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32화 (231/252)
  • 232화. 외전 (8) - 나도.

    -동석아, 이거 들고 가라.

    강명문은 예진은 찾아가려는 동석에게 검은색 카드를 건네주었다.

    -무슨 일 생기면 이거 써. 그리고 내가 알려 주는 목록들 있으면 그거도 구매해.

    -헉! 쌤 이거 설마 0.05%에게만 준다는….

    -그거겠냐. 그냥 검은색 카드다.

    사학비리 폭로 사건이 정리된 후, 강명문은 합격생 배출로 받은 인센티브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했다. 코인은 위험부담이 있고, 잘 알지 못하니 패스했고, 그나마 알고 있는 지식이 기업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두, 사건이 종결된 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교사의 통장에 수천, 수억, 수십억이 왔다갔다 한다면서 공격당할 게 뻔했으니까.

    그래서 강명문은 사건이 모두 끝난 후에 편하게 주식을 했다. 물론,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았고, 학생들 입시에 대부분 투자를 했기 때문에 시드머니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학생 몇 명 책 사 줄 정도의 돈은 충분히 있었다.

    -나도 추천 도서 있어!

    여기에 친구인 은장의 지원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거도 예진이만 해줬다고 문제 생기는 거 아니에요?

    -그룹 활동 아니니까 괜찮아. 그리고 예진이는….

    강명문이 말끝을 흐리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중단했다. 상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담임쌤에게는 무언가 계획이 있어보였다.

    그래서 동석은 강명문을 믿고 예진을 찾아 온 것이었다.

    “갈까요?”

    책을 모조리 구매한 동석은 십여 권의 책을 낑낑대며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예진이 황급히 달려왔다.

    “서, 선배! 저도 들게요!”

    “괜찮아요 이런 것쯤… 나도 남자… 으악!”

    평소 운동을 게을리 했던 동석이었다. 열 권이 넘는 책 뭉치는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팔 힘이 약한 왼손에 들린 에코백이 미끄러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그거봐요! 나눠서 들어요!”

    “에이, 창피하게… 그럼 몇 권만 부탁할게요.”

    예진은 동석의 어설픈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동석도 예진의 웃음을 보더니 헤헤, 웃으면서 서점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 서점은 단골가게인가요?”

    책을 들고 이동하던 동석이 물었다.

    “아, 네. 보고 싶은 책 있으면 여기서 살짝살짝 봐요. 사장님 눈치 보여서 30분 넘게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요.”

    “그래도 좋은 사장님이시네요. 나중에 대학생 되면 선물이라도 사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 이미 많은 책을 한 번에 구매했으니 사장님 입장에서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방금 책을 구매할 때 사장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 모습이었다.

    예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왜 안 물어보지?’

    보통 예진이 동네 서점에서 책을 본다고 하면 이렇게 묻고들 했다.

    -응? 강남역에 대형서점 가면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아?

    -왜 굳이 그렇게 봐? 보고 싶은 거 있으면 사서 보면 되지.

    -도서관은 안 가?

    그런데 동석은 그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저 ‘사장님이 참 착하시다’, ‘나중에 보답해드리자’ 라고만 했다.

    ‘대체 왜…?’

    “가다가 커피 하나 마시고 갈래요?”

    생각을 이어 가던 예진은 동석의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 쿠폰 받은 거도 있고, 오늘 날도 덥잖아요? 책 들고 걸어갈 거 생각하면 한 명은 더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지원군 좀 부를까 싶은데, 괜찮아요?”

    동석은 얼마 전, 태성의 어플 VIP 등록 혜택으로 받은 커피 쿠폰을 꺼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이었다.

    예진은 잠시간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아, 혹시 커피 못 마셔요? 그럼 다른 음료도 좋고요.”

    예진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결국 예진은 동석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면서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뭐 마실래요?”

    “저, 저는….”

    예진은 지금껏 친구들 이외의 사람과 이 카페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다.

    <별다방스>

    친구들과 정말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라면 방문하지 않는 카페였다. 다른 친구들처럼 자주 다니기는 어려웠다.

    예진에게 주어지는 용돈은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낮았으니까.

    그래서 청소년 센터에 항상 비치되어 있는 믹스 커피를 몇 개 챙기고 다니는 정도였다.

    “그럼 저 아아로….”

    “아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동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예진은 자신이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아가 뭐예요?”

