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213화 (212/252)

213화. 개싸움 (2)

<입시 정보 독식? 알고 보니 학생들 등록금 횡령!>

<강문고 최대 권력자는 ‘전’ 정치인 곽형조 이사. 그의 지저분한 과거 행적을 분석한다!>

<숨겨왔던 부정부패가 드러나다! 학교 졸업생과 교사들의 대활약!>

<각종 대학교 커뮤니티에 풀린 폭탄 자료. 폭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호프집에 설치된 TV로 뉴스를 확인하던 천우원은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맥주를 권했다.

“소감이 어때?”

천우원의 물음에 조신자가 말했다.

“은숙이가 열심히 칼을 갈더니 이제 움직이는구나 싶죠 뭐.”

그 말에 한무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긴장 풀기는 일러. 은숙이가 우리한테 받은 자료만 오픈한 건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천우원도 한무회의 말에 동의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은숙이는 걔 나름대로 뭔가 계획하고 있는 게 있을 거다. 아직은… 그래, 아직은 우리도 안심할 수가 없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맥주잔을 입에 가져갔다. 소화가 되는 듯 아닌 듯, 애매모호한 감정이 속에서 뒤섞였다.

“후….”

반면, 조신자는 어딘가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을 발견한 한무회가 물었다.

“신자는 왜 그래?”

“… 아니에요, 아무것도.”

조신자는 강세혁 검사에게 제보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강문고 이사진이 지금까지 해왔던 부정부패 자료들이에요.

-갑자기 이걸 저에게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

-이걸 제보하셨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강세혁 검사는 완고했다. 조신자는 남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그러지 않은 이유를 강세혁에게 설명했었다.

-… 제 잘못을 인지하고 있어서 그래요.

-어떤 잘못이죠? 여기에는 조신자 ‘전’이사님의 부정행각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요.

-이들의 부정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잘못이요.

조신자가 강세혁에게 건넨 자료는, 자신의 부정부패 내용은 모조리 제외하고, 나머지 이사진의 잘못이 한가득 적힌 것이었다.

그렇기에 강세혁 검사의 의심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조신자는 해당 자료만을 강세혁 검사에게 건넸다.

혹여나 있을, 향후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보 감사합니다.

그렇게, 제보는 마무리되었었다.

그리고 조신자는 이후 한무회, 천우원을 만나면서 한 가지 부정적인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 자료만 따로 빼두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곽형조에 대해 올라온 기사는, 이사진 같은 내부 인원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특히 불륜.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천우원과 주현서뿐이었다.

심지어는 조신자와 한무회도 이번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서 처음 알았다.

“너무 긴장하지 마. 네 자료들만 따로 제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으니까.”

“아…!”

조신자의 생각을 모두 읽고 있는 듯한 천우원이 씨익 웃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피해자야.”

잔에 든 맥주를 모두 마신 천우원은 비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곽형조라는 권력자에게 휘둘린 피해자 말이야, 으히히히.”

* * *

온갖 기사들이 나오게 된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강문고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저, 저거 너도 했던 거 아냐?”

“시발! 이게 왜 여기에….”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지금까지는 자세하게 오픈되지 않았던 GF파일 속의 부정부패 증거들. 그 증거들이 인터넷에 여과 없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대학생 커뮤니티 사이트는 물론이고 각종 SNS에도 자료에 대한 이야기들이 올라왔다.

그 미끼를 놓치지 않을 언론이 아니었다.

미래교육을 시작으로, 각종 언론사에서 강문고의 사학비리를 다루기 시작했다.

“한두 개가 아니야….”

게다가 이번에 밝혀진 내용들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GF파일에 올라온 부정부패 금액은 어림잡아 약 60억.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더 더러운 기사 안 나오냐? 아침드라마 맛집이네.

-진심.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 이거다.

댓글들이 가지고 오는 여파도 상당히 컸다. 이제 공교육의 희망인 강명문과 그의 제자들인 졸업생들을 영웅시하기도 했다.

-진짜 선생 한 명 잘 만나면 학교가 바뀐다.

-학생들도 뿌듯할 듯. 언제 저런 거 밝혀보겠어.

학생들도 기사를 보면서 저들끼리 놀라워했다.

“와… 은장 언니, 이번에 진짜 작정했네.”

민주가 중얼거리자 옆에서 은솔도 말했다.

“동석 선배도. 이거 다 동석 선배가 뿌렸다잖아.”

