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25화 (외전) (224/252)
  • 225화. 외전 (1) - 센터 학생 차예진

    서울 북부에 위치한 청소년센터.

    형편이 여의치 않은 청소년들을 위한 기관으로, 청소년들의 학습과 진로체험, 상담 등을 도와주는 장소.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차예진 학생은 센터의 빈 의자에 앉아서 동경하는 직업과 관련된 너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강문고등학교 교사들은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지역 학생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강문고등학교 교감인 오석상 교사 교감은….]

    하지만 예진의 귀에 센터에서 틀어 둔 뉴스 소리가 흘러들어오면서 너튜브 감상이 깨졌다.

    이어폰을 끼고 있음에도 예진의 귀에 들어올 정도였다. 꽤 큰 TV소리에 예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쌤, 소리 좀 줄여 주세요.”

    결국 이어폰을 뺀 예진이 센터의 담당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담당 직원인 임정훈은 고개를 까딱 움직이고는 손을 휘휘 저었다.

    “너튜브 보고 있으면서 왜?”

    “아니, 이어폰 껴도 들린다고요!”

    예진이 투덜거리면서 토라진 척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싱긋 웃은 임정훈이 TV의 볼륨을 줄였다.

    [특히 강문고등학교의 강명문 교사는 지금까지의 실적들을 토대로 학생들이 학력격차를 겪지 않게끔 돕겠다면서….]

    “좋겠다 쟤들은.”

    다시 이어폰을 끼려던 예진은 임정훈의 말을 들으면서 나무 의자에 앉았다.

    “뭐가요?”

    “내가 고딩 때 저런 선생님들 만났으면 더 좋은 대학 갔겠다~ 싶어서 말야.”

    그러자 예진은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며 눈을 흘겼다.

    “쌤 명문대 나오셨잖아요.”

    “국인대가 무슨 명문대냐? 적당히 수능 봐서 간 거지.”

    그 말대로, 임정훈은 국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예진은 그런 임정훈이 조금 부러웠다.

    자신은 국인대를 넘보기도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요. 저는 거긴 꿈도 못 꿀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예진이 너, 공부는 하고 있어? 고3이잖아 올해.”

    임정훈이 심드렁하니 물었다. 그러자 예진도 별 감흥 없이 답했다.

    “됐어요. 그냥 적당히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예진은 가방을 꺼냈다. 그 안에서 꼬깃꼬깃한 성적표를 다시 열어보았다.

    ‘영어는 2등급, 확통(확률과 통계) 3등급, 아 화작(화법과 작문)은 1등급이다. 지과(지구과학)는 4등급… 하….’

    지난 2학년 2학기 성적표였다. 가방에 오랜 시간 넣어 둔 탓에 구겨진 종이가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예진은 그 성적표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니?”

    임정훈이 예진의 한숨소리를 듣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예진은 황급히 성적표를 숨기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허리를 꼿꼿이 폈다.

    “아녜요, 아무것도!”

    예진은 자신의 성적을 임정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국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센터 선생님이 자기 성적을 보면 놀릴 것만 같았다.

    ‘평소처럼 장난이라도 걸면….’

    물론 임정훈이 성적을 두고 놀리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진은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임정훈에게 성적표를 끝까지 숨겨 왔었다.

    “공부가 잘 안 돼?”

    “그, 그쵸… 인강으로 공부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예진은 센터의 도움으로 입시 특강 프리패스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고 있었다. 꽤 대형 학원의 강의였기에 열심히 듣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1:1 멘토가 없는 상황에서는 학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 인강으로는 내신 공부를 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수능 공부 영상만 있었기에 그에 대한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아니면 예진아. 너도 저거 신청해 보면 어때?”

    “어떤 걸요?”

    임정훈은 TV에서 나오고 있는 장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강문고등학교 교사들이 모여서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제가 저걸 어떻게 해요. 여기랑 지역도 다른데.”

    “하긴 그런가.”

    “그쵸? 그래도….”

    예진은 괜히 TV에 나오는 교사들을 흘깃 살폈다.

    ‘멋있다.’

    예진은 그들이 멋있어 보였다. 한때 교사를 꿈꿨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만약 기회만 주어졌다면, 교대나 사범대를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을 터였다.

    다만, 자신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강문고의 선생님들 이야기가 인터뷰, 기사로 뜰 때마다 열심히 찾아봤었다.

    마치 연예인의 영상을 찾아보는 것처럼, 예진은 강문고 선생님들의 자료를 자주 찾았었다.

    그래서 예진에게 교사란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

    즉, 동경의 대상이었지, 그걸 차마 목표로 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범대 포기하려고?”

