다.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그리고 최지은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짧고 굵게.
정확히 십 분 동안.
* * *
“인사가 늦었습니다. 한지현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래간만에 뵙네요.”
강문고에 모인 우리는 최지은 선생과 한지현 선생을 환영해주는 가벼운 다과회를 가졌다. 주말이었기에 당직 교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리를 비운 참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나저나….”
나는 낯빛이 어두운 차 선생을 보며 물었다.
“차 선생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한 시간 같은… 십 분이었어요….”
“쉿! 강 선생, 조용히 하게.”
오 교감이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무슨 일인지 윤 선생에게 눈길을 보내자 윤 선생은 그저 눈을 감고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아무튼, 저희가 오늘 온 이유가 있을 텐데요!”
“맞아요.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은 다음 달이잖아요? 그런데 사전 미팅을 요청하신 건 이유가 있으신 거죠?”
한지현 선생과 최지은 선생이 번갈아 가며 물었다. 그녀들의 말대로, 본격 멘토링은 이번 주가 아니라 앞으로 한 달 뒤, 학생들의 기말고사가 마무리된 이후였다.
그럼에도 오늘 사전미팅 명목으로 두 사람을 먼저 초대한 것이었다.
“그건 제가 설명드릴게요.”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들의 뒤에서 이사장이 나타났다.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이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최지은 선생과 한지현 선생이었다.
“호호, 멘토링 전에 먼저 와달라고 요청드려서 깜짝 놀라셨죠?”
이사장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앞으로의 교육 프로그램 방향에 대해서 요청, 아니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이사장은 두 사람을 향해, 그리고 강문고등학교 교사들을 향해 말했다.
“조만간 강진재단에서 강진장학재단을 설립할 거예요.”
그리고 이사장은 미리 인쇄를 해 둔 종이들을 한 장씩 나눠주었다.
“이건 초기 강진장학재단의 운영 방향이고요.”
“드디어 장학재단이….”
교사들 사이에서 감개무량하다는 감상이 나왔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 모두, 지금의 이 상황을 고대하면서 열심히 뛰어왔으니까.
“그런데 저희가 왜….”
“뒷장을 확인해 보세요.”
이사장의 말에 최지은과 한지현이 뒷면의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을 확인한 두 사람이 입을 턱 틀어막았다.
“이, 이사장님, 이거….”
“정말…로요?”
나는 이사장을 대신해서 가볍게 설명했다.
“강진장학재단은 서울에만 집중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지역에도 지부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이어서 이사장이 말했다.
“그래서 강원도 지부의 교육 자문위원으로 두 분을 추천하려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최지은과 한지현은 그저 멍하니 용지만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네, 네… 감사합니다.”
호호호, 웃으며 이사장은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 두 분이 서울시 프로그램에 참가하시게끔 추천드린 것도 다른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최지은과 한지현은 나를 비롯한 강문고의 입시 세미나를 통해 교육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왔었다. 실력을 쌓아온 것은 당연했고,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이 두 사람을 강진장학재단 강원도 지부의 교육 자문위원으로 추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았다.
‘경험이 부족해.’
강문고등학교에서 나와 함께 입시 시즌을 겪은 교사들과 달리, 이 두 사람은 내가 어떻게 입시를 가르치고, 학교에서 어떤 과정으로 교육을 했는지를 모른다.
아니, 듣기는 했지만, 그걸 직접 체감해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두 분에게 이번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게끔 말씀드린 겁니다.”
-어설픈 서울 시내 교사들보다는 교육에 뜻이 있는 분들이 오시는 게 좋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 당연하게도, 내 의견이 적극 반영된 결과였다.
서울시와 교육부에서도 서울시뿐 아니라 전국 프로젝트로 확대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참에, 두 사람에게 강문고에서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지금까지 어떤 형태의 특강을 진행했는지를 일부나마 경험하게 해주면 어떨까.
“이번 교육 프로그램, 같이 잘해 보죠. 그러면서 장학재단은 물론이고 지역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고해 보면 좋을 겁니다.”
최지현과 한지현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그저 바라만 봤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그리고 이사장을, 강문고 교사들을 돌아봤다.
“아, 당연히 학교에 오픈할 특강에 활용하셔도 됩니다.”
내 말을 들은 최지은이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애매한 얼굴을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희를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저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에 교사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이 멈춘 듯 얼어붙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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