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15화 (214/252)
  • 215화. 개싸움 (4)

    진순철의 작전은 이랬다.

    언론을 휘어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다고 선동을 하기에도 힘이 약했다.

    이미 GF파일이 온라인에 가득 퍼졌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검경 수사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곽형조가 잡혀가면 그로서도 좋을 건 없었다.

    사실상 자신의 정치자금 일부를 대주고 있는 후원자였으니까.

    진순철이 구청장이 되면, 곽형조에게 더 많은 몫을 챙겨줄 것이고, 진순철은 곽형조의 힘을 빌려 강남서초구를 교육 특구로 만들 계획이었다.

    강남서초에만 집중된 교육 인프라를 다른 지역에도 풀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식의 사건이 터지면 곤란했다.

    때문에 진순철은 생각했다.

    상대가 막강하다면, 그들을 인정하자.

    그들의 장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그 틈새를 파고들자.

    그래서 진순철은 정책홍보실장과 비서실장, 그리고 그 아래 실무진들을 한데 모아 말했다.

    “강문고등학교 교사 강명문을 집중 취재하는 취재진을 학교로 보내도록 해.”

    “학교로 말씀이십니까?”

    비서실장의 질문에 진순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적에 목말랐던 사람일 뿐이었다는 말이 있다. 학생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교사로서의 마인드가 부족한 사람이다. 이런 식의 소문 말이야.”

    그 말에 인원들이 잠시간 침묵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아니면 상담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이런 걸로도 소문 내고.”

    “하지만, 지난 조사 결과 성적 낮은 학생들 대상으로도 상담을 하셨던데….”

    “허허, 참. 말귀 못 알아들어?”

    비서실장이 입을 다물었다.

    “강명문 선생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에게 유리한 그림으로만 만들라는 거야. 성적 낮은 학생 상담도 해 줬다? 그게 세간의 눈치를 보고 움직인 건지 아닌지 우리가 알게 뭔가. 안 그래?”

    진순철의 말대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라 선동과 소문이었다.

    여론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대중이 집중하는 대목이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소문을 내. 추가로, 학생들에 대한 것도.”

    “학생이라면….”

    “뻔하지 않나.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렇게 대자보니 뭐니 설치고 다니는 거라고 해야지.”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강문고에서 일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성적이 낮은 녀석들로 생각되었다.

    “강문고 아닌가, 강문고. 나름 강남서초권의 명문고등학교라고.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을 벌려? 이거 다 공부하기 싫으니까 꾀부리는 거잖아.”

    진순철의 말에 일부 인원들이 그럴 수 있겠다며 동조했다.

    “그러니 분위기 잘 만들어보자고. 알겠나?”

    말을 마친 진순철은 정책홍보실장부터 비서실장, 그 외 실무자들을 한 바퀴 돌며 악수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양복 주머니에 돌돌 말아둔 지폐를 밀어 넣었다.

    “어려운 일 아니잖아?”

    주머니에 꽂힌 지폐뭉치를 허벅지로 느끼면서 회의실에 모여있던 인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면서 진순철은 자리에 편한 마음으로 앉았다.

    “말이라는 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지.”

    진순철이 자신의 책상에 놓인 모니터를 응시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 연임을 위해 희생해줘야겠어, 강명문 선생.”

    * * *

    하루가 더 지났다.

    강문고는, 아니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정신이 없이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 또 왔어요!”

    민주가 나한테 달려오며 말했다. 민주 뒤에는 어디인지 이름도 모를 기자가 명함을 꺼낸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한일보 박우진 기자….”

    “일단 앉으시죠.”

    나는 그의 인사를 끊고서 곧장 인터뷰를 시작했다. 박우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기자가 잠시 당황해했다. 그러다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꺼냈다.

    “에… 먼저… 선생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좀 많은데요.”

    “내신이 낮으면 상담을 해주지 않았다거나, 실적에만 목말라 있었다거나 그런 소문이죠?”

    나는 당황해하는 박우진을 보면서 손가락을 살짝 들어보였다.

    찰칵!

    갑작스런 셔터 소리에 박우진이 깜짝 놀랐다. 나는 셔터 소리를 낸 주인공을 향해 말했다.

    “가져와봐라.”

    “네 쌤!”

    경필이가 최신 스마트폰으로 박우진이 들고 있는 노트를 뒤에서 몰래 찍은 것이었다. 경필이에게 핸드폰을 건네 받아 사진을 확인했다.

