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20화 (에필로그 2) (219/252)

220화. 에필로그 (2)

“죽겠네….”

“와…미치겠다….”

“이게 사람 사는 거냐….”

강문고 급식실 한쪽에서 세 명의 학생들이 테이블에 엎어져서는 훌쩍였다.

“정신 차려. 아직 이틀이나 더 남았잖아.”

다른 남학생이 친구들을 독려했다. 그러자 엎어져 있던 남학생 한 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독려를 한 친구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니야… 이건 아닌 거 같다….”

“으, 응?”

“불타는 청춘,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지금 이렇게 낭비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급식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주인공은 성실성대를 논술전형으로 합격한 이정석이었다.

지금 급식실에서 신세한탄을 하는 사람들은 강문고 재학생이 아닌, 작년 졸업생들이었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눈을 반쯤 감은 채 맥없이 오른손을 드는 사람은 국인대에 입학사정관제로 합격한 태성이었다. 그 옆에 똑같은 자세로 엎드려 있던 정아도 고개만 슬쩍 돌리면서 말했다.

“나도 동의… 이게 뭐야, 여름방학 전부 특강 조교라는 게 말이나 되냐고!”

엎드린 채 목소리를 높인 정아는 그대로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게 다 은장이 때문이야.”

“아니지. 애초에 잘못을 이야기하자면 스키장 여행 추진한 것부터 문제였지.”

정아의 말에 명천이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동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정석이가 1박2일로 다녀오자고만 안 했어도….”

“야! 다들 동의했었잖아! 왜들 이래!”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던 졸업생들은 시계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은장이는?”

“지금 자소서 첨삭해 주고 있을 걸? 담임쌤이 맞춤법 잘 모르는 애들 첨삭 맡겼어.”

“걔는 여전하구나….”

순서대로 정아, 태성, 명천이었다.

“아! 나도 이제 올라가 봐야 해!”

동석은 연천대를 다니면서 교육봉사를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들을 쉽게 가르치는 법을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윤기준이 준비한 과학논술 특강의 조교로 참여하고 있었다.

“너도 진짜 능력자다.”

“내가 볼 땐 여기 있는 너희들 전부 능력자야.”

정석의 말에 태성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 * *

“자, 빨리빨리 움직여!”

졸업생들이 도와주러 왔던 자기소개서 특강도 끝이 났다. 이어서 기본적인 면접 특강이 시작되었다.

비록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지만, 두 번째 관문을 위해 꾸준한 연습, 연습, 연습만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교실에서 확인한 학생들의 모습은 내가 기대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 자기소개서 특강 끝났다고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나는 밍기적거리며 노트북에 손을 가만히 올리고만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소리쳤다.

“오민주! 지금 한숨 쉬면서 천장 볼 때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란 말이다!”

“히익! 죄, 죄송합니다!”

“졸업생 선배들도 너희들 도와주겠다고 무려 재능기부! 형태로 도와주고 있지 않냐! 너희들이 늘어져 있어서야 쓰나!”

“그거 쌤이 강제로….”

헛소리를 하려는 정석이의 허리를 종이몽둥이로 퍽! 찔렀다.

자기소개서 특강에 이어서 졸업생들이 면접 특강도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서 각 교실마다 졸업생들이 후배들의 면접 대기를 도와주기 위해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 반에는 정석이가 들어와 있었고 말이다.

나는 옆구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정석이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그러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려라! 알겠냐!”

“으으… 쌤 살려 주세요….”

“한용희, 조용!”

이번 특강에서는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학생들끼리 모였기 때문에 용희도 같이 듣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있던 용희가 혼잣말을 중얼거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말은 내가 잘라 버렸다.

“다 정리해 봤으면 순서대로 줄 서.”

박 선생이 면접 기출문제 답변을 첨삭해 주기 위해 학생들 앞에 책상을 두고 앉았다. 학생들은 두 눈을 마사지하면서 겨우겨우 노트북을 들고 줄을 섰다. 정석이도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후배들의 문제를 확인할 준비를 했다.

