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30화 (229/252)
  • 230화. 외전 (6) - 나사 빠진 애들

    멘티 학생들이 모두 정해진 강의실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시간.

    나는 졸업생 녀석들을 강사대기실로 불러모았다.

    “내가 왜 부른지 알고 있는 사람?”

    내 시선을 받은 녀석들이 하나둘 다른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얼추 알고는 있는 모양이지?

    고개를 돌리면서 내 시선을 회피하는 녀석들 중 가장 먼저 태성이를 불렀다.

    “이태성.”

    “네, 네!”

    내 호명을 받은 태성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어플 홍보 금지야.”

    “아….”

    어플을 곧 런칭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어플을 이렇게 홍보할 줄은 몰랐다.

    녀석이 담당하는 G조 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조 학생들에게도 오며가며 홍보를 한 모양이었다.

    “얘들 연애 이야기 하면 정신 팔리는 거 몰라서 그러는 거야?”

    “죄송합니다….”

    “이미 홍보해 버린 애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제부터는 금지야. 그리고 애들이 어플 이야기 물어보면 사업비밀이라고 하면서 말 좀 아껴. 알았어?”

    태성이의 어플은 연애에 대해 알려 주는 어플이었다. 솔로에게는 솔로탈출 마법을 알려 준다면서 각종 팁들이 적혀 있었다. 커플들에게는 커플이 싸웠을 때의 팁을 알려 준다면서 여러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보여 주곤 했다.

    “어플 컨셉이 솔로, 커플 모두 챙겨주는 건데 왜 솔로탈출을 현재 대표 목표로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멘티 애들에게 이거 요청하는 순간, 넌 죽은 목숨이다.”

    “에이 쌤. 아무리 그래도 저도 그렇게까지는 안 해요.”

    태성이가 그럴 리 없다며 손사레를 쳤다. 나는 녀석의 반응에도 싸늘한 눈빛을 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래? 그럼 이건 뭔지 설명 좀 해 봐라.”

    나는 오늘 아침에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내 스마트폰에서 깔끔한 화질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연애세포의 기적> 가입했어?

    -응. 이거 나도 커플 도전 해볼까?

    -우리도 되나?

    -청소년은 안 된다는 조건은 없잖아. 이참에 솔로탈출하고 데이트도 하고….

    영상은 여기에서 끊어졌다. 영상을 확인한 태성이가 놀라서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얘, 얘들이 왜….”

    “그러니까 조심해라. 한창 호기심 많을 때다. 다들 들었지?”

    다른 졸업생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에….”

    “혹여나 어플 과하게 사용하려는 녀석 있으면 당장 제지해. 혼내야 하면 혼내고.”

    나는 태성이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태성이는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배은솔.”

    “네!”

    “왜 A조 체험활동 때만 디저트 왕창 싸갔냐?”

    “어… 그게….”

    대답을 망설이는 은솔이를 향해 종이몽둥이를 들었다.

    “조별로 차별 두면 안 된다는 거 몰라? 그거 벌써 소문났어. 네가 오면서 A조만 초호화 티타임 가졌다고.”

    종이몽둥이로 은솔이가 앉아 있는 책상을 팡팡 두드렸다.

    “헉, 진짜요!?”

    “응… 아까 우리 조 애들이 중얼거리더라.”

    정석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솔이는 다른 조도 그런 거냐며 눈길을 보냈다. 그러자 다들 헛기침을 하거나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 프로젝트는 여럿이 모여서 활동하는 단체 활동이다. 정해진 룰을 지키지 않으면 큰 파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 여기 있는 너희들이 모를 리가 없어. 그렇지?”

    녀석들이 졸업하고 지금까지 쭉 이어 왔던 멘토링 활동이다. 그걸 모르는 녀석은,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 중에는 없었다.

    벌써 시행착오는 겪을 만큼 겪어 왔고, 고칠 것들은 모두 고쳐 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그랬냐?”

    “그게….”

    “대답해 봐 배은솔. 왜 그랬어?”

    “그….”

    은솔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은장.”

    “…네.”

    “내가 조별활동 때 다른 조 멘토 데려갈 거면 나한테 허락 받으라 그랬지?”

    “그러셨어요….”

    “그런데 명천이랑 동석이는 왜 부른 거냐? 나한테 허락도 없이?”

    은장이도 멘토링을 지속하면서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하면 형평성의 문제로 남게 된다. 따라서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변수가 있을 때는 나에게 보고한 후 컨펌을 받으라고도 이야기를 해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이번 프로그램에서만 과거에는 저지르지 않았던 실수들을 연이어서 저질렀다.

    “게다가 기념품, 내가 인당 3만 원 넘지 않는 걸로 구매하라고 했을 텐데.”

