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38화 (237/252)
  • 238화. 외전 (14) - 나쁜 예감

    북부 청소년 센터의 대강의실. 현재 강의실 내부에는 올해 진학이나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모여 앉아, 각자에게 필요한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으어어….”

    “어어으어….”

    “으아오어….”

    그리고 좀비같은 신음소리가 강의실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이고야….”

    “벌써 지쳤나?”

    정석과 태웅이 한숨을 쉬면서 강의실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자, 자 집중!”

    “흐억!”

    “캬악!”

    이상한 비명소리가 섞여서 들려왔지만, 정석은 신경쓰지 않았다.

    “특강 시작한 지 겨우 삼 일째야 삼 일째. 다들 강명문 쌤한테 개인 상담 받았지?”

    예진을 포함한 대입 또는 취업 준비 수험생들이 힘없이 대답했다.

    ““네….””

    맥빠지는 소리를 들은 정석이 소리쳤다.

    “그러면 더더욱 힘을 내야지! 지금 너희들에게 필요한 건 뭐다?”

    “규칙적인 생활과 개빡쎈 수험 준비요….”

    “목소리가 작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동석도 단상 위로 올라와서는 소리쳤다.

    “개빡쎈 수험 생활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세요!! 겨우 이걸로 우는소리 하지 마세요!! 나 때는 말이죠….”

    그렇게 이어진 동석의 잔소리에 학생들은 귀에서 피가 나는 게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동석이 하는 말은 이미 첫날부터 계속해서 들어왔던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파이팅이 없어요!

    -헝그리 정신 몰라요? 헝그리 정신!

    -밥 먹을 시간을 왜 생각합니까! 그 시간에 전공적합성 키울 생각을 해야지!

    -백반 먹지 말고 김밥 먹으라고요 김밥! 점심에 반 줄, 저녁에 반 줄! 배고프면 샌드위치 사서 입에 물고 하세요!

    그런 말을 듣는 멘티 학생들도 적절히 반항을 해 볼 법도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해 볼까 생각한 학생들도 많았다.

    그런데 하필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최동석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내신 등급도 낮은 상황에서 오로지 전공적합성과 발전가능성만으로 연천대 합격 신화를 이룩한 사람.

    자율학습 시간에도 도시락을 사 먹기 힘들어서 김밥을 먹고, 샌드위치 하나로 하루를 버텼던 사람.

    그게 바로 최동석이었다.

    지금 학생들에게 헝그리 정신이 없다느니, 파이팅이 없다느니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니 반항할 의지가 생기려다가도 김이 팍 새면서 잔소리를 계속해서 들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면 반성할 여지도 많았다.

    본인들이 지금까지 안일하게 살아왔던 것은 사실이었고, 지금도 공부 습관, 탐구 습관이 잡혀 있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맞았으니까.

    “지금 이대로 가면 장밋빛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그저 실패, 실패, 실패!!! 패배의 쓰디쓴 고배만이 보입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게다가 최근 연애를 시작한 동석의 기분은 한층 더 업 되어 있었다. 여자친구인 은솔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멘토링 프로그램에 보다 적극적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사실 그것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으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으아아! 해 보겠습니다!!!”

    학생들이 목구멍을 쥐어짜 내듯이 외쳤다. 그 외침을 결심의 의지로 해석한 동석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어땠어?’

    그리고 은솔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의기양양하게 눈빛을 보냈다. 은솔이 오른 엄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

    “좋을 때다 아주.”

    두 사람의 모습을 정석이 보면서 혀를 차는 것도, 최근 멘토링 과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은장, 명천을 비롯한 다른 졸업생들이 숨을 죽이고 키득거리는 것도 덤이었다.

    * * *

    “하….”

    박은환은 명천의 소개를 받은 남성과 1차 만남을 가졌다. 상대는 명천의 대학 선배의 사촌 형으로, 명천과는 조금 먼 사이였지만, 어떻게든 연결을 해 준 것이었다.

    “무슨 저딴 새X가 다 있어?”

    결과적으로 소개팅은 대실패였다. 아니, 실패가 아니라, 그냥 최악이었다.

    -강문고 여선생님을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유명세를 탄 이후,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 남자들은 꽤 많았으니까.

    문제는 다음 멘트였다.

