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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클래스-216화 (215/252)
  • 216화. 개싸움 (5)

    사건이 터지기 직전, 2학년 1반 교실.

    경필은 강명문에게 귓속말로 어떤 정보를 전달받고, 한 가지를 지시받았다.

    “쌤이 뭐라고 하셨는데?”

    “아 선배님들한테 연락해 보라고….”

    경필은 핸드폰을 들고 연락처를 찾았다. 수학여행 때도 만났던 최동석, 김은장 선배. 두 사람의 연락처를 찾은 경필은 먼저 동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 강문고등학교 2학년 문경필입니다!”

    경필을 알아본 동석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 제주도에서 만난 후배님! 잘 지냈어요?]

    “네! 선배님들 덕분에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쌤이 연락해 보라고 하셔서 전화드렸습니다.”

    동석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잠시간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며 다른 사람을 바꿔 주었다.

    [여보세요? 경필이니?]

    “혹시 은장 선배님?”

    [응! 나야. 우리가 뭐 준비한 게 있는데 이게 좀 무거워. 미안한데 역 근처로 좀 와 줄래?]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경필은 선배들이 준비한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야야, 선배님들이 잠깐 역 앞으로 오라고 하신다. 가자!”

    “뭐? 이렇게 갑자기?”

    경필의 말을 들은 동규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민정도 마찬가지였다.

    “뭔지도 모르고 가는 거야?”

    우현 역시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경필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작년에 졸업하신 강문고 선배님들이야! 우리는 못 했던 일들도 많이 하신 분들이고! 당연히 믿고 가야지!”

    다소 억지스러운 믿음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경필의 장점이기도 했다.

    자신만의 기준이 확실했다. 누군가를 신뢰하는 근거가 말이다.

    그리고 그 근거만 갖춰져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그 사람을 믿는 녀석이었다.

    그런 경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친구들도 더 물어보기를 그만두었다.

    게다가 선배들이라면 수학여행 때 우현이를 구하고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들이라면, 지금 공개된 GF파일 속 어른들과 달리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가자.”

    생각을 마친 동규가 힘차게 말했다. 민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근데 지금 자습시간인데 괜찮냐…?”

    퍼뜩 생각을 마친 동규가 조심스레 물었다. 경필은 자습시간을 땡땡이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명문이 어떤 미소를 지을지 상상했다.

    그래도 뭐, 강쌤이 시킨 거니까 뭐라 하지는 않으시겠지.

    “아마 괜찮을 거야. 아마… 도….”

    혹시나 혼나게 되면 내가 전부 책임져야지. 그렇게 생각한 경필을 보면서 친구들이 한숨을 푹 쉬었다.

    * * *

    선배들을 만나고 온 경필, 동규, 민정, 우현은 낑낑대며 몇 개의 물건을 들고 왔다. 모두 선배들로부터 받은 물건들이었다.

    “어휴 뭐가 이렇게 많아.”

    들고 온 물건을 학교 뒤쪽 공터에 내려놓은 동규가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그러게.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냐?”

    “들고 다니면 되겠지 뭐. 피켓은 그렇게 쓰는 거잖아.”

    우현의 물음에 경필이 당연하다며 답했다.

    “그럼 이제 슬슬 우리도 해 볼까?”

    민정은 물건을 옮기면서 친구들과 계획하고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다른 친구들도 그걸 생각했는지 씨익 웃었다.

    * * *

    그리고 지금, 기자들은 법원으로 행진하고 있는 학생들을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저, 저 녀석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일부 교사들이 학생들 앞을 막으려고 달려갔다. 그러나 학교의 부정부패를 알리기 위해 똘똘 뭉친 학생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원으로 가자!”

    “불법 자금 횡령 처벌하라!”

    학생들의 구호가 어지럽게 울려 퍼졌다.

    전문적인 시위를 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은 학생들이었다. 구호는 중구난방이었고, 질서도 없었다. 그저 학교를 바꾸겠다, 더는 학생들을 무시하는 교사들, 경영진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모습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지금 분위기에서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기자들이 강당을 빠져나와 연신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민지정, 김영호의 끄나풀 교사들이 나서서 기자들이 사진 찍는 걸 말렸다. 반면, 나는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단상 위에 놔둔 생수를 마셨다.

