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17화 (216/252)
  • 217화. 개싸움 (6)

    “난리도 아니구만.”

    휴가를 내서 강남으로 놀러왔던 서윤수가 기사를 읽으며 낄낄 웃었다. 원래 월요일에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서울의 일이 재미있게 흘러갔기에 며칠 더 휴가를 낸 참이었다.

    “은숙이랑 학생들이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물론 이전의 이사장도 부정부패를 막고, 그와 관련된 자들을 즉각 처벌하는 결단력을 보였었다.

    그러나 그 모든 건, 학교 경영진이나 교사들로 인한 처벌이었다.

    <학생들의 정당한 인권을 찾아주고자 선언한 강문고등학교>

    기사를 읽어 보면 이사장은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고, 학생들이 학교를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것뿐이랴. 학생들 역시 이사장을 전폭 신뢰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중앙법원에 찾아가 시위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학교에 문제가 있으면 이사장이나 교장부터 걸고넘어지는 게 정상인데 말이야.”

    그러나 강문고등학교 학생들은 이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비록 인터넷에 찌라시처럼 뿌려진 GF파일이었지만, 지금까지 발각된 부정부패 사건들 사례 때문에 그 내용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다.

    “강진 어르신….”

    서윤수는 아직 강진이 세상을 떠나기 전, 강은숙 이사장과 함께 장학재단 설립 행사에 참여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제 당신이 원하던 학교가 조금씩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오래간만에 주문한 마카롱을 집어 먹었다. 입 안에 가득 들어찬 마카롱을 우물우물거리며 단 맛을 음미했다.

    “학생을 믿어라, 라고 하셨죠.”

    서윤수는 남은 음료도 마저 마무리를 했다.

    “그 믿음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는 선생님이, 지금 당신 손녀의 학교에 있습니다.”

    서윤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웃으면서 카페 사장을 찾았다. 마카롱 한 박스를 추가로 구매하고는 유유히 카페를 나섰다.

    * * *

    경필을 비롯한 강문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졸업생들이 준비한 피켓들을 들고 중앙법원 앞에서 시위를 했다.

    “불법 커넥션 공개하라!”

    “학생들의 등록금 횡령 처벌하라!”

    “친구들, 선배들을 위험하게 만들었던 인물들을 당장 감방에 처넣어라!”

    학생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며 소리쳤다. 들고 있는 피켓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피켓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게 뭐야?”

    그리고 그 피켓에 집중하고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강세혁 검사였다.

    잠깐 법원에 방문할 일이 있어 왔는데, 강문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경찰들이 학생들의 움직임을 막고자 방패를 들고 앞에 서 있었다. 강세혁은 그 뒤로 슬쩍 걸어갔다. 강세혁을 알아본 경찰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들어가면서 피켓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저건…!”

    학생들이 들고 있는 피켓은 문구만 적혀 있는 피켓이 아니었다.

    사진이 포함된 피켓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두 사람이 악수하는 모습, 인사하는 모습, 함께 가게에 들어가는 모습 등이 찍혀 있었다.

    “이런 시발….”

    강세혁은 옆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진순철 강남서초구청장은 해명하라!”

    “부정부패에 찌든 곽형조 이사와의 커넥션을 해명하라!”

    학생들의 구호가 이제는 피켓의 주인공을 향했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피켓.

    거기에는 신미나 기자와 은장이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곽형조와 진순철의 모습이 담긴 사진 말이다.

    “흠….”

    강세혁은 구호를 들으면서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쓴 남성을 살폈다. 그는 주먹을 쥔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강세혁이 남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슬쩍 이야기를 엿들었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그러니까…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

    “…그렇단 말이지?”

    이야기를 들은 강세혁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법원에서 보려던 일을 잠시 미루고 강세혁은 다시 검사실로 돌아왔다.

    “안 될 놈은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강세혁은 서류더미를 정리하며 슬며시 웃었다.

    “그래 가끔은 나처럼 착한 사람에게도 운이 따라 줘야지. 악당만 따라주면 이상하잖아.”

