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27화 (226/252)
  • 227화. 외전 (3) - 안 하는 거지.

    예진은 갑작스레 찾아온 사람들에 의해 당황했다.

    “뭐, 뭔가요!?”

    “얼른 들어가 봐, 얼른.”

    심지어는 임정훈도 낯선 사람들과 합세해서 센터를 찾은 예진을 강의실로 끌고 갔다.

    억지로 끌려온 예진은 손을 놓은 임정훈을 향해 눈을 흘겼다.

    “쌤! 갑자기 이게 무슨….”

    그리고 예진은 강의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말을 멈추었다.

    [오 왔네?]

    강명문 선생이 예진을 보며 빙긋 웃었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서울시와 강문고가 함께하는 교육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차 권한은 없으니 다들 긴장하세요.]

    그가 던진 농담에 학생들이 키득거렸다.

    [그럼 대략적인 프로그램 진행 순서입니다.]

    강명문은 PPT화면을 넘기면서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예진은 구석 자리에 앉아서 강명문이 하는 말을 경청했다.

    ‘어?’

    그러다 예진은 자신이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센터에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몇 명 보였지만, 예진의 눈에 들어온 건 그 친구들이 아니었다.

    “지효?”

    학교 같은 반 친구인 한지효였다.

    “응?”

    예진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지효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두 학생은 서로 놀라서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렇게 진행이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선배들이 여러분의 멘토가 되어 줄 겁니다. 다들 앞으로 나와 주세요.]

    “여러분들 멘토링 해 줄 김은장이에요! 반가워요!”

    은장의 소개를 시작으로 동석, 명천, 정석, 채영, 태웅, 민주, 은솔, 용희, 경필, 민정, 동규도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그럼 이번 프로그램에서 많은 걸 배워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강명문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뭐, 형식적인 인사는 이 정도로 하고… 여기 모인 학생들은 모두 열심히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맞지?”

    ““네!!!””

    예진을 제외한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 강의에 들어가면 여기 있는 선배들은 절대 안 봐줘. 왜인지 알아?”

    그 대답을 알고 있는 졸업생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한테 배워서 그래.”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졸업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최대한 배워 갈 수 있는 걸 배워 가도록! 각자 정해진 자리로 가서 멘토 선배들과 간단히 인사 나누자!”

    강명문의 지시에 맞춰 학생들이 각자 속한 그룹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담임멘토로 불리는 대표멘토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아래에 있는 대학 1학년 멘토들은 실제 코칭 때 합류할 예정이었다.

    학생들은 각자 그룹에 들어가서 선배 멘토들의 설명을 들었다.

    과정은 간단했다.

    1. 정해진 수업시간에 이곳 센터에 모여 강의를 듣는다.

    2. 강의가 끝나며 1시간 동안 자기주도학습을 하면서 멘토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3. 월 1회씩 전문 교사들의 진로진학상담을 받으며 희망 진학 전략을 설정한다.

    그리고 이걸 반복하는 것이었다.

    “예진아!”

    일정을 마치고 강의실 밖으로 나온 예진은 친구인 지효의 부름에 얼굴이 굳었다. 이곳에서 학교 친구를 만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예진아! 너도 이거 신청했었어?”

    “어? 으, 응?”

    “이거 선착순 놓칠 뻔했잖아. 나 하니까 금방 마감 공지 올라오더라고! 그런데 너도 성공한 거 보니까 신기하다!”

    지효는 낯선 공간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서인지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 어. 나도 운이 좋았어.”

    “그치? 들리는 소문에는 뭐 한부모나 차상위 애들은 신청 잘 안 해서 바로 된다던데, 걔네들은 또 부럽기도 하다.”

    히죽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지효를 보면서 예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풀고는 억지로 입술을 올렸다.

    “그,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너랑 그룹은 다르지만 같이 듣는다는 거 알았으니까, 앞으로 학교 끝나면 같이 오자.”

    “응? 지효 너 과외 받지 않아?”

    “과외야 조정하면 되지! 공교육의 희망! 강명문쌤이랑 그 제자 선배님들한테 멘토링 받는데, 그게 중요해?”

