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14화 (213/252)

214화. 개싸움 (3)

“너, 너너, 너… 네가 어떻게….”

곽형조는 태웅이를 보면서 삿대질을 했다. 태웅이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곽형조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다 알고 있습니다. 이사님들이 지인들 자녀들 성적 올리겠다고 조작하고 다닌 거요.]

태웅이는 일부러 마이크를 손에서 떼지 않고 거기에 대고 말했다.

‘잘 하네.’

사실 저 퍼포먼스는 모두 내가 계획한 일이었다.

-강당에요?

-그래. 이따 기자님들 엄청 몰려올 거다. 거기에서 보여줘야 화제성이 있지 않겠냐.

-그럼 가서 글을 읽을까요?

-그걸로 되겠어? 전지 두 장 붙여 가지고 대문짝만 하게 만들어.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 그걸 흔들면서 발표해야지. 3반 녀석들 싹 다 집합시키고.

그래서 녀석들은 내가 지시한 대로 대자보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자보는 총 두 개였다.

하나는 지금 강당에서 펼치고 있는 것.

또 하나는 바로 내 손에 들려 있는 종이뭉치였다.

“이건 교문에 붙여야지.”

교문 위치 어디가 제일 좋을까 고민하는데 기자들 사이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어! 불륜 이사님 아니신가요!”

너무나 어색한 연기톤이었다.

“어휴, 잘 좀 하라니까.”

나는 신 기자를 향해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곽형조와 진순철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자들이 일제히 질문을 던졌다.

“불륜은 왜 하신 겁니까!”

“불륜과 내신조작의 연관성이 있습니까?”

“학생의 목숨이 위험했습니다! 이것도 모두 계획된 범죄였습니까!”

“혹시 내연녀 자녀의 점수를 올려 주려다가 그런 것 아닙니까!”

곽형조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아니라고!! 그 자료들은 모두 거짓이야!!”

[아뇨! 이사님이 맞습니다!!]

곽형조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태웅이가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태웅이에게 집중되었다.

[아마 세간에 알려진 내신 조작은 한무회라는 다른 이사의 손에 의해서라고 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한무회 이사에게 지시를 내린 게 바로, 여기 있는 곽형조 이사입니다!]

태웅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층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그럴 만도 했다. 녀석에게 있어서는 하나뿐이었던 소꿉친구를 잃었고, 심지어 그 친구라 착각했던 녀석 때문에 목숨도 위험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조종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한무회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GF파일에 적힌 내용은 한무회 이외에 한 명이 더 적혀 있었다.

<송유미 내신: 곽형조 → 한무회에 지시 / 수단 방법 가리지 말 것>

이 내용 때문에 태웅이가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내연녀와는 관계가 없지만….’

기자들의 성격상 이 매력적인 조합을 놓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차피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이 사실의 진위여부가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가 언급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기자들이 내연녀와 성적조작의 관계성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곽형조 이사님! 정말 내연녀의 자식 때문입니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은숙 이사장님! 이사진의 불륜,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계셨다면 지금까지 침묵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일부는 이사장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대다수의 화살은 곽형조에게로 향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사장이 태웅이의 옆으로 다가가서는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 공개된 GF파일. 그 존재에 대해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장은 결심이라도 한 듯 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이사장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알고 있었지만,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파일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강문고 이사들과 커넥션이 있는 정치인들이 많았습니다.]

곽형조의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재력가들도 많았고요. 그래서 저는 부끄럽게도, 몸을 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사장이 학생들을 돌아봤다.

[그때 학생들이 저에게 용기를 준 거죠.]

기자들은 갑자기 강당으로 들어온 3학년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이사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이사장이 한 손을 번쩍 들고는 단상 위에 있는 탁자를 탁! 때렸다.

[강문고등학교는 오늘부로 변할 것입니다. 과거부터 이어진 모든 부정부패를 도려내고,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인공들은….]

이사장의 손이 학생들을 가리켰다.