    그러나 그 뜻을 단순히 묻는 동석을 보면서 긴장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줄여서 아아.”

    “아, 그렇구나. 요즘은 그렇게 줄여서 부르나 보네요. 몰랐어요.”

    사실 동석도 유행에 조금만 민감하고, 연애라도 열심히 했으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터였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동석은 그저 요즘 청소년들의 줄임말 정도로만 여겼다.

    예진은 그런 동석을 보면서 이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가늠이 되는 듯했다.

    “네! 여기 주문이요!”

    그렇게 동석과 예진은 주문한 음료와 조각케이크를 받아서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옆에는 책이 가득 담긴 에코백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오늘 멘토링 안 왔던데.”

    “….”

    “내일 인근 초등학교로 봉사 갈 거예요. 오늘 OT였거든요.”

    “아….”

    예진은 저도 모르게 ‘진짜요!?’ 라고 말할 뻔한 입을 황급히 손으로 막았다.

    “오늘 OT 못 와서 내가 알려 준 거예요. 같이 갈 거죠?”

    그 질문에 예진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봉사를 한다고 해서 내가 선생님이 될 수는….’

    예진이 목표로 하는 교대와 사범대. 지금의 예진에게는 꿈과 같은 학교들이었다.

    게다가 지방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부모님을 두고 혼자만 기숙사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부모님이 뻔히 고생하시는 걸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그렇기에 예진은, 지금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서울 경기권 중 통학이 가능한 학교로 갈 생각이었다.

    ‘가고는 싶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예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교육봉사? 내가 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도 없는 내가? 사범대나 교대로 진학할 수도 없는 내가?

    “안 갈 거예요?”

    그래서 예진은 거기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 네, 못… 가요.”

    “왜요?”

    “그… 게….”

    예진은 답변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자격이… 없을 거 같아서….”

    동석은 예진의 대답에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은 채 묵묵히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는 말투를 바꿔서 말했다.

    “봉사활동 한다고 선생님이라도 되는 거 같냐?”

    “네?”

    “선생님 되고 싶은 애들 아니면 교육봉사는 하지도 못하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그거, 오만이고 만용이다. 알아?”

    누군가의 말투를 흉내 낸다면서 말한 동석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나도 안 비슷하죠? 쌤 목소리 비슷하게 해 봤는데.”

    “강명문 선생님이요?”

    “네. 쌤이 저희 가르칠 때 진짜 많이 하셨던 말씀이거든요. 너희들이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해서 뭐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고. 세상에는 너희보다 몇십, 몇백 배는 더 전문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과거, 강문고 3학년 재학 시절, 동석은 은장, 정석 등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강명문의 지도하에 졸업생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었다.

    그러면서도 강명문은 그 말을 잊지 않았었다.

    -자만하지 마라.

    그건,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이어졌다.

    “사람은 어떤 목표를 이루면 자신감이 넘치게 되고, 그게 심해지면 자만심으로 이어져요.”

    동석은 언젠가 자신도 그런 위험에 빠질 뻔했다고 말했다.

    “연천대에서 공부하면서 저보다 로봇 공학에 대해 잘 모르는 동기들, 선배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그때 잠깐 그런 생각이 들 뻔했죠.”

    “어떤 생각이었어요?”

    “아, 내가 여기서 제일 잘하는구나. 그것도 스카이 중 하나인 연천대에서. 그럼 난 로봇 공학의 천재구나.”

    물론, 그가 천재는 맞았지만, 동석은 본인의 실력이 거기까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항상 주눅 들어 있었는데, 대학교 오니까 확 달라진 거죠. 연천대 입학했다고 친척들한테 얼마나 연락이 많이 왔는지, 주변에서도 엄청 띄워주고요.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면서 동석은 자신이 입학한 직후에 겪었던 이야기도 꺼냈다.

    “1학년 때는 동기들 중에서 저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제가 연천IT인재전형으로 들어간 거 알고 있어요?”

    “네? 그게 무슨 전형이에요?”

    “아, 지금은 없어져서 모르려나. 아무튼, 내신성적이 낮아도 미래 성장 가능성만 있으면 선발하는 전형이었어요. 그래서 내신 1등급대 친구들이 엄청 화를 냈었죠.”

    동석이 막 연천대에 입학했을 때, 일반적인 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저거 꼼수로 붙은 애잖아?

