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19화 (에필로그 1) (218/252)
  • 219화. 에필로그 (1)

    강은숙 이사장을 제외한 이사진이 모두 체포된 후, 강문고등학교는 한 번 더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먼저 6월에 예정되어 있었던 교육청 감사.

    김지훈 장학관은 지금 문제가 터진 강문고를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며 학교를 찾았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강철면 교장이 이번 조사에 협조하면서 감사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이사진과 결탁해 왔던 부정부패에 찌든 교사들이 모조리 색출되었다. 한 번이라도 부정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수를 합치니 20여 명은 족히 넘었다.

    문제는 남아 있었다. 김지훈 장학관과 문현오 장학사도 강문고에 있었던 문제들을 몇 번인가 덮어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대한 것도 정리를 해야겠죠.”

    강철면의 말에 두 사람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어설프게 변명을 하는 건, 오히려 더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철면도 자신의 죄를 언론에게 밝혔다.

    이사진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묵인한 점, 자신도 학부모나 이사진의 불법 행위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일부나마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점.

    이러한 것들을 솔직하게 언론에 밝혔다.

    <강문고등학교 교장의 양심 고백!>

    그리고 기사들이 올라갔다. 강철면 교장 역시 죗값을 치르기 위해 구치소에 들어갔다.

    “와… 법원에서 했어도 검찰이 움직이네.”

    학생들은 이 모든 결과들을 놀라워하면서 지켜봤다. 가장 놀란 건, 검찰이 아니라 법원에서 시위를 했음에도 검찰이 움직였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그거랑 관련이 있겠냐. 언론에서 이슈도 되고, 쌤들이 따로 신고도 하셨겠지.”

    용희의 말에 은솔이 움직이던 펜을 멈추며 말했다.

    “어, 은솔이 펜 멈췄다.”

    태웅이 지적하자 은솔은 모른 척 다시 펜을 움직였다.

    “어휴, 외우고 있어, 외우고 있다고.”

    “제대로 안 하면 보강이야. 알지?”

    태웅과 민주의 사악한 미소를 보면서 은솔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담임쌤 닮아간다니까 다들.”

    “누가 나를 닮아?”

    은솔의 뒤로 강명문이 나타나서는 말했다.

    “으악! 놀랐잖아요 쌤!”

    “공부들 잘 하고 있나 보러 왔다. 어때, 자습시간은?”

    학교는 여러 교사들의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 많은 공백이 발생했다. 자연스럽게 수업에 구멍이 났다.

    그래서 지금처럼 부득이하게 자습을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강명문을 비롯한 여러 교사들이 자신의 전문 교과목에서는 최선을 다해 뛰어 주고 있었지만, 역부족인 건 사실이었다.

    기술가정이나 음악 등 전문 교과가 아닌 경우에는 대타를 뛸 수도 없었으니까.

    때문에 지금 태웅, 은솔, 민주, 용희는 자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강명문이 방문한 것이고 말이다.

    “기말고사는 잘 볼 수 있겠냐?”

    “당연하죠 쌤! 저 진짜 열공하고 있습니다!”

    “저도요!”

    은솔과 용희가 힘차게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둘을 보며 히죽 웃은 강명문이 말했다.

    “좋아. 기대하마.”

    * * *

    3학년 학생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를 했고,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의 활동을 했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준비하기 위한 비교과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모의창업대회 수상자는 오민주 학생!”

    모의창업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민주가 소리를 지르면서 기뻐하는 일이 있었다. 은솔이는 이 대회에서 2등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쌤! 저 최우수상이에요!”

    당연히 그 모든 과정을, 우리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

    “둘 다 잘 만들었어요. 누가 대상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죠?”

    “맞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혀를 내두르며 두 사람의 모의창업계획서를 칭찬했다. 확실히 두 녀석의 계획서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청소년 정책 제안 자판기에 궁정 도시락 서비스라니.”

    “아마 봉사활동 때 궁정 도시락 안 만들었으면, 은솔이가 1등 했을 거다.”

    차 선생과 오 선생도 둘을 칭찬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만족스럽게 평가하면서 생각했다.

    이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사용할 소재들은 모두 만들어졌다.

    입시 준비에 필요한 사항은 이제 딱 하나만 남아있었다.

    * * *

    [그렇습니다! 저희는 진순철 구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지금까지 그가 행했던 온갖 비리들을 철저하게 밝혀낼 것입니다!]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오성주 강남서초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진순철은 온갖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강문고등학교의 이사진과 결탁한 일들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이를 문제 삼고 일어난 것은 강남서초지역구 국회의원들이었다. 그들은 교육부의 안일한 대처, 시의원들의 비협조 등을 문제로 삼았다.