[강문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이 서로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사장은 학생들의 반응을 잠시 살피고는 곽형조 이사를 향해 말했다.

[또한, 내부 인원은 정직하고 청렴하며, 교육적 마인드로 무장한, 강문고의 설립자이신 강진 어르신의 교육정신을 이어받을 사람들로 꾸리겠습니다. 그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차 없이 자르겠습니다.]

꽤 강경한 표현을 사용한 이사장을 향해 학생들이 박수를 치면서 한곳에 모였다. 단상 위로 올라온 3학년 3반 학생들이 민주, 태웅이, 용희, 응솔이를 둘러쌌다. 그리고는 녀석들이 들고 있던 대자보를 건네받아 기자들 앞에 한 번 더 펼쳤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맞아!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생들이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태웅이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우리는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것을 선언합니다!]

“더는 친구가 위험해지지 않게 만들 겁니다!”

“어른들만 믿고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용희와 은솔이도 소리쳤다.

‘오호?’

저 퍼포먼스는 기획한 적 없는데. 누구지?

단상 위를 보니 민주가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다.

‘자식, 학생회장 하더니 연출력이 늘었네.’

그럼 이런 부분들까지도 나중에 학생부에 추가를 해 줘야지.

물론, 다시 정상적으로 입시가 돌아가게끔 하려면,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는 게 필요했지만 말이다.

“이, 이, 이것들이….”

곽형조가 단상 구석에서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름진 주먹이 꽤나 연약해 보였다.

“곽형조 이사님! 내연녀 때문에 학생을 위험하게 만들었던 소감이 어떻습니까!”

신 기자가 비꼬듯이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지적하지 않았다. 곽형조가 꼬리를 말고 도망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만요!”

기자들이 곽형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곽형조는 언제 고용했는지 모를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면서 강당 바깥으로 사라졌다.

“후….”

단상을 내려온 이사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바빠지실 겁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피곤하지만, 옅은 웃음을 보였다.

“괜찮아요. 각오하고 있던 일입니다.”

학생들도 긴장이 풀린 듯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고생들 했다. 조금만 더 힘내 보자.”

“네!”

민주가 힘차게 대답했다. 태웅이도 대자보를 잡은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내 손에 들려 있는 남은 대자보는 정문 앞에, 또 하나의 대자보는 후문 앞에 부착했다.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문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학생을 우롱한 학교 경영진들, 교사들의 엄벌을 촉구합니다.>

그날, 강문고 3학년 3반 학생들이 작성한 대자보는 온라인을 통해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 * *

“헉… 헉….”

곽형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끝까지 쫓아오는 기자가 있을지 몰라 조심, 또 조심하면서 들어왔기에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무슨… 무슨 일이야….”

냉수를 한 컵 벌컥벌컥 마신 곽형조는 컵을 탁자에 내려놓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지금 상황들은….’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정치경력들을 믿었다. 온갖 공작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행위들. 그게 비록 비도덕적인 행위들일지라도,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였다는 생각의 행위들이었다.

파파라치를 붙여 바람피우는 현장을 적발해서 폭로했었고, 자금 조달을 위해 아는 기업가와 주가 조작 작전을 짰었다.

강문고 이사가 되어서는 학교 급식비나 강당 건축비, 유령 사무직원 급여, 불법 과외 등으로 일부를 빼먹으면서 공범자 교사들을 만들어 조종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곽형조는 생각했다. 과거에 분명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을 것이다. 부정부패와 관련한 불만들을 어떻게 잠재웠지? 내가 가진 돈을 어떻게 썼지? 권력과 인맥은? 그때 내가 했었던 방법들은 뭐였지? 최고 권력자에 대한 불만을 막았던 방법은?

‘…없어.’

생각을 지속하던 곽형조가 이빨을 까득 깨물었다.

‘없어, 없어! 없다고!’

곽형조는 과거에 정치계에 있었고, 그 덕분에 수많은 재력가, 권력가들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상황들을 겪어 봤고, 경험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같은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바로 어느 누구도 아닌, 어린 놈들의 반란.