“좋아좋아.”

나는 그 모습들을 팔짱을 낀 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담당 학급 학생들 특강을 마치고 잠깐 방문한 차 선생이 말했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전국 단위 입시 세미나를 들은 후 입시 특강에 참여했다.

-이제 입시 비주류 교과목 교사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역사 교사인 오 선생이 입시 베테랑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특강에 차 선생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전부터 논술 특강이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입시 그 자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참여한 건 처음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순수하게 차 선생을 걱정한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도 그 의도를 알고 있는지 빙긋 웃으면서 커피를 하나 건넸다.

“네, 괜찮습니다. 나름 적응할 만합니다.”

그의 눈 밑으로 깔린 다크써클만 아니었다면 믿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차 선생을 응원해 주었다.

“선생님 덕분에 일손이 많이 줄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드려야죠. 강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수업을 하고 있었을지….”

차 선생의 말대로였다.

사학비리가 모두 폭로된 이후, 강문고는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그때 강문고의 혼란을 잠재운 건 강은숙 이사장과 나였다.

내가 특별한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폭로 사건 때 나왔던 의혹들에 반대 증거를 제시하고, 검찰의 조사에 적극 협조한 정도?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큰 역할을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기는 했다.

학교를 정상화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기간제 교사들을 추가로 모집했었다. 급박하지만, 구속된 교사들을 대신할 교사들이었다.

실력있는 교사들이 많이 지원을 했고,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다.

다만…

-공교육의 희망인 강명문 선생님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잔뜩 지원을 해서 곤혹을 치렀다.

문제는 이런 소리를 하는 지원자들을 이사장이 너무나 흐뭇하게 바라보았다는 점이었다.

-우리 공교육의 희망이 선생님들을 도와주실 거예요.

하… 진짜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어쨌든, 그런 명성이 있기 때문에 강문고에 지원한 교사들이 많았다. 덕분에 학교 정상화 역시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덕분에 학교 정상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올해는 어떨 것 같습니까?”

차 선생의 물음에 나는 교실에서 박 선생과 함께 면접 기출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살짝 웃었다.

“뚜껑은 열어 봐야 알겠지만… 작년 이상일 것 같습니다.”

작년처럼 소수의 몇 명만 입시 특강을 기획하는 게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 말에 차 선생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면서 담당 교실로 돌아갔다.

강문고의 입시는 그렇게 문제없이 진행되어 갔다.

* * *

자기소개서, 면접 풀케어 특강이 끝났다. 수능 킬러문항 특강도, 논술 특강도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수시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무사히 대입원서를 제출했다. 녀석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지만, 또 한편으로는 준비했던 사항들을 최대한 보여 주고 싶다는 열망도 있었다.

때문에 1차 합격자 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학생들은 절반의 기대와 절반의 불안함을 품고 있었다.

“스읍-하아-스읍-하아.”

방과 후, 자습을 위해 모인 교실에서 은솔이가 심호흡을 했다. 민주, 용희, 은솔이 중 가장 빨리 발표가 나는 학생이 바로 은솔이였기 때문이었다.

“준비됐냐?”

그리고 오늘이 바로 연희대 1차 합격자 발표일이었다.

“스읍-하아….”

심호흡을 멈춘 은솔이가 천천히 노트북에 연결한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리고 연희대 입학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합격자 조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은솔이는 두 눈을 의심한 듯 나와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바라봤다.

“쌤, 이거….”

“좋았어. 이제 2차 준비하자!”

내 말에 은솔이가 양손을 번쩍 위로 들었다.

“네 쌤!!!!!”

특강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은솔이는 지금 1차 합격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옆에서 결과를 같이 지켜보고 있던 민주, 태웅이, 용희도 기뻐했다.

나는 이 소식을 졸업생 단톡방에도 올렸다.