“장난 아니다 진짜…. 이렇게까지?”

용희도 선배들의 움직임에 감탄하면서 말했다.

태웅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학교에 부정부패가 있어도, 이미 졸업한 사람들 아닌가. 입시도 끝났고, 굳이 학교의 안 좋은 부분을 밝혀낼 필요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졸업생들은 그걸 하고 있었다.

어느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그들이 바랐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뭔가 하자.”

“응?”

태웅의 말에 민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도 하자고. 졸업한 선배들한테만 맡길 거야?”

용희가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뭐부터 할까?”

그 질문에 답한 건 태웅이 아니라 민주였다.

“글을 쓸까?”

“글?”

은솔의 질문에 민주가 환하게 웃었다.

“우리 중에, 그 누구보다도 큰 피해를 입었던, 부정부패 피해자가 있잖아?”

민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 사람의 시선이 태웅을 향했다. 태웅도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과하게 몸을 푸는 제스처를 취했다.

“일단, 내신조작 때문에 희생될 뻔했던 이야기를 풀어야겠네.”

태웅은 마치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다는 듯 손가락을 풀었다.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대충은. 솔직히 그때 일 생각하면 계속 빡치거든.”

변한 태웅의 모습에 용희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친구가 이전보다 더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바뀐 모습이 기뻤던 것이었다.

“그럼 태웅이가 작성하면, 그걸 교내에 뿌리자!”

은솔의 추가 제안에 다른 친구들이 좋다며 맞장구를 쳤다.

* * *

2학년 1반에도 어제오늘 올라온 기사들이 핫이슈로 부상했다.

“선배님들….”

속으로 존경의 경례를 하던 경필은 이전에 수학여행지에서 들었던 명천의 조언을 떠올렸다.

-공부 말고 다른 걸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그 결과, 이렇게 멋지게 되셨군요, 명천 선배님!”

경필이 주먹을 꽉 쥐면서 외쳤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민정과 동규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거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너 명천이 형이랑 이야기 많이 나눠 보지도 않았잖아.”

둘의 타박에 경필은 코웃음을 날렸다.

“무슨 소리! 수학여행지에서 보여 주셨던 모습만으로도 존경심을 가지기에는 충분했어!”

“존경심 얘기가 아니라….”

한 번 더 반박을 하려는 동규에게 경필이 외쳤다.

“그런 것보다! 우리도 뭔가 좀 해야 하지 않겠냐?”

“뭐? 뭘 해?”

민정은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경필을 살폈다.

“뭐라도 해야지! 지금 이거, 우리가 다니는 강문고 문제잖아!”

경필은 민정, 동규를 비롯해 교실에 모여 있는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졸업생 선배들도 이렇게 뛰어다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냐고!”

학교를 다니고 있지도 않은 선배들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경필은 반성했다.

‘학교에 문제가 많은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미 강문고에 부정부패가 많다는 사실을, 경필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알고 있었다.

태웅과 유미 사건, 수학여행 문제, 급식비 문제, 최근 있었던 교감 선생님 일과 비교과 특강 사건까지.

벌써 학생들은 수많은 부정부패의 온상을 지켜봤고, 더러는 직접 겪기도 했다. 정책 제안에서 여러 방식을 제안해 보기도 했고, 반성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래서 그 이후에 무엇을 했는가?

경필은 그 부분이 부끄러웠다.

3학년 선배들이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시가 코앞이니까,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잖아!”

오히려 졸업한 선배들이, 입시가 끝나고도 몇 달은 지난 사람들이 이 사건을 파헤쳤다. 부정부패의 자료들을 언론에 제보했고, 직접 여러 사이트에 업로드하면서 폭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경필은 주먹을 꽉 쥐었다.

“3학년 선배들은 입시 때문에 바쁠 수 있어. 그러면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겠냐?”

졸업한 선배들은 성인이고, 대학생이었다. 강문고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보면 이미 떠난 공간, 나 몰라라 해도 될 것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우리가! 등록금 횡령 하고, 내신 조작 되고 있고, 교보재 후려치고! 이런 거에 가장 민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경필의 말에 학생들이 하나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래….”

“어쩌면 우리들 성적도 조작된 거 아냐?”

“횡령만 60억이라며. 그게 말이 되냐고.”

학생들이 수근거렸다. 경필은 친구들을 보면서 한 번 더 외쳤다.

