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24화 (에필로그 6) (223/252)

224화. 에필로그(6) -완결,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민주의 아버지인 오성주 국회의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이사장이 내 달콤한 휴가를 조기에 마무리하고 돌아오게 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교육정책 논의가 필요해요.

사건으로 인해 해임된 진순철을 대신해서 현재 구청장 직무대리를 하고 있는 사람은 행정지원과장이었다. 이 사람이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민주 아버지와 이야기가 잘 통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육정책 논의를 하기로 했고, 거기에 나를 꼭 포함시키고 싶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는 괜찮으려나.’

원래는 이전에도 교육정책 논의를 제안했었는데, 내가 민주 입시를 이유로 거절했었다. 게다가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피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큰 의미는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사학비리 폭로 사건도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육정책 논의를 하는 모습을 비추면 강문고의 이미지를 보다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사장도 이걸 제안한 거고 말이다.

게다가 민주 아버지로부터 별도 연락도 왔었다.

-예산 집행 건도 있고 해서 급하게 연락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민주 아버지는 나를 급하게 부른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이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산 집행.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교육정책을 확정 짓고 진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빠르게 확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지금 시점이면 원칙적으로는 늦은 거긴 하지만, 입시라는 특성을 고려해서 예비 예산을 만들어 두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진땀을 뺐다는 말도 덧붙였다.

‘민주 아버지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나는 그가 사학비리 폭로 사건 때 나를 도와준 사실을 떠올렸다.

적극적인 강문고 지지 선언도 있었지만, 그가 나에게 해 주었던 정치적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언론 한두 개에만 이야기를 퍼트리시죠.

-아직은 직접 나서지 마시고, 학생, 학부모들의 움직임을 먼저 주시하셔야 합니다.

-진순철의 끄나풀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려면….

민주 상담을 해 주면서 얻었던 조건. 그중 하나였던 정치적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도움을 주었던 오성주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나도 마음을 빠르게 정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제 번호를 동네방네 소문내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나는 불만을 가득 담은 채 이사장에게 말했다.

벌써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한 달이 넘게 지났다. 그때까지 교육정책 논의를 하면서 빠르게 달려왔다.

“만약 우리가 오성주 의원님과 별도로 연락을 하면서 교육정책 논의를 했다면, 손가락질을 받았을 테니까요.”

이사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애초에 시카고에서 나에게 지금 사태를 설명할 때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우리가 정보 오픈, 교육 정상화에 진심이고 열려 있다는 걸 보여 줘야 했어요. 폐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니까요.

이사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강문고에서 가장 유명한 교사가 나였기 때문에 계속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걸 사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사장의 입장도 이해는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중 첫 번째 후보가 바로 나였을 테니까.

사실 내가 이제 와서 불만스럽게 말한 건, 정말 투덜거리는 수준이었기에, 나도 크게 마음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사장의 말에 괜찮다고 답한 후 앞에 놓인 사탕을 먹었다.

“그나저나 정책 논의 결과는 언제 나온다고 합니까?”

“글쎄요…. 조만간 나온다고는 했는데….”

민주 아버지인 오성주는 논의 이후 내부에서 상세히 검토해 보겠다고 한 뒤로 연락이 없었다. 그 교육정책이 확정되면 우리가 움직일 방향들도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그래서 결정이 되는 순간, 곧장 움직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네, 아버님.”

오성주의 번호로 걸려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쌤!]

“응? 민주니? 아버지는?”

[옆에 또 누가 오셔서… 제가 대신 전화드렸어요!]

민주는 서울한국대에 합격한 이후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행복한 하루 중 하나가, 자기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주는 방금 전까지 내가 궁금해하고 있던 정보를 알려주었다.

“오? 정말?”

[네! 이번에 제가 제안한 정책도 좋은 것 같다고, 해 보자고 하셨어요!]

빠르게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가는 민주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알았다. 그렇게 준비할게.”

[네! 쌤, 그리고 곧 졸업식이니까 그때 봬요! 꼭이요!]