    “제가 무슨 사범대를 가요. 성적도 이 모양….”

    말을 이어 가던 예진은 성적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을 할 뻔했다. 황급히 입을 다문 예진은 임정훈에게 괜히 신경질을 냈다.

    “아무튼! 전 그냥 적당히 국립대나 가서 취업이나 할 거예요!”

    예진은 학교를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는 북부 청소년센터에서 자습을 했다. 예진 같은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 둔 독서실도 있었지만, 예진은 그곳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인정하는 거 같잖아.’

    센터의 독서실을 사용할 수 있는 학생에게는 따로 자격이 필요했다.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거나, 부모 중 한 분이 계시지 않거나, 가출했거나, 학교폭력을 당했거나, 기초수급자 대상이거나, 그 외의 여러 이유들.

    모두가 교육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학생들이었다. 센터의 설립 목적에 걸맞게,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픈하는 특강, 시설들도 많았다.

    독서실도 그중 하나였다.

    공부를 하기 힘들어하고 공부할 장소도 마땅치 않은 청소년들을 위해 준비한 곳이었다.

    지금도 청소년센터 친구들 몇몇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반면, 예진이 앉아 있는 자리는 그런 청소년들뿐 아니라, 서울 북부 지역의 청소년들이면 누구나 방문, 이용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청소년들이 모여 청소년센터 동아리활동이나 봉사활동을 구상했고, 각종 대회를 준비하기도 했다.

    때문에 예진은 독서실을 가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예진에게는 센터의 독서실을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그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일반적인 친구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면 공부 안 할 거야?”

    임정훈도 예진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실을 이용해야 대학생 멘토도 붙여 줄 수 있었다.

    “멘토쌤들도 계시잖아. 분명 도움 될….”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예진도 임정훈의 배려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대학생 멘토들을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예진은 임정훈의 제안을 항상 거절했다. 그건, 고등학교 졸업을 1년 앞둔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신경써 주셔서 감사해요 쌤.”

    예진은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마음이 들지 않아 가방을 들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나는 예진을 보면서 임정훈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잘만 하면 국인대 정도는 갈 텐데….”

    그 중얼거림은 예진에게 향하지 못했다.

    * * *

    [내일 뭐하고 놀까?]

    예진은 방바닥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었다. 벌써 4년은 사용한 스마트폰이었다. 그나마도 당시에 가장 저렴한 모델로 구매해서인지, 이제는 배터리를 계속 충전하지 않으면 사용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약해진 핸드폰이었다.

    그래서 예진은 핸드폰 충전기를 꽂은 상태로 바닥에 누워서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확인하고 있었다.

    [간만에 영화 볼까?]

    한 친구의 제안에 톡방이 이모티콘으로 난리가 났다.

    [가자가자!]

    [그럼 점심먹기 전에 콜?]

    [(신나게 달려가는 토끼 이모티콘)]

    [(영화보며 팝콘을 먹는 다람쥐 이모티콘)]

    예진은 지갑을 꺼내서 남은 용돈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만 원밖에 없네.’

    만 원이면 영화 보고 떡볶이 1인분 사먹을 정도의 돈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이미 영화를 보고 나와서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요즘 떡볶이 무한리필 유행인데 내일 가볼래?]

    [나 좋은데 알고 있음ㅇㅇ내가 안내한다!]

    [오오 기대기대.]

    그러다가 한 친구의 톡을 본 예진의 손가락이 그대로 멈추었다.

    [예진이는?]

    예진은 지갑에 남은 돈을 다시 바라봤다. 그걸로 남은 3일을 버텨야 했다. 아니, 금요일인 오늘은 지나갔으니 토, 일을 버티면 되었다.

    [어떡하지? 라면 남은 게 있나?]

    그렇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 결국 예진은 고3이기에 댈 수 있는 핑계를 댔다.

    [미안. 난 엄마가 요즘 공부하라고 부추겨서….]

    [엥, 이번에도 빠져?]

    [밥만 먹으러도 안 올래? 공부해도 밥은 먹어야지!]

    친구들은 예진의 경제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예진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드러냈을 때, 친구들이 자신을 욕하고 손가락질할까 봐.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계속해서 단톡방에서 예진에게 영화를 보거나 점심이라도 먹자며 유혹했다. 결국, 예진은 성화에 못 이겨서 말했다.

    [그럼 카페 갈 때 연락 줘. 밥 후딱 먹고 카페 30분 정도는 괜찮을 듯?]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4천 원 안쪽으로 마실 수 있으니까, 6천 원이면 이틀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까짓거 편의점 김밥 한 줄로 점심, 저녁 다 채우면 되지.’

