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41화 (240/252)

241화. 외전 (17) - 12년이야.

멘토링을 하기 위해 센터에 남은 학생들은 각자 수업을 마치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었다.

“그거 알아?”

“뭐?”

“태성이 어플, 지금 인기 엄청 많다?”

은장의 말에 정석이 핸드폰을 열었다. 그리고는 태성의 어플 <연애세포의 기적>을 눌렀다. 어플 첫 화면으로 다운로드 수 10만을 달성했다며 이벤트가 펼쳐졌다.

“진짜네. 미리 태성이 기업에 숟가락이라도 얹어 둘까?”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정석, 명천, 은장의 뒤로 그림자 하나가 스윽 다가왔다.

“뭐가 잘 나간다고?”

“으악! 쌤!”

닌자처럼 은밀하게 다가온 박은환의 모습에 졸업생 세 명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심장 떨어져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아무튼, 태성이 어플이 잘 나간다고?”

“네. 쌤도 이거 가입하셨죠?”

은장의 말에 박은환은 속으로 ‘나 vip야’라는 말을 삼켰다.

“응, 나도 했지.”

“지금 10만 다운로드 이벤트로 어플 내 제휴 기업 이용 쿠폰 뿌린대요. 여기 아시죠? 저희 다음 주에 신촌에 있는 파스타집 가기로 했어요.”

은장은 순진무구하게 말하면서 어플 화면을 보여 주었다. 최근 sns에서도 감성 터진다며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가게였다.

“이런 가게랑 제휴도 하고, 태성이가 이런 쪽 능력이 좋기는 한가 봐.”

“그러니까. 아, 쌤도 같이 가실래요? 이거 6인까지도 같은 할인 혜택 받을 수 있는데, 기왕 가는 거 사람 많으면 좋잖아요!”

그렇게 박은환에게 식사를 제안한 은장은 명천에게도 눈으로 물었다. 괜찮지? 라는 의미를 파악한 명천도 거들었다.

“저번에 소개팅도 이상한 사람 소개해드려서 죄송하기도 하고… 같이 가요 쌤.”

“다른 친구들도 더 부르려고 했으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돈도 더치페이!”

“다들 이제 알바를 하든 뭘 하든 20대니까요!”

명천, 은장, 정석이 한 마디씩 날리자 박은환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기쁘지만, 또 한편으로는 벌써 얘들이 2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더 먹었고….’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제자들이 자신을 생각해 주는 건 또 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 가자. 일단 이번 대회 끝나면.”

“네! 약속하셨어요?”

은장이 핸드폰 캘린더에 일정을 메모했다.

“그런데 거기 이벤트에 혹시 사주 카페 상품권은 없었니?”

“사주카페… 있었나…?”

박은환이 묻자 세 학생들 모두 잘 모르겠다고만 답했다.

“그런데 사주는 왜요?”

지난 번, 홍유진과 카페에서 만난 후 사주카페에 전화했을 때 개명에 필요한 비용이 제법 비쌌었다. 그 이야기는 숨긴 채 박은환은 태연하게 말했다.

“제휴 업체의 추가 상품들에 대한 혜택도 적용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 태성이한테 피드백으로 알려 줘야겠다.”

박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잘하고 있겠지?’

사주, 개명 등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예진이 걱정이 제일 많이 되는 것도 맞았다. 한숨을 한 번 쉰 박은환은 현장으로 향한 강명문에게 톡을 보냈다.

“… 뭐야?”

톡을 보내자마자 강명문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영상을 틀자, 앳된 고등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들려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쌤 뭐예요?”

“썰전인가?”

은장과 정석이 다가오자 박은환은 멍한 얼굴로 핸드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이제는 휴게실에 들어온 졸업생들이 모두 핸드폰을 통해 송출되는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면을 확인한 졸업생들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이이, 이, 이거….”

“이래도 괜, 찮…나?”

영상 속에는 두 여학생이 소리를 지르면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심사위원이라는 사람들, 사회자, 방청객 모두가 이 현장을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쌤, 무슨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정석의 한탄이 영상 속 여학생들의 목소리에 묻혀 휴게실 공기 안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 * *

예진은 머리끈을 들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머리카락을 힘차게 정돈하고는 자리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할게.”

“응?”

“전부 발라 버리겠어.”

어쩐지 눈에 독기라도 품은 것 같은 예진의 모습에 팀원들의 눈에도 두려움이 서렸다.

“그럼 이어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다시금 토론이 시작되었다.

<대학 입시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 반드시 필요한가?>

토론장 뒤로 다시금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사위원들도 예진의 팀에 귀를 기울였다.

“저희 팀은 찬성 측에서 발표를 하겠습니다. 즉,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예진의 말을 들은 지효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어디 할 테면 해 봐, 라는 의미였다. 예진도 지효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입꼬리를 올려 되돌려 주었다.

‘저게…!’

지효가 눈을 부라렸지만, 예진은 콧방귀를 뀌고는 마이크를 굳세게 붙잡았다.

“먼저, 저희가 찬성 측으로 발표를 하는 이유는 제비뽑기에서 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동아리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무슨 소리야!’

‘아니, 우리도 반대 측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그런 친구들의 중얼거림을 모른 척하고는 예진이 말했다.

“저희는 애초부터 찬성에서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는 차상위계층에 해당되는 학생이며, 지금까지 사교육 한 번 받아 보지 못했고, 오로지 혼자서만 공부를 해 왔던 학생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 전형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예진은 장내의 술렁임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 앞에 강명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그걸 신호로 예진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조리 쏟아 내기로 결심했다.