졸업식 약속을 잡으면서 민주와 통화를 마쳤다. 나는 이사장에게 민주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했다.

“좋은데요?”

“네. 더 넓게 나갈 수 있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3월부터라고 하니까, 일단 대기하시죠.”

민주와 민주의 아버지, 오성주가 준비한 강남서초구를 위한 교육정책. 생각보다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 같았다.

전생에서도 있지 않았던 정책. 그 정책이 어떻게 발현될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 *

얼마 뒤, 2012년 졸업식이 다가왔다. 이번 졸업식의 주인공인 3학년 학생들은 친구들과 고등학교 마지막 추억을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그중에는 민주, 은솔이, 용희, 태웅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은솔이는 친구들에게 여기로 모이라며 마구 손짓했다.

“아 밀치지 마!”

“내가 밀쳤냐? 뒤에서 밀었어!”

“쫌 조용! 단체사진 찍기 진짜 힘드네!”

졸업장을 들고 옹기종기 모인 3학년 3반 학생들과 용희가 모여서는 손을 들었다.

“쌤! 빨리요!”

“하….”

나는 못 이기는 척 녀석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러자 민주와 태웅이가 내 팔을 잡더니 중앙으로 끌고 갔다.

“쌤은 중앙!”

그렇게 말하면서 은솔이가 내 옆에 팔짱을 꼈다. 그걸 신호로 녀석들이 순식간에 내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아! 야야야야! 떨어져!”

“자, 찍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홍 선생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받은 핸드폰을 하나씩 들면서 번갈아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가관이네 진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확인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녀석들에게 밀려나서 인상을 팍! 쓰고 있는 모습, 몸이 앞으로 숙여져서 얼굴이 이상하게 꺾인 모습들만 찍혀 있었다. 심지어는 눈을 희번뜩 뜨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나를 밀친 범인, 앞으로.”

“아… 하하하… 죄송해요 쌤….”

은솔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웃었다.

그래, 졸업식이니까 봐주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은솔이에게 말했다.

“너희도 올해 후배들을 위한 조교 좀 하자.”

“네!? 이렇게 갑자기요!?”

은솔이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은장 언니한테 듣기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활동이라고….”

“나도 명천이 형한테 들었어. 엄청 빡쎄니까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그래,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힘든 건 사실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졸업하는 이 녀석들 때부터는 달라지는 게 있었다.

“너희부터는 인증서가 나올 거야.”

민주의 아버지인 오성주가 동료 의원들, 그리고 구청의 행정지원과장이 준비한 정책에 대한 것이었다.

“지역 학교 졸업생의 자기주도학습 캠프. 그거 통과됐거든.”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었던 방학 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나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강남서초권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지역의 후배들을 위해 교육 멘토링을 해 주는 정책이야. 일명 ‘GUM프로젝트’.”

강남서초(Gangnamseocho)

대학생(University student)

멘토링(Mentoring).

줄여서 GUM 프로젝트.

영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의 언어유희를 살려서 ‘껌 프로젝트’라고 부르기로 한, 이번 교육 정책에서 선보이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강남서초지역에서 공부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공부는 어렵지 않다, 성적 올리는 건 껌이다, 라는 의미를 담은 멘토링 활동이었다.

그리고 그 활동을 강문고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즉, 이제는 공공기관, 지자체에서 함께 하는 활동으로 인정된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활동 인증서도 나온다. 봉사활동 인증서로도 쓸 수 있으니까 언젠가 도움이 될 거야.”

동네가 동네다 보니, 이 프로젝트의 혜택을 얻는 녀석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것들을 채워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오성주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를 적극 추천했었다. 민주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쌤, 무조건 하겠습니다.”

용희가 결연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저도요! 간식 만들어서 가지고 갈게요!”

은솔이는 벌써 후배들에게 어떤 디저트를 만들어줄지 고민했다.

“저도 하겠습니다. 다른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가 있으면, 상담해 줘도 되나요?”

태웅이의 질문에 나는 씨익 웃었다.

“물론.”

“그럼 우리도 빨리 준비해야겠다! 바로 스터디 하자!”

