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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222화 (에필로그 4) (221/252)
  • 222화. 에필로그 (4)

    “아… 졌네.”

    “야! 정아 너 제대로 안 해?”

    정아의 탄식을 들은 태성이가 타박을 주었다. 이어진 제시문 면접 연습에서 정아가 후배들에게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정아, 입시 끝나니까 뉴스 안 보나 보네?”

    “아, 하하하… 아무래도 좀 소홀히 하게 되더라고요….”

    순순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 정아를 보면서 나는 정아를 이긴 상대를 바라봤다.

    “근데 상대가 민주면 어쩔 수 없기는 해.”

    “왜요?”

    “민주 아버지가 정치인이셔서 그런지, 민주도 시사에 관심이 많아요.”

    은솔이가 옆에서 대신 알려 주었다. 그러자 정아가 나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가 하라고 안 했다? 민주가 혼자 와 가지고 했지. 그러고 보니 민주 넌 서류기반 면접인데 여기서 뭐 해?”

    민주가 나를 보면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도 제시문 면접 보고 싶어요!”

    “안 돼. 늦었어. 넌 서류기반면접이야.”

    평소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라 그런지 확실히 이런 제시문에 강점을 보였다.

    그러니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겠지.

    “다들 열심히 하고 있네요.”

    그렇게 시끌벅적한 교무실 안으로 이사장이 나타났다.

    “이사장님!”

    “이사장님, 쌤이 저희 너무 부려먹어요오… 살려 주세요, 엉엉.”

    정아와 채영이가 이사장에게 우는 시늉을 하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이사장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이사장님도 강명문화가 되어 가고 있어….”

    은장이가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녀석들도 지친 모양이었다.

    하긴, 대학 1학년이 되고 지금까지 계속 굴리기만 했으니.

    나름대로 뿌듯한 기억들도 있겠지만, 뿌듯함도 일부 보상이 있어야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미리 준비해 뒀던 봉투를 하나씩 꺼냈다.

    “힘들 내라. 시즌만 잘 지나면 이거, 너희들에게 줄 거니까.”

    “그게 뭔데요?”

    동석이의 질문에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정석이랑 동석이,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지?”

    “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가기 좀 어렵다고도 했고.”

    “네에….”

    내 말에 동석이가 고개를 축 숙였다. 정석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부모님이 쉽게 허락을 안 해 주시네요.”

    “얼마나 망나니짓을 하고 다니길래 아직도 그러시냐?”

    “에이, 망나니까지는 아니야!”

    명천이의 말에 정석이가 그렇지 않다며 손을 저었다.

    “어쨌든, 너희들 단체로 여행 다녀오고 싶다고도 하지 않았냐.”

    나는 봉투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종이를 꺼냈다. 거기에는 미국행 비행기 티켓이 들어 있었다.

    “여기에 호텔 바우처도 다 준비해 뒀다. 혹시나 싶은데, 겨울방학 때 한 달 정도 못 빼는 녀석 있으려나?”

    “에이, 당연히 없죠!”

    정석이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친구들을 둘러보던 정석이는 다들 괜찮아하는 것 같아 보이자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장소는 미국 시카고.”

    녀석들은 장소를 듣자마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시카고요?”

    “LA나 뉴욕 같은 곳이 아니고요?”

    은장이와 정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며 물었다. 그러자 이사장이 대신 나와서 이야기를 했다.

    “강진장학재단 장학생이었던 학생이 지금 시카고대학교 교수로 있어요.”

    이사장의 말대로, 녀석들에게 시카고 여행을 제안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여행도 공부지.’

    단순히 미래 정보를 활용해서 주식 정보를 알려 준다거나, 사업 정보를 알려 줄 수도 있었다. 명품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사 준다거나, 장학금을 지급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들에 반대했다.

    -졸업생들에게 선물을 준다면 역시 교육 아니겠습니까.

    어설프게 물건을 사 주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여기 있는 녀석들, 모두 집안 빵빵하고 돈도 많은 녀석들이다.

    동석이도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벌써부터 천재공학자로 주목받는 녀석이니 미래 성공 가능성도 높았다.

    지금 현 시점에서 부족한 금액은 이사장이 GGG장학금도 주었고,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있어서 충분히 커버가 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뭣하러 돈, 물건을 줘?’

    녀석들이 고등학생 때 받은 상과 부상처럼, 성취감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선물은 바로 이거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주고 싶습니다.