    ‘호소력 있네.’

    나는 행진의 가장 선두에 서서 무리를 이끌고 있는 학생들을 찾았다. 예상대로 경필이, 우현이가 보였다. 녀석들은 친구들과 함께 종이로 씌워 둔 피켓들을 나눠서 들고 있었다. 종이에 싸여 있었기에 그 피켓의 내용을 확인할 도리는 없었다.

    뭐, 나는 알고 있었지만.

    “부정부패에 휩쓸려 학생을 희생하게 만든 강문고 교사들, 경영진은 각성하라!”

    제일 앞에 서서 외치는 우현이의 말에 학생들이 외쳤다.

    “각성하라!”

    “각성하라!”

    “그게 어른이 할 짓이냐 시발!”

    더러는 욕을 섞어 가면서 학생들이 분노를 표했다.

    “야, 야야 찍어, 찍어!”

    기자들이 앞다퉈 달려가면서 학생들의 행진을 촬영했다. 몇몇은 학생들을 인터뷰하려고 시도를 해 보기도 했다.

    “학생들, 지금 이러는 거 선생님들이 안 막으셨….”

    “아, 막으면 어때요! 학교가 썩어가고 있는데!”

    그들은 우현이의 외침에 다들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기에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아주 좋군요.”

    나는 강당 밖으로 나와 학생들의 행진을 지켜보며 말했다. 옆에서 그걸 함께 보고 있던 이사장도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못하는 걸 학생들이 하고 있어요.”

    “정확하게는, 학생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전생에서 내가 한명심을 비롯해 언론에게 당하고, 반박 의견을 내지 못했던 이유. 그건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학생들은 학교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학교의 부정부패가 온몸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다르지.’

    급식비 문제가 있을 때는, 제대로 된 급식비 사용이 급식 퀄리티를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를 체험하게 해 주었다. 급식실 인테리어를 바꾸면서는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복지에 얼마나 큰 혜택을 주는지 알려 주었다.

    3학년 선배가 부정부패에 엮여서 살인당할 뻔하기도 했고, 그에 따라 학교에 만연한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이뿐인가. 수학여행에서는 주도적으로 업체들을 평가했고, 친구인 우현이가 위험에 빠진 걸 목격한 후에는 정책 제안 프로젝트로 학교의 변화를 주도하고자 노력했다.

    거기에 비교과 특강에서 사고를 위장하려던 불량 교사들의 모습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을, 전생에서와는 달리 학생들이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공부만 하는 샌님들이 아니다, 이거야.”

    내가 지금까지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한 이유. 그건, 사학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게끔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여기에는 졸업생들의 역할도 중요했다.

    ‘그냥 선배도 아니고, 작년에 입결 대박을 이뤄낸 선배들이니까.’

    원래 공부를 잘 하던 녀석들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면서 목표대로의 입시 역전을 이뤄낸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모든 과정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히죽 웃었다.

    “강 선생님, 법원으로 같이 안 가 보셔도 되나요?”

    내가 웃고만 있자 이사장이 물었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오히려 저대로 놔두는 게 학생다운 모습이라 좋습니다. 저는 나중에 가봐야죠.”

    내 말에 이사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입시와 같군요.”

    “맞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여 주어야 하는 건, 노련한 경험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행진을 하고, 시위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그런 녀석들에게 시위를 전문적으로 해 온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설펐고, 질서도 없었다. 중구난방이기도 했고, 집회 때 흔히들 사용하는 노래도 몰랐다.

    심지어 녀석들이 향하는 목적지도 잘못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 세간에 보여 주어야 하는 모습은 다른 게 아니었다.

    “학생다움.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녀석들의 주도적인 모습이 전국에 알려질 것이었다.

    “근데 행진이랑 시위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괜찮을까요?”

    홍 선생과 차 선생이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걱정할 것 없다며 말했다.

    “졸업생들이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조만간 드러날 일이었다.

    “그게 판도를 바꿀 겁니다.”