    “그… 죄송합니다….”

    “금액대보다 더 비싼 거 사 주면 그걸로도 이야기 나올 수 있다고. 대체 왜 그랬어?”

    “…의욕이 과했던 것 같아요. 진짜 죄송해요 쌤….”

    나는 깊이 반성하는 은장이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오늘 아침에 다른 애들이 물어보더라. A조는 다른 멘토쌤들도 참여했는데, 자기네 조도 그렇게 해 주냐고. 내가 거기에 어떻게 답했는지 알고나 있냐?”

    “…뭐라고 하셨어요?”

    은장이가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해 준다고 했다. 멘티들이 열심히 하는게 기특해서, 더 많은 정보 줘야겠다고 했단 말이야.”

    그 말에 은장이는 안도하는 듯, 아닌 듯 숨을 내쉬었다. 반면, 정석이와 태웅이는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쌤, 그거 그러면….”

    “너희들도 다 해 줘야 해.”

    내 말이 청천벽력처럼 들렸는지 졸업생들 사이에서 큰 탄식이 들려왔다.

    “그럼 대학생 체험 한 번 더 해요?”

    “아니. 멘토링 활동 중에 순회공연 다녀야 한다. A조는 이번 대학생 체험활동으로 끝이고.”

    “와… 그럼 일이 더 생긴 거네요.”

    정석이와 태웅이가 번갈아 물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긍정의 표시로 이번에 사고를 친 졸업생들을 가리켰다.

    “원망하고 싶으면 너희 동기, 선후배를 원망해라. 알았냐?”

    은장이는 어느새 구석으로 가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그래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괜찮기는 했지만, 혼을 낼 때는 내야 했다.

    “단체 멘토링이라는 건 그런 거다. 게다가 이제는 지역구 활동이 아니잖아. 서울시 전체에서 이런 실수가 생기면, 분명 물고 늘어져.”

    “네….”

    “이번 너희들의 행동은 경솔했어. 결국 모든 조에 동일한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해.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같은 프로그램을 듣는다는 의미를 줘야 한다고.”

    이번 프로그램은 그런 거였다. 형평성에 기반한 동일한 커리큘럼의 프로그램.

    즉, 이 프로그램을 들은 학생이라면 모두 동일한 혜택을 받고 가는 것이었다.

    물론, 잠깐잠깐 멘토들의 조언이 추가되거나 할 수도 있다. 그 정도는 허용 가능한 범위니까 괜찮았다.

    문제는 물질적인 선물이나, 예정에 없던 멘토의 참여, 멘토 개인의 이익을 위한 활동 등이 엮일 때였다.

    이번에 녀석들은 이 잘못들을 저질렀다. 결국 이 일들은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녀석들에게 책임을 물 수밖에 없게 될 게 뻔했다.

    “은솔이는 A조에 이어서 B조, C도, D조 등등 알파벳 순으로 A조에게 줬던 디저트 그대로 다 들고 와.”

    “알겠습니다….”

    힘빠진 목소리로 답하는 녀석들을 보면서도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녀석들도 좋은 의도로 그랬을 텐데, 결과적으로 단체 행동에는 어울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진짜 왜 그런 거야? 실패작도 아니고 완성품이었다면서.”

    내가 묻자 은솔이가 눈을 꿈뻑거렸다.

    “이번에 꼭 줘야 하는 이유라도 있었어?”

    “네, 네!?”

    은솔이가 당황해하면서 손을 마구 휘저었다.

    “누굴 꼭 주고 싶었다거나….”

    “아,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은솔이는 얼굴이 살짝 붉어지면서 계속해서 부인했다.

    수상한데….

    “아무튼, 조심들 해. 너희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멘티 학생들에게는 선배의 멋진 행동이 될 수도 있어. 알겠냐?”

    “알겠습니다!”

    처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 보고자 정석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정석아. 넌 오늘 일찍 들어가라.”

    “어, 갑자기요?”

    “그래.”

    나는 추가 설명 대신 정석이에게 고갯짓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의도를 알아차린 정석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언가를 메모했다.

    ***

    “예진아!”

    서울시 교육 복지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가던 예진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 응 지효야.”

    “뭐야 끝나면 같이 가자니까!”

    “미, 미안.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어.”

    “그렇게 급할 게 있어? 뭐 있었어?”

    예진은 오늘 엄마가 늦게 들어올 거라서 일찍 들어가 밥을 해두어야 했다. 그래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당연히 지효에게는 이 일들을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예진은 적당히 핑계를 댔다.

    “그… 오늘 배운 거 복습하고, 모의고사 풀어보려고.”

    “그러니까, 친구보다 시험공부가 더 중요했다 이거지! 그치?”

