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외전 (10) - 바로 제가!
은솔은 초등학교 봉사시간에 제때 맞춰서 들어가지 못했다.
지각은 아니었다. 몸이 아프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천사급식>
천사급식 대표와 함께 초등학생들은 물론이고, 멘티 학생들에게 나눠 줄 일일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잠시 시간을 뺀 것이었다.
“은솔이, 대학 물 먹더니 많이 변했는데?”
“에이 대표님. 제가 대학 들어간 지가 언젠데요.”
아직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천사급식 대표를 보면서 은솔이 히죽 웃었다.
은솔은 연희대에 합격한 이후 천사급식 대표를 찾아갔었다. 이제 다시 급식봉사를 하셔도 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아직은 쉽지 않은데….
사실 오성주가 먼저 접촉해 오기도 했었다.
-지역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세요.
오성주의 제안에 천사급식 대표는 결정을 망설였었다. 확신이 없었고, 자신도 없었다. 아무리 경영 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들, 결국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던 대표였으니까.
그런 천사급식 대표, 유천성이 마음을 돌리게 된 건, 은솔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표님! 같이 해요 저희랑! 저도 도울게요!
-너 오늘이 몇 번째 전화인지….
-오늘로 서른다섯 번째!
-다 좋은데 새벽에만 하지 말아 줘 제발.
그래도 은솔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유천성은 포기하고 있었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사급식>은 강남서초구 교육복지프로그램의 간식을 대표하는 업체로 거듭났다.
그렇게 유천성은 교육복지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 한 번씩 디저트, 간식들을 챙겨주는 역할을 해 왔다.
물론, 그 혼자서 하는 건 아니었다. 은솔의 후배들, 동기들은 물론이고 유천성과 뜻을 같이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했다.
그들의 활약상은 언론에도 한 번씩 오르내렸다. 매번 독특하면서도 맛있는 디저트, 반찬들을 제공해 주면서 학생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왔기도 했다.
그 결과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금은 몇몇 기업으로부터 후원도 받고 있었다.
“그럼 진짜 하시는 거죠?”
은솔은 이제 자리를 잡은 <천사급식> 간판을 보면서 유천성에게 물었다.
“그렇다니까. 어제 이사장님도 뵙고 왔어.”
“와 대박. 진짜 대박….”
유천성의 답에 기쁘다며 은솔이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대표님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그리고 제 후배들이 대표님 급식이랑 간식 먹는다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고요!”
그러자 유천성이 씨익 웃었다.
“나도 이런 자리가 생길 줄은 몰랐어. 그때 강명문 선생님이 좋게 봐 주신 덕분이겠지.”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담임쌤은 저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는걸요. 악마 같았다니까요.”
당연히 당시 강명문이 은솔 자신을 위해서 굳이 와 주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은솔은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다면서 농담처럼 이야기를 했다.
“하하하! 괜히 강문고 오대천왕이겠냐?”
“으, 그러니까요. 덕분에 대학은 잘 갔지만, 한 번 더 하라고 그러면 못 할 거 같아요.”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던 은솔은 유천성이 챙겨주는 꾸러미들을 잔뜩 받았다.
“완성된 거죠?”
“그래.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라며? 영양 좋은 간식들, 신선한 과일들로 준비했다. 가서 애들 잘 나눠 줘라.”
은솔은 후배들과 함께 준비된 차량에 수제 간식 꾸러미를 잔뜩 실었다. 유천성은 차량 문을 닫으려는 은솔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꾸러미를 건넸다.
“이건 여분이니까 선생님들도 드려. 너희도 먹고.”
“감사합니다, 대표님!”
고개를 꾸벅 숙인 은솔이 아차차, 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아니, 장학재단 이사님!”
“야, 아직 아니야. 설립은 좀 남았잖아.”
유천성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은솔이 깔깔 웃었다.
“올해 안에 되겠죠 뭐! 그럼 이사(진) 이라고 할까요?”
“됐다. 얼른 학교에나 가 봐. 저거 과일도 있어서 잘못하면 상한다!”
“네! 알겠습니다!”
은솔은 간식을 잔뜩 실은 차량에 탑승했다. 차에 타서도 창문을 열고 유천성과 오늘 도와준 후배들에게 손을 마구 흔들었다. 유천성도 은솔의 인사에 화답하면서 손을 들었다.
그는 차량이 멀어지고 나서야 들고 있던 손을 다시 내렸다.
“재단 이사라니.”
며칠 전에 만났던 강은숙 이사장과의 미팅. 그때, 그에게 강은숙 이사장이 한 가지를 제안했다.
