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외전 (2) - 차예진 입시 전략
꿈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씩은 품게 되는, 실현 불가능한 꿈.
-예진이는 똑똑하니까 잘할 거야.
초등학교 4학년 때, 예진의 담임선생님은 예진을 예뻐했다.
-예진이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저는 선생님이요!
그 질문에 예진은 호기롭게 대답했었다.
-응, 꼭 이룰 수 있을 거야.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던 예진이었다. 당시 담임도 그런 환경에서 열심히 하는 예진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었다.
문제집을 사 주기도 했고, 책을 추천해 주면서 빌려 주기도 했다. 더러는 모르는 문제들을 알려 주기 위해 과외처럼 수업을 해 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예진은 생각했다.
‘나도 담임쌤 같은 선생님이 될 거야!’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예진은 열심히 공부했고, 또 열심히 공부했다.
-예진이는 공부를 잘 하네!
-예진이가 이번에도 반 1등이야!
칭찬은 딱 중학교 3학년 1학기까지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시험에서 수학이 미끄러졌다. 점수는 90을 조금 넘기지 못한 88점.
처음으로 90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래도 그때는 괜찮았다.
실수 한 번쯤이야 누구나 하는 거니까.
예진은 그렇게 생각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다시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에게 혹독한 현실만을 알려 줬다.
-예진이는 공부를 못 하지는 않는데….
-학원이라도 다녀 보는 건 어떠니?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치른 두 번의 시험에서, 예진은 정확히 내신 평균 3등급을 맞았다.
원점수는 90점을 넘기지 못했다. 겨우겨우 80점 중후반대의 성적을 유지했다.
예진은 혼자 열심히 공부했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형편은 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같이 학원을 다니자고 해도, 나는 학원에서는 더 공부가 안된다며 핑계를 대곤 했다.
그리고 점차 한계가 드러났다.
친구들과의 성적 격차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2가 된 후에야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도 예진보다 높은 등급을 받기도 했다.
모두 학원과 과외의 힘 덕분이었다.
예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쟤도 학원 다니잖아.’
‘쟤는 과외 받고… 서울한국대 오빠라던데….’
생각은 점차 예진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인터넷 강의랑 자기주도학습이면 충분해. 그렇게 자기최면을 아무리 걸어 봐도, 예진의 성적은 조금씩 하락하기만 했다.
그때부터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꿈꿔 왔던, 교사의 꿈을 내려놓기 시작한 것은.
그래서 예진은 꿈을 버렸다.
아니, 마음속에 그냥 간직하고만 있는, 이룰 수는 없지만, 응어리처럼 남아 있는 꿈이었다.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너튜브에서 교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발표를 하거나 대회를 나갈 때도, 교육 분야의 관심도를 보여 준 적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예진이 지금 생각하는 교사라는 진로는, 정말이지 이제는 다 꺼져서 심지만 조그맣게 남아 있는 작은 양초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분명, 분명히 그랬을 터였는데…
“경기교대…요?”
꺼진 양초심지에 불이 지펴졌다.
불을 지핀 사람은 다름 아닌 강문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인 강명문이었다.
예진도 익히 알고 있는, 내가 선생님이 된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은사님이나 강명문 선생님 같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떻게 보면 연예인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예진의 앞에 서 있었다.
“그래, 경기교대.”
“하, 하지만 전….”
마음속에서 내면의 외침이 들려왔다.
-빨리 얘기해! 교대가 가고 싶다고! 사범대도 좋다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얘기해!
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예진의 입은 중얼거리듯 뻐끔뻐끔할 뿐, 제대로 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나마 나오는 말도, 강명문의 의견에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저는… 갈… 수 없어…요.”
그 말을 들은 남자 대학생이 살짝 놀랐는지 두 눈을 꿈뻑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 그게….”
“됐다, 동석아. 아무래도 우리가 갑자기 와서 놀란 모양이야.”
강명문은 예진에게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임정훈에게 말했다.
“한 30분 정도면 회의가 끝날 것 같습니다. 그때 선생님께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임정훈은 문을 닫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는 강명문과 제자들을 보면서 얼떨떨했다.
‘경기교대라고?’