    예진은 내일 있을 친구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약간의 설렘을 안은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예진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주변을 계속해서 뒤적였다.

    ‘없어!’

    분명히 어제 핸드폰 옆에 놔두고 잤는데.

    자는 사이에 잠꼬대로 옆에 차 버리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지갑에서 빼두기라도 했었나?

    그래서 서랍장 아래나 깔아둔 요 아래, 문턱, 옷장 뒤, 가방 안 등을 모두 뒤졌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내 돈….”

    그때 예진의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예진아, 엄마가 오늘 현금이 없어서 만 원만 빌려 갔어. 내일 바로 줄게.]

    문자를 확인한 예진의 눈이 붉어졌다.

    지금이라도 엄마를 쫓아가서 돌려달라 그럴까?

    아니야, 엄마는 지금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거니까.

    그런 엄마를 찾아가서 다시 용돈을 돌려달라고 말하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쌤한테라도 빌릴까.’

    임정훈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예진은 이내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리고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남은 밥을 대충 주먹밥처럼 만들어서 아무 반찬 통에 쑤셔 넣은 예진은 통을 가방에 넣고 곧장 센터로 향했다.

    [미안, 오늘 역시 안 될 거 같아. 엄마가 고3이니까 공부에 집중하래. 학교에서 보자!]

    친구들에게 그렇게 톡을 남긴 예진은 눈물을 몰래 훔치면서 센터를 향해 달려갔다.

    * * *

    “웬일이야? 토요일인데 공부하러 다 오고.”

    임정훈은 토요일에 공부하러 나온 예진을 보며 기특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1층에 있는 커피 머신을 조작했다.

    “커피 마실래?”

    “…괜찮아요.”

    어쩐지 풀이 죽은 예진이었다. 임정훈은 어제 이야기 때문에 속상했나, 생각했다.

    “어제 사범대 포기할 거냐고 물어봐서 삐쳤어?”

    “…그런 거 아니에요.”

    예진은 그저 바닥만 바라보면서 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럼?”

    “그… 아니에요.”

    순간, 돈 좀 빌려달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겨우 자신의 입을 막았다며 예진은 가방을 들고 빈 강의실로 향했다.

    “아, 예진아 거기 지금 다른 사람들….”

    임정훈이 채 말리기 전에, 후다닥 달려간 예진은 평소처럼 강의실 문을 벌컥 열었다.

    “응?”

    강의실이 비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몇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자, 예진은 당황해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누구니?”

    “죄, 죄송합니다!”

    문을 닫고 나가려는 예진의 동작을 젊은 여성이 멈춰 세웠다.

    “여기 학생?”

    “네, 네? 아, 아뇨, 저기, 전, 그냥 구경하러….”

    쭈뼛쭈뼛 이야기를 하는 예진을 보면서 젊은 남성이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다가왔다.

    “학생이 놀라잖아. 저기, 우리는 올해 멘토로 참여하는 선배들이에요. 맞춤형 학습 계획 세워 주려고 모였는데, 학생도 받아요?”

    예진은 자신이 센터에서 공부하는 자격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여태껏 숨겨 왔었다. 그래서 지금 앞에 있는 멘토 언니오빠들에게도 숨길 생각이었다.

    그때, 예진의 뒤로 다른 남성이 다가왔다.

    “차예진?”

    “네, 네?”

    키가 꽤나 크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남성이었다.

    “임정훈 선생님이 추천하신 학생이 이 학생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선생님.”

    어느새 올라온 임정훈이 남성에게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예진아 미안. 내가 비밀리에 신청 좀 했어.”

    “…네? 뭘요?”

    대답은 임정훈 대신 선생님이라 불린 남성에게서 나왔다.

    “서울시 차원에서의 교육 프로그램. 고3 신청자 차예진. 사범대, 교육학과 목표로 하고 있고, 갈 수만 있다면 교대를 가고 싶은 학생, 맞지?”

    어느새 이런 정보까지. 예진은 임정훈에게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남성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자마자, 그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갑다. 나는 강문고등학교 강명문 선생님이야.”

    자신이 포기했던 꿈인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과는 관련 없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멀찍이 바라보고만 있었던 존재.

    그런 존재가, 자신의 성적표가 적힌 자료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경기교대.”

    “네?”

    “경기교대 가자.”

    그리고 강명문이 추천한 학교를 들은 예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려왔다.

    포기했던 교사의 꿈. 그걸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리고 그게 헛된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일단 커피부터 마실까?”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채, 예진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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