민주가 친구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신나게 말했다. 참가 의사를 밝힌 다른 학생들도 포함해서, 이제 막 졸업을 하게 된 강문고 졸업생들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끝났어?”

녀석들을 바라보는 내 옆으로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다가왔다.

“어째, 올해도 조용하지 않겠는데요?”

“강 선생이랑 같이 하면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난 그 소란스러움이 좋던데! 졸업식도 아주 시끌벅적하고!”

어느새 왔는지 윤 선생과 오 선생도 함께 있었다.

“홍 선생님, 촬영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내년에 저는 또 2학년인데, 선배님들, 도와드릴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홍 선생은 이번 년도에도 2학년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3학년 담임을 한 번 했던 차 선생은 1학년으로, 2년 연속으로 했던 박 선생은 2학년, 3년 연속으로 맡았던 지석 선배도 2학년 담임이 되었다.

윤 선생은 과학연구부장을 맡게 되어서 담임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오 선생 역시 정식 교무부장이 되었기에 담임을 맡지 않았다.

물론, 지금까지 실적이 높았던 교사들이 입시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기는 해서 다소 걱정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모두가, 입시 시즌에는 3학년 학생들의 입시를 도와줄 예정이었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이게 정상이지.’

3학년 담임을 초임교사에게 맡기는 학교. 그 외의 담임 역할을 기간제 교사에게 미루는 학교. 그래서 항상 실적을 외치지만, 실상 그 실적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재력이나 권력, 대치동 학원빨로 만들어졌던 학교.

그리고 그 모든 과거의 오류를 벗어던지고, 새롭게 탈바꿈해 가고 있는 학교.

그런 학교의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날씨 좋네.”

상쾌한 공기와 시끌벅적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목소리들이 겹쳐서, 내 귓가에 들려왔다.

* * *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경필이, 민정이, 동규, 우현이가 3학년으로 올라왔다.

새로운 1학년들도 입학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 맡은 반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강 선생님은 몇 학년 맡으셨어요?

개학하기 직전, 신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나는 당연한 걸 물어보냐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오셨다!”

학생들이 교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황급히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3학년 3반 – 담임: 강명문>

표찰을 확인하고 교실 문을 드르륵- 열었다.

“이것들이 종 친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떠들고 있어!”

“종 친 지 10초도 안 지났….”

핑계를 대려는 우현이를 향해 찌릿, 눈빛을 날렸다. 그러자 우현이가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좋아. 아~주 좋아. 개학 첫날부터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줬어. 3학년 1학기 시작은 응당 이래야지! 안 그러냐?”

녀석들을 향해 10분 정도 잔소리를 해댔다. 3학년 3반 학생들이 힘들다며 괴로운 소리를 냈다.

“우는소리 하지 마.”

나는 교탁 위에 종이몽둥이를 탁! 올리면서 말했다.

“입시는 현실이다. 그 현실을 회피하지 마라. 주어진 환경,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 준비할 거 많겠죠?”

민정이가 불안한 듯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종이몽둥이를 들고서 교실에 앉은 학생들을 한 번 쭉 가리켰다.

새로운 3학년 3반의 입시 로드맵.

여전히 일은 많았고, 도와줄 학생들도 많았다. 쉴 틈은 없고, 새로운 입시 전략도 매번 구상해야 한다. 이제는 전생에 맡지 않았던 학생들도 많았기에, 미리 정보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올해 역시 입결 대박을 노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제는 나 혼자 입시준비를 하는 게 아니니까.

작년까지 나와 함께했던 교사들과 새롭게 합류한 교사들, 재작년과 작년 졸업생들, 그리고 이사장까지.

이들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라.”

내 말을 들은 학생들이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들이 다소 불안정해 보였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내신이 좋지 않아서, 모의고사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작년까지는 입학사정관제를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준비하려고 해서, 논술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고, 다 틀어지면 유학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하기도 해서.

그 이외에도 여러 이유들 때문에, 녀석들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너희들의 입시, 우리가 책임진다.”

녀석들의 입시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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