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외전 (4) - 왜 여기 있어?
서울시 교육 복지 프로젝트. 그 시초라 볼 수 있었던 강남서초구 껌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강문고 졸업생들은 자기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강문고 선후배로 즐거운 추억들을 쌓아 왔다.
더러는 저들끼리 여행도 다녀오고, 엠티도 다녀오고 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왔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나만 없었어.’
동석은 단톡방의 인원들을 쭉 훑었다. 이 방에만 해도 총 14명이나 되는 인원이 있었다.
그런데 동석만 없었다.
‘나만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었어!’
다른 친구들은 모두 본인들의 연애 상담을 해달라며 단톡방에 글을 올려왔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언제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사귀었는지, 이벤트는 뭘 해 줬는지 등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석만 지금까지 여자친구 한 번 사귄 적이 없었다.
‘내가 방구석 너드라서…?’
동석은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잘 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집이 잘살지도 않았다. 전도유망한 로봇공학자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앞으로의 일.
지금 주목을 받는다고 해서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방구석 너드라서? 고등학교 때의 그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는 건지도 몰라서?
정작 본인이 연구가 재밌다며 들어오는 고백들을 저도 모르게 모조리 차 버린 건 전혀 생각 못 하는 동석이었다.
-선배 모쏠이에요!?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동석은, 후배인 은솔의 말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때 동석은 가슴 한켠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물론 은솔의 성격상 자신을 놀리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뇌리에 박힌 건 사실이었다.
‘나도 벌써 20대 후반이야.’
30대가 넘을 때까지 모태솔로면 마법을 쓴다던데, 내가 과학적으로 증명이나 해 볼까! 하하하! 하던 동석은 현자타임을 맞이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지금 웃을 때가 아닌데….”
물론 연애를 따로 하지 않고 연구를 하면서 학문적 성취를 최우선 목표로 해도 괜찮았다.
처음에는 담임쌤을 보면서 위안을 삼기도 했었다. 유능한 사람은 바쁘니까, 라며 자기위로를 했으니까.
그런데 계속해서 은솔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담임쌤을 롤모델로 삼아서 위로를 해 봐도….
-동석아! 너도 봄인데 연애 좀 해라!
대학 친구들도 이런 이야기들을 해댔으니, 동석의 마음이 평온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고등학교 친구들, 후배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볼 때도 과거와는 감상이 달랐다.
이전에는 좋았겠다, 재밌어 보인다, 였는데 이제는 그 감정이 아니었다.
‘부럽다.’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야 이거 봐라! 이번에 유채꽃 진짜 예쁘게 폈어! 너희도 놀러 가!
미란과 5년 전쯤 헤어진 정석은 그 이후로도 연애를 계속 해 왔다. 그리고는 또 여자친구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며 사진을 올렸다. 여자친구의 얼굴이 담겨 있는 사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석과 함께 손을 맞잡고 있는 사진에는 행복이 물들어 있었다.
단톡방 최장수 커플인 은장과 명천도 비슷했다.
-이번에 영화 어벤져스 짱잼. 꼭 봐!
-여기 맛있더라. 데이트코스로 추천함ㅇㅇ
이것들이 진짜!
참다참다 동석은 노트북을 열었다.
<솔로의 장점>
이런 걸 왜 검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그냥 이렇게라도 해야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로는 자유롭다, 커플은 피곤하다… 마음의 휴식을 가질 수 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 본 동석은 장점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았다.
-솔로는 자유롭다, 커플은 피곤하다: 지금까지 솔로였기 때문에 자유로웠다. 커플은 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마음의 휴식을 가질 수 있다: 지금 솔로인 나는 전혀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휴식은 개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만 집중해 왔다. 이젠 나를 놓아 줘야….
여기까지 작성한 동석은 맥빠진 눈동자로 화면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노트북 위에 올린 손을 양쪽으로 축 늘어뜨렸다.
“뭐 하는 거야 이게….”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앉아만 있던 동석에게 태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태성아.”
[동석… 뭐야 목소리에 힘이 없네?]
“아냐… 왜?”
태성은 잠깐 동석을 걱정하더니 이내 전화한 목적을 말했다.
[동석아! 너 여친 없지!]
이게 지금 장난치나. 친구고 나발이고!
“그래! 없다! 없어! 없다고!!!! 됐냐!!!”
[없으면 없는 거지 왜 화를 내냐.]