    지효는 장난스럽게 예진의 볼을 양쪽으로 살짝 잡았다가 뗐다. 그리고는 히죽 웃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생 체험활동 때는 기념품 뭐 샀어? 난 노트랑 펜 샀는데.”

    “진짜? 그게 제일 싸던데.”

    “에이, 내가 뭐 거지도 아니고. 이건 상징성이지 상징성. 넌 뭐 샀어?”

    순진무구한 척 말하는 지효를 보던 예진은 잠시간 대답을 망설이다가 겨우 답했다.

    “나, 는… 과잠.”

    “과잠? 아, 너 용돈 보태서 샀구나! 그런데 너희 조 서울한국대 아니었어?”

    “응 서울한국대 맞아. 왜?”

    “너 서울한국대 목표로 하는 거야? 어차피 거기 못 가면 입지도 못하잖아.”

    지효의 말에 예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상징… 이랄까. 고3이잖아 우리?”

    그러자 지효가 깔깔 웃었다.

    “하긴, 그런 공부의 상징 있으면 좋지. 생각해보면 그래. 너나 나나 서울한국대를 어떻게 가냐? 수능 때 찍은 거 다 맞게 해달라고 기도라도 하면 좀 되려나? 솔직히 그 마음은 나도 있기는 해.”

    지효는 자신이나 예진이나 성적 차이가 크게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조 섞인 웃음을 날렸다.

    “나는 국인대라도 가면 진짜 감사하겠다. 지금 우리 성적으로 그 이상을 어떻게 가? 넌 교대 가고 싶어 했잖아. 거기도 쉽지 않고.”

    사실 지효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예진과 지효의 모의고사 성적은 잘 나와 봤자 2등급 후반에서 3등급 후반 사이.

    못하는 점수는 아니었지만, 인문계열 학생이 인서울 중위권 대학교를 목표로 하기에 충분한 점수는 아니었다.

    “차상위나 한부모처럼 나사 하나 빠진 애들 아니면 솔직히 우리 같은 애들은 못 가지.”

    부러운 놈들, 중얼거리는 지효를 향해 예진이 파들거리는 눈동자를 하며 바라봤다.

    “…뭐?”

    “고른기회나 기회균형 말이야. 그걸로 지원하면 수능 8등급 찍어도 인서울 간다며?”

    어디선가 들은 인터넷 루머였지만, 지효는 그걸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그런 학생들이 부럽다면서 머리 뒤로 팔깍지를 꼈다.

    “아~ 걔들은 좋겠다. 성적 안 나와도 높은 대학 갈 수 있을 거 아냐. 우리 집은 왜 그 조건에 못 들어가서…. 그것만 아니면 우리도 이런 고생 안 할 텐데 그치?”

    “….”

    “응?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그냥… 그런 애들은… 부럽겠다 싶어서….”

    예진의 말에 지효가 웃으면서 그치? 그치? 라며 순진하게 반응을 했다. 그 반응에, 예진은 순진하게 웃고만 있기가 힘들었다.

    “나, 잠깐 볼 일이 생각나서, 이쪽으로 갈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응?”

    지효가 예진의 이름을 불렀지만, 예진은 손만 살짝 흔들고는 후다닥 옆길로 빠졌다. 그런 예진을 바라보면서 지효는 피식 웃음을 날리고는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예진은 지효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이 될 때까지 열심히 달렸다. 그러다 달리기를 멈추고는 방금 전 지효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걔들은 좋겠다.

    “…좋을 리가 없잖아.”

    예진도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사교육도 받고, 평범한 독서실도 등록해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싶었다.

    용돈 아껴 가면서 친구들과 노는 게 아니라, 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적당히 쓰면서 놀고 싶었다.

    고른기회? 기회균형? 그딴 전형 지원 못 해도 상관없었다.

    -나사 하나 빠진 애들 아니면 솔직히 우리 같은 애들은 못 가지.

    “나라고… 나사 빠지고 싶었는줄 알아…?”

    예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꽉 감은 두 눈에 봄비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른기회나 기회균형 말이야.

    “그 조건 따위… 나도… 들어가기 싫었단 말이야….”

    예진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주방보조, 서빙 일을 하고 계신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요즘은 몸이 좋지 않아 일을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도 예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

    괜찮아, 집이 조금 가난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면 나아질 거야. 내 교육 때문에 서울에서 공부시킨다고 고생하시잖아. 내가 졸업하면 도와드릴 거야.

    그런 생각으로 버텨 왔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오늘 처음으로 끊어졌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억울한 울음소리가, 골목길을 한 가득 메웠다.

    “왜… 왜… 날 이런 집에서… 낳았어요…? 왜요!!!!”

    그날 예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리고 그 울음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남성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울음소리가 멀어지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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