    -강문고 여선생님들이 참 아름다우시더군요 하하하!

    자신을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로 소개한 남성은 그 이후 자기 자랑만 한참을 늘어놓았다. 자기 회사가 얼마를 벌었다느니, 어떤 업적을 달성했다느니, 최근에 차를 뭘로 바꿨다느니 하는 따위였다.

    ‘지겨워.’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분명 번호를 받아서 톡을 주고받을 때는 젠틀하다고 생각됐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완전 딴판이었다.

    -게다가 제가 공무원 여성과 결혼하고 싶었거든요. 박은환 선생님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크. 운동하시나봐요? 게다가 선생님이시기도 하니 저와 잘 어울리시는….

    그런 헛소리를 들어주다가 더 이상은 듣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박은환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참이었다.

    ‘한소리 던졌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려나.’

    박은환은 나가면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신 같은 호색한과 어울릴 생각 없으니까 이만 꺼지세요. 아니, 제가 꺼지도록 하죠.

    -뭐, 뭐라고요?

    -예쁘고 몸매 좋은 공무원 여성과 결혼 자알 해 보시죠. 당신 같은 쓰레기랑 누가 결혼할까 싶지만.

    그리고 지금은 그 말들만 했었다는 게 조금 후회된 참이었다.

    “아오, 아빠도 팔아서 성희롱으로 고소나 때린다 해 버릴걸!!!!”

    아니지, 지금이라도 해 봐? 박은환의 아버지는 은퇴를 한 후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 딸이 소개팅 자리에서 성희롱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법으로 완전 조져 버릴(?)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 사실을 알리면 난리가 날 게 뻔했다.

    “왜 소개팅만 하면 저런 놈들만….”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다.

    사실 최근 몇 년간 소개팅을 했던 남자들의 레퍼토리가 하나같이 비슷하긴 했다.

    “진짜 더럽지 않아?”

    소개팅 자리를 나오자마자 박은환은 강문고 미술 교사인 홍유진과 카페에서 약속을 잡았다. 지금 두 여성의 앞에는 아메리카노 두 잔이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강문고 사학비리 사건 이후로 절친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박은환은 홍유진에게 말을 편하게 하게 되었고, 홍유진도 선배라고만 부를 뿐, 사실상 친한 언니처럼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렇게 자주 만남을 가져왔었다.

    “선배, 그걸 그냥 나왔어요?”

    “아니, 개빡쳐서 소리 지르고 나왔어. 어이가 없어서 참나.”

    박은환은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시간이 조금만 더 늦은 때였다면 맥주를 마셨을 텐데.

    “그런데 저도 비슷한 일 많이 겪어요.”

    “홍 선생도 그래?”

    들어보니 홍유진도 강문고의 인어공주라는 수식어가 붙은 다음부터는 소개팅 자리에 나갈 때마다 이상한 놈들만 꼬였다고 말했다.

    “수영선수 하셨으면 몸 엄청 좋으시겠다면서 같이 워터파크부터 가자고 하는 변태들 천지에요.”

    “미친놈들이네.”

    두 사람은 선을 넘은 소개팅남들을 욕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데요, 선배.”

    “응?”

    “오늘 이야기해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홍유진은 무언가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손을 불안하게 떨었다.

    “혹시 소개팅에 자꾸 빌런들만 오는 이유가….”

    “응응. 이유가?”

    “강문고 선생님이라고 이름이 너무 알려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강문고 사건이 아니었다면, 외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미리부터 알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 테니까.

    “그래… 일리가 있어….”

    “근무지를 숨겨도 이름을 밝히면 다 물어봐요. 혹시 강문고의… 라면서.”

    홍유진이 한숨을 쉬다가 말했다.

    “이거 개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니까요.”

    그 말에 박은환이 깜짝 놀라며 홍유진을 바라봤다.

    “개명?”

    “네, 이름을 바꿔야 사람들이 잘 모르지 않을까 싶어서….”

    홍유진의 말에 박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래서 개명을 하라고….”

    얼마 전 받았던 사주풀이가 생각났다.

    이름을 바꾸라는 게 이런 의미였단 말인가.

    “그런데 그거 사주랑 상관없는 거 아냐?”

    “네? 사주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묻는 홍유진의 질문을 무시하고 박은환이 홍유진의 손을 맞잡았다.