태성은 동석의 화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는 이어서 말했다.
[야야, 내가 이번에 스타트업 기업 하나 세우는 거 알지?]
태성은 국인대 면접을 볼 때 말했던 연애 가이드 기업을 설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애 가이드 어플을 개발했다며, 동석에게 그 첫 번째 회원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들도 그렇고 후배들도 다 남친여친 있잖아. 생각해 보니까 나랑 너 아니면 다 커플이더라고.]
“아.”
동석은 태성의 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솔로된 지 벌써 2년이나 지났잖아.]
“…기만자.”
[응? 뭐라고?]
동석은 태성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는 숨만 쒸익쒸익 불어넣었다. 태성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했지만, 본인이 할 말을 마저 이야기했다.
[아무튼, 그래서 이 스타트업 어플에 누군가 회원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피드백도 주고 했으면 좋겠는데, 회사 대표가 활동하기는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네가 좀 와 주라!]
“내가…?”
쉽게 말하면, 연애 도움 사이트에서 동석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후기를 올려달라는 뜻이었다. 실제 솔로 탈출에 도움이 되었는지, 소개팅 이후의 가이드라인이 효과적이었는지 따위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그런 거 한다고 뭐 달라지겠어….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
[없긴 왜 없냐?]
태성은 동석의 장점을 하나씩 꺼냈다.
[연천대 석박사 과정에 있는 천재 로봇공학 연구원, 미래 촉방받는 젊은 공학자, 언론에도 오르내린 최고의 연구자! 거기에 연애 경험은 없는 이 세상에 유일한 순수한 남자! 연애에 찌든 어설픈 인간들과는 다르지!]
그 외에도 동석의 장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마구 꺼내던 태성은 동석의 반응을 듣고는 놀라며 물었다.
[뭐야, 너 울어?]
“끄윽… 끅, 끅.”
동석은 친구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태성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아무런 쓸모없는(연애에서만) 방구석 너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라고 해 주지 않는가!
태성의 말에 용기를 얻은 동석이 호기롭게 대답했다.
“훌쩍, 알았어. 가입할게. 어플 주소 보내 줘.”
[오케이! 땡큐! 피드백 잘 해 주면 데이트 상품권도 줄 거니까 잘 부탁한다!!]
그날, 동석은 태성이 새롭게 세운 기업에서 런칭한 <연애세포의 기적> 어플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 * *
연희대 인근 카페.
은솔은 시험이 끝난 멘토링 후배들을 데리고 학교 구경을 시켜준 참이었다.
“어땠어?”
“진짜 예뻤어요!”
연희대는 건물부터 해서 주변 조경 등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한 대학교였다. 특히 벚꽃이 피는 계절에는 아름다움이 배는 올라갔다.
아쉽게도 학생들의 시험 준비 때문에 벚꽃 구경을 가지는 못했다. 멘티 학생들도 그 부분을 아쉬워했지만, 지금이라도 연희대 선배의 안내를 받아 학교 구경을 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먹자!”
그리고 지금은 최근에 오픈한 디저트 카페에 와 있었다.
“오 맛있다!”
“그치?”
은솔은 후배들에게 맛있는 디저트를 먹여 주었다.
이 비용도 모두 멘토링 활동비로 지급되는 비용이었다.
<멘토들 대학생 체험하기>
이번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과정 중 하나가 바로 멘토의 대학교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강명문은 최대한 은솔이 담당하는 E조 학생들은 최상위권 학생보다는 중상위권 학생들로 배정해 두었었다.
-중상위권 학생들의 희망 대학으로 연희대가 많으니까, 여기는 은솔이가 맡자.
그래서 지금 이렇게 후배들과 모여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는 할 만해?”
“네! 누나가 가르쳐 줘서 그런가 점수 올랐어요!”
“으이그.”
나이차가 제법 났지만, 은솔은 학생들에게 편한 마음으로 다가갔다. 덕분에 학생들도 은솔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호칭도 선배, 멘토 선생님이 아니라 누나, 언니였으니까.
“언니, 이거 알아요?”
대학생처럼 강의실도 돌고, 캠퍼스 낭만도 즐겼던 멘티 학생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최근에 설치한 어플을 보여 주었다.
“이게 뭔데?”
학생이 꺼낸 어플은 남녀 일러스트가 하트를 들고 마주보고 있는 로고가 박힌 어플이었다.
