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40화 (239/252)
  • 240화. 외전 (16) - 절박함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 예진과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항상 비슷했다.

    -예진아! 이거 봐봐! 예쁘지?

    -예진아, 여기 진짜 맛있데.

    -우리 뮤지컬 보러 갈까?

    -방학 때 해외여행 갔다왔는데 너희는 어디 갔다왔어?

    -이 가방 진짜 예쁘지 않냐? 사러 갈까?

    딱히 부자 동네인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엄청나게 잘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예진에게 있어서 딴 세상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일본이나 중국, 혹은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친구들. 한 번에 몇만 원은 하는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친구들. 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가방이나 옷을 사러 다니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예진은 항상 친구들과 어울리고만 다녔지,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거나 하지는 못했었다.

    ‘그야….’

    예진에게는 이런 주제에서 꺼낼 만한 추억이 없으니까.

    그래서 예진도 그런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자신도 감상한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 열심히 이야기를 했다. 책이나 학교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 그러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잘 숨기고 있어.’

    그렇게 생각한 예진이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사실 예진과 어울리는 친구들은, 예진의 형편을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이나 들고 다니는 가방, 관심사, 가족 이야기, 학원 등. 예진의 형편을 유추할 수 있는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친구들은 그걸 모른 체했다.

    -예진이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최대한 꺼내지 말자.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다른 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친구들은 그 말에 동의했다. 설령 예진의 형편이 본인들의 예상과 다르다 하더라도, 어쨌든 예진이가 관련된 경험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모든 친구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안 맞으면 안 놀면 되잖아. 굳이?

    지효가 바로 그러했다. 지효는 예진의 형편을 어렴풋이 유추하고 있었다. 자신들처럼 평범하게 학원을 다니지도 않고, 옷이나 가방에 관심도 없었다. 영화도 자주 안 보는 것 같았고, 뮤지컬은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였다.

    그런데도 굳이 예진과 함께 어울려 왔던 건, 다른 친구들이 예진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에이, 그래도 친군데….

    -흐음… 그렇구나. 알았어, 나도 그렇게 할게.

    마지못해 친구들에게 동의를 한 지효는 언제든 예진을 공격할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다 적절한 때가 나타났다.

    -너도 이거 들어?

    바로, 예진이 친구들 모르게 서울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제 시간에 신청하기도 어려운 프로그램을, 예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너도 신청을 했던 거냐, 너도 선착순 성공한 거 보니까 신기하다, 한부모나 차상위 같은 애들은 신청 잘 안 해서 바로 된다던데 좀 부럽다.

    그리고 지효는 발견했다.

    한부모, 차상위 이야기를 했을 때 예진의 얼굴 변화를.

    예진의 반응을 확인한 지효는 속으로 생각했다.

    ‘찾았다.’

    그때부터 지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진을 압박했다. 마치 먹잇감을 궁지로 몰아넣는 맹수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진은 자신의 눈치 없는 척하는 공격을 받아 의기소침해지다가도, 다시금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오히려 교육봉사를 갔을 때는 무언가에 각성한 것처럼도 보였다.

    그 모습을, 지효는 불쾌하게 여겼다.

    ‘인정 못 해…!’

    특히, 예진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으면 고른기회 전형, 저소득층 전형을 지원할 수도 있었다. 평소 자신이 부럽다고 생각하는 그런 전형으로. 그렇게 되면, 자신보다 성적이 다소 낮은 예진이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우리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입에서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은 필요하다면 필요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반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나치게 공격적인 표현을 피하고자 했다. 지금 이 자리는 토론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상대측 이야기도 들어줄 여지를 만들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대부분 초중고 12년 동안 제대로 학업수행역량을 키우지 못한 학생들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어렵게 입학한 대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지효의 말이 끝나자 팀원 남학생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또한, 해당 특별 전형의 정원은 정원 외에서 선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정원 내에서 선발하면, 일반전형 지원 학생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팀원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즉, 별도로 지원할 수는 있지만, 기존의 학생 수에서 선별하는 것은 그만큼 일반 학생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준비한 기사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을 확대할 경우 오히려 대학 내에서 적응을 못 해 도태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학생이 많아질 경우 대학 내의 분위기를 무너뜨린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효와 지효의 팀원들은 그렇게 각자가 준비해 온 자료들 중 이번 주제에 적합한 근거들을 제시했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아니었지만, 최근 우리나라 저소득층 통계, 이들의 대학진학율 등을 보여 주었고, 관련된 기사들을 토대로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라서, 저희는 특별 전형은 역차별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일반 학생들에게 대학 입시는 물론이고, 입학한 이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전형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게, 지효네 팀의 발표는 마치 이전부터 이런 전형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체계적이면서도 주장에도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묵을 깬 사람은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오석상이었다.

    “잘 들었습니다. 궁금한 게 좀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네!”

    지효의 대답을 들은 오석상이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

    “이번에 발표한 학생들은 모두 학교에서 사회적 약자라는 규정에 해당된 친구들과 함께 생활을 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러자 지효가 고개를 돌려 친구들을 돌아봤다.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지효도 예진이 실제 거기에 해당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기에,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할 수는 없었다.

    “저… 희 중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번 토론 대회의 취지는 현장에서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만약 이 학생들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학생들과 어울려 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면, 나름대로 주장의 근거로서 받아들이려 했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오석상은 질문을 마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학생들은 그럼 이 특별 전형으로 합격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 것 같나요?”

