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29화 (228/252)
  • 229화. 외전 (5) - 혼 좀 내야겠다

    [선배! 내일 서울한국대 가시죠? 저 새로 만든 디저트 있는데 그거 드셔 보실래요?]

    동석은 은솔의 톡을 받자마자 바로 답장을 보냈다.

    [너무 단 거 아니지?]

    [네! 적당히 달 거예요!]

    아마 이번에도 여러 실험작들을 만들다가 나온 결과물일 터였다. 은솔은 한 번씩 동석에게 새로운 걸 만들었다면서 학교로 들고 오곤 했었다.

    케이크, 쿠키, 마카롱 같은 디저트류는 물론이고 여러 밑반찬들이나 찜닭, 묵은지삼겹살 같은 요리들도 해 왔었다.

    -요리하고 남은 거 먹어 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은솔이 항상 그렇게 말하면서 요리를 가지고 왔었기 때문이었다. 들어보니 다른 친구들에게도 한 번씩 디저트를 주곤 했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동석은 은솔 덕분에 밥도 굶지 않을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다.

    ‘고마운 후배라니까.’

    동석은 은솔에게 속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열었다.

    [인터뷰 해 줘서 고맙다! 이건 선불!]

    친구인 태성의 톡이었다. 태성은 이번 <연애세포의 기적> 어플의 VIP 회원으로 활동하기로 한 동석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 결과 받은 게 신천역 인근 카페 이용권, 이탈리아 음식 전문점 식사권이었다.

    ‘나중에 은솔이랑 갔다 올까.’

    그렇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후배와의 1:1 식사를 생각하는 동석이었다.

    “동석아! 회의 시작하자!”

    “아, 네,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와서 서류를 확인하던 지성호 교수가 동석을 불렀다. 동석은 핸드폰을 던져두고 바로 회의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들고 달려갔다.

    ***

    “헐… 진짜 걸어왔어?”

    은장은 A조 학생들을 서울한국대로 초대했다.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다.

    하지만 멘티 학생들은 대한민국 넘버 원 대학교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언덕을 넘어온 참이었다.

    “당연하죠, 누나! 저 언덕을 넘어오는 시간도 경건한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남학생의 옆에서 투덜거리는 소리도 일부 들려왔다.

    “으휴, 너 때문에 진짜.”

    “그래도 걸을만 하지 않았어?”

    예진은 원래 걷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이번 언덕 너머 산책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몇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예진이 너 평소에 운동하니?”

    “응? 어… 그냥 조깅…?”

    다른 친구의 질문에 예진이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친구가 대단하다며 말했다.

    “나도 너처럼 운동을 해야 하는데. 암튼, 난 서울한국대 붙어도 버스 타고 다닐 거야!”

    “자, 자, 다들 진정하고. 나도 버스 타고 다녀. 동기들 중에는 자전거 타고 넘어오는 애들도 있긴 했지만.”

    은장의 말에 멘티 학생들이 입을 떡 벌렸다.

    “자전거로요!?”

    “응. 그게 운동이 된다나 뭐라나. 아무리 그래도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라.”

    그렇게 말하는 은장의 옆으로 명천과 동석이 다가와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은장아, 여기.”

    “아 명천아! 고마워, 헤헤.”

    어쩐지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두 사람을 멘티 학생들이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 눈길에는 동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희는 선배들하고도 같이 다녀요?”

    예진의 질문에 은장이 답했다.

    “응! 그리고 우리 조에 의치한계열 희망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명천이랑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은장의 말대로, A조에 있는 고1, 고2 학생들 중에는 의약계열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공과대학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동석은 이러한 고1, 고2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 주고자 참가했다.

    “내가 도움받는 교수님 연구실 있는데, 거기도 잠깐 들를 거예요.”

    “우와!!”

    동석의 천재성은 이미 전국 대학은 물론 세계로도 뻗어나간 상태였다. 때문에 한 번씩 서울한국대 공과대학과도 교류를 하곤 했었다.

    마침 최근에도 교류를 하고 있었다면서 곧 들를 연구실을 간략히 소개했다. 학생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알았으면 슬슬 이동하자!”

    멘토들은 물론이고 멘티들도 든든한 아군을 얻은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선배!!!!”

    어디선가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서울한국대 후배인가? 생각했던 은장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은솔아! 웬일이야?”

    “오늘 A조 대학생 체험이잖아요! 다들 먹으라고 간식 들고 왔죠!”

