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43화 (242/252)
  • 243화. 외전 (19) - 할 수 있는 말

    모든 팀의 토론이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금까지 발표, 토론을 했던 학생들의 내용을 각자 정리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이 학생들이 좋았습니다. 토론 자세가 참 좋았고, 무엇보다도 근거 자료가….”

    오석상, 심지석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각자 생각하고 있는 바를 이야기했다.

    “저라면 이 팀에게 점수를 많이 주고 싶군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석상의 말에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이번 대회를 열었던 이유가 이런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거니까요.”

    “다 좋았는데, 토론이라기에는 일방적 발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확실히 그게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심사위원들이 보고 있는 팀은 예진의 팀이었다. 그 말대로, 예진은 혼자 발표를 했을 뿐이지, 토론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과 협력할 여지를 남긴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심사위원들도 고민하고 있었다.

    “토론 점수를 깎더라도 충분히 수상할 자격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만약 역전 대성공 사례가 된다면 앞으로 있을 교육 복지 프로그램의 홍보대사로 추천을 해 줄 수도 있을 겁니다.”

    심지석도 오석상에 이어서 추가 의견을 냈다. 심사위원들은 고득점을 받은 수상 후보들을 찬찬히 살피면서 고심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회 주최 측인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들이 의견을 맞춘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수상 후보자가 적힌 명단 우측에 각각 어떤 상을 받을지를 체크했다.

    * * *

    한지효는 토론이 끝나고 한쪽 구석에 앉아 음료수 캔을 꼭 쥐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토론장에서 예진이 했던 말들이 맴돌았다.

    -12년이야.

    -그렇게 내가 부러우면 너도 나처럼 초등 6년, 중등3년, 고등3년 거지꼴로 살고 고른기회 지원하던가!

    더 이상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김밥 한 줄로 점심, 저녁을 모두 때워?

    맛집투어를 좋아하는 지효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강을 들을 컴퓨터가 없어서 센터 선생님에게 노트북을 빌려서 본다?

    얼마 전만 해도 인강 보는 데 필요하다며 최신형 태블릿PC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졸랐던 지효였다.

    끝끝내 그 제품도 부모님이 다음 주 주말에 사 주겠다고 약속도 해준 상태였다.

    그런데 예진은 아예 그런 기기를 구매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책상도 아니고 밥상을 펴고 앉아서 공부한다? 책상 위에 엎어져 누워만 있던 자신과 비교하면 얼마나 근성이 있는가.

    지효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져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다가도 다시금 손을 내리면서 생각했다.

    ‘그럴 줄은….’

    그 정도일 줄 알았나 뭐.

    솔직히 그렇게 심각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 그런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걸 알고 있는 학생들이 몇 명이나 있겠어?’

    성인이면 모를까, 청소년인 내가 얼마나 알겠어? 그리고 자기가 이야기도 안 했잖아. 그럼 우리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 식으로 지효는 자기합리화를 해나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부끄러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지효.”

    “…!”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지효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쌤…?”

    강명문이 자판기 앞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효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왜 혼자 청승맞게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

    지효는 강명문의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우물쭈물하며 침묵할 뿐이었다.

    “이거 봐 봐라.”

    그런 지효에게 강명문이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예진이네 팀이 오늘 토론 준비를 위해서 갖고 온 참고자료들이야.”

    그가 건넨 쇼핑백에는 참고 서적부터 시작해서 기사 인쇄본, 학술지 논문 인쇄본 등이 들어 있었다.

    심드렁하니 자료들을 확인하던 지효는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입시 제도로 분석하는 엘리트 특권 대물림>

    <특혜와 차별, 교육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는가?>

    <고등교육 복지 제도의 실효성 연구>

    예진이 친구들과 준비해 온 자료들은 모두 교육 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게다가 제목을 봤을 때는 교육 제도의 불평등에 대한 옹호 자료로 활용하려는 내용들로 생각되었다.

    “이건….”