    그는 주어진 행운에 감사해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 * *

    시끌시끌한 중앙법원 앞, 현장을 찾은 기자들은 학생들을 취재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아 인터뷰 안 한다고요!”

    그러나 학생들은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처음 출발하기 전부터 경필과 우현이 강조한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인터뷰는 안 돼! 그 사람들, 왜곡해서 올린다고!

    학생들은 언론사에서 지금까지 이사장과 강명문에게 했던 행태를 알고 있었기에 그에 동의했다.

    -경찰들하고도 싸우지 마! 괜히 일 커진다!

    하나 더 강조한 건, 자신들을 막는 경찰과 충돌하지 말라는 점이었다. 학생들도 괜히 경찰과 무력충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싸우려고 이번 일을 계획한 게 아니었으니까.

    “좋아. 다 좋은데….”

    동규가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서 하는 거 맞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동규를 보면서 민정이 중얼거렸다.

    “법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경찰서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지. 이사들 사무실로 가야 했던 거 아닌가?”

    학생들이 작은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실루엣의 남성이 학생들 앞으로 다가왔다.

    “더운데 고생이 많네.”

    “쌤!”

    강명문을 알아본 학생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쌤, 저희 말리셔도 안 갈 겁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여기서 삭발식을 하든, 뭘 하든 상관없어. 하나만 알려 주려고.”

    학생들을 향해 강명문이 손가락을 들었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서 해야 하는 거야.”

    강명문이 가리킨 곳은 중앙지검이었다.

    “범죄자들 처단하고 잡아달라고 하는 시위를 왜 법원에서 하고 있어? 검찰청에 가서 해야지. 중앙지검이 부담스러우면 여기 옆에 고등검찰청을 가던가.”

    “네!?”

    어느새 학생들의 구호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는 구호 소리는 탄식으로 바뀌었다.

    “자, 알았으면 하던 거 계속들 해.”

    “…이 분위기에서 어떻게 더 해요.”

    “응? 바리깡도 들고 왔던데 삭발식 안 해?”

    학생들은 바리깡을 비롯한 이발도구까지 들고 온 상태였다. 그래서 강명문은 학생들이 삭발식이라도 하는 줄로 생각했다.

    “하려고는 했는데….”

    “됐어요. 안 할래요. 김샜어.”

    투덜거리면서 학생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명문은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학생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신미나 기자는 빠르게 기사를 올렸다.

    <강문고등학교 학생들의 시위는 학교 선생님들의 설득으로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그 선생님들이 누구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 * *

    강세혁은 작성한 문서를 인쇄해서 박성혁을 찾았다.

    박성혁 차장검사는 내용을 보더니 강세혁에게 물었다.

    “잡을 수 있겠나?”

    “네. 잡을 수 있습니다.”

    “증거는?”

    “확보되어 있습니다”

    강세혁은 박성혁에게 USB하나를 내밀었다. 언젠가 조신자가 주고 갔던 파일이 포함되어 있는 USB였다. USB를 확인한 박성혁은 중앙법원에 집결해있었던 학생들을 떠올렸다.

    “확실하게 해야 해. 검찰의 신뢰가 엮여 있다.”

    박성혁은 강세혁이 들고 온 서류를 결재하며 말했다.

    “제대로 잡아 봐. 강프로만 믿겠네.”

    “감사합니다!”

    서류를 들고 나가는 강세혁을 보면서 박성혁은 아침에 딸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도와주세요.

    딸이 그렇게 직접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보았다.

    “어차피 사학비리를 잡아내려고도 했으니까.”

    겸사겸사 딸에게도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박성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어, 나야. 기자들 좀 모아. 중앙지검 차장검사 박성혁이 기자회견 한다고. 회견 주제는 사학비리 척결에 중앙지검이 앞장서겠다는 거야. 그래. 지금 당장.”

    전화를 끊은 박성혁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비할 문서를 작성했다. 그와 동시에 후배 검사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다. 그들은 빠르게 강문고 사학비리 수사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제 검찰도 움직일 차례였다.

    * * *

    진순철의 전화를 받은 곽형조는 패닉에 빠졌다.

    ‘파파라치까지 동원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일개 교사가 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야말로 현장의 베테랑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작전들이었다.