    세상만사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없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얼마든지 있다.

    그중 하나가 교육이다. 돈을 아무리 쓴다 해도,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교육을 받기는 쉽지 않으니까.

    게다가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유학, 해외 취업 등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여행 역시 막혀버려서 당시 유학을 준비하던 많은 학생들이 곤란해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미래를 바꾸는 바람에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도 빠르게 일어나기도 했다.

    어쩌면,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 유행이 앞당겨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나는 이사장에게 해외 단기 스터디 여행을 제안했다. 해외로의 출국이 막히기 전에, 녀석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고 싶었다.

    내가 이 의견을 꺼내자 이사장이 시카고대학교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장학재단 장학생 출신 교수의 이야기를 했고 말이다.

    졸업생 녀석들은 이사장과 내 설명을 듣더니 입을 쩍 벌렸다.

    “시, 시카고 대학교?”

    “미국에서 탑텐에 들어가는 학교 아냐?”

    정석이와 명천이가 입을 틀어막고는 말했다.

    “거기 공과대학 교수님도 계세요?”

    반면, 동석이는 공학 교수님이 계시냐며 자기가 원하는 전공의 교수를 찾았다. 그 말에 이사장이 호호, 웃었다.

    “걱정 마세요. 장학생 출신 교수는 인문계열이지만, 계열별로 교수님들 한 분씩은 초대하기로 했으니까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동석이가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학생들이 콧바람을 내뿜으며 밝게 웃었다.

    “그럼 우리 영어 공부 좀 해야겠다. 은장이 너, 회화도 괜찮아?”

    “어… 회화는 나도 공부 좀 해야 하는데. 명천이는?”

    “나, 나? 나야 다, 당연히 회화도 가능하지!”

    태성이, 은장이, 명천이가 한 마디씩 하면서 외국어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들 들었지?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의 일정도 만들어 봤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녀석들의 여행 일정을 정리한 A4용지를 꺼냈다. 녀석들에게 한 장씩 나눠 주면서 항목들을 설명해 주었다.

    “먼저, 시카고 도착하면 시카고대학교부터 방문해. 거기에서 현지 대학생들과의 교류 활동을 하게 될 거다. 숙소는 근처 호텔로 잡아뒀어. 교수님들 만나면 한 달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할지 논의해 볼 거다. 그리고 시카고 전역을 돌면서 연구주제를 설정하고, 연구계획서를 만들면 되는데, 이때 주의해야 하는 점은 시카고 대학교 학생들과도 만나서 토의를 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아 됐어요 쌤! 거기까지!”

    은장이가 손을 휘저으면서 나를 향해 정면으로 서서는 팔짱을 착! 하고 꼈다.

    “저희도 이제 성인이라고요. 쌤이랑 이사장님이 대학 1학년 겨울방학부터 이렇게 교환학생 같은 걸 해주시는데, 그냥 놀려는 생각으로 가지는 않을 거예요!”

    “어… 난 아닌데….”

    “…그래도 좀 놀면 안 되냐고.”

    정석이와 태성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튼, 나는 은장이의 말을 들으면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좋아. 그럼 상세한 내용은 겨울방학 때 만들도록 하자. 알겠냐?”

    내 말에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네!!!””

    그러다가 나는 한 가지를 깜빡했다며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말했다.

    “참, 어디까지나 이번 면접 특강에서 너희가 후배들 이겼을 때 가능한 거다? 어디 보자… 방금 정아가 졌으니까 스코어는 2:1로 졸업생 팀이 1점 밀리고 있네.”

    “오호, 그렇단 말이죠?”

    “정말요?”

    현재 점수를 설명하자마자 은장이와 동석이가 눈을 빛냈다. 심지어 은장이는 손목을 우둑, 우둑, 꺾으면서 후배들을 노려봤다.

    “후배라고 봐줬더니 안 되겠네?”

    “나도 요즘 명천이랑 시사스터디 하거든?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명천이 너 동석이랑 그런 거도 하냐?”

    “… 최동석 너 나중에 보자.”

    졸업생 녀석들이 목을 뿌득뿌득, 팔을 뚜둑 풀면서 후배들에게 다가갔다.

    민주를 첫 타겟으로 잡은 은장이가 의자를 끌어오더니 자리에 털썩 앉았다. 동석이도 여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후배들 앞에 자리했다.