    “고마워.”

    “네, 네?”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는 홍유진을 뒤로하고 자리를 나온 박은환은 곧장 사주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개명을 하면…!’

    오늘 만난 그런 쓰레기 남자들과의 만남도 영영 안녕이다!

    어쩐지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박은환이었다.

    * * *

    예진은 오늘도 토론 대회 대비 과외를 받았다. 다른 학생들도 비교과, 교과 공부 등 각자에게 필요한 공부들을 집중해서 받았다.

    “아니지! 이때는 좀 더 발성을 이렇게! 복식호흡으로!”

    “토론에 복식호흡까지 써야 해요…?”

    이상한 설명들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예진은 은장과 민주와 함께 토론 공부를 했다.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도 포인트가 따로 있었고, 주장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 사항들도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거기에 발성 등 스피치 방식까지 고려해야 했다. 토론이라는 게 이렇게나 복잡한 고민과 생각, 공부를 거쳐야 하는 분야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 어려웠고, 체력적으로도 힘들 때가 있었다. 내신 상승을 위한 교과 공부도 해야 했고, 토론 이외에도 독서활동을 비롯한 교과목 수행평가들도 준비해야 해서 시간도 많지 않았다. 압박감 역시 당연히 있었고, 잠자는 시간도 확연히 줄여서 피곤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밌어!’

    예진은 처음으로 공부가, 대회 준비가 재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문고등학교 졸업생 선배들, 강문고등학교의 강명문 선생님과 함께 입시 준비를 하는 이 과정들이 모두 즐겁게만 느껴졌다.

    “먹으면서 공부해, 얘들아!”

    은솔이 마련해 온 간식들을 나눠 먹으면서는 선배들과 시시콜콜한 잡담도 해나갔다.

    “그런데 선… 아니, 언니는 교육봉사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난 스무 살 때부터!”

    “그럼 졸업하자마자 신청하신 거예요?”

    “아, 그게….”

    “우리는 자발적인 건 아니었고, 강제적으로 담임쌤 조교를 했어.”

    억지로 참여한 선배들이 지금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고, 이 자리에 모인 후배들을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그 사실이 예진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어 주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진은 지금의 모든 과정들이 즐겁게 느껴졌다. 이제는 선배들을 동경함과 동시에 친근한 언니오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과정들을 지나면서 정말 입시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진아!”

    집으로 돌아가려고 막 센터 문을 연 지효가 예진을 불렀다. 예진은 지효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어, 안녕. 다 끝났어?”

    “응. 오늘 진짜 힘들었어. 난 부족한 교과공부 하는데, 정석 오빠가 너무 빡빡하게 일정을 주셔서….”

    지효도 정석 선배에게는 오빠라고 하는구나. 내가 은장 언니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던 예진에게 지효가 물었다.

    “그런데 너도 대회 나가?”

    “대회?”

    “응 토론 대회! 사실 나도 신청했거든!”

    지효는 예진과 다른 동아리였다. 그래서 지효와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효가 대회에 같이 나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감정은 복잡미묘했다.

    ‘같은 팀이든, 경쟁자든 만나고 싶지 않아.’

    교육정책에 있어서 평등을 중시하는 지효였다. 분명, 입시 정책에 대한 관점에서의 차이가 발생할 터였다.

    게다가 만약 지금 시점에서 예진이 저소득층 전형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걱정되었다.

    “어, 응. 난 동아리에서 한 게 없어서 이거라도 나가라고 하셔서….”

    어쩐지 이렇게 답하지 않으면 괜한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진은 자신의 입시 전략을 숨겼다. 지효도 그런 세세한 사항은 알지 못했기에 그런 거였구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진의 옆으로 왔다.

    “우리도 팀으로 나가! 대결하게 되면 잘 부탁해!”

    “으, 응! 나도… 잘 부탁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예진은 생각했다. 제발 다른 팀하고 붙어라. 어차피 점수제니까 지효네랑만 안 붙으면 승산이 있을 거다.

    그리고 며칠 뒤, 토론 대회 대진표가 서울시 청소년 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하….”

    발표 점수로 평가하는 서울시 청소년 교육 정책 토론 대회. 예진의 팀이 상대할 팀은 지효네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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