    오석상에 이어서 심지석이 물었다. 그러자 지효가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 자리는 현장에 있는 학생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는 자리니까요.”

    심지석의 말에 지효가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부럽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부럽다?”

    “네. 쟤네는 성적 낮아도 더 높은 학교 갈 수 있구나. 나도 저게 가능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요.”

    그 말을 들은 심지석이 애매모호한 미소를 짓더니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네, 상대팀은 반대 의견 이야기해 주세요!”

    이후, 예진을 비롯한 예진의 팀원들은 지효네의 주장에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한다면, 지효네 팀원 중 한 명의 질문 정도였다.

    “어… 그래도 아예 반대하면 그건 또 다른 차별이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저희는 정원 내 선발이 아니라 정원 외 선발로 말씀드렸습니다. 일반 학생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여지는 있습니다.”

    물론 반박에 대한 반박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어서 바로 찬성 측 주장을….”

    “자, 잠시만요!”

    토론이 계속해서 이어지려는 순간, 예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하나만 더 질문하고 잠깐 쉬었다 해도 될까요?”

    사회자가 심사위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심사위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질문이죠?”

    “방금 반대 측에서는 사회적 약자 학생들의 학업역량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기회가 주어지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질문에 지효가 웃으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아니면 지금 질문자가 그런 학생에 해당이 되는 건가요?”

    야실거리는 지효를 보면서 예진은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부들부들 떠는 예진의 손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지효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분위기가 조금 과열되었는데요, 5분만 쉬었다가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긴장이 풀린 학생들이 너나할 거 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효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긴장했다.”

    “그러니까. 근데 우리, 좀 공격적이지 않았어?”

    “토론에서 한 쪽 편을 잡게 되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대로 양쪽을 모두 생각해서 이야기를 했다면서 지효와 팀원들이 만족스러워했다.

    ‘차예진, 뭐라고 할래 이제?’

    지효는 예진이 대회 현장을 나가는 걸 확인했다.

    차라리 이대로 포기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효는 앞에 놓인 물을 마셨다.

    * * *

    “….”

    예진은 화장실 앞에서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지효가 했던 말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적응을 더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자신도 친구들과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한 적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일반 학생들에게 차별 요소로 적용될 수도 있는 정원 내 선발. 그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초 학력 부족….’

    그것 역시 일부 맞는 말이기도 했다. 일반전형으로 지원하는 평범한 학생들보다 성적이 낮아도 합격할 수 있는 전형이 맞았으니까.

    잘못하면 대학 공부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휴….”

    “땅 꺼지겠다, 이 녀석아.”

    갑자기 날아든 종이몽둥이가 예진의 이마를 살짝 때렸다. 깜짝 놀란 예진은 고개를 들어서 상대를 바라봤다.

    “아, 쌤….”

    “왜 이렇게 풀 죽어 있어? 방금 지효한테 한 방 얻어맞아서 그래?”

    예진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지효네는 나름대로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 꺼냈어. 이제는 예진이 너도 그렇게 해야지.”

    “그건… 그렇긴 한데…요.”

    솔직히 어떻게 찬성 측 의견을 전개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예진을 보면서 강명문이 말했다.

    “조언 하나 해 주마.”

    “조언이요?”

    “뻔뻔해져라, 차예진.”

    그 말을 들은 예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뻔뻔…?”

    “그래. 네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전형이 바로 사회적 약자 특별 전형이야. 그걸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왜 찬성측에서 이야기하기를 꺼려해?”

    강명문은 예진을 향해 종이몽둥이를 살짝 흔들었다.

    “네가 지금 하려는 건 잘못된 게 아냐.”

    “하지만 지효 이야기 들어보면 제가 다른 친구들 피해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겨우 그까짓 걸로?”

    예진의 말을 끊은 강명문이 말했다.

    “이게 피해를 주는 것 같냐?”

    “어….”

    “너는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갖은 피해를 받아 왔어. 꼴랑 이번 한 번 도움 좀 받아보겠다는데, 그게 잘못됐냐?”

    강명문은 지금까지 저소득층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왔다. 강남서초 명문고인 강문고등학교에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았다.

    -선생님, 저 붙을 수 있을까요?

    최동석도 그에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동석은 특별 전형에 어설프게 걸치지 못하였기에 더더욱 지원 전형에 한계도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감 역시 그 누구보다도 없었던 녀석이었다.

    동석 뿐만이 아니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저 솔직히 공부 자신 없어요….

    -대학 가서도 알바만 하느라 공부 못하면 어떡해요…?

    사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오픈했던 특강에서, 강명문은 학생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 왔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강명문이 했던 말이 있었다.

    -그래서, 이대로 포기할 거야?

    지금 현 상황에 순응하고, 충분히 열려 있는 가능성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열려 있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인가.

    “현실에 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가서 졌다고 해. 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강문고등학교에서 만났던 녀석들은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절박함이 생기지 않을 때도 있는 거다.”

    “절박함이요?”

    고개를 끄덕인 강명문이 토론 현장을 슬쩍 바라봤다.

    “교대를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없었으면, 네가 이렇게 열심히 입시 준비를 했을까?”

    “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예진이 입을 벌린 채 강명문을 바라봤다.

    “선생님, 되고 싶잖아?”

    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한 네 이야기를 들려줘. 이번 토론 대회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건 그런 거니까.”

    몸을 돌린 강명문은 예진의 어깨 위에 손을 툭 올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다시 토론 현장으로 향하는 강명문을 보면서 예진은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

    주장의 방향성을 확정한 예진의 눈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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