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33화 (232/252)

233화. 외전 (9) - 취소하세요.

“심우현! 잘 지냈어?”

예진이와 함께 센터로 돌아온 동석이는 우현이도 데리고 들어왔다.

“선배님들!”

우현이는 최근 지리학과 답사가 잦아져 이번 프로그램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오기로 했다.

태웅이가 우현이를 보면서 말했다.

“답사는 잘 하고 있고?”

“네, 물론입니다!”

우현이는 수학여행 때의 사건 이후로 지리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크게 가지게 되었다. 오기랄까, 그런 게 생겼던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서울의 선국대 지리학과에 입학했고, 곧 졸업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었다.

“잘 왔다, 우현아.”

나는 한 명이라도 일손이 더 필요했는데 잘 됐다면서 녀석을 향해 손짓했다.

“지질학 공부 좀 했냐?”

“그쵸. 제 전공인데요.”

녀석의 대답에 나는 씨익 웃었다.

“내일 초등학교 봉사 가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네?”

“그래, 우현아! 같이 가자!”

동석이도 우현이의 합류를 희망한다며 말했다.

“예진 후배도 그렇게 생각하죠?”

“네, 네? 어… 네.”

얼떨결에 동석이의 질문에 답한 예진이었다.

“알겠습니다! 주말에는 여유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러면 내일 우현이는 트럭으로 이동한다.”

“네! 내일 트럭… 뭐라고요!?”

간만에 서울로 놀러 온 우현이가 짧은 비명을 지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자, 빨리빨리 움직여!!”

“이게 뭐야….”

“군대냐고….”

정석이와 태성이가 투덜거리면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녀석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도 않고는 손가락으로 목적지를 가리켰다.

“거의 다 끝났다! 조금만 더 힘내자!”

“쌤, 그 말씀만 벌써 다섯 번째….”

중얼거리는 동석이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자 동석이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다 옮겼지?”

무거운 짐들을 양손에 낑낑대며 들고 온 녀석들이 교구재 꾸러미를 털썩 내려놓았다.

“으아! 쌤, 이제 끝났어요?”

졸업생 녀석들은 물론이고 멘티 학생들도, 굳이 뜨거운 초여름 햇살을 받으면서 물건을 옮기고 있었다. 정말 무거운 교구재들은 차량으로 이동했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들은 각자가 들고 이동했다.

“난 왜….”

이번 멘토링에 참가하지 않는 우현이도 함께였다.

게다가 녀석이 지금 트럭에서 내리고 있는 물건들은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너무 그러지 마. 다 귀여운 우리 학생들을 위한 거잖아.”

옆에서 짐을 나르던 은장이가 말했다.

그래도 우현이가 들고 온 저건 무거울 만도 했다. 우현이가 옮기고 있는 물건들은 바로 <광물암석표본 종합세트>였으니까.

“그런데 쌤, 이거 학교에 다 있지 않아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우현이의 질문이 들어왔다.

“그치. 학교에 있지.”

“그런데 굳이 왜 선물을….”

“학교에 컴퓨터실이 있다고 해서 집에 컴퓨터가 없는 건 아니잖아? 똑같은 거야.”

아, 짧게 탄식한 우현이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동생들한테 지리학의 매력을 알려 주면 좋잖아?”

“뭐… 제가 전공으로 배운 건 다른 거긴 하지만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자신이 속해 있는 학과를 후배들에게 알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우현이의 말대로 지리학과에서 배우는 내용 중 녀석이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영역은 지리정보과학 분야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초등학생들에게 들려줄 수도 있었다.

오늘 방문하는 초등학교에서는 초등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공, 진로에의 재미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거 근데 진짜 멋있긴 하다.”

“나도 가지고 싶어.”

멘티 학생들이 <광물암석표본 종합세트>를 열어 보면서 침을 흘렸다.

“동생들 줄 건데 너희가 그러면 어떡해? 나중에 대학생 되면 사.”