“그러니까 우리도 뭔가를 하자! 이대로 넋 놓고 당하고만 있을 거냔 말이야!”

“맞아! 60억을 학생들을 위해 써라!”

“불법 횡령자들, 싹 다 감방에 넣자!”

학생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필은 더 이상 참지 말자며 오른 손을 번쩍 위로 들었다.

“더는 학생들을 무시하지 않도록! 우리가 움직이자!!”

우와아아아-!!!

2학년 1반 학급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바람을, 다른 학급들도 천천히 맞이하고 있었다.

* * *

“이사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이 강문고의 강당에 잔뜩 몰려들었다.

강은숙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여러 언론들에 연락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이사장님! 지금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문고에 이렇게 많은 비리가 있었다는 건 알고 계셨습니까!”

“혹시나 명예훼손은 아닌가요!”

기자들이 여러 억측을 내면서 이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총 횡령금액이 60억이 넘습니다! 정말입니까!”

“이사장님이 횡령하셨다는 증거가 있는데 숨기는 건 아닙니까!”

이 기자회견을 준비한 건 강은숙 이사장이 맞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내가 준비한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게 만들어 주지.

곽형조가 뒤에서 힘을 쓴 덕분에, 곽형조와 진순철의 힘이 되어 주는 기자들이 대거 몰려왔다는 점이었다.

강은숙 이사장은 그 사실을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아챘다.

‘경솔했어….’

설마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움직였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강명문도 알려 주지 않았던 일이었다.

‘아니지, 너무 강 선생님만 의지해서는 안 돼.’

속으로 마음을 다잡은 이사장이 마이크를 집었다.

[저희 강문고는….]

[이번 명예훼손 사태에 법적 조치를 다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사장의 말은, 중간에 난입한 곽형조에 의해 끊겼다.

심지어 곽형조는 이사장의 의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멘트를 날렸다.

“곽형조 이사님…!”

“왜, 강문고에서는 모르는 일이잖나. 명예훼손으로 싹 다 신고 때려야지. 안 그런가?”

끌끌, 웃는 곽형조를 보면서 이사장이 다시금 마이크를 잡았다. 이 말을 번복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이 이사장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방금 이사님 중 한 분이 말씀하셨는데, 사실입니까!”

“그럼 자료를 유포한 학생들을 법적으로 처벌하실 계획이십니까!”

[그게 아니라….]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강은숙 이사장을 보면서 곽형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넌 끝났어.’

곽형조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여, 여기!!”

뒤에서 한 기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뒤에서 학생들 여러 명이 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뭐, 뭐야?”

“누구야?”

“학생들 아냐? 교복 입고 있는데?”

살펴보니 3학년 학생들이었다.

“너희들….”

이사장은 바로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정면에 서 있는 학생들은 민주, 태웅, 은솔, 용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학생들은 3학년 3반 학생들이었다.

“저희 이거, 홍보 좀 하려고요.”

민주가 싱긋 웃으면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돌돌 말려 있는 거대한 종이몽둥이를 위로 들었다.

“펼친다!”

민주와 용희, 태웅, 은솔은 모조전지를 이어 붙여 만든 종이를 단상 위에서 아래로 촤락 펼쳤다.

“대자….”

“…보?”

갑작스런 학생들의 등장에 당황해하던 기자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 아.]

그때 마이크를 잡은 태웅이 말했다.

[저는, 내신조작 문제 때문에 피해를 입었던 이태웅입니다.]

태웅을 알아본 기자들이 소리쳤다.

“그때 걔잖아! 자살 사건!”

“아!!”

태웅을 알아본 기자들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곽형조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마이크 이리 내! 당장 내려가지 못하나!”

[아니요! 내려갈 수 없습니다!]

소리를 버럭 지르는 통에 스피커에서 지이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희는 오늘! 기자님들께 사건의 전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곽형조의 눈이 광기가 서린 듯 충혈되어 갔다.

“이 꼬맹이 새끼가…!”

[저는 내신조작 때문에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내신조작을 계획한 건….]

곽형조가 태웅에게 달려들어서 마이크를 완려으로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70세 이상의 노인을 상대로 청소년이 쉽게 당할 리가 없었다.

태웅은 몸을 슬쩍 피하면서 그를 보며 소리쳤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강담 내부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리고 수초 뒤, 다시금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그 모습을, 강당 뒤편에서 강명문이 모자를 눌러쓴 채 히죽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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