“우선, 정원 외 선발에 대한 부분입니다. 정원 외 선발은 대학에서 필수로 선발하지 않아도 되는 인원입니다. 즉, 희망하지 않는다면 단 한 명도 선발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석상과 심지석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의 교육과정에서 정원 외 선발로만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을 오픈하게 될 경우, 사립대학들은 자신들의 기준을 두고, 사회적 약자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예진은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우리나라 입시 전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제점이라면 수두룩하게 많아.’

정보력의 부족, 사교육 혜택 불가능, 공교육에서의 복불복 등, 입시에 있어 예진과 같은 학생들에게 열려있는 교육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었다.

“보통 저소득층 같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학비나 교과서, 식비 등을 지원해 줍니다. 그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을까.

‘일시적일 뿐이야.’

예진이 생각하기에 금전적 도움은 아주 잠깐의 도움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그 이후의 로드맵이었다.

“그러나 많은 저소득층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고졸만으로 취업을 해야 한다면, 고졸 취업은 쉽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Yes라고 답할 수는 없는 현실이었다. 오히려 고졸취업을 할 경우에는 차별이란 차별을 더 많이 받게 될 수도 있었다.

“대학에 가려고 공부를 해도, 적당히 점수 맞춰서 지원해서 가더라도, 대학 생활 자체를 버텨내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학업역량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학비까지는 장학금 지원을 받는다 쳐도, 생활비의 문제가 걸려 있었다.

예진이 장학금이 나오는 학교들을 보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순히 등록금만이 아닌, 교육비 지원이 필요한 것이었다.

중요한 건, 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반, 그리고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들의 유무였으니까.

“모두가 노트북을 하나씩 들고 다닌다면, 저희도 그걸 들고 다녀야 합니다. 학과 공부에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하다며 그걸 구매해야 합니다.”

특히, 건축학과나 컴퓨터공학과처럼 고성능 컴퓨터가 필수인 학과에 재학하는 학생들은 더더욱 문제가 컸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가, 앞으로도 더 딸려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한 번의 특혜가, 과연 특혜일까요?”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어떻게 보면 혜택이었다.

그러나 입학한 이후에는 어떨까?

오히려 더 큰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팀과제에 제때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보세요.”

예진이 꺼낸 기사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버티지 못해 알바를 하느라 학점이 망가진 사례가 적혀 있었다.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약자들은 이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 제가 그리는 저의 미래는 그렇습니다.”

술렁이던 장내는 조용해진 지 오래였다. 예진은 방청객들을 둘러본 후 지효를 바라봤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대학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흔히들 사다리라고 한다.

예진이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는 사다리가 주어져 있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출구, 그 시작이 바로 대학교 학벌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저 같은 약자 계층들은, 평생을 약자로서만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크게 심호흡을 한 예진은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말했다.

“약자라는 세상의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학벌이라도 제대로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형이 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렇지 않으면, 저 같은 사람들은 평생을,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원망하면서 살게 될 거니까요.”

발표를 마친 예진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장내에는 숙연한 기운이 감돌았다. 반면, 심사위원들은 제대로 된 의견이 나왔다면서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야… 뭐야…!’

지효는 설마 예진이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모두 밝힐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솔직한 이야기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으로 보였다.

자칫 잘못하면 대회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좋은 발표 잘 들었습니다. 이제 질문을….”

“저부터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을 끊은 지효가 마이크를 잡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발표자에게 묻습니다. 너, 너는… 그런 특별 전형으로 입학한다는 게 부끄럽지도 않니?”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한 자연스러운 반말. 거기에 더해 지효의 입술은 쉬지 않고 달싹거렸다.

금방이라도 생각한 그대로를 뱉을 것 같은, 흡사 레이싱카가 공회전을 거는 듯한 모습이었다.

약간의 흥분, 그리고 옅은 분노가 어느새 그녀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전형, 부끄럽지 않냐고!”

지효가 생각했을 때, 이 일은 충분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일반 학생들과 경쟁하지 않고, 혜택을 받아 가면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떳떳하지 못하고, 당당하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지효에게 있어서,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은 그런 의미를 갖고 있었다.

“풉.”

그러나 예진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코웃음을 날렸다.

“부끄럽냐고?”

“그, 그래! 그런 전형으로 합격하면, 네가 당당하게 대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다소 공격적인 질문일 수 있었다. 사회자가 지효를 말리려는 순간, 심사위원인 오석상이 사회자에게 신호를 주었다. 잠시 두고 보자는 의미였다. 사회자도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게 왜 부끄러워?”

“뭐, 뭐라….”

“너도 나처럼 특별 전형 지원 가능하면 여기로 넣고 싶다며. 부럽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부끄러운 거야 이게?”

토론에서는 적절치 못한 스킬.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예진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화살처럼 꽂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효는 자신이 했던 언행대로 반박하는 예진을 보면서 입술만 꿈틀거렸다. 얼굴마저도 붉게 달아올랐다.

“정말 내가 부러우면, 너도 나처럼 살아 보지 그래?”

지효는 그게 오로지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너처럼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지금 나 놀리는 거야?”

“그래, 넌 나처럼 살 수 없어. 아니, 지금 와서 살아 본다 한들 내 인생을 이해하지도 못해.”

예진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지효를 똑바로 쳐다봤다.

“12년이야.”

“뭐?”

“12년이라고. 내가 온갖 편견 속에서 시달려 온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해진 예진의 눈빛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섬짓한 결의를 느낄 수 있었다.

독기.

그걸 확인한 강명문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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