그런 친구들을 향해 예진이가 타박을 주었다.

‘밝아졌네.’

예진이는 동석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구매하면서 한결 마음이 편해진 모습을 보였다.

-추천 도서들로 싹 다 구매했습니다!

제대로 구했다면서 자랑스럽게 영수증을 들이밀었던 동석이었다. 녀석은 예진이와 나누었던 이야기에 대해 친구들에게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냥 만나서 설득했더니 온 거야.“

나름대로 녀석이 예진이를 배려해 준 것이리라.

물론, 나에게는 이야기를 다 했다.

“동석아.”

“네 쌤.”

“이제 아아가 뭔지는 아냐?”

“당연하죠 쌤. 어제 예진 후배한테 배웠잖아요, 헤헤.”

동석이가 뒷머리를 긁으면서 웃었다. 나는 녀석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남은 짐들을 마저 옮겼다.

***

“잘 부탁해, 얘들아.”

“잘 부탁드립니다!”

멘티 학생들은 현재 초등학교에 파견나와 있는 교직이수 과정의 대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학생들은 멘티 학생들을 보면서 밝게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녀석들이 함께할 일정은 동행 프로젝트로, 초등 고학년 학생들과 함께 체험활동 기반의 수업의 멘토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수업은 <광물암석표본>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에게 나눠 줬지?”

우현이가 먼저 나서서 반 학생들에게 교구재를 나눠주었는지 확인했다. 멘티 학생들은 물론이고, 대학생들도 모두 끝냈다고 답했다.

“그럼 저희 이제 뭐 하면 될까요?”

대학생들이 나를 보면서 물었다.

“수업 준비해야지. 30분 뒤면 시작이다.”

“아…벌써 그렇게 됐네요.”

응?

“후….”

어째 이 녀석들 태도가 영 걸리는데….

“오늘 하루 봉사이기는 하지만, 멘티 학생들 잘 부탁한다. 알았지?”

“네, 걱정 마세요.”

대학생들이 내 질문에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뒤 돌아서 강사 대기실로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왜 그러세요, 쌤?”

정석이가 옆으로 와서는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우현이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다가왔다.

“음… 아니다.”

혹시나 싶지만,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품고서 나는 녀석들에게 별일 아니라며 안심시켰다.

‘어디 보자….’

대학생 봉사자들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간 응시하면서 오늘 수업 계획표들을 다시금 정리했다.

***

시간이 지나 멘티 학생들의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녀석들은 초등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달라붙어서 밀착과외를 해주듯 광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초기 설명은 우현이가 나서서 모두 해주었다. 심지어는 광석, 토양에 따른 지리정보의 차이들을 토대로 알려 주면서, 지금 초등학교 인근 지역의 문화유산들까지 연결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산이 많은 거예요. 근처에 있는 산으로 가 봤나요? 그곳 토양을 보면….”

“우와….”

그 모습에 멘티 학생들은 물론이고 졸업생 멘토들도 입을 떡 벌렸다.

“녀석, 대학 헛것으로 다닌 게 아니네.”

나 역시 우현이의 설명에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지역의 문화유산과 함께 상권 분석까지 곁들이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오늘을 위해 갈고 닦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강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곳에서 라돈이 많이 검출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라돈이 뭔지 아는 사람?”

“라돈이 뭐야?”

“어….”

학생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엇인지 모르겠는 눈치였다. 그러다 한 학생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네, 거기 학생!”

“암… 원인이 되는 거요.”

“오, 맞았어요! 다들 박수!”

호응을 유도하는 방식도 꽤나 준수했다. 우현이의 강의는 정말이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암의 원인이 되는 아주 나쁜 물질이에요. 그러니 우리 모두 환경을 생각하는 멋진 사람들이 되어야겠죠?”

우현이는 계속해서 수업을 리드해 갔고, 초등학생들도 점차 암석, 광물, 토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 멘티 학생들의 암석광물 수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좋은데요?”

