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21화 (에필로그 3) (220/252)

221화. 에필로그 (3)

[잘 해결됐습니까?]

박성혁은 전화 상대의 물음에 들고 있던 담배를 한 번 쭉 빨았다.

“그럼. 내가 누구냐. 나 박성혁이야.”

[선배님 성격이야 뭐, 잘 알고 있지만….]

전화 상대는 박성혁이 총대를 매고 수사한 사건을 물었다. 강문고등학교 사학비리 폭로 사건. 그 사건의 주요 고발자인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에 대한 일이었다.

“강명문 선생과 강은숙 이사장, 모두 이번 사건 공로가 커. 언론에도 내가 이미 다 이야기를 해뒀고.”

[그러고보니 이상한 오해들이 많이 있었죠.]

막 강문고 이사진들이 체포되어서 조사를 받고 있을 때, 강명문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강명문이 여교사들만 좋아한다거나, 학부모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결국 인터넷의 근거 없는 뜬소문으로 밝혀졌었다. 어딘가의 정보에 의하면, 진순철 구청장의 충성 직원들이 댓글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래도 그때 자네도 도와주지 않았나. 자기 딸을 상담할 때 같이 있었고, 직접 만나봤는데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럼요. 그분은 커피 한 잔 안 받으려 하는 분입니다. 제 딸도 졸업할 때 편지 카드 하나 겨우 드렸다고 할 정도니까요, 하하하!]

전화 상대는 박성혁에게 즐거운 과거 이야기라도 하듯 크게 웃었다. 전화의 주인공은 은장의 아버지인 김영훈이었다. 박성혁과는 절친한 선후배였기에 지금 이렇게 근황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가 도와준 덕분에 금방 사그라들었어. 다른 학부모들도 아주 난리가 났더만.”

박성혁의 말대로, 김영훈이 선두주자로 강명문의 청렴결백을 증명하자 다른 학부모들도 일제히 인터뷰를 하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거기에는 명천의 어머니인 ‘전’ 학부모회장, 채영의 아버지와 어머니, 동석의 어머니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뭐, 그렇게까지 움직여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알고 있던 거 아니었나? 인터뷰 할 때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면서. 강 선생 직속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말하던데, 크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박성혁을 향해 김영훈도 조용히 웃었다.

-지금이 선생님께 도움을 드릴 때인 것 같습니다.

은장의 서울한국대 합격 이후, 김영훈은 강명문에게 보답을 해 주고 싶었다. 딸이 진로목표도 가지게 되었고,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에 진학도 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 강명문은 나중에 자기를 한 번 도와달라는 이야기만 했었다.

그래서 김영훈은 이번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임을 밝히면서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어쨌든 고생 많이 했어. 나머지는 우리 검찰이 할 일이네.”

[혹시 도와드릴 일 있으면 연락 주십쇼. 달려가겠습니다, 선배님.]

“됐어. 그것보다 김변 자네, 다시 돌아올 생각 없나?”

갑작스런 박성혁의 제안에 김영호가 잠시간 침묵했다.

[지금은 별로 생각 없습니다.]

“자네 정도면 내가 충분히 추천해 줄 수 있어. 그리고 우리 후배 중에 진짜 괜찮은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 잘 키우면 크게 될 거거든. 자네가 도와주면 어떨까 싶은데 말이야.”

박성혁은 강세혁 검사를 생각하면서 김영훈에게 말했다. 그가 생각했을 때 강세혁 검사는 충분히 정의감도 넘치고, 나름의 프라이드도 갖고 있었다.

아쉬운 건 딱 하나. 부족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 경험을 채워 줄 수 있는 선배로 김영훈을 생각하고 있었다.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길을 돌렸지만, 나름대로 신념을 갖고서 사건을 받고 있는 변호사였기 때문이었다.

[고민 좀 해 보겠습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되니까.”

[선배님 말씀인데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와이프랑도 의논해 봐야겠지.”

그 말에 김영훈이 기분 좋게 웃었다.

[와이프도 와이픈데, 딸이 요즘 아주 장난 아닙니다.]

“딸이?”

[네. 자기도 이제 성인이다, 이번 사건에 일조할 정도로 컸다, 이러면서 아빠 하는 일에도 잔소리를 엄청 합니다, 하하하! 아무튼,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분 좋게 웃는 김영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성혁도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그나저나 자네 딸은 요즘 학교 잘 다니나?”