    확실히, 강명문과 그의 제자들의 명성은 전국에 퍼져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자신도 그런 어려운 기회,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예진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나 C조거든? 우리 조 봤어?”

    “응? 아니, 왜?”

    예진이 묻자 지효는 인상을 살짝 쓰면서 손을 휘저었다.

    “옆에 앉은 남자애 안 씻고 왔나 봐. 냄새 진짜 대박 어우.”

    “많이 심했어?”

    “응. 장난 아니었어. 걔 엄마가 없나?”

    정말 아무런 악의를 담지 않고서 이야기를 건네는 지효를 보면서 예진은 생각했다.

    ‘원래 이런 거니까.’

    이런 상황에서의 답변.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왔던 답변이었다.

    그래서 예진은 평소처럼 지효에게 말했다.

    “에이, 그냥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겠지. 다음에는 씻고 올 거야.”

    “그치? 아니면 씻는 걸 싫어하는 거겠지? 이런 것도 편견인데, 나도 참 히히.”

    그날, 예진은 지효와 함께 학교 근처까지 가서 헤어졌다.

    그때까지도 예진의 오른 주먹은, 꽉 쥐어진 채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효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예진은 주먹을 쥔 오른손을 빼냈다.

    ‘편견….’

    그게 편견을 없애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말인가, 생각하면서도 예진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지효와 걸어왔던 길 반대편으로 몸을 돌린 예진은 그 길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 * *

    자리에 앉아서 오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학생들의 명단을 뒤적였다.

    이번 프로젝트도 그렇지만, 이전부터도 이 교육 복지 프로젝트는 일반 학생들의 참가 기회도 열어 두었었다.

    자칫 잘못하면 낙인 찍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쟤는 못 살아서 저런 프로그램 듣는데. 쟤는 엄마아빠 없어서 저거 듣는데. 이런 낙인이라도 찍히는 순간 끝입니다.

    오성주와 박재우가 동시에 그 점을 강조했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절반은 일반 청소년들, 절반은 조건을 갖춘 사회배려 청소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평소였다면 명단을 그렇게 집중해서 보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딱 하나가 신경이 쓰였다.

    “왜요, 쌤?”

    동석이가 내 옆으로 와서는 물었다.

    “아, 좀 걱정되는 애가 있어서.”

    “예진이요?”

    “아니, 걔 말고 다른 애야. 정석아, 너 C조 담임멘토지?”

    내 말에 정석이가 바퀴달린 의자에 앉은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드르륵- 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네! 제가 C조입니다!”

    “한지효라는 애, 예의주시해라.”

    정석이는 명단을 한 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있죠?”

    “뭔가 있을 수도 있겠다.”

    녀석은 도수경례를 착! 하더니 노트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었다.

    이제는 군대 다녀왔다고 나름 경례 자세가 잘 잡혀 있었다.

    “그럼 첫 수업은….”

    “제 특강입니다!”

    은장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은장이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하긴, 지금은 민주랑 사회적기업 창업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녀석이니.

    “그럼 내일은 국어 학습법 특강부터구만. 이번에도 잘들 부탁한다.”

    은장이가 준비한 특강은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을지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강의였다.

    바로 자기주도학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학습법을 알려 주고, 그 뒤에 레벨테스트를 개인별로 본다. 이거 보안에 각별히 유의해라. 알지?”

    “네, 당연하죠.”

    “좋아. 그리고 너희들도 일정이 있으니까 학생들하고 수업, 멘토링 일자 잘 체크해. 나도 학교 일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잡을 거니까.”

    녀석들이 다시금 스케쥴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에 제출 받은 예진의 학생부를 꺼냈다.

    * * *

    멘토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졸업생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는데, 특히 1:1 개별 멘토링을 할 때 빛을 발했다.

    “국어 지문을 읽을 때는 그 지문의 답만 찾으면 안 돼.”

    “그럼요?”

    “그 이상의 문제를 직접 만들어 봐야지. 그리고 지문 하나만 미치도록 공부한다고 해서 독해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도 보면….”

    은장이는 자신의 국어 공부 비법이라면서 자신의 학습법을 토대로 예진이를 비롯한 A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미 대학교도 졸업하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꾸준히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던 덕분에 어려움 없이 진행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인기도 많았다.