-대박!!!!

-역시. 쌤이라면 해내실 줄 알았다니까요?

-은솔이요? 축하해요! 이제 면접 준비죠?

은장이, 태성이, 동석이가 차례로 답장을 올렸다. 나는 톡방에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니까 은솔이 면접 좀 도와줘라.

-아….

-쌤 저희 곧 시험….

-네! 제가 도와줄게요!

정석이와 명천이의 메시지가 올라옴과 동시에 동석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야 최동석! 네가 그러면 우리가 뭐가 돼!

-아하하하, 근데 은솔이는 진짜 도와주고 싶어.

아무래도 은솔이가 한 분야에 미치도록 관심이 많은 학생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동석이 본인도 그런 학생이었으니까 동질감이 형성되는 것도 있었을 테고 말이다.

-좋아. 그럼 동석이 와라. 쌤이 소고기 쏜다.

-저도 갑니다.

-저도요.

-제가 톡방을 헷갈렸네요. 아… 는 남자들끼리 있는 톡방에 올리려다가 잘못 올렸습니다.

-그 톡방은 또 뭔데?

태성이, 정아, 정석이, 은장이의 메시지였다.

이것들이 소고기 하나 때문에 움직이려 하다니.

지난 특강 조교만으로는 혼쭐이 덜 난 모양이다.

-기대들 해라. 내가 너희들을 위한 특별 코스를 마련할 테니까.

나는 이번 특강 때 구상해뒀던 프로그램 진행 방식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내 음흉한 미소를 발견한 홍 선생과 박 선생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또 이상한 거 꾸미고 계시죠?”

박 선생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 * *

며칠 뒤, 은솔이처럼 시사문제 제시문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한 ‘제시문 면접 대비 특강’이 열렸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팔자에도 없던 신문기사들을 잔뜩 구매 및 인쇄해서는 학교로 들고 왔다.

“얘들아, 이거 봐봐라.”

나는 낑낑대며 자료를 옮긴 졸업생들에게 포스터 하나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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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고 제시문 면접 대비 특강!>

대상: 입학사정관제 제시문 면접 대상자

날짜: 2011년 10월20일~면접 끝날 때까지.

방식: 주어진 기사 탐독, 새로운 기사 작성, 본인 의견 작성, 기사 비평, 자유 발표 등

추가 진행 방식: 작년 졸업생 선배들과 공개적인 시사토론을 하면서 연습할 시 ‘공교육의 희망이 알려 주는 면접 기출문제’ 자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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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양손에 들고 있던 명천이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쌤 이거 설마….”

“와 미친….”

“저희 보고 이제는….”

“공부도 하라고요…?”

명천이, 정석이, 은장이, 태성이의 눈에 원망이 깃들었다. 나는 녀석들의 눈을 마주하면서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피식 웃었다.

“그래. 후배들과 시사토론해서 너희가 이기면 투플 한우 꽃등심 사 주마. 대신, 너희가 지면….”

나는 포스터 하단에 작은 글씨로 적힌 부분을 가리켰다. 동석이가 내 손가락을 따라가서는 천천히 내용을 읽었다.

“입시 조교 1년 연장…?”

““뭐라고!?””

동석이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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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후배들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선배들은 입시 조교 1년 연장.

(희망할 경우 2학년도 선행 형식으로 특강 신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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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기꾼!!!!!”

“마왕이다! 시간의 마왕이야!!!!”

“아 몰라! 난 지면 군대로 튈 거야!!!!”

학생들의 절규를 들으면서도 나는 묵묵히 포스터를 교실 게시판에 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들이 저렇게 펄쩍 뛰지만, 이 활동이 끝나면 새로운 추억이 생길 게 분명했다.

‘교육 혜택은 순환되어야지.’

바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교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만드는 것이, 이번 특강의 주된 목표였다.

‘준비해둔 선물은 서프라이즈로 해두고.’

그렇게 강문고의 이미지는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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