    [더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민주의 사건도 있었기 때문에 오성주는 더욱 열성을 다해 인터뷰를 했다.

    학교에서 벌어졌던 불법적인 행위들.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학생들. 그런 일들을 묵인하고, 되려 이득을 취하는 교사들과 이사진들. 그들의 철저한 처벌을 바라는 인터뷰였다.

    “너희 아버지 장난 아니신데?”

    태웅은 뉴스를 보면서 민주에게 말했다.

    이미 여론은 오성주를 비롯한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로 기울어 있었다. 진순철과 곽형조 등 이사진이 행한 불법 행위들의 정체가 전국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구청장은 왜 안 나온대?”

    은솔은 진순철 구청장이 여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정식 조사를 기다리겠다, 라며 버티고 있는 게 신기했다.

    “음… 나도 아빠한테 들은 거기는 한데, 저렇게 버티다가 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는 하셨어.”

    “지금 여기에서 조용해질 수가 있어?”

    용희가 말이 되냐면서 물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전에 어떤 사건에서도 반년 정도 버티니까 관심 줄어들고 해서 제대로 처벌 안 된 경우들도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런 걸 노린다는 거야?”

    은솔도 민주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급식실에 걸려 있는 TV에 집중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반면 태웅은 그게 말이 되는 거라는 사실을 단번에 이해했다. 적어도 태웅의 아버지 역시 노조와 관련된 일에서는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해 왔으니까.

    그 사실이 부끄러웠지만, 태웅은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튼,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공부야. 밥 다 먹었지?”

    학생들은 이제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지금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기 전,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말 그대로 자율이라는 점 자체는 대단하지만….”

    “근데 은솔이도 그렇고 용희도 그렇고, 다들 자율로 신청했잖아?”

    민주가 중얼거리는 은솔을 향해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연희대 가려면 쌤이 내신 확 올려야 한다고 하시는데….”

    “하긴, 은솔이는 이제 활동은 차고 넘치지.”

    “자소서에 쓸 소재도 엄청 많지 않아? 수라상 도시락이랑 급식실 인테리어로 2번 문항으 다 채울 거 같은데?”

    태웅과 용희가 은솔의 투덜거림에 놀리듯 말했다. 키득거리는 둘을 보면서 은솔은 치, 하며 팔짱을 꼈다.

    “그래도 공부는 역시 힘들어. 내가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보고 너희 멘토해 달라고 하시는 거잖아?”

    민주와 태웅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한숨을 쉬는 은솔의 옆에서 용희는 기지개를 한 번 쭉 폈다.

    “나도 고구려대 가려면 빡공해야지! 가자!”

    “쫌만 살살 해 줘….”

    파이팅 넘치는 용희와 우는소리를 하는 은솔, 그리고 둘을 가르쳐 줄 멘토인 민주와 태웅은 급식실을 나가 교실로 올라갔다.

    * * *

    기말고사가 끝나고 1주일 뒤, 학생들은 저마다 성적표를 들고 점수와 등급을 확인했다.

    “…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은솔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쌔, 쌤!”

    “응?”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은솔이를 바라봤다. 은솔이가 성적표를 내 눈앞에 펄럭! 펼쳤다.

    “저, 저저! 2, 2등급!!!”

    살짝 뒤로 이동해서 은솔이의 성적표를 확인했다.

    “오! 전체 2등급 나오네!”

    “네!!!! 쌤 감사합니다아아!!!!”

    은솔이가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옆에서 민주와 태웅이도 은솔이를 축하해주고 있었다.

    “민주도! 태웅이도! 나 가르쳐 줘서 진짜 고마워!!!!!”

    “야야야야, 은솔아, 잠깐만! 떨어져, 떨어져 봐 잠깐!”

    민주의 목을 감싸면서 기뻐하는 은솔이였다. 민주는 은솔이를 떨치려다가 은솔이의 모습을 잠깐 확인하고는 잠시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도 그럴 게, 은솔이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겠지.’

    지금까지 어떤 누구도 은솔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교사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쳇바퀴 교육을 해 왔던 사람들이었다.

    학원도 시험기간에만 반짝 다녔으니 제대로 된 학습 요령을 배워 본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옆에는 공부를 가르쳐 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입시 방향성을 알려 주고 목표 대학도 설정해 준 선생님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또 어떻게 보면 신기한 변화가 은솔이에게 새로운 감정들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성취감과 자신감.’