    지효가 손을 멈춘 이유. 그건, 자료의 뒤편에 적혀 있던, 예진의 짧은 토론 발표문 내용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불평등을 보다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교육 복지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복지차원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엘리트 코스로 직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놀림거리로 작용할 수도 있는 복지 혜택들은….>

    예진의 이야기는 현 교육 제도와 복지 제도가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세간의 인식이 어떠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현 시점에서, 지금의 교육 과정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게 왜 교육 복지 차원에서 실질적인 문제로 발생하는지.”

    “….”

    “예진이는 그런 입장들을 모두 고려해서 팀원들과 이야기를 맞췄어. 이번 특별 전형 역차별에 대한 내용도 준비해 온 내용들을 보면 어느 정도 답변이 가능한 내용이었지.”

    강명문의 말대로 예진의 팀이 준비한 발표문은 토론에 적합한 발표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찬성과 반대 측을 모두 아우르는 의견 조율, 논문과 기사 등 구체적인 근거 자료 제시, 거기에 제시된 근거들을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최종 의견까지.

    <… 따라서, 교육 복지는 지금의 형태로 지원된다면 유명무실한 정책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보다 실용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를 들고 있던 지효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찬성, 반대. 그 어느 쪽에서도 예진이는 답변들을 다 할 수 있었어.”

    “….”

    “그런데도 방금 토론이 아니라 개인 발표를 했지. 왜 그랬을 것 같냐?”

    강명문의 질문에 지효는 입술을 작게 움직였다.

    “…주려고요.”

    “크게 말해 봐.”

    “저희한테… 알려 주려고요.”

    예진은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어떤 주제의 토론이 걸려도 답변을 할 수 있는 자료들을 준비했다. 답변 방향에서 선호하는 측면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지, 기본적으로 모든 상황에 맞는 답변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진은 개인 발표에 좀 더 집중했다.

    “이제 좀 알게 됐냐?”

    지금까지 자신의 상황을 꽁꽁 숨기고만 살았던 학생이었기에.

    여태껏 받아왔던 차별을, 차별이 아니라고 자기최면을 걸어 가면서 살아왔던 녀석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서도 ‘너는 부끄럽지도 않냐’며 공격당하는 녀석이었기에.

    “너희가 함부로 이야기할 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걸.”

    예진의 외침은 토론장 내의 청중들의 가슴을 파고들어갔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을 준 것이었다.

    “…네.”

    “알게 됐으면 뭘 해야 하지?”

    그리고 이제는, 더는 예진과 같은 상황에 놓인 학생들을 놀리거나 무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토론 자리에서 토론이 아닌, 일방적 발표를 한 것이었다.

    “….”

    “지금까지 네가 생각했던 가치관을 부숴야 하기 때문에 마음먹기 힘들 수는 있어. 하지만 말이다.”

    강명문은 지효가 들고 있는 예진의 자료들을 다시금 받아 의자 위에 텅, 올려두고는 말했다.

    “이 정도로 진심을 전했다면, 너도 거기에 화답해 줄 줄 알아야 한다.”

    지효 역시 오늘 토론장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예진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역시 사과하고 싶지는 않아요.

    마지막 말을 속으로 삼킨 지효는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행여나 사과할 생각이면 말 꺼내지도 말고.”

    “…네?”

    생각지도 못한 강명문의 말에 지효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못 들었어? 사과할 생각이면 하지 말라고.”

    “사과하라고 하시려던 거 아니었어요!?”

    황당하다며 묻는 지효를 보면서 강명문이 혀를 찼다.

    “지금 시점에서 사과하면 그게 진정성이 보이겠냐? 솔직하게 이야기해.”

    “어떻게요…?”

    강명문이 씨익 웃으면서 지효의 어깨를 종이몽둥이로 툭 건드렸다.

    “난 네 상황을 전혀 몰랐어. 다음부터는 이야기를 해 줬으면 해.”

    “네?”

    “힘든 게 있었으면 알려줘. 나도 조심할게. 너도 지금까지 이야기 안 했었잖아? 그러니까 이건 쌤쌤이야.”

    그 말을 들은 지효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들리냐?”

    “네, 솔직히, 조금은요.”

    강명문이 피식 웃으면서 지효에게 말했다.

    “예진이 같은 학생들의 상황을 모르는 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

    “그럼요?”

    “녀석들의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지.”