    은솔은 이것저것 만들어 보면서 결국 양을 오버했다며 온갖 디저트를 준비해 왔다. 마카롱, 치즈케이크, 브라우니, 당근케이크, 초코칩쿠키 등, 대학교를 구경하다가 출출할 때 먹기 적절한 디저트들이었다.

    “와… 이걸 언제….”

    “동석 선배! 선배는 이거요!”

    은솔은 동석을 위해 만든 디저트라면서 별도의 막대 바를 건넸다.

    “이게 뭐야?”

    “됐으니까 먹어 봐요 얼른!”

    동석은 은솔이 건네는 막대바를 들고는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이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은솔을 바라봤다.

    “맛있어!!!”

    “그쵸? 그쵸!! 성공이다!”

    그게 대체 뭐길래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궁금증이 일던 멘토, 멘티들이 한자리로 모였다.

    “비상식량으로 만든 견과류 에너지바!”

    “이걸 만들었어?”

    “우리 먹으라고? 진짜 은솔이 대단하네.”

    은장과 명천도 감탄하면서 은솔이 건네는 에너지바를 집어 들었다.

    “아뇨! 저 동석 선배 먹으라고 만들었어요!”

    “…나를?”

    동석이 의아한 듯 묻자 은솔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선배 맨날 연구실에서 밥도 제대로 안 먹잖아요. 저번에 내가 갖다준 백숙은 다 먹었어요?”

    “아.”

    “아. 가 아니잖아요! 그거 선배만을 위한 특제 레시피로 만든 건데! 어디 뒀어요?”

    “그거 연구실 냉장고에 있어. 오늘 꼭 먹을게.”

    “아냐, 못 믿겠어. 오늘 체험활동 끝나면 같이 가요! 옆에서 먹는 거 지켜봐야겠어요! 그리고 에너지바도 선배 먹으라고 한 통 챙겨왔으니까 밥 못 먹더라도 이거는 꼭 먹어요! 알겠어요?”

    어쩐지 동석을 향해 잔소리를 해대는 은솔의 모습을 보면서 멘토들은 물론이고 멘티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은장과 명천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전에도 간식거리를 만들거나 디저트를 만들다 생긴 실패작들을 강문고 졸업생들에게 보내 주곤 했던 은솔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만들었다면서 공표하고 다닌 건 처음이었다.

    ‘혹시…?’

    그 행동에서 무언가 수상한 기류를 눈치 챈 은장은 은밀하게 웃으면서 은솔의 행동을 살폈다.

    ‘이 정도면 어필 좀 됐겠지?’

    정작 은솔은 은장의 눈길을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행동이 매력으로 어필되었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

    “다들 들어와!”

    은장은 학생들을 기념품샵으로 이끌었다. 멘티 학생들이 우루루 가게로 들어가더니 서울한국대 기념품을 이것저것 구경했다.

    “….”

    다른 멘티 친구들이 서울한국대 컵, 키링, 노트 등을 보고 있을 때 예진은 옷걸이 끝에 걸려 있는 점퍼를 보고 있었다.

    “입어 볼래?”

    예진을 발견한 은장이 다가와서 물었다.

    “아, 아아, 아뇨!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자자, 과잠 정도는 입어 줘야 대학생 체험이지!”

    서슴없이 예진에게 다가간 은장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서울한국대 과잠을 예진에게 입혀주었다.

    “잘 어울리네!”

    “오, 진짜. 예진이는 벌써 대학생 같다.”

    은장의 말에 명천도 맞장구를 치면서 칭찬을 해 주었다.

    “지, 진짜요?”

    예진은 부끄러운 듯 헤헤, 웃으면서 입고 있는 서울한국대 과잠을 이리저리 살폈다.

    “선배들도 과잠 입고 잔디밭에서 짜장면 시켜 먹거나 그랬어요?”

    “응? 짜장면?”

    예진의 순수한 질문에 은장이 깔깔 웃었다.

    “아니야, 난 그런 적은 없어. 그런데 용희는 고구려대에서 자주 그랬다는데?”

    “거기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축제 놀러 갔다가 완전 취했었다고….”

    “진짜요. 그때 저도 집에 겨우 들어갔잖아요.”

    동석과 은솔이 투덜거렸다. 은장과 명천도 그럴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대학교 1, 2학년 때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풉.”

    그 모습들을 보면서 예진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냥 높은 대학에 다니는 선배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같이 다니고, 친해지다 보니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 웃었다!”

    동석은 예진의 웃음을 바로 눈치챘다.

    “네, 네?”

    “아니, 멘토링 하는 내내 예진이는 웃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언제 웃나 했는데, 지금이네!”

    은장도 예진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웃었다. 예진은 선배들의 반응에 부끄러우면서도 여러 감정이 뒤섞여 들어왔다.