    활동과 함께 성적까지 오르면서 은솔이는 한층 더 성장했다. 그 모습을 스스로도 느낄 테니까 저렇게 눈물도 흘리는 거겠지.

    민주도 은솔이의 성장을 기뻐하면서 자신의 성적표를 확인했다.

    “아자!!!!”

    과학 과목 하나만 2등급이고, 나머지는 모두 1등급을 받은 민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민주의 성적도 서울한국대를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어쨌든, 이걸로 녀석들의 입시 준비물이 모두 갖춰졌다.

    “자, 조용조용! 성적이 올라서 기쁜 건 알겠지만, 그거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입시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맞죠 쌤?”

    민주가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누구한테 들었냐?”

    “은장 언니한테요!”

    시험이 끝나고 서울한국대 준비에 도움을 받기 위해 은장이에게 연락을 했던 모양이었다.

    “언니가 그랬어요. 시험 끝났다고, 성적 1등급 유지했다고 기뻐하지 마라, 어차피 담임쌤은 입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면서 너희들 목을 죌 거다.”

    “오호 그랬단 말이지?”

    나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 녀석들과 함께 만든 단톡방을 열었다.

    -김은자앙~? 내가 목을 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후배한테 했더라?

    -헉! 민주가 그런 말을 했어요?

    -와 은장이 많이 컸네. 쌤 뒷담화도 하고.

    -아냐! 이정석 넌 좀 조용히 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토끼 이모티콘)

    -김은장 넌 여름방학 때 후배들 입시 풀타임으로 도와라.

    여기 있는 3학년들 입시 도우미로 아주 확실하게 부려 주마.

    “그런 관계로, 이번 여름방학 때 너희들을 위한 입시특강이 열린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포스터를 꺼냈다. 작년에는 A4 용지로 조악하게 준비했다면, 이번에는 작정하고 인쇄소에 맡겨서 받아 온 포스터였다.

    디자인은 포토샵을 다룰 줄 아는 차 선생이 도와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리는 ‘자기소개서, 면접 풀케어 캠프!’다. 입학사정관제로 지원하는 녀석들은 당연히 신청해야겠지?”

    내 말에 수시 전형 중 입학사정관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학생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당연히 논술 특강도 있다!”

    인문논술 특강도 오픈된다면서 또 다른 포스터를 꺼냈다. 학생들 중 논술을 준비할 예정이었던 녀석들이 관심을 보였다.

    “정시러들을 위한 건 없나요 쌤?”

    반면, 정시러들은 또 생각이 달랐다. 나는 태웅이의 질문에 마지막 포스터를 꺼냈다.

    “당연히 있지. ‘수능 단기 특강, 킬파뿌(킬링 파트 뿌수기)’를 오픈한다!”

    펄럭, 펼친 포스터에는 새롭게 오픈하는 킬파뿌 특강에 대한 소개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요약하자면,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니, 정시러들을 위해 킬링파트들 중점으로 여름방학 13박14일 특강을 오픈하는 것이었다.

    ‘이번 특강의 이유는 학교 정상화를 위한 거기도 하고.’

    특히, 지난 사학비리 폭로 사건 이후로 강문고의 교육 시스템이 무너진 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이사장이 그럴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만약 학생들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기라도 하면 또 먹잇감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전히 우리를 질투하는 곳들도 있으니까.’

    실제로 강문고 교사들은 자기들 잇속만 챙기려는 집단 아니냐는 이야기들도 나왔었다.

    -제가 봤던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한목대 논술 특강 때 만났던 나영희와 조부겸, 한지현이 도움을 주었다. 그들을 필두로 강원도 지역 학교 교사들이 증언을 하자, 그런 의혹이 서서히 사라졌고 말이다.

    어쨌든, 이런 일들도 있었기에 더더욱 이번 특강을 기획했다. 괜히 다 된 밥에 재 뿌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어설프게 학원 깔짝깔짝 다니지 말고, 학교 특강을 최우선으로 들어라! 쌤이 철야를 해서라도 너희들 케어해 줄 테니까!”

    “에이, 쌤이 어떻게 혼자 다 보세요!”

    “맞아, 맞아. 중간에 쉬는 시간도 주실 거잖아요.”

    녀석들은 호기롭게 그 정도는 잘 따라올 수 있다면서 신청지를 제출했다. 나는 신청지를 받아들면서 보이지 않게 한쪽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그리고 특강이 시작되고 하루 만에,

    “고, 공교육의 마왕….”

    “주… 죽여줘….”

    “으악! 그 에너지 음료 치워요!”

    녀석들은 과거의 자신들을 원망하게 되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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