    예진처럼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의 모습. 그런 학생들의 모습들이 지금까지는 수면 위에 드러난 경우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가끔 언급해 주는 정도였지, 실제 교육 전문가들이 이런 학생들에게 집중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떤 복잡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예산 집행하기가 좀….

    -성과 측정은 제대로 되겠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제도였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정부에서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보다는, 수치적인 접근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예진과 같은 학생들의 실제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번 토론대회가 예진이에게는 자기 현실을 알려 주는 자리가 된 거고, 너희들에게는 그런 현실을 알 수 있는 자리가 된 거야.”

    “아….”

    “그런데 과연 우리가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애초에 교육 사각지대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은 공교육 교과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거지.”

    강명문의 말을 들은 지효의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펴졌다.

    “그러니까 가서 말해. 지금까지 몰랐던 거 이제야 알게 됐다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네가 가진 현실을 알았으니까, 나도 열심히 고민해 보겠다고”

    같이 생각해 보자고 제안해 봐.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고.”

    솔직하게 네 이야기를 해 줘서 고맙다고 이야기 해.

    “그게, 지금 네가 예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다.”

    학생들이 갖고 있는 모든 가치관들은 결국 주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들이 경제적인 여건으로 계급을 나누면 자녀들도 그 영향을 받는다.

    교사들이 성적만으로 학생을 줄 세워서 평가하면 학생들도 그 분위기에 휩쓸린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감사합니다.”

    지금 강명문의 앞에 서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지효처럼 자라기도 한다.

    “가 봐. 행사 다 끝나기 전에는 말해야지.”

    “훌쩍, 네…!”

    지효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다시 토론장으로 이동했다. 강명문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만 봤다.

    * * *

    시상식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축하해!”

    지효네 팀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예진의 팀은 아쉽게도 장려상에 그쳤다.

    -토론에 집중한 팀에게 수상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타당했다. 토론이라는 틀에 맞춘 팀들이 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까.

    그럼에도 예진과 예진의 팀원들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예진아.”

    친구들과 아쉬우면서도 후련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예진에게 지효가 다가왔다.

    “아, 축하해 최우수상.”

    “아니 그게 아니라….”

    “왜?”

    “그….”

    강명문에게 들었던 말들을 예진에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그저 부들부들 떨리기만 하는 입술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때린 후에야 진정이 되었다.

    “너 왜 그래!?”

    “후… 네가 알려 준 덕분에 나도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됐어. 그래서 고맙다고.”

    예진이 황당한 얼굴로 지효를 바라봤다.

    “그, 그리고! 그렇게 힘들었으면 말을 하지! 왜 안 했어!”

    “뭐야?”

    “네가 말 안 하니까 우리도 몰랐잖아! 미리 알려줬으면 우리도 신경 좀 더 썼지!”

    “상 받은 거 축하해 줬더니 왜 성질이야 성질은!”

    결국 예진과 지효는 단체사진을 찍기 직전까지도 말싸움을 했다. 그러다가 이내 푸흡, 웃으면서 키득거렸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이야기 제대로 할게.”

    “응.”

    잠시 망설이던 지효가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말했다.

    “나, 기자가 될 거야.”

    “이렇게 갑자기?”

    예진의 반응에 지효의 귓불이 뜨거워졌다.

    “왜, 왜! 갑자기 생각하면 안 되냐!”

    “그래, 열심히 해 봐라. 기자 돼서 뭐 하려고?”

    그 질문에 지효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알려 줄 거야.”

    “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런 일들, 알려 주고 싶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예진의 뒤에서 사회자가 외쳤다.

    “자, 사진 찍을게요! 다들 모여 주세요!”

    둘은 잡담을 멈추고 토론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강명문은 노트북 타이핑을 멈추고는 사진 촬영을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 풀었네.’

    자리에서 살짝 일어선 그의 앞에 노트북 화면이 밝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와 복지 정책의 문제점을 토대로 교육 사각지대 학생들의 현실적인 면모를 명확하게 짚어 내면서 동아리 부원들과 해당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함. 자신의 경험담을 중점으로 학술지 논문을 비롯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여….>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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