    -제대로 공부나 따라오겠어?

    -내신 5등급이라며? 우리 학교가 어디 만만한 곳인줄 알아?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신 5등급 학생이 연천대에 합격했다.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렸고, 그 덕분에 동석의 얼굴은 세간에 많이 알려지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동석은 그들의 시기 어린 시선과 질투를 모두 받아왔었다.

    물론 그들의 평가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확 바뀌었다.

    -… 쟤 천재 아냐?

    -저걸 어떻게 만들었지…?

    전공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실력을 보여 주었고, 내신 5등급이라고 무시했지만, 수학과 과학 이론이 빠삭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학년 때부터는 다들 저를 믿고 따라오고 그랬어요. 본때를 보여 준 거죠. 저를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그러니 얼마나 기고만장했겠어요? 그렇게 말하던 동석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K과기원 하동기 교수님이랑 연천대 지성호 교수님하고 같이 연구보고서를 만들어서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K과기원이요!?”

    예진도 그곳이 어떤 대학인지 알고 있었다. 연천대는 물론이고 K과기원 교수님과도 알고 지낸다는 동석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네. 어쩌다 보니 연이 닿아서… 아무튼, 그때 세미나를 하면서 제 위의 대학원생 선배들이랑 교수님들과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 느꼈죠.”

    동석은 그때 그게 아니었다면, 자신은 한도 끝도 없이 거만해졌을 수도 있었다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진짜 담임쌤 말씀이 확 와닿더라고요. 아, 그래서 쌤이 그때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세상은 정말 넓구나. 그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진은 동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초등학교 교육봉사 건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예진 학생이, 자신은 자격이 없다, 라고 했다면 담임쌤은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봉사활동 한다고 선생님 되는 거 같냐, 그거 하나 한다고 네가 뭐라도 된거 같냐면서 잔소리를 한 시간은 하셨을걸요?”

    강명문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동석이 키득 웃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요. 봉사라는 건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건….”

    “예진 학생 말대로라면 우리도 멘토링 봉사 하니까 다들 교사를 꿈꿔야 하는 건데, 그렇지 않잖아요? 그쵸?”

    “아….”

    예진은 무언가에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기분을 느꼈다. 왜 자신의 그 생각이 오만이고 만용이라고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부끄러운 생각이었다.

    “알겠어요, 갈게요.”

    “잘 생각했어요!”

    동석이 환하게 웃으면서 예진에게 케이크를 밀어주었다.

    “먹고 힘내자고요.”

    “앗, 선배도 드세요.”

    “전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예진 학생 많이 먹어요.”

    예진은 동석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고 앞에 놓인 티라미수 케이크를 잘라서 입에 넣었다.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맛이 입가에 퍼져나갔다.

    “참, 선배.”

    그리고 예진은 서점에서 나오면서부터 품고 있었던 궁금증을 꺼냈다.

    “아까 왜 안 물어보셨어요?”

    “뭐를요?”

    “그… 왜 대형서점에서 안 보고 여기서 보냐는 거요.”

    그러자 동석은 왜 당연한 걸 묻냐면서 말했다.

    “대형서점까지 뭐하러 가요? 지하철비 아깝게.”

    “…네?”

    “그렇잖아요? 왕복 2천 원 정도 나가는데, 5일만 안 가면 만 원이잖아요. 그거만 아껴도 책 한 권은 사는데 아깝게 왜 나가요. 근처 서점 단골이면 당연히 거길 가야죠!”

    동석의 말을 들은 예진은 어딘가에서 오는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학교 도서관에 가라고는 왜….”

    “거기에 최신 문제집이 있을 리가 없고, 있어도 친구들이 다 풀어놓잖아요. 시간낭비죠 시간낭비.”

    동석이 생각만 해도 질린다며 손을 휘저었다. 예진은 그런 동석을 보며 숨을 한 번 들이쉬고는 활짝 웃었다.

    “그쵸?”

    “당연하죠. 제가 고딩 때는 말이죠, 남부터미널까지도 걸어다니고….”

    이어서 동석의 ‘라떼는 말이야’가 시작되었지만, 예진은 그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었다. 이야기는 지원군인 심우현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예진은 생각했다.

    ‘나도….’

    이 선배처럼 되고 싶다.

    예진에게 새로운 목표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