앞서 업무가 있어 늦게 합류한 박 선생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예진이도 즐거워하는 것 같고….”

확실히, 예진이의 표정도 평소보다 더 밝아 보였다. 그게 초등학생들을 위해 교육봉사를 하고 있어서인지, 어제 있었던 동석이와의 대화 때문인지를 모르겠지만.

“조금 변했네.”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대학생들은요?”

“어라, 그러게?”

옆에 서 있던 박재우 대리도 의문을 품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대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

“네?”

“아뇨, 혼잣말입니다. 잠시 여기 좀 지켜 주실래요?”

나는 박 선생과 박 대리에게 현장 지휘를 잠시 맡기고 자리를 떠났다. 멘티 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이 수업을 즐기는 소리가 복도 바깥으로도 들려왔다.

***

“아이고, 피곤하다.”

남학생 한 명이 운동장 옆에 붙은 벤치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 무슨 주말에 이런 행사를 한대? 귀찮게.”

“나도 몰라… 교육청 주관이라니까 하기는 하겠는데… 이게 일손 더 생기는 거지. 안 그러냐?”

투덜대던 여학생을 향해 남학생도 동의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직접 안 해도 된다는 거잖아. 그치?”

“매뉴얼대로라면 그런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머리가 조금 긴 남학생이 이야기하자, 단발머리 여학생이 살짝 반박했다. 그러자 처음에 의자에 앉았던 스포츠 머리 남학생이 키득 웃었다.

“뭐 어때. 보고서에만 우리가 제대로 했다고 쓰면 되는 거 아냐?”

“여기 쌤들은?”

“다들 주말이라 안 나온대. 당직쌤들도 지금 교무실에서 폰겜만 하더라.”

단발머리 남학생이 방금 지나가다가 봤다면서 코웃음을 날렸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거 없지 않아? 다들 제대로 안 하잖아.”

“그런… 것 같은데?”

긴 머리 여학생의 말에 단발머리 여학생도 조금씩 동조해 갔다.

“됐어, 됐어. 어차피 지금 고딩들이 하고 있잖아?”

“근데 걔네들 오니까 편하기는 하다. 그치?”

“기왕 올 거면 다음 주 평일에나 오지. 왜 주말이래. 괜히 우리 주말에도 나오게 만들고.”

“내 말이.”

각자 한 마디씩 던지면서 들고 온 커피를 마셨다. 주말에도 교육복지 프로그램 때문에 불려온 학생들은 지금 상황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나마 서울시, 교육청, 프로그램 운영팀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여 주고 있으니 이 정도 불만으로 그치는 것이었다.

“빨리 봉사시간 채우고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임고 준비할 시간도 없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야, 넌 임고 볼 거냐? 난 해 보니까 영 안 맞아서 안 할 건데.”

스포츠 머리 남학생과 긴 머리 남학생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여학생들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면서 자신들의 미래 로드맵을 이야기했다.

“나도 빨리 임고 보고 적당히 학교 들어가야지. 그거 알아? 요즘은 진짜 최소한의 일만 하고 들어가도 아무도 말 못 한대.”

“뭐? 진짜?”

“그렇던데? 인터넷 보면 그런 사람들 많잖아.”

그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이 자리에 모인 대학생들에게는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가능성 자체가 중요했다.

“하기사, 꿀 빨려고 교사하지, 누가 책임감 갖고 일하냐?”

“맞아, 맞아.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들이나 그러는 거지.”

“그러니까. 나 해외여행 가야 하는데, 이번에 이거 때문에 못 갔잖아. 쓸데없이.”

“와 진짜? 개아깝네. 봉사 이거 왜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구만.”

학생 넷이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벤치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때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벤치 뒤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그 말… 취소하세요.”

대학생들에게 전해 주고 오라는 강명문의 지시를 받고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 온 예진이었다. 예진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대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

“그 말, 취소하세요.”

정작 그 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학생들은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 반응에 예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취소하시라고요!!!”

소리를 버럭 지른 예진이 대학생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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