    녀석들의 기세를 따라 태성이, 명천이도 팔짱을 끼고 후배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쌔앰….”

    “선배님들 의욕 불태우게 만드시면 어떡합니까….”

    이제는 은솔이와 경필이를 비롯한 재학생들이 나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어깨를 살짝 올리면서 ‘내가 뭐?’라는 표정을 했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1년 12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신미나 기자는 사학비리사건이 터진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처음에는 강문고와 강명문에 대한 헛소문들을 반박하는 기사 작성에 힘썼다. 그러다가는 검찰의 발표를 올렸고, 변해가는 강문고의 모습도 보여 주었다.

    강명문과 친한 다른 학교 교사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걸 위해 강원도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 김영훈을 비롯한 강문고 졸업생들의 학부모들을 만나서 기사를 썼고, 졸업생들의 활약상도 한 번씩 기사화했었다.

    그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한 덕분에 강문고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적어도 신미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자신도 한 몫 제대로 했다고.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승진도 하게 되었다.

    <미래교육 고등부 부팀장>

    달라진 명함을 확인하던 신미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기자였던 자신이 벌써 부팀장 직함을 받게 되었다.

    월급에 큰 차이는 없지만, 직함이 주는 무게감은 컸다. 그래서 신미나는, 오늘 만나는 상대에 대해 기사를 쓸 때도 최대한 공정한 기사를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뿌듯한 미소를 지닌 채 신미나는 약속된 장소의 문을 벌컥 열었다.

    “선생님!!”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신미나 기자를 맞이한 건 박은환이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잘 지내셨어요? 진짜 오래간만이에요!”

    신미나는 밝게 웃으면서 박은환에게 인사를 했다. 사건사고가 있은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던 두 사람은 그동안의 회포를 잠시나마 풀어 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야 뭐, 항상 똑같죠. 학생들 가르치고, 입시 특강 진행하고….”

    박은환은 이번 입시 시즌도 강명문을 비롯한 다른 교사들과 어떤 특강을 보냈는지 이야기를 했다. 특강에 대한 정보를 들은 신미나가 열심히 메모를 했다.

    “작년과는 또 다르네요!”

    “그쵸?”

    “네! 졸업생들의 대활약상! 그럼 올해 합격한 학생들은 내년에 후배들 도우러 오는 건가요?”

    신미나의 질문에 박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러기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거든요.”

    “와… 학생들 소속감이 장난 아니겠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 신미나는 잠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도 강명문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당시 꿈도, 희망진로도 없던 자신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넣어 주시지 않았을까.

    그런 망상을 잠깐이나마 하던 신미나는 앞에 놓여있는 쿠키를 집어먹었다. 어차피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그래도 부럽긴 하다.’

    신미나는 학생들에 대한 부러운 마음을 속으로 숨기면서 궁금한 걸 물었다.

    “요즘 학교는 어때요?”

    “수능도 끝났고, 면접도 많이 봤고, 학생들 정시 지원도 했고. 이번 입시도 다 끝나가죠.”

    박은환의 말에 신미나가 마침 궁금했었다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결과는… 어떤가요?”

    아무리 친한 사이라 그래도, 대입 결과를 물어보기는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신미나는 최대한 작게, 그리고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물었다.

    박은환은 신미나의 배려에 고마워하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당연히 대성공이죠. 은솔이는 연희대 외식경영 합격했고, 용희도 고구려대 예비 2번 받았어요. 예비 2번이라 합격가능성 높죠. 다른 학생들도 목표했던 학교들 한 개 이상씩 모두 붙었어요.”

    신미나는 역시, 라고 중얼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민주는요?”

    “민주도 서울한국대 최초합했어요. 이제 정시러들 결과랑 수시 추합만 기다리면 돼요.”

    박은환은 이번 입시 특강도 정말 힘들었다고, 하지만 학생들 결과가 너무 좋게 나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학생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신기한 사람들이야.’

    강명문도 그렇고, 박은환도 그렇고. 왜 강문고 선생님들은 제자들 자랑에 여념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강명문 선생님은요?”

    신미나가 묻자 박은환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여행 갔어요.”

    “…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신미나가 잘못 들었나? 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시카고로 놀러 갔어요.”

    휴가를 떠났다는 강명문의 근황을 들으면서 신미나와 박은환은 아무 말 없이 남은 커피를 쭉 빨아 마셨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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