그 하나의 사실이, 그를 궁지로 내몰았다.

“미치겠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직 성인도 아닌 청소년, 학생들이 일어섰다. GF파일을 오픈한 건 올해 초에 졸업한 20살 핏덩이들이었다.

그런 햇병아리들에게 내가 당한다고?

“고작 내가… 학생 때문에?”

하다못해 대학교 학생 운동도 아니고, 핏덩이 같은 고등학생들이!

입술을 깨물던 곽형조는 분노를 조절하고자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조력자를 떠올렸다.

“그래. 현서. 현서라면….”

항상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 주현서라면 묘안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는 곧장 주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로….]

“뭐, 뭐야…!”

몇 번을 더 반복해 봤지만 같은 음성만 들려왔다. 곽형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왔다.

“우, 우원이는….”

천우원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다.

[네, 형님.]

“자, 자네! 지금 어딘가!”

핸드폰 너머의 천우원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꼭두각시처럼 부리시다가 궁지에 몰리니까 연락하십니까?]

“뭐라고….”

천우원은 곽형조의 말을 끊으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저희는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뜰 겁니다. 괜히 어영부영 있다가 형님이랑 공범으로 잡히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전화가 툭, 끊어졌다.

곽형조는 전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머리를 감쌌다.

“이게 지금 무슨….”

이후에는 오히려 곽형조의 핸드폰이 울려왔다. 기사를 확인한 그의 아내가 보낸 문자도 수십 통이었다. 당장 이혼하겠다는 말부터 위자료 이야기까지 여러 개의 문자가 와 있었다.

전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수십 통의 전화가 왔지만, 곽형조는 그걸 모조리 무시했다.

“잠깐… 저희? 뜬다고…?”

곽형조는 천우원이 했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뜬다, 뜬다. 다른 이사진이 해외로 뜬다?

‘나도, 늦기 전에 가야 하나?’

아니다, 아직 자신은 해외로 뜰 때는 아니었다.

그렇다, 아직 진 것은 아니었다.

“순철이….”

그는 지금 자신과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상대를 떠올렸다. 강남서초구청장 진순철. 사무실 직원에게 말해서 진순철에게 연락을 취했다.

“당장. 당장 나와. 삼성동으로!”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은 곽형조는 이후의 전략들을 구상했다.

한 시간 뒤, 진순철과 곽형조는 삼성동의 일식집에서 만났다.

“지금 언론의 관심을 돌리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언론은 이미 내 불륜에만 집중하고 있잖아!”

곽형조가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진순철은 살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는 말했다.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면 좋아합니다.”

“자극적인 기사?”

“네.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 두 사람에게 책임을 무는 겁니다.”

진순철이 생각했을 때 지금 상황은 결국 학생들이 학교에 불만을 가지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을 재단 이사장인 강은숙과 함께, 학교에서 가장 유명인사인 강명문에게 돌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몇 번이고 했는데 실패했잖은가!”

“아닙니다. 좀 더 강하게 나가지 못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진순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씨익 웃었다. 어쨌든 진순철로서도 강남서초권에 있는 학교의 부정부패가 드러나야 선거 공약으로 세우기도 좋았다.

‘설령 여기서 형조 형님이 당하더라도, 나는 빠져나갈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갖고서 두 사람은 이후에 있을 전략들을 구상했다. 모든 작전 구상을 마친 두 사람은 일식집을 나왔다. 진순철은 곽형조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찍어누를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자네만 믿겠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지고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지는 두 사람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여성이 한 명 있었다.

“뭐야… 진짜잖아?”

신미나 기자가 방금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면서 씨익 웃었다.

“언니, 점점 쌤 닮아 가세요.”

“응? 나? 왜?”

신미나를 따라 온 은장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정작 신미나는 전혀 몰랐다.

마치 악마처럼 올라가는 입꼬리가 강명문의 웃음과 비슷하다는 걸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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