    “언니는 그럼 명천 오빠랑 언제부터 만났어요?”

    “아, 우리는 스물한 살 때 시카고에서….”

    그런 연애 이야기를 섞으면서 학생들과 라포를 형성하기도 했고 말이다.

    “인싸는 다르네.”

    그런 은장이를 보면서 동석이가 부럽다는 듯 눈길을 보냈다.

    “응? 선배도 인기 많으시잖아요?”

    “나는 방구석 너드지 뭐. 지금까지도 연구하느라 연애 한 번 못 해 봤고….”

    “헐 대박. 선배 모쏠이에요!?”

    “은솔아, 조용히 해!”

    “헙!”

    은솔이의 말에 상처받은 동석이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방구석 너드… 모쏠… 연애고자….”

    민주는 은솔이에게 가볍게 딱밤을 먹이면서 잔소리를 했다.

    “야, 넌 꼭 그렇게 사람 속을 후벼 파야겠냐? 할 말 못할 말 가려야지!”

    “아니이 그게 아니라… 그냥 진짜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했던 건데….”

    나는 한숨을 시면서 동석이에게 다가갔다.

    “동석아, 기운내라. 나도 연애 안 하잖아.”

    “와….”

    “진짜 위로 못 하신다….”

    정석이와 명천이가 내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왜, 뭐. 내가 연애 안 한다는데 보탬이라도 줬냐.

    “…그렇네요. 쌤, 감사합니다.”

    “응?”

    “엥?”

    “저걸로 기운을 차린다고?”

    나와 동시에 채영이와 정석이가 황당하다며 동석이를 바라봤다.

    “쌤도 연애 안 하시는데, 저도 안 할 수 있죠. 그래요, 저나 쌤처럼 유능한 사람들은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안 하는 거죠!”

    알 수 없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듯 동석이가 양 주먹을 꽉 쥐며 일어섰다.

    “그, 그래… 얼른 멘토링 하러 가 봐라.”

    “네, 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동석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쟤 괜찮겠지?’

    아무튼, 멘토링은 문제없이 진행되어 갔다.

    학생들은 학습법을 하나씩 익혀 갔고, 테스트를 꾸준히 보면서 실력을 점검해 갔다.

    “아.”

    그리고 멘토링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어 두달을 꽉 채워서 지나갈 때, 드디어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진아! 대박!”

    예진이가 속한 A조를 담당하는 은장이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국어 중간고사가… 1등급?”

    바로 1주일 전에 끝난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성적 이야기였다.

    좀처럼 오르지 않던 국어 성적이 올라간 것이었다.

    “뭐야뭐야! 어떻게 공부한 거야!”

    “어… 그, 그러게요.”

    예진이는 스스로도 어안이 벙벙한지 가채점한 시험지를 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예진이 국어 올랐어?”

    “네 쌤! 이번 멘토링 첫 성과예요!”

    성적 향상의 첫 번째 사례라며 은장이가 뛸 듯이 기뻐했다.

    ‘그렇게 좋을까.’

    은장이는 비록 고등학생 때와는 다른 진로를 갖고서 창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기쁨을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예진이의 성적 향상에 저렇게 진심으로 좋아해 줄 줄도 알았다.

    “가, 감사합니다. 제가… 선배님 덕분에 도움을….”

    “에이 선배는 무슨! 언니라고 해! 말해봐! 은장 언니.”

    “어, 네? 으, 으, 은장 어, 언니…?”

    “잘 하네! 우리 이대로 기말고사때는 만점 받자!”

    은장이가 예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어깨동무를 했다.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은장과 그 분위기에 다소 어색해하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는 예진이었다.

    “역시.”

    예진이의 입시 전략.

    그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성적 향상이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

    예진이는 충분히 학습 역량도 있었다. 다만, 그걸 옆에서 응원해 주고, 학습법을 잡아 줄 선생님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걸 은장이가 잡아 주었고, 그 결과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관문은….

    “시험도 끝났으니까 이제 슬슬 가 봐야지.”

    프로젝트 준비용으로 걸어둔 캘린더를 보면서 졸업생들을 불러보았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학생들만을 위한, 특별한 봉사활동이 슬슬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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