예진이 그에게 직접 성적을 밝힌 적은 없었지만, 얼추 알고는 있었다. 지나가면서 예진의 작년 기말고사 성적표를 슬쩍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확인한 성적표는 분명 1등급과 4등급이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임정훈이 생각하기에 예진이 열심히 수능 공부를 하면 갈 수 있는 학교는 최대 국인대 정도였다.
그런데 경기교대라니.
‘그게 가능해?’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바로 강명문이라는 사실이, 그에게 ‘한번 믿어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전 사례를 만들어 온 강명문. 그라면 정말로 예진을 경기교대에 합격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사학비리 사건으로부터 벌써 5년이 지났다.
2017년, 강문고는 한 번의 변화를 더 겪어 가고 있었다.
<서울시 교육복지 참여 학교>
강문고 정문에 설치된 푯말이 지금 강문고가 어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강 선생님.”
프로젝트 준비 때문에 한창 바쁘게 회의를 하던 교사들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흰머리가 더 많아진 강은숙 이사장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논의할 사항이 있다고 하셔서요.”
강명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밖으로 나가 이사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사장이 물었다.
“그럼 이 학생은 이후에 그것까지도 고려하시는 거군요.”
“네. 어떻게 보십니까?”
그의 물음에 이사장이 밝게 웃었다.
“추진해 보세요. 괜찮겠네요.”
이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한 강명문은 다시 교무실로 들어왔다.
“뭔데?”
심지석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강 선생님만 따로 오더 받으신 거 아니에요?”
박은환은 대충 어떤 일인지 알겠다면서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의 밀담에 대해 풀어놓으라고 말했다.
“제가 오더를 내려달라고 한 거 같기도 하네요. 이사장님은 일단 승인하셨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강명문은 강은숙 이사장과 나눈 이야기를 동료 교사들에게 간략히 전달했다.
“시랑 지역구에서도 진짜 학생에게 도움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해 보라고도 하셨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박은환의 말대로, 현재 강남서초 구청장인 오성주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지역에서의 교육 봉사를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서울시에서도 그 편을 원했고요.
“하지만 절차라는 게 있잖나. 공무원들이 그런 절차에 민감한 건 우리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이야기를 들은 오석상 선생이 물었다.
그러자 심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청기간 지나서 들어오지 않았어? 얘만 받아도 괜찮은 거야?”
심지석의 말에 강명문은 한숨을 푹 쉬었다.
“맞습니다. 도와주고는 싶은데 그게 조금 걸리네요. 센터 선생님이 따로 연락까지 주셨는데 말입니다.”
“아니면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해 주면 어때요?”
서비스 형식으로 해 주자는 박은환의 의견이었다.
“그것도 괜찮겠는데?”
“저도 돕고는 싶은데… 이렇게 한 명만 추가해서 해도 괜찮나요?”
윤기준의 말에 차석기가 물었다.
심지석의 의문과 같은 내용이었다.
확실히, 그 부분은 걱정이 될만 했다.
자칫 잘못하면 형평성 문제가 거론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강명문은 교사들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몇 명 더 받아 버리죠.”
“아….”
“저, 저, 저거 또 저런다. 너 작년에도 그렇게 했다가 우리 고생한 거 기억 안 나? 잘못하면 재학생 애들 못 챙겨줄 뻔했잖아.”
탄식하는 박은환의 옆에서 심지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강명문도 그 일은 알고 있었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지역구 교육복지 프로젝트 때, 신청자 이상으로 대기자들을 모두 받아 준 덕분에 교사들의 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강문고 3학년 학생들의 입시 시즌까지 영향을 줄 뻔도 했던 사건이었다.
다행히 강명문을 비롯해 다른 교사들과 졸업생들이 주말에도 나와서 학생들을 챙겨주면서 그 일들은 수습이 되었었다.
“그래도 뿌듯하지 않았습니까.”
“뿌듯하기는 했지만, 작년처럼 또 수십 명 더 받아 주면 끝도 없어. 이번에는 더 받더라도 다섯 명 정도가 한계야.”
강명문은 심지석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고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진이를 포함해도 열 명이 안 되니까.’