    “이야 이거 참… 안 좋은 소문으로 몰아가라. 내신 낮으면 상담 안 해준다, 실적만 챙긴다, 모든게 자기 위주다, 실력이 없는데 있다고 꾸민다는 소문이 있다, 이건 또 뭐야. 달려드는 여자가 많은데 내가 다 차고 다닌다?”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박우진은 당황해하며 입을 벌린 채 어버버하고만 있었다.

    “이 사진으로 ‘강한일보 박우진 기자님이 우리 쌤 이딴 식으로 취재하려고 왔더라!’ 라고 SNS에 올리면 참 재밌겠네요 기자님. 그쵸?”

    경필이의 말에 박우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럼 기자님 인생은 뭐….”

    “일단 명예훼손부터 가야하는 거 아닌가?”

    “굳이 그럴 필요 있어? 그냥 우리가 반대로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맞네. 기자님은 돈 들어오지 않으면 취재 안 해준다던데, 실적 챙기려고 다른 사람 명예훼손도 많이 하던데, 이런 질문들 말이야.”

    용희, 민주, 태웅, 은솔이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박우진은 학생들의 말에 건방지다고 화를 낼법한데도 그러지 못했다.

    학생들뿐 아니라 내 주위에 몰려온 다른 교사들도 그를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아, 그, 그게 말입니다 선생님….”

    “더 큰 일 벌어지기 전에 빨리 자리 뜨시죠. 아, 그리고 핸드폰에 녹음한 거는 지금 여기서 지워주시고요.”

    나는 박우진의 주머니에서 살짝 빛나고 있는 핸드폰을 가리켰다.

    “날도 더운데 셔츠는 왜 입으셨어요? 안주머니도 살펴볼게요.”

    박우진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녹음기가 발견되었다. 나는 그걸 꺼내서 내 책상 위에 올렸다.

    “이건 제가 가지겠습니다. 녹음하겠다는 동의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고 계셨어요?”

    내 말에 박우진이 온 몸을 덜덜 떨었다.

    그런 박우진 앞으로 박 선생이 걸어왔다.

    “볼펜도 주세요.”

    “보, 볼펜이요?”

    “셔츠에 꽂혀 있는 볼펜이요. 왜 꽂아만 두고 쓰지는 않으시는지 궁금하네요.”

    박 선생이 박우진으로부터 볼펜을 빼앗고는 작동을 시켰다.

    “맞네, 녹음기.”

    “아….”

    “이거도 저희가 가질게요.”

    볼펜을 챙긴 박 선생이 박우진을 향해 사시눈을 떴다. 그리고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박우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린 박우진은 후다닥 교무실 출구로 향했다. 박 선생은 압수한 볼펜을 내 책상 첫 번째 서랍을 열고는 아무렇게나 던져 넣었다.

    “이걸로 몇 개죠?”

    “보자… 압수한 녹음기만 열 개가 넘는군요.”

    나는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이 사단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도 잘 대처하고 있는 거죠?”

    박 선생의 물음에 내가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개싸움을 할 생각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 것인가, 였다.

    어떻게 하면 윗대가리들이 최대한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오는 빌런들에게 엿을 먹일까.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장면들이었다.

    “이건 무슨 인해전술도 아니고…. 이러다가 현대 역사 인해전술 중 하나로 기록이라도 되겠어.”

    쌓여 있는 녹음기를 보면서 오 선생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거, 저쪽에서도 달리 소문내고 있지는 않죠?”

    홍 선생의 질문에 은솔이가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네, 아직은 없어요!”

    “그래도 올라가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그 전에 우리는….”

    언제까지고 한 명 한 명 찾아오는 기자들을 상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학교 수업도 해야 했고, 이 녀석들은 비교과 활동들도 해야 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다시 입시로 돌아가는게 좋아.’

    때문에 기자들에게 미끼를 던질 생각이었다.

    “아예 기자회견을 한 번 더 하죠. 이번에는 제가 메인으로 올라가겠습니다.”

    “혼자서 괜찮겠어?”

    지석 선배가 물었다. 선배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던 바를 이야기했다.

    “어차피 지금 타겟이 된 건 저입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학생들 수업, 관리에 집중해주세요. 너희도 여기서 이러고만 있지 말고, 올라가서 자습시간이어도 공부해 공부.”

    내 말에 학생들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다 다시금 입술을 넣고는 어쩔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치, 선생님 도와드리려고 그런건데.”