<연애세포의 기적>
어플 이름을 확인한 은솔은 흥미없다면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에이, 뭐야 이거. 또 소개해 주는 어플이야?”
“이건 소개가 아니고, 데이트 코스 추천해 주고 그러는 거예요. 언니도 남친이랑 데이트할 때 편할 걸요?”
“…남친 없어.”
“아.”
잠깐 침묵이 있었다. 은솔의 눈치를 보던 학생이 허둥지둥 어플 화면을 넘겼다.
“그, 그런 거 말고도, 연애 관련 칼럼이나 설문조사도 있고 그래서 재밌는 게 많아요!”
“후… 그렇구나. 뭐뭐 있는데?”
그래도 후배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반응은 해줘야지 싶었다. 무슨 어플일까, 살짝 들여다보려는 은솔에게 학생 한 명이 어플 화면을 보여 주었다.
“봐봐요! 연애를 잘 못 하는 사람이 소개팅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거나, 연애 칼럼도 추천해 줘요.”
확실히 은솔이 봤을 때, 이 어플에는 재미난 내용들이 많았다. 10대 중고등학생부터 젊은 20대 학생들, 직장인들이 좋아할 법한 내용들로, 나름대로 심리 분석까지 되어 있는 듯한 연구결과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능도 있어요.”
보니까 연애 경험에 대한 인터뷰도 들어 있었다. 게다가 VIP 회원에게는 어플 자체에서 회원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거나, 조언을 해 줄 수 있기도 했다.
“근데 이런 데에 인터뷰를 올리는 사람이 있어? 놀림감만 될 거 같은데?”
은솔의 말대로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연애 스토리를 꺼내면 본인에게 닥칠 불이익들도 많은 터였다. 그런데 VIP 회원들은 자신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인터뷰 내용을 솔직하게 올려두고 있었다.
“그렇기는 한데, 진짜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연애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나봐요. 뭐 엄청 주는 거 같았어요.”
내용을 보니, 직접 만남을 주선해 주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대신, VIP 회원에게는 어플과 제휴를 맺은 식당, 카페 등의 할인 쿠폰이나 이용권을 지급해 주는 듯했다.
필요하면 연애 고수들의 조언도 받을 수 있고, 패션 디자이너의 패션 지도나 뷰티 전문가의 화장법도 배울 수 있는 모양이었다.
“헤, 그렇구나. 그러면 또 이야기가 다를 것 같기는 한데….”
나름 괜찮은 전략이라고 생각하던 은솔은, 어느 페이지에서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열려진 페이지를 상세하게 읽어나갔다.
“응? 언니 왜 그래요?”
“잠깐만 기다려 봐.”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면서 VIP 회원이라 밝힌 사람의 인터뷰를 쭉 읽던 은솔은 머릿속에서 인터뷰 정보를 정리했다.
-연천대에서 로봇 연구를 하고 있는 공학자입니다.
-2011학번이고, 고등학교는 강남서초권을 졸업했습니다.
-연애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모쏠입니다.
-좋아하는 건 로봇… 아, 이렇게 말하면 여성분들이 안 좋아하려나요?
그리고 인터뷰 중간중간에 있는 사진들. 사진에는 얼굴 전체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관까지만 오픈된 사진, 일부를 모자이크한 전신 사진들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진들과 인터뷰 정보만으로도 은솔은 해당 VIP회원이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체크남방에 다 늘어난 청바지, 인터넷에서 제일 저렴한 가격으로 찾아서 구매한 백팩, 한 쪽에는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듯한, 꽤 오래된 노트북.
그런 인상착의를 가지고서 연천대에서 로봇 공학을 공부하는 2011학번 대학원생.
이런 사람은 은솔이 알기로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었다.
“선배…?”
여태 연애에 관심도 없던 선배가 왜 이런 어플에 가입을? 그것도 VIP 회원?
‘동석선배가 왜 여기 있어…?’
여러 생각이 겹쳐 오면서 은솔은 쥐고 있던 멘티 학생의 핸드폰을 붙잡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감히 나한테는 말도 없이 이런데 가입했다 이거지…?”
그것도 VIP로?
흐흐흐, 웃는 은솔이 불길한 미소를 띄우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차처럼 표정을 바꾼 은솔을 보며 멘티 학생들도 괜히 불안감에 몸을 덜덜 떨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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