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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223화 (에필로그 5) (222/252)

223화. 에필로그 (5)

호텔의 테라스로 걸어가서는 쏟아지는 햇볕을 즐겼다. 그 아래에는 시카고의 리버워크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직장인도, 대학생도, 관광객들도 각자의 목적에 맞춰 길을 걸어갔다.

“날씨 좋구만!”

나는 테라스의 난간에 기대서 준비해둔 커피를 홀짝였다.

음, 바로 이 맛이야.

“이 맛에 휴가 오….”

그때 호텔 테이블에 올려 둔 핸드폰이 우웅- 진동을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반가운 사람이었다.

“교수님, 잘 지내셨습니까.”

[강 선생! 시카고에 있다며!]

전화의 주인공은 한목대 의과대학장 서윤수 교수였다.

“네, 지금 시카고에 있습니다. 리버워크가 보이는 호텔에서 묵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네요. 교수님 덕분입니다.”

사실, 내가 지금 시카고로 휴가를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서 교수 덕이 컸다.

한참 강문고가 사학비리 사건으로 정신이 없을 때였다. 그때 표적은 곽형조를 비롯한 이사진들이 주된 적이었지만, 이사장을 향한 화살도 제법 많았다.

이사장이 되어 가지고 왜 사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냐, 왜 이리 대응이 늦었냐, 이사장으로서 역량이 부족하다 등.

그런 이야기들이 쏙 들어가게끔 만든 주인공이 바로 서윤수 교수였다.

서 교수는 강문고의 사건사고들이 어지럽게 터지고 있을 때, 강은숙 이사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강문고는 강은숙 이사장이 있기 때문에 더 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지금까지 강문고의 강은숙 이사장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강은숙 이사장을 돕는 이유를, 자신도 강진 장학재단의 멤버 중 하나였다는 것으로 들었다.

‘정확하게는 멤버였다기보다는, 그냥 잠깐 알바 한 정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는 강진의 뜻을 이어 가는 교육자 중 한 명이기는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발표는 꽤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덕분에 이사장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고, 학교도 정상화가 되었다.

[으하하하! 그렇지? 내가 은숙이한테 거기 호텔 추천했거든!]

서 교수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신이 나서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저 웃을 뿐이었다.

2012학년도 입시도 이제 마무리가 다 되어 갔다.

수능도 끝났고, 수시 면접도 모두 치렀다. 학생들은 정시 원서 접수도 마쳤고, 정시 면접도 완료되었다.

나는 정시 원서 접수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사장과 동료 교사들에게 건의를 올렸다.

-저 좀 쉬다 와도 되겠습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요청이었다. 사학비리 사건에 대비한다고 온 신경을 거기에만 쏟았으니까. 그래서 내가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입시도 잘 마무리되었다.

특히, 휴가 신청 당시에는 민주, 은솔이가 최초합, 용희는 예비 2번이었다. 태웅이는 정시 원서 접수까지는 잘 마쳤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내 휴가를 오케이 해 주었고, 최종 승인도 빠르게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다들 강 선생이 보고 싶은 모양이야.]

“하하하, 저도 선생님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일찍 돌아올 건 아니지 않은가? 껄껄!]

“제가 왜 돌아갑니까?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이 놀러 오셔야죠.”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가던 우리는 잠시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이지, 모든 근심 걱정을 떨친 상태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어쨌든, 시카고에 내 친구들도 많이 있으니까, 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어. 졸업생 애들도 곧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내일이군요.”

나는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생각하면서 내일 출발에 들떠있을 녀석들을 떠올렸다.

[나도 나중에 가 볼 테니까, 졸업생들 잘 챙겨줘. 아, 그리고 주소 보내 둘게!]

서 교수가 문자로 친구가 운영한다는 레스토랑 주소를 보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주소를 따로 저장해 두면서 시카고 일정을 생각했다.

벌써부터 설렘 가득이다.

* * *

그리고 그 기대는, 며칠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네, 강명문입니다. 네? 공교육의 희망이요? 아직도 그딴 별명을….”

“뭔 학원이요? 죄송하지만 생각 없습니다.”

“교수요? 저 학사졸업인데요. 특별채용? 됐습니다 됐어요.”

“어디시라고요? 박세준 국회의원? 누구야 그건!!”

불과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나한테 이런 전화들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냥 한두 번 오는 전화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화들이 편하게 여행을 다니기 힘들 정도로 쏟아져 내렸다. 잠깐 전화를 받고 있으면 부재중 전화 문자가 한두 통씩은 꼭 날아올 정도였다.

그것도 꼭, 자기네들이 한참 일하고 있는 시간에만 전화를 하는 인간들도 많았다.

그런데 여기는 시카고잖아!

한국에서 오후 1시에 전화해도 여기는 밤 11시라고!

“진짜 미치겠네 아오.”

졸업생 녀석들을 만나서 맛집 투어를 하고, 시카고 시티 투어를 하면서 하루이틀 보내고 있었던 며칠 전이 그리워졌다.

“내 번호는 어디서 유출된 거야?”

별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전화가 오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사장이 유출했나? 아니면 박 선생이나 지석 선배? 학부모들인가? 국회의원한테 전화 온 거 보면 오성주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절규하는 나를 보면서 동석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쌤 괜찮으세요?”

“내가 백번 양보해서 전화까지는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자는 시간 좀 방해 안 했으면 좋겠다.”

시카고에 있는 사람에게 개념 없이 현지는 잠잘 시간에 전화하고, 문자 하고. 정말 뭐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이참에 잠깐 핸드폰 정지시켜 버려야겠어. 와이파이도 다 꺼 두고!”