“…건강한 밥을 만들어 줘야지.”
그리고는 핸드폰을 열고 강은숙 이사장이 보내준 명함 시안을 확인했다.
<강진장학재단 명예이사 유천성>
팔자에도 없는 위치다.
비록 명예이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런 직함은 지금까지 받아온 적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천성은 은솔을 비롯한 강문고등학교 학생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그런 녀석들이 있는 학교면….”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들이 많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가득 찬 유천성이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자, 오늘도 급식 준비 제대로 해 보자!”
““네!””
은솔의 후배들과 함께 또 다른 지역의 급식봉사를 준비하는 유천성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예진은 들고 있던 간식꾸러미를 내려놓았다.
“뭘 취소해?”
스포츠머리 남학생이 예진을 향해 물었다.
“꿀 빨려고 선생님 한다는 말이요.”
“각자 개인의 목표가 있는 거야. 뭐 어때서?”
예진의 말에도 남학생은 여전히 다리를 꼬고는 고개를 비스듬히 들었다. 마치 예진이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라는 눈빛을 담은 채로 말이다.
“학생이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대학생이 되면 그런 사명감 같은 건 다 사라지게 마련이야.”
“…뭐라고요?”
남학생의 말에 옆에 있던 긴 머리 여학생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건 맞아. 우리도 너 때는 그렇게 생각했지.”
“어릴 때는 누가 그런 생각 못 하냐? 다들 책임감 있게 선생님을 한다거나, 멋진 선생님이 되겠다거나 다 그런 생각 하지.”
예진은 대학생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예진이 설득되고 있었다고 생각한 대학생들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야. 다른 학교 친구들 이야기도 들어보면 그래. 누가 요즘 사명감 갖고 일하냐? 공무원 괜히 하겠어?”
그 이야기도 맞았다. 예진도 알고 있었다. 다들 취업하기 어려워서, 평생직장을 갖고 싶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학생도 너무 열 내지 마.”
대학생 넷은 계속해서 예진을 향해 설교를 해 댔다.
“인생 너무 힘들게 살지 마. 그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는 거 같아? 우리도 나름 인서울 상위권 대학교 나와서….”
“…알았어요.”
예진의 대답을 들은 대학생들이 피식 웃음을 날렸다. 마치, 방금 전까지 열을 내고 있던 눈 앞의 여학생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네까짓게 그럼 그렇지.’
‘너도 똑같잖아.’
‘다들 편하게 살고 싶은 거니까.’
‘너도 그렇지? 우리도 그래.’
그래서 스포츠 머리 남학생은 예진에게 인생 선배의 조언이라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알아들었으면, 우리 그냥 내버려 둬. 아, 간식은 잘 먹을게.”
“확실하게 알았어요.”
그때 예진의 눈이 돌변했다. 그 눈빛에 흠칫 놀란 스포츠 머리 남학생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 뭘 알았는데?”
“여기 계신 선배들은, 세상 어디에 나가도 쓸모가 없을 사람들이라는 걸요.”
그 말에 대학생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간식. 누가 준비했는지 알아요?”
“섭외된 업체겠지.”
“네. ‘천사급식’이라는 업체에서 준비한 간식이에요.”
예진은 꾸러미 안에 있는 간식통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천사급식 제공>이라는 간식 제공 업체가 표기되어 있었다.
“이 급식업체에서 왜 이런 간식을 준비했는지 알아요? 간식 전문점도 아닌데?”
“이런 거 하면 돈 버니까 그렇겠지 뭐. 근데 그런 건 왜 물….”
대학생들의 답변에 예진의 입꼬리가 상대를 비웃듯 한쪽으로 살짝 올라갔다.
“정말로 학생들을 생각하시는 대표님이셔서 그래요.”
“…뭐라고?”
긴머리 여학생이 눈가를 좁히며 물었다.
“급식 업체 대표님도 학생을 생각해요. 이걸 같이 만들어 준 연희대 선배님들도, 저희를 가르쳐 주시는 강문고등학교 선배님들도요.”
예진은 동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봉사활동 한다고 선생님이라도 되는 거 같냐?
-선생님 되고 싶은 애들 아니면 교육봉사는 하지도 못하겠네?
‘강명문 선생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라고….’
주먹을 꽉 쥔 예진이 대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서울시 교육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는 선배들 중 교사를 꿈꾸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절반은 되지 않으려나.”
“아뇨. 단 한 명도 없어요.”
단호한 예진의 말에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대학생들이 흠칫 놀랐다.