    부럽다.

    재미있겠다.

    즐거워 보여.

    새로운 삶이 생길까?

    대학교에서는 진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면서 예진은 한 가지 생각으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

    ‘나도 다니고 싶어.’

    목표하는 곳이 서울한국대는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배우기도 어려웠다.

    만약 대학에 간다면 초등교사가 될 수 있는 교육대학교를 가고 싶었다.

    -경기교대 가자.

    강명문과 처음 만났을 때 예진은 경기교대를 추천받았다.

    감히 도전할 생각도 들지 않았던 학교였다.

    대한민국에서 서울교대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경기교대. 그곳에 가자고 추천을 받았을 때, 예진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망상이라도 좋으니 경기교대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적당히 성적 맞춰서, 장학금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을 텐데.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취업 빨리 할 수 있는 전문대여도 좋다고 생각했을 텐데. 그랬던 예진의 마음에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들 3만 원 선에서 기념품 하나씩 골라! 내가 쏜다!”

    사실 이것도 멘토링 프로그램의 운영비로 들어가는 거였지만, 은장은 괜히 그렇게 농담을 던지며 으스댔다.

    멘티 학생들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소리 내 웃으면서 각자 정한 기념품을 들고 왔다.

    USB, 보조배터리, 컵, 반팔티, 노트 등 다양한 기념품들이 올려졌다.

    “예진이는?”

    멘티 친구의 말에 예진은 입고 있던 과잠을 벗었다. 그리고는 가격표를 확인했다.

    ‘49,000원!?’

    생각보다 비싸잖아!

    그렇게 생각한 예진은 과잠을 다시금 옷걸이에 걸어서 올려 두었다.

    “이거 사요. 괜찮으니까.”

    그때 예진의 옆에 있던 동석이 과잠을 다시 꺼냈다.

    “아, 아니에요, 이거 다른 친구들이 고른 것보다 더 비싸고….”

    “괜찮아요. 이거 어차피 운영비에서 일부 나가고, 부족한 건 우리가 내줄게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예진은 당황하면서도 동석의 배려를 거부하지 못했다.

    “은장아, 이거까지!”

    “다 골랐지? 계산해 주세요!”

    그날 대학생 체험하기 프로그램이 끝나고 서울한국대 과잠을 들고 온 예진은, 장롱 옆에 박혀 있는 못에 과잠을 걸어두었다.

    괜히 과잠을 보면서 웃음을 짓는 예진이었다.

    ***

    “다들 대학교에는 재밌게 다녀왔냐?”

    ““네!!””

    멘티 학생들로부터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녀석들의 대학생 체험을 도와준 멘토인 강문고 졸업생들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날도 더운데 고생했다.”

    “헤헤, 감사합니다.”

    경필이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다들 대학생이 되어 보니까 어땠냐?”

    내 질문에 학생들이 하나둘 손을 들었다.

    “생각보다 대학교가 넓어서 놀랐습니다!”

    “대학생 선배들처럼 과잠도 입어 봤어요!”

    “연애도 해 보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즐거웠다고 이야기했다.

    “기념품도 많이 샀네?”

    멘티 학생들은 이것저것 기념품도 많이 구매해 온 모습을 보였다. 노트, 펜을 들고 이 자리에 와 있는 녀석들도 있었고, 기념티를 입고 온 녀석들도 있었다.

    “그럼 기말고사 들어가기 전에, 주변의 초등학교에 가 보도록 하자.”

    대학생 체험하기에 이어서, 이번에 진행할 프로그램은 지역 인근 초등학교 봉사를 가는 것이었다.

    해피플레이스에서 지원해 주는 학교들이 서울시에도 제법 있었는데, 그 학교들 중 한 곳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배정해 둔 학교에는 너희 멘토 선배들의 대학 후배들도 같이 갈 거야.”

    내 말에 학생들의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대학생이 되면 이런 봉사활동도 자유롭게 다니게 된다는 걸 몸소 체험했으면 좋겠다.”

    설명을 끝낸 후 A조 구석에 앉아 있는 예진이를 바라봤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예진은 기념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예진이 과잠 사 줬어요!

    분명 은장이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다.

    ‘흠….’

    그래도 예진이의 눈빛이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였기에 멘토링이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알기로 과잠 가격이 3만 원이 아니었을 텐데.

    “그럼 다음 시간까지 개별 학습 들어가자!”

    ““네!””

    학생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졸업생들을 바라봤다.

    “잠깐 모여라.”

    이 녀석들, 오늘은 혼 좀 내야겠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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