    * * *

    같은 시각, 심지석과 오석상은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학생들이 법원으로 시위를 하겠다며 행진을 하는데, 그래도 교사 된 도리로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고….”

    저 앞에서 다가오는 강문고 1학년, 2학년 학생들을 보면서 오석상이 엑스칼리버를 꽉 쥐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열어 줄 수도 없고….”

    강명문이 기자회견을 열기 전에 당부한 일이 있었다.

    -학생들이 움직이면 가서 막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 하면 또 그건 그거대로 꼬투리를 잡는다고 하니….”

    심지석의 말에 오석상이 동의한다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코스프레를 해 보자고.”

    “네. 학생들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교사로 하면 되겠습니다.”

    어느새 학생들은 학교 정문 앞까지 다가왔다.

    “어어어! 진짜 나간다! 학생들 나가!”

    기자들이 손가락으로 정문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가자!!!”

    우와아아-!

    학생들이 일제히 앞으로 걸어갔다. 심지석과 오석상은 교문을 붙잡은 채 열어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니, 애쓰는 척했다.

    “얘들아! 잠깐! 진정해!”

    심지석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교문을 붙잡고 있는 손에는 힘을 주고 있지 않았다.

    “너희들 지금이라도 멈추면 용서해 주마!”

    오석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엑스칼리버를 쥐고서 학생들을 막고, 교문을 막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좌우로 빠지는 학생들은 잡는 척만 했다. 막으려다가 놓쳤다, 라는 그림으로 보여 주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이러면 안, 안 되는데, 아, 안 되는….”

    다소 어설픈 연기를 하는 심지석을 향해 오석상이 눈을 흘겼다. 그 눈빛을 받은 심지석이 민망한 듯 살짝 웃었다.

    “쌤들! 저희 나가겠습니다!”

    경필의 외침에 심지석이 마지막으로나마 잡고 있던 교문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슬쩍, 손에 쥔 힘을 풀었다.

    “가자 얘들아!!!”

    “중앙법원으로 가자!!!”

    “학생의 권리를 찾자!!”

    학생들이 일제히 함성을 외치면서 교문 밖으로 걸어갔다. 심지석과 오석상은 활짝 열린 교문의 가장자리에 서서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있는 다른 교사들이나 기자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 * *

    강남서초구청장실. 진순철은 자신과 친한 언론사 기자들이 아침에 올린 기사들을 읽고 있었다.

    “잘 썼네.”

    기사들의 내용은 강명문의 모든 업적을 좋을 대로 해석한 내용들이었다. 실적만을 위한다거나, 이사장과 불법 거래가 있었다거나 하는 추측들이었다.

    이게 팩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만으로 충분했다.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진다? 그러면 그냥 아, 아니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다.

    “훌륭해.”

    이제 강남서초 교육 문제를 밝히고 혁신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 되었다. 자신의 임기 동안 이를 밝혀내지 못한 부분에는 반성을 하고, 확실한 교육 혁신을 이루겠다고 주장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정책홍보실장이 구청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구청장님!”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매너 없이 들어오나?”

    진순철이 인상을 찌푸리자 정책홍보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 전화를 꼭 받으셔야 하셔서….”

    진순철은 정책홍보실장으로부터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네, 전화 바꿨….”

    [구청장님! 지금 큰일났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딘가의 언론사 기자인 것 같았다. 지난번에 술자리에서 만났던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기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지, 지금, 중앙법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법원? 거기는 왜?”

    [학생들이 거기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강문고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한다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문고 1, 2학년 학생들이 중앙법원으로 행진하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

    기자의 이어진 말에 진순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차량 준비해. 중앙법원으로 간다.”

    “네, 알겠습니다.”

    정책홍보실장이 대답을 하고서 구청장실을 나갔다. 진순철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생각했다.

    ‘어디서, 어떻게, 누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진순철은 옷걸이에 걸어 둔 모자를 챙기고 서랍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혹시나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봐 할 수 있는 준비는 최대한 하려고 했다.

    ‘만약 진짜라면….’

    당장이라도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도무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젠장…!”

    꼭 물이 턱 밑까지 차오른 기분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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