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18화 (217/252)

218화. 이제 다시, 입시

곽형조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는 지금 억울함과 동시에 분노가 서려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나는 잘못한 게 없어!”

수사관의 팔을 뿌리치려고 손을 마구 휘저으던 곽형조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피해자야! 내가 하려고 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게 무슨 소립니까?”

팔을 붙잡고 있던 수사관의 뒤에서 강세혁이 물었다.

“내 아래 사람들이 과잉충성을 보인 거야! 그리고 나도 진순철이에게 이용만 당했단 말이야!”

“자세한 건 가서 이야기하시죠.”

곽형조는 수사관과 경찰의 인도하에 공항 바깥으로 이동했다. 강세혁은 나를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저 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역들을 보시면 과잉충성이라는 소리가 안 나올 겁니다.”

나는 지금 구치소에 잡혀 있는 민지정과 한명심이 이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가 궁금했다.

“이제 마지막 싸움이 될 겁니다.”

곽형조와의 싸움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학교가 정상회되는 날도 금방 오도록 해야했다.

“고생들 하셨어요. 우리도 이만 가 볼까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은 긴장이 풀린 듯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진짜 끝난 거죠?”

박 선생이 피곤한 듯 눈을 비비면서 물었다.

“네. 적어도 우리가 할 건 다 끝났습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과 이사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다들 고생하셨으니 삼겹살이라도 드실까요?”

그날, 우리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삼겹살을 먹었다. 술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소주 두 병을 여럿이 나눠 마셨다. 자리에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아직은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면서 핸드폰, TV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 보였다.

모두가, 이번의 승리를 축하하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도 순수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끝냈다.

그리고 나는, 사학비리 폭로 사건을 겪었음에도 강문고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성공했어.’

그것만으로도, 축배를 들기에는 충분했다.

* * *

다음 날, 곽형조를 비롯해 조신자, 한무회, 천우원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곽형조와 함께 여러 사학비리를 주도했고, 그로 인해 부당한 이익을 취해 왔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을 협박했고, 학생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여러 일들이 언론에 알려졌고, 중앙지검에서는 이를 큰 문제로 삼아 엄벌에 처하겠다고 선포했다.

게다가 이미 조신자, 한무회, 천우원의 죄는 외부에 노출된 건들이 많았다. 그 내용과 더불어서 처벌을 받게 되었으니, 형량도 상당할 거라는 게 강세혁 검사의 설명이었다.

“주현서는 어떻게 되었나요?”

옆에서 평온하게 녹차를 마시는 이사장에게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어떤 서류를 꺼냈다.

“이거 한번 봐 볼래요?”

“이게 뭡니까?”

“주현서 이사로부터 받은 자료예요.”

주현서가 이사장에게?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데 이사장이 추가 설명을 했다.

“자신이 강진 할아버지 제자라면서 그 의지를 잇겠다고 하더군요.”

“아하….”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졌다.

“주현서 이사의 말, 어디까지 믿으십니까?”

“적어도 이 자료는 거짓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이사장은 고민을 하더니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였다.

“5% 정도?”

“생각보다는 높네요.”

“그럼 2% 정도로 낮출까요?”

우리는 농을 주고받으면서 키득거렸다.

“검찰에는요?”

“아직 넘기지는 않았어요.”

“오늘 주현서 이사한테서 연락 왔습니까?”

“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는 오늘 잠깐 만나자고 그러더군요.”

나는 주현서가 줬다고 하는 자료를 읽으면서 말했다.

“오늘 잡아야겠군요.”

강세혁 검사가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전화를 했기에 현재 상황을 얼추 알고 있었다.

주현서의 기존 연락처로는 연락이 되지 않고, 집에도 없다는 이유로 바로 체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들 역시 연락이 닿지 않고 집에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해하던 차였는데, 이사장에게는 그렇게 컨택을 해 왔으니.

“찬스를 날릴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곧장 강세혁 검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 * *

주현서는 이사장과 단둘이 만날 장소로 인근의 어떤 카페를 골랐다. 오히려 개방된 장소에서 만나면 덜 의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나고 올게요.”

이사장은 강명문에게 카페로 향하겠다면서 말했다. 강명문은 카페로 향하지 않았다. 혹시나 주현서가 강명문의 얼굴을 알아차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대신, 카페에는 정석과 태성이 향해 있었다.

-절대 덤벼들거나 하지 말고, 주현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도만 파악해.

-녹음도 할까요?

-녹음은 이사장님이 하실 거야. 너희는 안 해도 돼.