    사진을 촬영한 당사자를 찾아서 협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여론은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따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학생들 대박이네.

    -얘네 저번에 보니까 모의고사 점수도 최상위권 애들 많던데?

    -정의로운데 공부까지 잘 한다. 신은 불공평해.

    -대신 넌 저런 시위 안 해도 되잖아.

    인터넷 분위기는 이미 강문고 학생들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거기에 진순철의 말까지 있었다.

    -형님이라도 숨으십쇼. 지금은 괜히 나서서 둘이 같이 조사라도 받으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최대한 몸을 사려야 했다.

    그리고 일전에 천우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숨는다… 뜬다…?’

    곽형조는 재빨리 자신의 사무실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빨리 알아봐. 가장 빠른 거 아무거나. 짐도 대충 싸 둬. 여권도.”

    곽형조는 해외로 도망갈 준비를 했다.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가 있으면, 사건이 잠잠해질 때쯤에나 조사를 받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직원이 준비해둔 짐과 여권을 챙겼다.

    “나한테 전화 오는 거 있으면 잠깐 자리 비웠다고만 해.”

    그 길로 곽형조는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거의 다 와 간다.’

    조금만 더 가면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수속만 마치면 자신을 막으러 오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망할 새끼들….”

    곽형조는 강명문과 강문고 학생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이… 감히… 감히…!”

    손에 들린 천가방의 손잡이가 한껏 꾸깃해졌다.

    “새파랗게 어린놈들한테 당하니까 기분이 어떻습니까?”

    갑자기 들려온 말에 곽형조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 자리에는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 박은환, 심지석이 서 있었다.

    “어디를 가시나요?”

    강은숙 이사장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너… 여기는 어떻게….”

    “범죄자들이 생각하는 걸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죠.”

    강명문이 대신 앞으로 나오며 답했다.

    방금 전, 강명문은 학생들을 학교로 돌려보내면서 곧장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강은숙 이사장과 박은환, 심지석은 그에 앞서서 이사장의 차량으로 공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공항에서 합류한 그들은 조용히 체크인 게이트 주변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곽형조가 들어오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가온 것이었다.

    “흥. 그래 봤자, 너희들이 날 잡을 수는 없어.”

    “맞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아무리 관계자들이라고는 해도, 곽형조의 출국을 강제로 막을 수는 없었다. 그가 경비원들을 부르거나 하면 공항으로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은 끌 수 있죠.”

    “…시간?”

    곽형조는 강명문을 비롯해 두 교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 무언가를 눈치챈 듯 발을 돌려 달아났다.

    “도망간다!”

    어디서 그런 속력이 나왔는지, 도저히 나이 든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도망갔다. 그러나 곽형조의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되었다.

    “곽형조 씨.”

    그를 막아선 또 다른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넌….”

    곽형조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십니까. 저희랑 같이 가셔야 하는데.”

    씨익 웃은 남성이 종이를 하나 꺼내며 펄럭, 펼쳤다. 체포영장이었다.

    “곽형조 씨. 당신을 살인교사죄, 사기죄, 횡령 및 배임죄로 체포합니다.”

    중앙지검에서 나온 강세혁 검사였다. 그를 알아본 다른 교사들이 뒤쫓아와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당연합니다. 저희 차장검사님이 아주 칼을 제대로 갈고 계시거든요.”

    강세혁 검사를 따라온 수사관 한 명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하나를 보여 주었다.

    실시간 뉴스였다.

    [저희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사학비리를 철저하게 수사하고자 합니다. 지금 벌써 관계자들은 모두 출국금지명령을 내렸으며,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지검 인원들이….]

    그걸 확인한 곽형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개싸움에는 개싸움으로.”

    강명문이 곽형조를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

    “제가 준비한 싸움판, 어떠셨습니까?”

    “네, 네 이노옴…!”

    곽형조가 입술을 씰룩거렸다. 금방이라도 욕을 내뱉을 것 같은 얼굴을 보면서도 강명문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싸움의 종지부를 찍어야죠.”

    남은 건, 이사진과 부정부패 교사들 전원에 대한 처벌뿐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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