    “그래도 선생님 말씀이 맞아. 아침에 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올라오고 그랬잖아.”

    민주와 태웅이가 한숨을 푹 쉬면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꺼냈다.

    어떤 일이었냐면, 이번 대자보 사건에 참여한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꾀를 부린다는 소문이었다.

    그 소문은 태웅이와 민주가 본인들 모의고사 성적표와 학생부에 있는 성적, 석차등급을 SNS에 올리면서 쏙 들어갔다.

    “공부를 못하기는. 여기 스카이 갈 인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용희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나는 녀석들의 말을 들으면서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는 설명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꼬투리 잡힐 일은 하지 마라. 그 말씀이죠?”

    은솔이가 힘차게 차렷 자세를 했다. 이제는 내 의도를 꽤 빠르게 잡아내는 녀석들이 기특해서인지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럼 저희는 자습하러 갈게요!”

    사실상 지금 강문고는 검경의 조사에 언론의 취재까지 이어져서 정상적인 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전교생들은 자습을 하고 있었다.

    녀석들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자습을 하러 올라간 것이었다.

    “용희랑 은솔이 멘토링도 잘 챙겨줘.”

    “네, 걱정마세요 쌤!”

    그렇게 올라가는 3학년들을 보고 있던 경필이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가방을 챙겼다.

    “쌤, 저도 가보겠습니다.”

    “아니, 경필이는 잠깐만.”

    나는 경필이를 잠깐 붙잡고는 귓속말을 했다.

    “진짜요?”

    “그래. 괜찮아. 너희들 근질근질하잖아?”

    내 말에 경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믿고 맡겨주십쇼!”

    비밀 임무를 받아 기쁜 모양인지 경필이가 신이 나서 교실로 달려갔다.

    “그럼 저는 기자회견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사장님께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신 기자님한테도요.”

    박 선생, 지석 선배가 이사장과 강철면 교장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나는 신 기자에게 따로 연락을 했다.

    * * *

    그리고 그날 오후 2시 즈음, 강문고에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강문고등학교의 강명문. 그는 누구인가.>

    메인 방송국에서 이런 타이틀을 걸고 방송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나는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했다. 짧은 내 발표 시간이 끝나자 기자들이 하나씩 손을 들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선생님.”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던 기자였다. 그를 지목하자 그가 물었다.

    “학교의 비리를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알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전부터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이 먹잇감을 포착한 듯 입맛을 다셨다.

    “이사장님과 별도로 불법적인 커넥션을 가지신 건 아닙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이 많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대학과 커넥션이 있다는 소문, 이사장님과 선생님 두 분만 이익을 얻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내쫓으려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인터넷에도 많이 올라오고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억측이군요.]

    “그럼 왜 이런 비리를 알고 계셨음에도 이제야 움직이신 겁니까?”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후 조사를 하다 보니 이사장님을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알게 된….]

    “그러니까 알고 계셨던 거군요!”

    “이번에 강남서초에서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입시 실적에만 집중하는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건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질문에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당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 돌아봤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 혁신의 중심이 강문고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러자 기자들 중 일부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강문고를 바꾸시겠다는 말씀 같은데요! 오히려 입시에만 집중했던 선생님도 반성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다른 기자들도 일제히 외쳤다.

    “맞습니다! 혁신 대상은 선생님도 예외가 아닐 텐데요!”

    “선생님도 옷을 벗고 책임을 지셔야죠!”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내 귓가를 타고 들어왔다가 바로 흘러나왔다.

    [재밌군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누가 반성을 해? 누가 혁신 대상이야?

    만약, 과거의 나라면 여기에서 멘탈이 나가버려서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전생의 강명문이 아니었다.

    [아뇨, 책임 질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당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지, 지지지, 지금, 지금!”

    기자 한 명이 문 앞에 서서 숨을 헐떡였다.

    “뭐야?”

    “한참 분위기 좋았는데 왜 이래?”

    다른 기자들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강당 문 앞에 선 기자는 그들의 불만을 무시하고는 손가락으로 운동장을 가리켰다.

    “지금, 지금 학생, 학생들이… 버, 버… 법원으로….”

    “학생들이 뭐요?”

    짜증 섞인 말투로 질문을 던진 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당 문 앞에 선 기자가 소리쳤다.

    “법원으로 행진하고 있다고!!!!!”

    강당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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