강명문은 졸업생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볼일을 보러 사라졌다. 정석과 태성은 각자 커피를 하나씩 주문하고는 이사장이 앉은 자리 맞은편에 자리했다.

얼마 뒤, 이사장의 앞으로 모자를 눌러쓴 중년 신사가 들어왔다.

“오셨어요?”

주현서는 강은숙 이사장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커피 드실래요?”

“아냐, 난 됐어. 할 말만 하고 빨리 가야겠네.”

주현서는 이사장에게 녹음기를 꺼내면서 말했다.

“형조 형님과 우원이가 이야기한 것들을 녹음한 파일이야. 여기 두 사람의 범죄계획 이야기가 들어 있어.”

이사장은 조심스럽게 녹음기를 들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곽형조와 천우원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번에 지원금으로 낸 거는 어떻게 쓸 생각인가?]

[지원금으로 학생들 책걸상 바꿔 준다고 할 겁니다.]

[많이 남길 수 있겠군.]

녹음파일은 거기까지였다. 녹음기를 손에 쥔 이사장이 주현서를 보며 말했다.

“이걸 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확실하게 보내 버려. 그리고 나는 잠시 외곽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나는 내버려뒀으면 하네.”

“강진 어르신의 의지를 잇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주현서가 작게 웃었다.

“물론이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괜히 같은 이사진이라고 나까지 물망에 오르면 학교 운영에 차질만 생기지 않겠나?”

그 말을 듣고 있던 태성이 주먹을 꽉 쥐었다. 주현서가 지금까지 벌였던 일들에는 2학년 때 있었던 교보재 횡령 사건도 있었다.

그때 사회 교과목 교보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영상 수업이 엉망진창이었던 걸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치밀었다. 하필 그때 사회교과부장이 태성 본인이었기에, 당시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려졌었기 때문이었다.

“야야, 참아.”

태성의 얼굴을 본 정석이 말했다. 태성은 정석을 보면서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주현서에게로 귀를 기울였다.

“좋아요. 다 좋은데….”

이사장이 고민이라는 듯 팔짱을 꼈다.

“… 왜 그러나?”

“제가 받은 파일은 이 내용 뒤에 뭐가 더 있던데요.”

그렇게 말한 이사장은 핸드폰을 꺼냈다. 거기에는 강명문으로부터 받은 녹음파일이 들어 있었다.

[많이 남길 수 있겠군.]

[네. 주현서 이사님 아이디어입니다.]

[현서가 역시. 머리가 좋아, 크하하하! 이번에 많이 챙겨줄게!]

[감사합니다. 저도 오래간만에 보너스 좀 받겠네요, 하하하!]

주현서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것도 있는데….”

이사장은 다음 파일을 재생했다.

[현서 오라버니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는 빨리 발 빼야지. 지금이라도 은숙이한테 붙고… 그래야 하지 않겠냐. 신자 너랑 다 똑같은 처지다.]

[저랑 같이 자수라도 하시게요?]

[자수는 아니지. 그저 전부 형조 형님한테 놀아났다고 하면 되는 거야. 너도 그렇게 같이 좀 하자.]

“너, 너너, 너… 이걸 어디서….”

“반응을 보니 진짜인가 보네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로 스윽 넣은 이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신자와 한무회. 그 사람들이 줬어요.”

“뭐, 뭐라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작전은 모두의 입이 같은 이야기를 꺼내야만 효과가 있었다.

우리는 곽형조라는 최고 권력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우리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게다가 우리는, 아니 나는 오히려 강진 어르신의 의지를 잇고자 스파이처럼 잠복해 있었을 뿐이다.

그 이야기를,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인원들도 비슷하게라도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계획이 산산조각 났다.

“이미 조신자, 한무회 이사님을 버렸을 때부터 두 분은 생각했을 거예요.”

그때부터 조신자와 한무회는 생각했다.

만약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본인들에게 있는 죄 없는 죄 모조리 덤터기를 씌우면 어떡하지?

그 결과가 바로 이거였다.

-조신자 이사가 준 파일입니다.

강세혁 검사는 조신자가 건넨 파일의 일부를 강명문에게 보여 주었다.

-오늘 주현서를 만날 때 보여 주시면 될 겁니다.

그래서 강명문은 그 파일을 강은숙 이사장에게도 전달했다.

-은숙아 우리는….

게다가, 강은숙 이사장을 개별적으로 찾아온 사람은 주현서뿐이 아니었다.

바로 한무회도 그 안에 섞여 있었다.

-나만 가지고 있는 자료가 있어.

-어떤 자료죠?