[학교도 재밌게 다니는데, 남는 시간에는 후배들 도와주러 다니고 있더군요.]

“후배들?”

[네. 강문고 후배들입니다.]

김영훈은 딸이 강명문 선생과 함께 하고 있는 입시 특강을 이야기했다. 박성혁도 딸, 박은환에게 들어서 얼추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구만. 알겠네. 방금 이야기했던 거, 고민 좀 해 보고 연락 줘.”

전화를 끊은 박성혁은 담배 한 개피를 더 꺼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다가 다시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담배 좀 끊으라고 했었지.”

박성혁은 딸 박은환과 아들 박재우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휙 던졌다.

오늘 하루라도 한번 지켜보자.

박성혁의 어려운 도전, 금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강명문과 졸업한 제자들, 현 3학년 제자들이 입시 준비에 한창 바쁠 때.

강은숙 이사장은 강철면 교장을 면회 중이었다.

“거기는 어때요?”

“그냥 죗값 받는 거죠. 지금까지 너무 소심하게만 살아오던 벌을 받은 것 같습니다.”

강철면은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떠올렸다. 누나인 강은숙과는 달리, 자신은 현실과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여왔었다.

한명심 교감과 민지정 부장이 함께 했던 내신 조작. 그걸 묵인했다. 강당 설치 시 들어갔던 공사비를 챙겨먹은 곽형조를 비롯한 이사진의 행위도 눈감아줬다.

물론, 강은숙 이사장도 당시에 그걸 문제 삼지는 않았었다. 다만, 강은숙이 여러 증거들을 모으면서 칼을 갈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자신은 강문고가 유지될 수 있는 데에만 집중했었다.

그 차이가 지금의 강철면과 강은숙의 위치를 바꿔 놓았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누님.”

“정말이지요…?”

강철면은 마이크 가까이 입을 가져갔다.

“정말입니다.”

강철면의 눈빛은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강은숙으로서는 아쉬운 마음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교장의 부재는 강문고를 지탱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강철면은 점차 자신과 강명문을 도와 학교의 정상화에 일조하지 않았나.

그런 점들 때문에 강은숙은 더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학교는 괜찮나요?”

태연한 척 강명문과 강문고의 안부를 묻는 동생을 보며 이사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도 입시특강 중이에요. 학교는 나름 자리를 잡아가고 있죠.”

강은숙은 학교에서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교사들을 떠올렸다. 급여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복지를 늘려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사실 때문에, 강은숙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중에 휴가라도 챙겨주셔야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내 재력을 한 번 더 뽐내 봐야겠죠?”

당연히 그 미안한 마음을, 단순히 마음만으로 그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라도 진정성 있는 교사와 학생들을 도우려는 사람.

그게 바로 강문고의 이사장, 강은숙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준비할 선물은 교사들 대상만이 아니었다.

강명문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 선물은 하나 더 있었다.

“누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나보다는 강 선생님이 크죠. 기간제로 지원한 선생님들도 다들 강 선생님과 같이 근무하고 싶다면서 여기저기서 지원을 많이 했거든요.”

“아, 그거 저도 뉴스로 봤습니다. 강 선생님 인기가 정말 대단하던데요?”

“본인은 부끄러워서 미치고 팔짝 뛰고 있지만요 호호호.”

기간제 교사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양손을 붙잡고, 괜히 다가가서 음료수를 건네며 ‘화이팅!’을 외칠 때마다 강명문은 인상을 팍 썼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강은숙 이사장은 항상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강명문 덕분에 강문고의 정상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분들은 만나봤습니까?”

강철면은 이사진들과도 면회를 해 보았는지를 물었다. 그 물음에 강은숙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뭐라고 했나요?”

“몇 분은 미안하다고 하고… 자기가 제공한 정보들이 많으니까 봐달라는 사람도 있었죠. 여전히 곽형조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요.”

“괜찮…겠죠?”

다소 걱정스럽다면서 강철면이 작게 물었다. 그의 의문도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 작은 위치이기는 했지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곽형조였다. 아직도 그를 믿으려는 후배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입김을 쉽게 막을 수 있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당하고만 있을 이사장이 아니었다.

“검찰도 우리를 도와주고 있고, 언론에 알려진 강문고의 선행들, 변화하는 모습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주고 있어요.”