실제 대기자는 열 명이 넘었지만, 예진의 신청서가 도착한 날까지를 데드라인으로 잡고 한다면 괜찮았다.
강명문은 이 사항을 오성주에게 전달했다.
[하하하, 그럼 제가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기존 인원보다 더 받아서 좋은 취지의 활동으로 이어 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예산 집행만 추가로 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며 오성주가 껄껄 웃었다.
하긴, 지금 예진이를 비롯한 추가 인원들에게는 예산이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교사들은 추가된 학생들을 위해 일부 재능기부를 해 주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도 뭐, 이렇게라도 해야지.”
강명문은 전화가 끊어진 스마트폰을 들고 씨익 웃었다.
“이게 끝나면 거기에도 추가를 해 보고.”
방금 전, 이사장과 구상한 또 하나의 목적을 생각한 강명문은 곧장 단톡방을 열었다.
* * *
“오늘부터 각자 맡은 교과목들을 강의하게 될 거다. 강의라고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후의 자기주도학습 멘토링이 더 중점이야. 알지?”
“에이 쌤, 저희가 이거 몇 번짼데요. 당연히 알죠!”
은장의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옆에 앉아 있던 명천은 잠깐 명단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쌤, 생명과학이랑 화학은 두 명 맞아요?”
“그렇게 됐다. 알잖아? 이과보다는 문과가 많은 거.”
강명문의 말대로, 교육복지 프로젝트로 만나는 학생들 중 이과 학생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참가자 총 30명 중 생명, 화학 교과 멘토 신청자가 2명이나 있다는 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래도 작년이랑 재작년보다는 낫네요.”
“그래. 점차 그렇게 더 나아질 거다. 지금은 밸런스가 너무 맞지 않지만 말이야.”
강명문은 차차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안고서 명단에 적힌 내용을 설명했다.
“동석이, 명천이, 용희가 수학이랑 과학 과목들, 민주랑 은장이, 태웅이가 국어랑 영어, 정석이랑 은솔이가 사회, 채영이랑 경필이가 예체능. 알지?”
강문고 졸업생들은 이제 시간이 흘러서 다들 졸업 직전이거나, 취업을 준비하거나 이제 막 취업을 한 상태였다.
채영, 정아, 태성은 취업을 한 상태였고, 은장은 민주와 함께 창업을 준비중이었다.
동석처럼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도 있었다. 명천도 이제 막 레지던트를 시작한 시점이었다.
강명문은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후배들을 도와주러 온 녀석들을 기특하게 여겼다.
“그룹 수업, 1:1 멘토링 이외에도 여러 특강들이 열릴 거야. 청소년들 대상의 대회들도 열릴 거고. 어느 정도 멘토링이 진행된 이후에는 여기에 갈 거다.”
“오오오.”
졸업생들이 일제히 감탄하면서 강명문이 보여 주는 화면에 집중했다.
“오래간만에 가겠다, 해피플레이스!”
졸업생들이 간만에 외부활동 좀 하겠다면서 신나 했다. 용희는 학과 동기, 후배들과 지난달에도 다녀왔었다며 괜히 으스댔다. 강명문은 그런 졸업생들을 향해 종이몽둥이를 살살 흔들었다.
“자, 자 집중. 아쉽게도 이번에는 건축봉사가 아니다.”
“그럼 어떤 거 해요?”
“해피플레이스에서 지원하는 초등학생들 도와주러 갈 거야.”
강명문은 이미 박재우 주임과 이야기를 끝내 두었다며, 향후 봉사 계획들을 설명했다.
“쌤, 그런데 봉사활동은 최소화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계획이 바뀌었어. 생각해 둔 게 있거든.”
강명문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한껏 올라갔다. 그걸 확인한 학생들이 너나 할 거 없이 피식 웃었다.
“또 뭐 생각나셨나 보다.”
“마음에 드는 학생이라도 생겼어요?”
“진짜 입시랑 연애하신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졸업생들을 향해 강명문은 눈길만 한 번 쓱 날렸다.
‘갈 수 없다고?’
그는 며칠 전에 만났던 차예진 학생을 떠올렸다.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마인드부터 고쳐 줘야지.”
차예진의 입시 전략.
그 시작을 알리는 멘토링이 다가오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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