“이렇게 갑자기요?”

맥주를 마시고 있던 은장이가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냐며 나를 말렸다.

“아냐, 이건 지옥이야 지옥!”

오늘은 졸업생 녀석들이 시카고 대학교 교수들, 학생들과 연구주제 토론을 마치고 나온 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체로 만나서 시카고 로드 투어를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 옆에는 동석이, 은장이, 정석이, 명천이, 정아, 태성이, 채영이가 모두 모여 있었다.

“근데 시차 생각 안 하고 연락하는 사람들 진짜 많은 것 같아요. 제 남친도 그러던데.”

채영이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명천이가 피식 웃었다.

“남친도 참 어지간하다.”

“명천이 넌 여친이랑 같이 놀러 다니니까 괜찮지!”

그 말에 은장이가 쑥스러운 듯 히죽 웃었다.

은장이와 명천이는 이번 시카고 여행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시카고 여행을 와서 며칠 뒤에 벌어진 일이라고, 정석이가 신이 나서는 나한테 설명을 했었다.

“뭐, 사귀는 건 좋은데 헤어졌다고 나중에 얼굴도 안 보고 그러지 마라.”

“에이 쌤, 뭐 벌써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은장이가 투덜거렸다.

하긴, 벌써부터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청춘이네 청춘!”

“누가 들으면 나이 50은 넘은 분인 줄 알겠어요.”

회귀한 시간에 다시 살고 있는 시간까지 합치면 50이 뭐냐. 이미 그 이상이지.

내 비밀을 모르는 졸업생 녀석들을 향해 그저 씨익 웃었다.

그때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만 좀 와 제발!!!!”

전화를 받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의 주인공이 깜짝 놀랐는지, 헉 소리를 냈다.

[저기, 담임쌤 아니세요?]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했다.

“태웅이냐?”

[네! 저 핸드폰 바꿨습니다!]

그래서 누군지 안 떴구나. 나는 태웅이에게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쌤께 소식 하나 전해드리려고요.]

“너… 설마…!”

현재 대한민국 시간은 오전 11시. 이 시간이면, 지금 태웅이에게 이슈가 될 사건은 하나밖에 없었다.

[쌤!!!! 저 서울한국대 아시아언어학부 붙었습니다!!!!]

“역시!! 축하한다 태웅아!!”

“태웅이 붙었어요!?”

내 말을 들은 은장이가 나한테 가까이 와서는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태웅아 축하해!!”

“이태웅! 고생했다 진짜!”

은장이와 정석이가 동시에 외치자 귓가가 우웅- 울렸다.

[헉, 은장이 누나? 남자분은 정석이 형이에요?]

어느새 누나, 형 호칭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는지, 태웅이가 반가워하며 인사를 했다.

“우리 시카고에서 쌤이랑 놀고 있어!”

동석이도 합류해서는 태웅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태웅이가 어라? 하면서 물었다.

[그럼 저희도 가도 되나요?]

“응? 너희?”

나는 태웅이의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서 밝게 웃었다.

[민주랑 용희, 은솔이도 시카고 가고 싶다고 해서요. 저희는 졸업여행처럼 부모님이랑 같이 가려고요!]

아무래도 다들 대입 결과도 좋았고 하니, 학부모들 동반으로 여행을 가려는 것 같았다. 졸업생 녀석들을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렸다. 녀석들도 거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럼! 우리 앞으로 3주는 더 있을 거니까 그 안에 와라!”

[네 쌤! 감사합니다!]

녀석의 반응에 피식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와있는 부재중 문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꺼 버리든가 해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문자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중 무시할 수 없는 문자가 하나 있었다.

<강 선생님, 문자 보면 연락 주세요.>

강은숙 이사장의 문자였다.

나는 바로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강 선생님! 거기서도 공교육의 희망으로 불리신다면서요?]

전화를 받은 이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장난을 쳤다. 나는 그 말을 되받아치면서 용건만 말씀하시라고 못을 박았다.

“저 국제전화료 많이 나오면 답 없습니다.”

[호호호, 많이 나오면 제가 지원해드려야죠. 강 선생님 번호 유출한 게 바로 저니까요.]

“아 진짜! 이사장님!!!”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호호, 미안해요. 내가 시차 생각해서 연락하라고 했는데, 그런 거 하나도 안 지켰죠?]

“네, 지키는 사람들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튼, 강 선생님께 전화를 한 건 다른 게 아니에요.]

이사장은 사람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이유를 설명했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기는 했다.

“그래도 이렇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으니까, 제가 한쪽만 선택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여러 곳을 다닐 시간적 여유는 없으실 테니.]

이사장과 추가적인 대화를 나눈 나는 곧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쌤, 내일 가세요?”

“내일은 아니고, 이틀 뒤.”

“왜요?”

태성이와 정아가 물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내가 지금 시점에서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와… 이제는 거기까지?”

“쌤 진짜… 이러다 학교 그만두시는 거 아니에요?”

명천이와 은장이가 누가 커플 아니랄까 봐 차례대로 감탄을 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미쳤다고 강문고를 그만둬?”

내가 여기에서 이룬 게 얼마고, 여기서 세운 명성이 얼만데 이걸 쉽게 버리겠나.

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녀석들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공교육의 희망, 시간의 마왕은 강문고를 지켜야지. 안 그러냐?”

“푸흡! 쌤 이제 별명 다 인정하시는 거예요?”

채영이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부끄럽기는 해.”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웃고 떠들면서 준비해뒀던 음료수를 마셨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돌아가기 전까지, 녀석들과 여러 장소들을 돌아다니면서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진짜, 마무리의 마무리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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