강은숙은 사건이 있고 지금까지 강문고가 행했던 노력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지금도 미리 대비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생 강철면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강문고는 이제 괜찮으니까.”

강은숙의 미소가 꽤나 안정적이었기에 강철면도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 * *

“여기요! 저랑 해 주세요!”

“형님! 저희랑 부탁드립니다!”

은솔이와 경필이가 순서대로 손을 들고는 명천이에게도 달려들었다. 명천이는 양손에 들린 팻말을 겨우겨우 가슴팍까지 올려 들고는 소리쳤다.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은솔이가 보자기, 경필이가 주먹이었다.

“내가 먼저다!!!!”

“아… 선배님 먼저 하세요….”

경필이가 풀이 죽어서는 추욱 늘어져서 뒤로 이동했다.

“명천 오빠!”

“오, 오, 오빠!?”

간신히 들고 있던 팻말을 떨어뜨린 명천이를 보면서 정석이가 혀를 찼다.

“저 녀석 연애를 한 번도 못했나?”

“그렇게 말하는 너도 미란이 말고는 연애 안 하잖아.”

“… 나 지난주에 헤어졌어.”

“…미안하다.”

어쩐지 꽁트를 찍고 있는 정석이와 태성이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래, 다 좋아. 다 좋은데….”

나는 내 주변에 몰려있는 녀석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꼭 여기서 이래야만! 속이 시원했냐!!”

내 절규를 들은 제자들이 푸흡, 피식 하며 웃기 시작했다.

“에이, 쌤, 이거 할 때 장소 제한은 없었잖아요?”

“맞아요, 맞아요. 급식실에서 해야 하는지, 교실에서 해야 하는지, 그런 게 없으니까 여기서 이러고 있죠!”

정아와 은장이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녀석들의 말대로 이번 ‘제시문 면접 특강’ 포스터에는 장소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녀석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는 ‘어디서든 해도 되잖아요!’라며 내 교무실 자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께도 민폐잖아!”

“에이, 어차피 오늘 주말인데요 뭘.”

동석이마저 그렇게 말하면서 흥흥, 콧노래를 불렀다.

“이것들이 진짜….”

“명문이가 한 방 먹었네?”

지석 선배가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 와서는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학생들은 아이스크림을 받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다. 몇몇은 시사토론 때의 주의점을 은장이에게 물어봤다. 또 몇은 대입 면접 노하우를 물어봤다.

졸업생들은 그 질문들에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특히 동석이의 면접 Tip이 주목받았다.

“면접 때는 주어진 질문에만 답하는 단답식 답변은 마이너스를 받아요.”

동석이는 자신이 면접 때 어떤 답변을 했었는지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특히 전공 분야, 진로 분야에 어울리는 ‘나만의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실제로 녀석은 ‘로봇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로봇에 관심이 많은지를 어필했으니까.

그렇기에 가능한 팁이었다.

동석이의 설명을 들은 2학년, 3학년 학생들이 모두 감탄했다.

와아-

졸업생 녀석들도 감탄했다.

“동석이 너… 면접 때 그런 답변을 했어?”

“내가 교수여도 넌 무조건 뽑았다 진짜.”

정석이와 태성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동석이가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살짝 긁었다.

‘분위기 좋네.’

학생들은 간식을 다 먹고서도 토론은 하지 않고 졸업생 선배들의 면접 팁을 들었다. 동석이, 은장이, 명천이, 태성이의 팁을 들은 학생들은 중요 사항은 꼼꼼하게 메모를 했다.

“다 좋은데, 시사문제 제시문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줘야지?”

내 말에 졸업생 녀석들이 아, 하며 손뼉을 쳤다.

“시사문제 제시문은 일단 주어진 문제에 대해 얼마나 뚜렷한 주관을 갖고 답하는가가 중요하다. 이걸 생각하고 준비하면 좋아.”

나는 특별히 녀석들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은솔이가 내 말을 경청하고는 힘차게 말했다.

“선배님들! 저랑 토론 한 번 더 부탁드려요!”

은장이와 동석이가 은솔이와 시사토론을 하게 되면서 다시 모의 면접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어지는 토론을 들으면서 확신했다.

이제, 강문고는 학생들이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몇몇 욕심을 가진 어른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