“그런데도, 네 분보다는 훨씬 책임감도 있고,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도 커요. 그런데, 선꿀이나 빨려고 교사를 한다고요? 교육봉사 때문에 해외여행 못 가서 아깝다고요? 이걸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예진의 두 눈에 분노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교육봉사 오니까, 뭐라도 된 줄 착각하나본데요, 당신들은 교사를 입에 담을 자격도 없어요!”
그 말에 스포츠 머리 남학생이 벌떡 일어섰다.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그때 스포츠 머리 남학생의 뒤로 한 남성이 다가왔다. 파란색 넥타이를 즐겨 메고, 항상 종이몽둥이를 소지하고 다니는 강명문이었다.
“너희들 이야기는 잘 들었다.”
“가, 강명문 선생님!?”
강명문의 얼굴을 확인한 네 사람의 얼굴에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번져 갔다.
“교육자로서의 마인드를 키우고, 책임감을 느끼라고 의무적으로 다니는 교육봉사에서 이딴 식으로 한다 이거지.”
“그, 그게….”
“학교 측에 적극 건의할 테니 알아서들 해라. 감히 수업도 내빼고 후배들에게 싹 다 맡겨?”
거짓으로 본인들이 수업을 했다는 보고서를 쓰려던 학생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서, 선생님, 그게 아니라… 저희가 잠깐 쉬다가….”
“꿀 빨려고 교사나 해야겠다거나, 다른 교사들도 다 책임감 따위 없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강명문은 네 명의 대학생들을 향해 종이몽둥이를 쭉 돌렸다.
“봉사활동 내용 기재에 ‘교실 청소’만 넣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이의 있는 사람?”
“!!”
그 말에 긴 머리 여학생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왜 그래?”
설명을 요구하는 긴 머리 남학생의 말에 단발머리 여학생이 말했다.
“…우리가 직접 수업했다는 내용 없으면 봉사 시간 인정 안 되잖아.”
대학생들이 속한 학교의 교직이수 필요 시간은 60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일부를 인정받지 못하게 생긴 것이었다.
“나… 이번 교육 봉사 인정 안 되면… 시간 못 채워….”
“뭐!?”
다른 학생들도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봉사시간을 확인하더니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스포츠 머리 남학생이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진짜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한 번만요! 저희 제대로 할게요!”
“저, 저는 제대로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얘네가 저도 꼬셔서….”
“야, 너 말 다 했어!?”
급기야는 내부분열까지. 강명문은 대학생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때, 긴 머리 여학생이 말도 안 된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 하지만 선생님한테 그런 권한은 없잖아요! 쌤은 다른 학교인데!!”
“나한테야 없지. 그런데 이분한테도 없을까?”
강명문은 그의 뒤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중년 여성을 가리켰다. 여성을 알아본 학생들이 모든 동작과 말을 멈추고는 입만 뻐끔거렸다.
“모든 자초지종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폰겜만 하면서 노는 걸로 봤다고요.”
“아….”
강명문은 이곳 초등학교의 교무부장 선생님과 눈빛으로 바톤터치를 했다.
“가자.”
그리고 예진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예진은 바닥에 내려놨던 간식꾸러미를 들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 있는 간식을 한 번 확인했다. <천사급식 제공>이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선생님.”
“왜?”
강명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물었다.
“저, 교대 가겠습니다.”
“이유는?”
그러자 예진이 꾹 참고 있었던 감정을 담아,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저런 사람들이 교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마치 복도를 지나가는 누구나가 모두 들으라는 듯.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기 위해서!”
또렷하면서도, 진중한 울림을 품은, 교사를 포기하려다가 다시금 꿈꾸기로 마음먹은 한 고등학생의 외침이.
“저런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제가!”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진짜 희망 진로를 모두에게 공표하듯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교사가 될 겁니다!!”
초등학교 복도 내부를 강타했다.
강명문은 고개를 살짝 내리고 예진의 눈을 조용히 마주 보았다. 복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던 예진의 눈가가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좋은 자세야.”
고개를 끄덕인 강명문이 예진에게 말했다.
“이제야 눈빛이 좋아졌네.”
“네?”
예진의 의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명문이 말했다.
“목표는 경기교대다.”
“알겠습니다.”
“내일 바로 상담이다. 학생부 준비해서 와.”
그러자 예진이 힘차게 답했다.
“네!!!”
내신, 모의고사 모두 3, 4등급인 차예진.
교사를 꿈꾸고 있었지만, 꿈꾸지 못했던 차예진.
진학에 대한 꿈이 전혀 없었던, 아니 꿈꿀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북부 청소년 센터 소속 학생.
그런 예진의 미래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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