-모두가 공범이라는 확실한 증거.

그 증거의 일부가 지금 재생한 녹음파일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요.”

이사장은 품 안에서 작은 녹음기를 하나 꺼냈다. 방금 전 주현서가 건넨 녹음기가 아닌, 별도로 챙겨 온 녹음기였다.

“할아버지의 뜻을 잇겠다고요? 아가리 닥치시죠. 애초에 그런 사람이 할아버지를 배신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사장은 두 눈에 분노를 담은 채 주현서를 바라보았다. 주현서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타닷!

일이 틀어졌음을 깨달은 주현서가 황급히 카페 입구로 달려갔다. 그러나 주현서는 앞에 튀어나온 무언가에 발이 걸려 화려하게 앞구르기를 하며 넘어지고 말았다.

쿠당탕!

“끄, 끄윽….”

허리와 무릎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주현서를 흘깃 살피던 정석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주현서 이사님.”

그리고 카페 문을 열고 강세혁 검사가 들어왔다.

“모든 과정들, 확인했습니다. 증거도 다 저희한테 있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강세혁 검사는 체포영장을 펼쳤다.

“함께 가시죠.”

체포되는 주현서를 보면서 정석과 태성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했어. 내가 다 속이 시원하더라.”

태성은 정석이 주현서의 다리를 걸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히죽 웃었다.

* * *

[임무 완료했습니다!]

톡방에 올라온 글을 보면서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운동장에 모여서 집회를 하고 있는 1학년, 2학년들을 바라봤다.

“우리가 이겼다!”

“강문고의 주인은 우리다!”

검찰의 재빠른 대응과 수사, 여론의 분위기. 모든 것들이 학생들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박 선생님, 고맙습니다.”

옆에 서서 학생들의 집회를 바라보고 있던 박 선생에게 말했다. 이번에 검찰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데는 박 선생이 아버지인 박성혁에게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박 선생이 고개를 살짝 돌리다 말고는 가볍게 웃었다.

“아니에요.”

박 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운동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지석 선배와 오 선생, 차 선생과 홍 선생, 그리고 윤 선생까지. 그들 모두가 운동장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정말 후다닥 지나가기는 했지만….”

“이제 다시 입시 준비해야죠.”

“그러게. 저렇게들 외치는데, 학교의 주인들이 진학을 제대로 못 하면 안 되잖아?”

차례대로 차 선생, 홍 선생, 오 선생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윤 선생이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다.

“과학 논술 특강 준비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눠 주세요.”

윤 선생은 언제 준비했는지 논술 특강 수업 홍보지를 우리에게 나눠 주었다.

“저도 준비했어요.”

박 선생은 학생들이 읽기 좋은 영어원서 문학작품 목록을 만들어왔다. 이어서 지석 선배와 홍 선생, 차 선생과 오 선생도 각자 준비하고 있던 입시 교육 주제를 꺼냈다.

“명문이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고만 있자 지석 선배가 물었다.

“시기별 맞춤 상담을 해 주려고 합니다.”

지금 시기에서 필요한 것. 어지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입시를 준비하면 좋을까, 에 대한 부분이었다.

교사들이 그거 좋은 생각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추가적인 방법들을 구상하고 있는데 경필이가 달려왔다.

“쌤들! 저희 이제부터 뭐 하면 되나요!”

운동장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우리를 향해 서 있었다. 녀석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지금 시점에서 반드시 좋은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목표한 학과에 입학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서 살짝 코웃음을 날렸다.

“똑바로 안 하면 가차 없이 낙오시킨다!”

““네!!!!!””

녀석들의 힘찬 대답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올해는 3학년뿐 아니라 1, 2학년들도 열심히 챙겨줘야겠다고 말이다.

그래야 이번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잘 마무리됐으니까 다행이에요.”

박 선생이 말했다. 나는 박 선생이 지금껏 묻지 않아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빚 이야기 안 하십니까?”

“빚은 무슨. 됐어요.”

박 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운동장에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입시를 준비하면 좋을지 의논하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벌써 다 갚고도 남았으니까.”

그 말의 의미를 잠시간 생각했다. 그녀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보였다.

학생들의 주체적인 모습. 강문고에 들어와서, 아니 교사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을 터였다.

그러한 학생들의 변화 자체가, 박 선생에게는 보답이었으리라.

“천생 교사시네요.”

“네? 뭐라고 하셨어요?”

제대로 못 들었다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박 선생에게 나는 별거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여기 있는 모든 이들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해하면서, 나도 다음 스텝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다시, 입시 준비 시작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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